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인문학’ 바람이 선거연수원에서 불고 있다

[이종희 정치살롱]

선거연수원 이종희 교수입력 : 2018.07.04 09:12
▲이종희 선거연수원 교수
‘선거인문학’ 바람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에서 불고 있다. 선거연수원 교수들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찾아가는 강연 형식의 ‘선거인문학 콘서트’를 총 3회 개최했다. ‘선거인문학 콘서트’는 유권자가 재미있고 쉽게 선거의 의미, 역사 등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선거를 통해 인간의 삶, 주권, 선거 신뢰 등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고찰하는 공론의 장이었다. 

이번 ‘선거인문학 콘서트’는 ‘제자백가에게 배우는 유세’ ‘영화로 만나는 선거인문학’ ‘선거자료 속에 숨어 있는 선거 이야기’ 등 각각 다른 장소에서 각기 다른 주제와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제자백가에게 배우는 유세’
‘선거인문학 콘서트’의 첫 번째 순서인 ‘제자백가에게 배우는 유세’는 5월1일 대진대학교에서 열렸다. 조원용 선거연수원 교수와 인문학자인 임건순 작가의 강연 후, 선거연수원 강대우, 장성훈 교수가 패널로 참석하여 토크를 진행했다. 

조원용 교수는 민주주의와 선거의 의미를 ‘사람’을 중심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왕(王)이 아닌 유권자의 마음을 훔쳐라’란 주제의 강연에서 특히 ‘민주(民主)’라는 개념이 동양에서는 ‘백성의 주인’이라는 왕을 의미하는 개념에서 20세기에 들어 ‘백성이 주인’이라는 개념으로 전환되었음을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또한, ‘선호의 변경’ 가능성을 기준으로 숙의민주주의와 선호집합민주주의를 설명하면서 “현대 대의제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선호가 가능성을 용인하는 숙의민주주의하에서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흔히 직접민주주의 대체 수단으로 인식되는 간접민주주의(대의제)가 본래 ‘최상의 제도’로 기획되었음을 미국 건국 당시 연방주의자의 논거와 마키아벨리, 키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설명했다. 이와 같은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선거와 유세에 대해 동양과 서양의 관점 차이 등을 인문학적으로 심도 있게 분석하였다. 

임건순 작가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아라-제자백가 유세를 통해 배우는 자기 홍보와 설득의 전략, 전술’이란 주제로 춘추전국시대에 있었던 제자백가들에 대해 강연했다. 임 작가는 “과거 제자백가들의 유세는 요즘의 면접이나 오디션과 비슷한 개념이다”라며, “제자백가들의 유세를 통해 상대를 설득하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동양적 수사와 서양적 수사의 차이, 동양적 수사에서 겸손과 중용의 중요성, 제자백가들의 유세 전략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제자백가들의 구체적 사례를 고사성어와 함께 풀어내며 흥미 있는 강연을 펼쳤으며 “동양의 철학이나 고전은 단순히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선거인문학 콘서트 1회 ‘제자백가에게 배우는 유세’(왼쪽부터 강대우 교수, 조원용 교수, 임건순 작가, 장성훈 교수)/사진=선거연수원 제공

