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비만시대와 정보의 신뢰성, 그리고 베트남

이일환의 情 (정보의 눈으로)·世 (세상)·思 (바라보기)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이일환 교수입력 : 2019.01.11 09:42

필자는 2018년 12월 초지인과 함께 뜻하지 않게 3박 4일의 일정으로 베트남 하노이와 호찌민을 다녀왔다. 관광이 아닌 나름 비즈니스 목적이었다. 부끄럽게도(?) 그간 베트남을 가보지 못했다. 흔히 골프여행 목적으로 가는 여행객도 많으나, ‘골프여행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마누라의 강경자세(?)를 이길 수 없어 먼 훗날 방문지로 미뤄놓았었다. 방문 첫날 하노이 공항 앞의 분주함은 베트남이 라이징 파워로 부상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도이모이 정책 효과의 한 단면이었다. 베트남은 1975년 통일을 달성한 이후 개인 소유 기업과 토지를 국가 소유로 전환하고 남부의 지식인 등을 체제에 순응하는 사회주의 인간으로 개조하는 재사회화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이념에 대한 집착, 1979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야기된 중국과의 전쟁, 지원세력이었던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 과정에서의 혼란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1980년 초 베트남 경제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베트남 지도부는 경제난 극복을 위해 1986년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시장경제’라는 목표 아래 도이머이 개혁 정책에 착수 한다. 4가지 정책적 목표를 지향했다. ①계획경제로 인한 생산침체의 극복, ②시장기 구의 도입, ③생산회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시경제의 불균형 해소와 경제 안정화 유지, ④경제성장을 위한 기반 정비 등이었다. 경제개방과 정치적 체제 개혁을 동시에 진행하는 한편 정치적 자유도 점진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베트남 경제는 양적 측면은 물론 질적인 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베트남의 수출은 2009-2010년을 제외 하고는 매년 두 자릿수의 성장을 보였고, 2011년에는 수출을 1천억 달러 달성했으며, 불과 6년 후인 2017년에는 2천억 달러를 돌파했다. GDP 대비 수출 비중도 2000년 53.9%에서 2016년 93.6%로 연 3.5%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또한 고위 기술 집약 제조상품 수출은 2000년 9억 달러에서 2016 년에는 643억 달러를 달성했다. 베트남의 수출은 도이머이를 채택한 1986년의 7.9 억 달러에서 2017년 2,119억 달러로 260 배 이상이 증가되었다(양운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분석). 특히 베트남 정부는 해외자본(FDI) 뿐 아니라 공적개발원조 (ODA), 해외 베트남 교포(越僑, Viet-Q)들의 송금 등을 잘 활용해 경제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성공적으로 조달했다. 일본은 베트남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국가로서, 하노이 공항도 ODA 자금으로 건설해주었으며, 하노이와 호찌민 간의 고속철도 건설을 추진할 정도로 적극적이다(현재까지 베트남 정부는 부정적 입장).


우리 일행 역시 이 같은 베트남의 개방적인 정책을 활용하여 병원 건설 등에 대한 입장을 타진하고 건설문제를 협의하려던 목적 이었다. 그러나 3박 4일의 일정은 정보비만시대에서 정보 정확성, 그리고 에이전트의 신뢰성이라는 근원적인 화두를 곱씹어 보는 계기를 제공했다. 일본인으로 모친이 한국계, 부친이 일본인, 마누라는 베트남인 이라고 주장하는 현지 일본인 에이전트는 도착하면서도부터 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국어도 일본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창했다. 일본 덕산대학 교수 신분을 갖고 동남아 유학생을 일본으로 유치하는 활동과 함께 태양광 사업 등 자신의 영리를 위한 사업도 병행하고 있었다. 그의 화술은 청산유수에 가까웠다. 당장 사업과 계약이 성사될 듯 모든 것을 낙관적으로 말했 다. 자신이 베트남 고위층 몇 명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위해 10여 년간 다각적인 투자를 했음도 과시했다. 베트남에 별다른 네트워크가 없는 우리로서는 이 에이전트가 진행하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한두 가지 정도 아는 내용을 부풀린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이를 검증할 체제를 우리는 갖추지 못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 까지가 거짓인지를 가려내기 쉽지 않았다.


