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소수자 혐오는 사회적 해악 끼쳐”

[인물포커스]"특정 집단 배제하면 범죄율도 상승해 불안한 사회 야기"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입력 : 2018.09.20 09:03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사진=더리더
젠더 혐오의 시작은 ‘일간베스트’였다. 사이트에 여성을 비하하고 범죄를 저지르려는 글들이 올라오자 ‘여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다. 이를 ‘미러링’하는 사이트인 워마드가 만들어졌다. 워마드는 일베와 같은 혐오 표현을 쓰며 ‘남혐’을 확산시킨다. 여성과 남성에 대한 혐오 문제는 이제 온라인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특히 홍대 누드모델 몰카사건의 경우에는 오프라인 시위까지 이어지면서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말이 칼이 될 때>라는 책을 발간, 우리 사회의 혐오에 대해 연구했다. 홍 교수는 혐오하는 대상이 소수자를 향할 때 사회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관점에서 남혐과 여혐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홍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불평등 대우를 받거나 차별로 고통받은 경험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며 “그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집단을 혐오한다면 사회적 해악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혐오 표현은 젠더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존에 우리 사회에는 없었던 난민문제가 발생하자 이들을 배제하는 ‘난민혐오’가 발생했다. 난민에 대한 페이크 뉴스가 커뮤니티에 올라왔고 이들에 대한 반대 청원 동의 수가 70만 명을 넘었다. 홍 교수는 “어떤 집단을 배제하고 혐오하면 그 집단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다”며 “배제될수록 범죄율이 올라가면서 위험한 집단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그들을 인정하고 같이 가야 더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홍 교수에게 듣기 위해 지난달 21일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혐오 표현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것은 언제부터였나
혐오를 ‘차별’로 넓게 본다면 그 이전부터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이슈화된 시기는 2013년이다. 일간베스트 게시판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서부터다. 일간베스트 사이트에서 나오는 표현들이 ‘혐오’인지, 또 어떤 규제가 필요한지 등에 대해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혐오 표현이 지금은 젠더이슈, 난민혐오 등을 거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나갔다.


-최근 이 문제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이다. 워마드에 게시한 여성은 징역 10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불법촬영 문제는 복잡할 게 없지 않나. ‘불법촬영을 처벌해야 한다’는 것은 이견이 없다. 누구나 불법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남녀 이슈를 떠나 명백한 불법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적절한 처벌을 내린 것이다. 다만 이제까지 불법촬영에 대한 수사가 미진했다거나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웠다고 볼 수 있다. 이것에 대해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이것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혜화역 시위로 번지기도 했는데. 지금 여성운동이나 시위는 어떻게 보나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가 예전보다 더 악화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발전된 측면이 있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보다 여성들의 의식 수준이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 간극이 생겼다고 본다. 예전에는 노골적이고 형식적인 차별문제였다면 지금은 실질적인 평등이나 눈에 잘 띄지 않는 문제들, 언뜻 보면 문제라고 인식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슈화한다. 남성의 경우에는 ‘예전보다 나아진 것 아니냐’, ‘형식적인 불평등은 해결된 것 아니냐’고 말한다. 여성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피상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지금 여성운동의 경우에는 겉으로는 안 보이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쪽에서는 ‘아직 멀었다’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 정도면 된 것 아니냐’고 대치하는 이유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남녀 평등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은 그 과정의 진통이다.


-시위에서 다소 과격한 표현들이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어떤 시위든 과격한 표현은 있다. 시위 자체를 그 표현을 중심으로 보면 안 된다. 과격한 표현이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명백하게 법을 위반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거기에만 너무 집중해서 시위 전체를 보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본다. 그 표현이 문제니까 시위가 문제라고 등치하는 것은 운동 자체를 부정하려는 저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위를 왜 했는지, 어떤 목소리가 나오는지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남혐과 여혐이 다르다고 언급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불평등 대우를 받거나 차별로 고통받은 경험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집단을 혐오한다면 사회적인 해악을 낳을 수 있다. 남성집단을 혐오한다면 기분이 나쁘거나 불쾌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남성집단 자체가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다든지 폭력이나 다른 범죄에 노출되지는 않는다. 만약 어떤 집단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면 남성에 대한 혐오가 해악을 끼칠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소수자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나 집단을 보면 그러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은 여성들에 대해 ‘혐오’한다면 그것은 해악이나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여성차별 반대 외치는 여성단체/사진=뉴시스
-일부 여성들은 그런 의미로 ‘미러링’을 하기도 하는데
아직까지 미러링을 했다고 해서 남성집단이 ‘뒤집어서 당해보니까 깨닫게 됐다’고 느끼지 않는다.미러링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주체를 형성하고, 혐오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여성운동을 발전시켰다는 측면에 의미가 있다. 미러링은 수단에 불과하다. 계속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방법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미러링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서로 적대시하기보다 평화적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모든 운동이 평화로운 방식으로 해결되면 좋지 않겠나. 그러나 사실 그럴 수는 없다. 때로는 과격한 구호들, 행동들이 불가피할 때가 있다. 너무 심각하게만 볼 문제는 아니다. 일종의 과정일 수도 있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불가피한 진통이다. 누군가의 권리를 정면으로 침해하거나 불법행위가 아닌 이상 이 과정을 지켜봐도 된다고 본다.


