현 시대 과학과 예술 융·복합의 형태

임동열의 art & science

홍익대학교 미술학 박 임동열 박사입력 : 2018.07.27 08:00
▲임동열 홍익대학교 미술학 박사/사진=더리더
앞선 칼럼에서 과학과 혼합된 형태가 어떻게 예술에서 나타나게 되었는지에 관해 간략히 설명했다. 이번에는 그렇게 시작된 과학과 예술의 융복합 결과가 현재는 어떠한 방식을 통해 나타나고 있으며, 기저에는 무슨 이론들과 맞닿아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많은 이론가들은 다양한 방식의 논의를 통해 이를 규정하고자 했다. 미국의 수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는 특정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는 원칙을 정의하고자 하는 연구의 일환으로 시스템 내부의 커뮤니케이션뿐만 아니라, 동물과 기계 사이의 의사소통, 오토마타(자동기계), 컴퓨터, 인식론, 정신분석학 등에 걸친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 같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들을 종합할 수 있는 용어로서 ‘Cybernetics(사이버네틱스)’란 단어를 ‘Steersman(조타수)’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만들어 냈다. 사이버네틱스란 결국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조율하는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됐으며, 이는 곧 피드백이론과 맞닿아 있다. 피드백은 사이버네틱스의 제어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툴이며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예술에 과학기술을 받아들임으로써 키네틱 아트의 발전이 오게 되었고 이것은 예술의 범주 안에 동작의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움직이는 예술은 관람객과의 반응성을 담보로 하지 않기 때문에 초창기의 키네틱 아트는 제한적인 수용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에 반해 더 적극적으로 피드백이론을 접목시킨 형태로 뉴미디어 예술이 나타나게 되었다. 뉴미디어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의 의식과 같은 감각기관을 보유한 주체적인 매체로 발전해왔다. 이는 뉴미디어가 스스로 반응성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으며 인간과 상호작용을 통해 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음을 말한다. 기계와 기술은 결국 인간을 위한 도구로서 존재한다는 의미론을 내포한 휴머노이드적 견해와는 다르게 기술은 인간과의 대등한 관계 속에서 그 나름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뉴미디어 예술에서는 이 같은 관계 설정을 통해 인간과 미디어의 상호작용성에 주목하였다. 

이는 기계와 인간 사이의 공생을 의미하며, 하나가 다른 하나를 닮아가거나 흡수하는 것이 아닌 각각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통해 동등한 위치에서의 협업을 의미한다. 흔히 인터랙티브 아트(상호작용예술)라 불리는 분야의 작품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2000년에 선보인 미국의 미디어예술가 켄 리날도(Ken Rinaldo)의〈AUTOPOIESIS〉작품에는 피드백 작용의 원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작품‘AUTOPOIESIS’는 15개의 음악적이면서 로봇 조각들로 구성된 인공 생명 로봇 시리즈로 대중과 상호 작용하고 전시 참가자와 입장과 각 조각품 사이의 의사소통을 기반으로 행동을 수정한다. 기본적으로 전화의 톤과 흡사한 음악처럼 들리는 소리에 반응하여 로보틱 조각들은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들은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움직임을 통일화시킨다. 이 움직임들은 관람객의 동선 자체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관람객이 작품 근처로 움직이게 되면 15개의 조각들은 센서를 통해 그를 인지하고 움직임에 변형을 주어 관람객의 동선을 틔워주는 행동을 한다. 이는 각기 로보틱스 조각들이 유선 네트워크와 음악적인 전화 톤을 통해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며 표준 인터페이스(마우스) 및 재생방법(모니터)에서 벗어나 관람자의 피드백과 상호작용을 하여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형태의 인터랙티브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생물학적 영역에 존재하는 친숙한 자연 조각을 만들기 위해 선정한 포토 나뭇가지를 강철 와이어로 압축된 프레임 안에 위치시키고 우레탄 플라스틱으로 인공관절을 만들어낸다. 이는 곧 자연과 기계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며 자연과 기계,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립되는 하나의 유기체적 예술작품인 것이다. 이것이 켄 리날도가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시스템의 진화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기계를 받아들인 예술은 인간과 기계, 과학과 예술이라는 이종 간의 융합을 토대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이종 간의 융합을 더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예술들도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앞선 칼럼에서 에두아르도 파울로치의 기계회로판 이미지의 차용과 유사한 형태로 볼 수 있으며 현재는 더 많은 과학기술과 기계들의 이미지를 끌어들여 작품에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곧 예술가에게 생명의 경계가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설명했던 많은 이론들과 굳이 그 이론들을 탐구하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조금만 신경을 담아 바라본다면 바로 알아챌 수 있다. 