이어서 강대우 교수, 장성훈 교수가 패널로 참석한 토크에서는 오늘날의 선거 이야기와 함께 학생들의 질의에 답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장 교수는 선거에서의 감성적 설득의 폐해 사례로 지역주의 투표를 들면서, 실제 1992년 12월에 있었던 ‘초원복국집 사건’을 소개했다. 이러한 감성적 설득의 폐해를 해결하기 위해 “선거의 주체가 후보자에서 유권자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조 교수는 “유권자가 후보자가 정해놓은 판단 틀이 아닌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히 하고, 자신만의 분명한 기준을 가져야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감성에 호소한 과거 지방선거의 실제 사례를 소개하면서, “역량이 모자란 한 후보자가 유권자들의 측은지심에 호소하는 선거운동 방법을 택하였고, 유권자들의 측은지심으로 인해 그 후보자가 당선되어 선거 후 많은 부작용이 초래되었다. 유권자는 선거에서 측은지심을 버리고 냉철하게 후보자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패널들은 과거 운동장이나 광장에서 이루어진 군중집회 유세가 현대에는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선거유세로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함축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동양적 수사기법과 연계한 현대 미디어 선거운동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영화로 만나는 선거인문학’
5월2일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두 번째 선거인문학 콘서트 ‘영화로 만나는 선거인문학’은 ‘역사 속 선거권과 청소년’을 주제로, 영화 속 선거권에 관한 이야기들을 인문학적으로 흥미롭고 깊이 있게 엮어냈다. ‘영화로 만나는 선거인문학’은 선거연수원 이종희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오동진 영화평론가와 선거연수원의 김범진 교수, 이종수 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영화로 만나는 선거인문학’에서는 영국의 여성선거권 투쟁에 대한 영화 ‘서프러제트(Suffragett)’(2015),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 ‘와즈다(Wadjda)’(2014), 마틴 루서 킹과 1965년 미국에서 있었던 셀마 행진을 다룬 영화 ‘셀마(Selma)’(2014) 그리고 우리나라 선거권 연령에 대한 청소년들의 다큐멘터리 영화 ‘19금(禁)’(2016) 등 4편의 편집영상을 감상하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거인문학 콘서트 2회 ‘영화로 만나는 선거인문학’ (왼쪽부터 김범진 교수, 이종수 교수, 이종희 교수, 오동진 평론가)/사진= 선거연수원 제공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선거권을 뜻하는 Suffrage에, 여성을 뜻하는 접미사 ‘-ette’를 붙여 만든 말로서 여성선거권 획득 운동과 운동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화 <서프러제트>는 세탁 공장에서 일하던 모드라는 여성이 우연히 여성선거권 획득 운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차츰 집과 직장 모두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이다. 오 평론가는 이 영화를 통해 “시대의 변화는 하나의 영웅이 아니라 다수의 대중과 민중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영국의 여성선거권이 확대된 시대상황을 설명하며, “주체성을 자각한 영국 여성들의 투쟁과 노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또한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다수의 남성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면서 여성들에게 사회참여 기회가 확대되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종희 교수는 “서프러제트는 여성선거권 쟁취를 넘어서서 당시 여성들이 가지고 있던 이중 삼중의 고통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여성 운동의 일환으로 평가받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종수 교수는 당시 여성선거권 운동에 참여한 여성운동가들에 대해 “여성선거권 운동가들은 평등한 정치적 권리 획득과 동시에, 자신들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극복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를 안고 있던 어려운 시기였다. 그 당시 투쟁의 이미지보다는 아름다움을 내비쳐야 했던 역사적인 배경이 있었다. 여성선거권 운동단체조차도 포스터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화사한 복장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표현했었다. 그러나 여성선거권 투쟁 과정은 과격했다”고 설명했다. 

이종희 교수는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여성에게 선거권이 주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뉴질랜드에서 1893년 가장 먼저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였으며, 핀란드 1906년, 미국은 1920년, 프랑스는 1946년, 한국은 1948년 여성에게 선거권을 주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년에야 여성들이 선거권을 가지게 되었다”며 두 번째 영화 ‘와즈다’를 선정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오 평론가는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와즈다’가 제작되고 세계적인 이슈가 된 것은 여성들의 권리가 여전히 결핍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영화 ‘와즈다’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셀마’는 1965년 흑인 선거권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셀마에서 몽고메리로 약 87km의 거리를 행진한 미국 흑인 선거권 획득 운동의 상징적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김 교수는 당시 노예제를 금지한 미국의 연방헌법과 달리 주법 차원에서 흑인들의 권리를 박탈한 대표적 차별법인 짐 크로 법(Jim Crow Law)에 대해 설명하며, “선거인 명부에 신청할 때 문맹 검사제를 이용하여, 백인들에게는 개나 고양이 같은 쉬운 단어를 쓰게 하고 흑인들에게는 연방헌법을 해석하거나 라틴문헌을 번역하는 등의 차별적인 문제를 냈다”며 그 차별성을 지적했다. 

