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산골 청년 강소농, 대기오염에 특효약 ‘도라지’, 블루오션 될 것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상철 팜라이터입력 : 2018.09.23 09:00
▲심심산골 청년 강소농/사진=홍상철 팜라이터
BYC라는 말은 경북에서 오지의 대명사처럼 통한다. 경북 북부 산간지대인 봉화(B) 영양(Y) 청송(C)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중 한 곳인 봉화에서 도라지를 키우는 청년 강소농(작지만 강한 농업)을 찾아 나선 길은 쉽지 않았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라는 말이 어울릴 듯했다.

농사일이 바빠 별도로 인터뷰 시간을 내기 어려우니 농장으로 오라고 했다. 휴대전화로 날아온 위치를 입력하고 찾아가는데 도중에 장소가 바뀌었다. 봉화읍에서 상운면으로 오라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구불구불한 농로를 찾아 들어가자 일행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약속 장소를 바꾸고 나서야 푸른 도라지 밭에서 만난 젊은 농부는 ‘산아농부’농장을 운영하는 김태준(32) 대표다. 

심심산골이란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오지였다. 김 대표는 이곳에서 도라지를 재배하고, 부인 박승희(30) 씨는 영주시내에서 도라지를 가공해서 판매하는 ‘도라지미’라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귀농 4년차, 도라지에 부부의 인생을 걸고 도라지에 올인하고 있는 청년 강소농을 만났다. 

-많이 바쁜 것 같다
▶“약속 장소를 자꾸 바꾸어서 미안하다. 지금이 도라지 밭에 풀베기 작업을 하는 기간이라 어쩔 수 없었다. 며칠 전부터 일꾼 네 사람을 구해서 계속 풀베기작업을 하고 있다. 망초와 바랭이풀 등 잡초들이 무성해 하루라도 빨리 풀베기를 해야 한다. 너무 늦으면 도라지가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을 앞으로 열흘 정도는 더 해야 할 것 같다. 더구나 농장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 작업효율이 떨어진다.”

-젊은 나이에 귀농을 한 것 같다
▶“귀농이라고 해야 할지 귀향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봉화가 고향이라 여기서 나고 자랐다. 대학생활과 직장생활을 하면서 잠시 고향을 떠나 있다가 되돌아온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귀농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귀향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귀농 전에는 무슨 일을 했었나. 왜 농사를 택했나
▶“충북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구미에 있는 섬유 관련 대기업인 ‘코오롱’에서 화공기술자로 일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폴리머 종합반응공정’을 취급하는 전문기술업무였다. 전문직을 버리고 귀농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함께 일하던 상사나 동료들을 보면서 나의 미래도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좀 더 나은 앞날이 무슨 일일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었다. 어릴 적 살았던 고향에 대한 애정도 있었다. 처음에는 15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다가 귀농을 할 생각이었으나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에서 앞당겼다.”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
▶“아내의 반대가 심했다.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갓 결혼한 신부에게 농촌으로 들어가자고 하는데 누군들 선뜻 허락하겠는가. 당시 아내는 청주에 있는 유기농 농업회사에서 근무 중이었다. 나보다도 아내가 농업에 대하여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 농업의 현실과 전망, 당장 몸으로 부딪치는 육체노동의 강도 등 농업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반대를 많이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30년간 도라지 농사를 전문으로 지었고, 수입도 괜찮은데 남들이 많이 하지 않은 작목이라는 점을 들어 설득했다. 고민 끝에 아내가 동의하면서 귀농이 이루어졌다. 젊은 부부가 왜 농촌으로 들어왔을까 하며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 소리에 부모님이 많이 속상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강소농(强小農)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작지만 강한 농업 경영체(농가)’다. 경영규모는 작지만 꾸준한 역량 개발로 경쟁력을 갖춘 농업경영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소규모 가족농이 대부분인 우리 실정에 맞는 농업시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강소농 육성을 위하여 농촌진흥청에서 경영개선 실천교육과 경영컨설팅, 자율모임체 육성을 지원하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나 같은 초보 농부에게는 더 그렇다. 같은 강소농들이 모여서 정보와 기술을 공유하고 새로운 농촌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왜 도라지인가
▶“도라지는 다른 작물과 많이 다르다. 한번 파종하면 3년간 키워야 한다. 다른 농사보다는 장기 투자다. 즉 처음 시작할 경우 3년간 소득이 없다는 말이다. 농촌에서 3년간의 소득 공백을 견디기는 어렵다.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선뜻 시작하지 못한다. 농업에서 일종의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대기오염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미세먼지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것은 바로 호흡기 건강과 직결된다. 도라지는 약용과 식용을 겸한 작물이다. 그러다 보니 도라지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기관지가 나빠서 기침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도라지를 장복하면 큰 효과를 본다. 생도라지나 분말, 도라지청, 도라지정과 등 어느 것이나 상관없다. 이런 이유보다도 부모님이 30년간 도라지를 재배한 전문가다. 도라지 농사를 가업으로 이어받으면 부모님이 가진 기술과 농기계, 인력 수급, 유통망 등 모든 노하우를 물려받을 수 있으니 가장 안전한 투자가 될 수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면 나는 귀농의 ‘금수저’다. 그 점에 대하여 부모님께 감사한다.”
▲심심산골 청년 강소농/사진=홍상철 팜라이터