-지난달에는 난민에 대한 혐오가 이슈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난민’ 자체가 낯설다. 막연한 불안감이나 공포심이 드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혐오로 이어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난민을 반대한다. 우리 사회에서 안전이 취약한 게 난민 때문인가? 받지 않으면 안전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는가. 그렇지 않다. 난민의 경우는 한국에서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같이 가야 하는 방법밖에 없다. 난민혐오로 이어지면서 근거 없는 유언비어 수준의 ‘페이크 뉴스’를 퍼뜨리게 되고 사실인 것처럼 알려지는 것은 문제다.


-난민에 대한 문제 이전에 다문화에 대한 편견이나 혐오가 존재했다
우리나라가 인종적인 측면에서 다원적으로 살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제는 다민족 사회가 됐다. 이 흐름은 전 세계적으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우리나라만 거부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집단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생기는 것은 위험하다. 어떤 집단을 배제하고 혐오하면 그 집단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다. 배제될수록 범죄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배제된 집단이 위험한 집단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그들을 인정하고 같이 가야 더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혐오하는 분위기가 퍼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나라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혐오 문제가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겼다고 하더라도 휘발성으로 끝나는 이슈였을 것이다. 우리 사회 자체가 어렵다 보니까 여유가 없어졌고 그 원인을 엉뚱한 데에서 찾은 것 아닐까. 약간의 선동가들의 역할도 있었다. 사회 문제의 원인을 이미 차별받고 있던 소수자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처럼 엉뚱하게 흘러갔다.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끼리 싸우게 된다든지, 약자가 오히려 공격받는 그런 구도가 됐다. 해결해나갈 수 있는 방향이 있는데 너무 쉽게 배제하려는 문화가 잘못됐다. 배제하고 차별이 계속되다 보니 과격한 표현이 나오면서 과격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같이 포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다. 배제하는 분위기가 커진 것 같고 ‘○○충’처럼 과격한 표현으로 분출된다.


-표현의 자유를 연구했는데, 범위를 정하기 어렵다
▶표현이라는 것은 타인의 권리를 직접 침해한다든지, 사회적인 해악을 끼친 경우에는 규제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이상 인정해줘야 한다. 이것은 세계적으로도 합의된 부분이다. 명확한 기준 없이 표현 자체가 불편하다고 규제하면 표현의 자유가 전반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쳤다는 것에 대한 기준이 없다. 어느 범위까지 해악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사진=더리더

-누가 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국회나 범정부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 논의할 때 단순히 ‘금지법’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 혐오 표현은 금지법을 만든다고 해서 갑자기 없어지는 게 아니다. 제한적인 범위만 다룰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혐오의 근간이 되고 있는 사회문화적인 문제, 사회 문화 저변에 깔려있는 편견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정책이나 교육을 통해서 어떻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에 대해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혐오 표현은 앞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하나
▶일부 극단적인 표현에 초점을 맞춰서 혐오적인 표현이 크게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극단적인 말을 하거나 행동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다. 그 표현 뒤에 있는 진정한 주장을 들어야 한다. 이를테면 불법촬영 근절, 소수자들이 좀 더 평등하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 등 이런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한다. 과격한 행동이나 표현을 없애려면 차별을 줄여야 한다. 그렇게 노력하는 과정이 있다 보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現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고려대학교 법학 학사•석사
런던정치경제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서울특별시 인권위원회 위원
천주교 인권위원회 운영위원
한국법철학회 총무이사
한국법사회학회 총무이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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