영화 ‘19禁’에 대해 오 평론가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스스로 말하고 있는 영화로 내용적 측면에서 훌륭한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수 교수는 “우리나라는 1948년 제헌헌법에서 만21세로 처음 선거권 연령이 명시되었다”면서 “경제적, 사회적 변화에 발맞춰 2005년에 만 19세로 하향하여 현재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OECD 국가 35개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만 19세로 선거연령을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선거권이 하향되었을 때 청소년들이 그들의 권리를 합리적으로 잘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민주시민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종수 교수는 과거 조선시대에 현대의 학생이라 할 수 있는 유생들의 정치참여 사례에 대해 설명하면서 “조선시대에 권당과 공관이라는 공식적 시위제도가 있었다”며 “당시는 왕 중심의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왕을 상대로 유생들의 발언권을 보장하는 시위제도가 있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날 ‘영화로 만나는 선거인문학’을 마무리하며 패널들은 “선거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한다”, “민주시민교육이 강화되어 올바른 선택을 위한 장치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청소년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낸다는 것 자체에 시대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는 등의 의견을 나누었다. 

◇‘선거자료 속에 숨어 있는 선거 이야기’
‘선거자료 속에 숨어 있는 선거 이야기’는 5월25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당에서 장성훈 선거연수원 교수가 경희대학교, 국민대학교, 동국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장 교수는 투표함, 투표용지, 기표용구에 얽힌 역사와 주권, 선거 신뢰 등을 인문학적으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선거인문학 콘서트 3회 ‘선거자료 속에 숨어 있는 선거 이야기’를 강연 중인 장성훈 교수/사진=선거연수원 제공

장 교수는 ‘투표함이 왜 바뀌었는가’를 첫 화두로 강연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투표함인 목재 투표함, 제3공화국에 새로 들어온 철제 투표함 등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투표함을 소개하고 투표함이 계속 변화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장 교수는 “목재 투표함에서 철제 투표함으로 바뀌게 된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숨어있다”면서 3·15 부정선거 당시 투표함을 통째로 바꿔치기하거나 부정행위를 숨기기 위해 투표함을 태웠던 사건들을 설명했다. 이어 1987년 구로구을 우편투표함 탈취사건에 숨은 이야기들을 전하며, “투표함과 관련된 사건들이 1960년대부터 선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일에 발생한 ‘강남투표함 미봉인 사고’를 통해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강화플라스틱 투표함이 들어오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선거관리위원회의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음을 지적했다. 
투표용지에 관해서는 막대 기호를 통해 문맹인들의 투표권을 보장했던 초창기 선거 이야기, 한자·한글 병기나 세로쓰기 등 투표용지 양식을 통해 당시 선거 문화를 이야기했다. 또한 부정 투표를 막기 위한 일련번호 및 가인제도 도입, 1970년대 투표용지에 숨은 양당제 정착 의도, 지방선거 투표용지의 색을 다양화한 배경 등 투표용지를 통한 역사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기표용구에 대해서 초창기의 나무막대, 탄피 기표용구, 선거관리의 통일성과 체계성 확립을 위해 사용한 ‘모나미 볼펜’ 기표용구, 현재 사용되는 만년기표봉 등에 대해 설명했다. 기표도장 속 卜자 모양이 사용된 배경에 대해서는 “당초 사용되던 人자가 김영삼 후보를 지칭한다는 여론이 불거졌다”며 “이 또한 선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연 말미에 장 교수는 조선 순조시대 실학자 최한기 선생의 ‘천하우락 재선거(천하의 근심과 즐거움은 선거에 달려있다)’라는 문장을 언급하면서 “오늘날 천하의 즐거움은 유권자가 선택한다. 생각하는 유권자와 그들의 선택이 나의 삶, 대한민국을 바꾼다”고 강조했다.

이번 ‘선거인문학 콘서트’를 총괄한 선거연수원 김진묵 제도연구부장은 “선거인문학 콘서트는 선거에 얽힌 이야기를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쉽지만 깊이 있게 만나보도록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기획하였다. 선거인문학을 통해 선거에 얽힌 삶과 투쟁, 희생, 신뢰 등을 다루어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와 관심을 제고하고자 하였다. 선거인문학이 선거연수원 교수들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고 밝혔다. 이번 ‘선거인문학 콘서트’ 3회차 프로그램은 모두 영상으로 제작되었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홈페이지(www.civicedu.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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