-얼마나 재배하고 소득은 어느 정도인가
▶“대략 3만3000㎡(1만 평) 정도를 재배해 연간 1억 원의 조수익을 올린다. 아직 3년 단위로 순환재배를 하는 과정이 완전하게 정착하지 못해 소득이 안정적이지 못한 점은 있다. 순환재배가 정착되면 파종 순서대로 매년 수확을 하는 것이다. 오늘 약속 장소를 자꾸 바꾼 것도 농장이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봉화군과 영주시 전역에 퍼져 있다고 보면 된다. 도라지의 특성상 농장을 집단화하기기 쉽지 않다. 한 번 재배를 한곳은 수확 후 3년이 지나야 다시 재배할 수 있다. 다른 작물처럼 연작(해마다 같은 땅에 같은 작물을 심어 기르는 것)이 안되는 특별한 작물이다. 3년마다 경작지를 계속 옮긴다. 그래서 주로 인삼 경작지를 따라 다닌다. 인삼을 수확한 밭에 도라지를 심는 것이다. 100% 임차 농지다. 3년마다 경작지를 옮겨 다녀야 하기 때문에 농지를 매번 구입할 수도 없고, 구입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농지를 임차해 재배한다.”

-약용과 식용의 차이는
▶“약용과 식용의 차이는 없다. 도라지는 약용과 식용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잔뿌리가 많은 것은 약용으로 쓰고 직근(땅속으로 곧게 뻗은 뿌리)이 발달한 것은 식용으로 쓴다. 잔뿌리에 사포닌 성분이 많고 직근은 다듬기 편리하기 때문이다. 뿌리 모양은 토양의 상태와 밀식 정도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다. 도라지 재배에는 사질토와 마사토가 좋다. 최근에 중국산이 많이 수입되고 있어 국내산과 한판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도라지 재배의 가장 큰 일거리는
▶“제초작업이다. 도라지는 생육 특성상 제초제를 사용할 수 없다. 파종 후 제초제를 처리하면 풀은 나지 않지만 도라지도 발아가 되지 않는다. 어릴 때 제초제를 뿌리면 같이 약해를 입는다. 그래서 일일이 손으로 뽑는다. 여기에 일손이 많이 들어간다. 주로 1년생일 때는 마을의 할머니들이 김매기를 한다. 2~3년생 밭에서는 풀들의 성장 속도에 따라 예초기로 밭고랑에 자란 풀을 벤다. 모든 작물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도라지 재배는 풀과의 전쟁이다. 그래서 전체 비용 중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통상적으로 35~40% 정도가 인건비다. 농촌의 유휴노동력을 활용하는 일종의 일자리 창출사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농촌인구의 고령화로 할머니들의 일손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어렵다. 점차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도라지는 풀과의 전쟁인 동시에 인건비 싸움이다.”

-가공품은 무엇이 있나
▶“도라지정과와 도라지청, 도라지라떼가 있다. 전부 수제품으로 아내가 직접 만든다. 영주 시내에 ‘도라지미’라는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한다. 이곳에서 제조와 판매를 한다. 수제품으로 만들기 때문에 단골고객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금은 생산된 도라지의 대부분을 서울과 대구 등 대도시 공판장의 도라지 전문 도매상에 판매하지만 직판과 가공품 생산을 늘려 나갈 계획이다.”