정보활동에서 말하는 휴민트의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인간정보라고 일컫는 휴민트(HUMINT)는 인간이 정직하고 선하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이기적인 요인에 판단과 행동 기준을 둔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배신하고 이익이 된다면 거짓말도 불사한다.


이런 인간의 속성은 정보의 신뢰성 확보에 어려움을 더한다. 정보요원이 협조자의 말을 지나치게 과신하거나 분석팀에서 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면 낭패, 즉 정보실패라는 참혹한 결과를 야기한 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허위정보에 바탕을 두고 일으킨 전쟁이다. 이라크 담당 CIA요원이 그 정보 원의 말을 지나치게 과신했으며, CIA 본부는 이라크 전쟁을 통해 후세인을 제거하고자 했던 백악관의 비위에 맞추려고 이 정보 를 부풀렸다. 정보학계에서 말하는 ‘정보의 정치화’이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 무기(WMD)를 보유했다는 허위 정보를 제공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을 제공했던 사람은 이라크 정치인 아마드 압델 하디 찰라비였다(2015년 71세로 사망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 에 나선 미국에 “후세인 정권이 WMD를 숨긴 곳을 알고 있는 과학자가 수천 명이 넘는다”는 허위정보였다.


미중 무역전쟁이 진행되고 중국에 대한 매력도가 저하된 이후 베트남은 중국을 대신할 유력한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베트남과의 교역에서 300억 달러 정도의 무역 흑자를 얻고 있는 우리가 유력 제약 회사, 건설업체 및 수경인삼 재배, 태양광 업체 등 다종 다양한 업체들이 베트남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베트남 정부의 외자유치 정책과 관료들의 적극성이 결합되어 그 경제적 성과 또한 높아지고 있는 듯했다.


이는 베트남과 관련한 보다 많은 정보, 신뢰성 있는 정보가 필요함이 보여준다. 신뢰성 있는 에이전트· 협조자가 사업 성공의 요소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베트남 진출을 모색하는 기업 등도 정보마인드 함양과 훈련이 필요하다. 정보비만시대이자 ‘그릇된 정보의 시대’ 이기에 더욱더 정보 감각 배양은 긴요하다.정보활동은 상대편의 심리를 읽는 작업임과 동시에 전략적 마인드를 배양하고 실천 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정보활동은 복잡계 이론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베트남의 상징 이미지처럼 보이는 5천만 대의 오토바이 군단의 활동상은 복잡계이 론이 구현되는 장소이면서, 우리에게 베트남을 이해하는 단서 내지는 함의를 던져준 다. 오토바이 군단들이 도로의 대부분을 점용하면서도 교통사고를 거의 내지 않는 광경은 필자의 탄성을 자아냈다. 겉으로는 매우 복잡한데도 뭔가 그 속에서 질서가 유지 되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단속하는 법 제도 이외에 베트남인들의 교통문화도 한몫하고 있었다.


정보는 바로 이 난마처럼 얽힌 복잡계에서 진리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베트남 사회가 복잡계라면, 그 속에서 베트남식 문법과 문화를 찾아내고 활용하는 것이 사업 성공의 지름길일 것이다. 일본 요식업 계의 전략은 반면교사다. 한국인은 단기적 이익에 급급하여 장사하지만, 일본인은 장기적 전략 하에 현지화 전략을 펴면서 장사를 한다. 가격도 베트남 수준에 맞춘다. 한국 음식점은 베트남 기준으로 비싼 곳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일본인의 요식업계 점유율이 한국 요식업계의 10배에 달한다는 수치가 한국인들의 전략적 사고, 정보적 마인드 결핍을 말해준다. 그리고 베트남인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독립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경제특별구역법 제정에 대한 베트남 지식인 등의 항의 시위 등이 이를 잘 보여준 다. “중국이 무력으로 안 되자 투자라는 소프트파워로 싸우지 않고 침범하려 한다”는 인식이다. 호찌민 공항을 이륙하면서 스시 코너 가격표와 제공하는 음식 내용물이 다른 호찌민 공항의 사회주의적 습성에 실망 하면서도, 박항서 감독이 만든 한국 열풍과 베트남인들의 호의적 이미지가 결합되어 베트남과 한국이 아시아 강국으로 우뚝 서는 모습도 상상해보았다.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정치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