기계가 없는 삶을 과연 상상할 수 있는가. 의학의 발전과 발맞추어 수많은 임플란트를 통해 생명 연장과 신체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나가고 있으며 자동차 및 디지털 기계들의 등장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있음을 부정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 속에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명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생명의 몰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데. 경계라는 것은 어떠한 대상을 한정짓는 요소로서 등장하며 그것이 허물어짐은 대상의 몰락이 아니라 대상의 변화(경계가 사라짐으로써 오는)를 의미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수동적인 의미의 기계에서 하나의 유기체로 그 위상이 변화됨에 따라 생명의 위상 역시 달라지는 것이다. 동물과 기계의 융합(하이브리드)에 관심을 두고 있는 예술가들은 이 같은 현상에 주목했다. 생명과 기술사이의 공간이 무의미해지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임으로써 한계를 뛰어넘는 데 관심을 가진 것이다. 그들에게 기계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대상이 아니라 융합을 통해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는 하나의 창구로서 인식되는 것이다.

53세의 프랑스 예술가인 피에르 마테 (Pierre Matter)는 1986년 봄에 큰 사고를 당했다. 22세의 나이에 오토바이 사고로 현지 신문사에서 사망했다고 오보가 나가기도 하였다. 병원에서 깨어난 후 기억상실증에 시달렸고, 모든 일이 결코 다시는 같을 수 없고 인생을 최대한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사건은 분명 내가 하는 일과 오늘의 일을 위한 기초입니다. 분명히 그 날 시작된 여정은 계곡, 틈, 가파른 산들, 고개를 가로지르는 평원과 같이 험악한 곳이었지만, 결국 그것들이 오늘날 내가 창조한 조각품에 나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우리 모두가 두 가지 삶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고, 두 번째 것은 우리가 오직 하나만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나는 이 순간이 내 인생의 초반에 왔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기계가 실제로 신체의 연장선이 된 부분적으로 기계적 존재로 진화했다고 믿는 그는 나노 기술의 통합, 인공 삽입물과 단순한 일상적 메커니즘과 같은 외부 첨가물을 묘사하고 우리가 이들에 어떻게 의존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우리는 신화에서 보던 존재인 괴물과 같은 하이브리드가 현실에 존재케 하는 과도기에 살고 있습니다. 산의 암소조차도 결국 우유 기계(milk machines)입니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그는 사고 후 의학적 도움을 통해 새 생명을 얻었으며 그 과정이 그를 트랜스휴먼적 사고를 가진 인간으로 변모시켰다. 인간의 연약함을 비유한 아기를 거대한 기계동물과 함께 등장시킴으로써 기계와의 융합(하이브리드)을 통한 새로운(더 우월한) 존재로의 변화를 수용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결국 트랜스휴먼의 기본 개념-기계와 생명체의 하이브리드를 통해 더 나은 새로운 존재로의 변모-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이처럼 예술은 과학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의미론적 접근을 통한 상호작용 예술과 과학기술의 이미지를 차용한 형태론적 접근 등 더 이상 예술에서 기술을 떼어 놓고 설명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현시대에 기계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하루의 일과를 함께하는 벗이자 또한 신체의 일부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기계와 인간 사이의 공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 상호작용을 통해 교감하고 있다. 기계가 고장이 나면, 마치 애완동물이 병에 걸린 것처럼 온 신경이 고장 난 기계로 쏠린다. 기계들은 이제 인간 감성의 기저와 함께 작용하고 있다.

임동열
홍익대학교 조소과 학사
미술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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