-어려운 점은
▶“도라지 재배의 어려운 점은 크게 발아율 저조, 임차농지 확보 곤란, 낮은 기계화율 등 세 가지다. 먼저 발아율이 평균 70~80%로 낮다. 올해는 50% 정도로 극히 낮았다. 초봄의 일기불순과 저온현상 때문에 발아율이 낮았다. 이후에 재 파종을 했으나 올여름 가뭄으로 상태가 나쁘다. 다음으로는 재배 경작지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역적 특성상 산간지역이라 큰 면적의 밭이 적고, 골짝 골짝에 흩어져 있다. 
당연히 여러 지역에 산재해 작업효율이 많이 떨어진다. 따라서 인삼을 재배하고 수확한 밭에 후작으로 많이 들어간다. 인삼은 통상 5년간 차광막을 설치하고 재배하는 관계로 외부에서 날아오는 잡초 종자가 차단되기 때문에 잡초 발생이 적다. 임차료가 비싼 것도 어려운 점 중의 하나다. 도라지 밭의 임차료는 660㎡(200평)에 30만 원 정도로 비싸다. 그러다 보니 새롭게 도라지 재배에 뛰어드는 농가에는 초기 비용이 큰 부담이 된다. 파종과 수확 등 많은 작업과정이 기계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수작업 의존 비율이 높다. 특히 김매기와 수확 및 정선작업은 일일이 수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을 기계화하는 것이 도라지 재배의 큰 과제다.”

-농장과 가게 이름이 특이하다
▶“산아농부의 산아는 한자로 ‘온전할 산(㦃)’과 ‘바른 아(雅)’를 쓴다. 온전하고 바른 먹거리를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믿을 수 있는 먹거리가 가장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산아’는 우리 아들 이름이기도 하다. 아내가 운영하는 ‘도라지미’는 산아농부가 키운 건강한 농산물인 도라지로 만든 맛있는 먹거리라는 뜻이다. 이름은 아내가 지었다. 이름이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름에 대한 아내의 자부심이 상당하다.”

-대가족이라고 들었다
▶“4대가 함께 산다. 85세의 할머니를 중심으로 부모님, 우리 부부, 아들까지 4대가 함께 산다. 물론 한 지붕 밑에서 사는 것은 아니고 바로 이웃에서 산다. 엄밀히 말하면 함께 산다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이웃에 살면서 대부분 함께 모여서 식사하고 일하면서 생활한다. 잠은 따로 자지만 할머니가 우리 아이를 돌보고 우리가 할머니와 부모님을 모시는 방식이다. 굳이 표현한다면 한솥밥을 먹는 두 지붕 한 가족이라고나 할까. 도라지를 재배하는 농사일도 부모님과 함께 하지만 독립경영 형태로 운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도라지 재배에 대한 전문교육 시스템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라 30년간 도라지를 재배한 부모님의 재배기술과 유통방법을 전수받고 있다. 그러나 농업에 관한 기술은 작목별 교육도 중요하지만 농업기술과 경영, 인문학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농업 전반에 대한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강소농교육과 농민사관학교 품질관리 최고경영자 과정 등 총 400시간의 교육을 받았지만 아직도 초보단계다. 앞으로도 7년 정도 농업 전반에 관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을 계획이다. 도라지에 대한 전문 기술은 물론 농업과 농촌의 모든 것이 융합된 교육을 받고 공부를 해서 농업의 멀티플레이어가 되고 싶다. 특히 한번 재배한 토지에서 연작이 안 되는 도라지의 특성을 파악해서 연작 재배가 되는 길을 찾아보겠다. 또한 도라지 재배기술 정립과 함께 가공품 생산을 확대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도라지의 효능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

귀농이나 창농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부탁하자 이제 4년차의 초보 농사꾼이라 거창한 교훈적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도시생활을 접고 농부의 길로 들어선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난 4년간의 짧은 경험이지만 “농업은 분명히 미래가 밝고, 청년들이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직업이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어려움도 많고, 정착과정에서 많은 갈등도 겪을 것이라면서 단기간에 승부를 보겠다는 욕심과 언론을 통하여 나오는 성공사례를 무조건 따라하지 말고 참고만 할 것이며, 충분한 준비와 마음가짐으로 끈기를 가지고 도전하라고 강조한다. 특히 해당 작목을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농가에서 2년 정도의 실습농부를 권하고 싶다고 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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