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착각, 나쁜 착각, 이상한 착각

안민호의 여론객설(輿論客說)

숙명여대 안민호 교수 입력 : 2019.03.04 11:04

대개의 정치적 행위는 착각과 기만의 산물이다. 대개의 중요한 집합적 착각도 정치적 결과물이다. 정치의 시작과 끝이 모두 착각과 기만이다. 북미 정상회담도,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도, 정치인들의 실언과 막말도, 또 요동치는 여론도 착각과 기만을 빼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오해하지 마시라. 착각과 기만이 항상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착각과 기만적 관념의 긍정적 효과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는 기만적인 제도다.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되고, 부자가 되면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과 기만적 관념에 의존하는 게 자본주의다. 당연히 열심히 일한다고 항상 부자가 되는 건 아니다. 부자가 된다고 행복해지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자신만은 부자가 되고 행복해질 거라고 우리는 착각하고, 그 착각들이 모여 국가를 부유하게 하고 문명을 발전시킨다. 이것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이다. 우리가 매일 아침 따뜻한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빵집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이기심 때문이라는 그 유명한 아포리즘도 빵집주인의 착각을 이용하는 자본주의의 기만성과 그것이 사회 전체적 차원에서 만드는 긍정적 효용에 대한 언급이다.
어찌 자본주의만 그러하겠나. 결혼제도나 교육제도도 마찬가지다.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착각, 밤잠 자지 않고 공부해 좋은 대학 나오면 성공하고 행복해지리라는 기만적 관념이 궁극적으로 공동체를 유지하고 부강하게 만든다. 국가나 사회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좋은 착각이 순기능을 가질 수 있다. 진리를 탐구하는 고매한 학자들이 보기에는 돈이 많다고 진정한 행복이 보장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것이 헛된 착각일지라도, 불가능해 보이는 어떤 희망과 꿈, 도전을 만들고, 그 과정을 통해 주관적으로 자신이 행복을 느낀다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왜곡 보도에 휘둘리는 어리석은 대중이라는 착각
우리의 착각과 기만적 관념을 학문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한 것이 ‘지각 편향(Perceptual Bias)’이라는 개념이다. 많은 사회심리학, 커뮤니케이션 이론들은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행위의 많은 부분이 오류와 착각에 의해 발생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이론들에 따르면 집합적 착각과 편향의 결과가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3자 효과 이론이란 게 있다. 미디어 메시지가 나에게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그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각 편향을 학자들은 제3자 효과라고 부른다. 이 가설에 따르면, 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해 본인을 분리해 인식하는 사람들은 타인들에 대한 미디어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고 그런 잘못된 인식 때문에 스스로의 태도와 행동이 영향을 받게 된다. 미디어 효과에 대한 2중 잣대인 3자 효과는 곧잘 규제와 검열의 논리로 이어지는데, 음란물이나 가짜 뉴스를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이들의 인지적 편향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이론이다.


이런 3자 효과에 추가해 자신이 지지하는 집단에 대한 미디어의 부정적 보도를 과장되게 인식하는 또 다른 인지적 편향, 즉 ‘적대적 미디어 효과’가 결부되면 문제가 더 꼬이고 심각해진다. 언론은 항상 내가 지지하는 대통령과 정당을 적대적으로 보도하고(적대적 미디어 효과) 그런 왜곡 보도에 다른 이들이 크게 영향 받아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될 것(제 3자효과)이라고 심각히 우려하는 것이다. 이상한 착각인데 스스로 똑똑하다 생각하는 이들이 이런 편향된 믿음을 가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짜뉴스와 싸우기 위해 유튜브로 달려간 유시민이나 홍준표도 이런 엘리트주의적 편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각 편향과 꼰대론
최근 문제가 된 “20대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우리 당 지지율이 낮다” 거나 “지난 정권의 반공 교육과 언론 환경 때문에 20대가 가장 보수적”이라는 식의 발언 또한 이런 류의 편향적 시각을 반영한다. 해당 의원들 입장에서는 억울한 바도 없지 않겠지만 꼰대적 발언이란 지적을 들을 만하다. 3자 효과에서처럼 “나는 그러지 않는데, 너희는 왜 그러니” 하는 태도가 대표적 꼰대 질이다. 선생이나 아버지를 비꼬는 은어인 ‘꼰대’는 특정 개인이나 행동방식에 대한 부정적 표현을 넘어 근자에 들어 젊은 세대의 기성세대에 대한 부정적 정서와 세대 갈등을 상징하는 사회적 용어로 자리 잡고 있다. 매사에 자신들의 과거 경험을 가지고 아랫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기성세대의 편협한 시각은 언제나 있어왔지만 그것이 최근 들어 더욱 부각되는 것은 박 대통령 탄핵과정을 거치면서다. 촛불시위와 탄핵, 그리고 진보적 정권의 수립 과정에서 보수적 성향을 가진 노년층이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시대 변화에 역행하는 뒤처진 세대로 인식되면서 꼰대론은 정치적이고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또 다른 편향, 연령차별주의
꼰대 짓도 잘못이고 제3자 효과도 문제지만 그것을 특정 연령대나 집단의 보편적 특징으로 일반화하는 것 또한 다른 형태의 인지적 편향이다. 에이지즘(Ageism)이란 것이 있다. 연령차별주의라는 것인데 30년 전 미국서 공부할 때 연령 차별을 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 장애인 차별과 같은 수준에서 다루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사회에서 주변화되고 있는 노인들에 대한 차별이나 세대 간 갈등은 매우 현실적 이슈다. 어떤 이가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 했는데 상상의 산물이 어디 민족만이겠는가. 20대 어쩌고 90년생 어쩌고 하는 이런저런 세대론도 상상의 산물이다. 어떤 것은 매우 조잡하고 또 어떤 것은 꽤 그럴 듯하지만 그 시작은 편향이고 착각이다. 때때로 그런 상상과 착각이 권력을 만나고, 문화로 자리 잡으면 그것이 사람들의 정체성이 되고 현실이 된다. 섣부른 남녀구별이 성 차별이 될 수 있듯이 어설픈 세대론은 에이지즘이라는 또 다른 차별과 혐오의 위험성을 가진다.

◇특정 집단을 비하하고 혐오하고 갈등을 생산하는 착각의 자유는 허용될 수 없어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 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경선 과정은 한국 보수 정치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투쟁이고 투쟁은 우리 편과 그들 편을 구분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통합이 우리 편을 늘리겠다는 것이지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허물겠다는 것이 아님도 잘 알고 있다. 정치가 원래 그런 거고, 표를 얻기 위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쯤도 상식이다. 하지만 아무리 착각이 자유라 하더라도, 특정 집단을 비하하고 혐오하고 갈등을 생산하는 착각의 자유는 허용될 수 없다. 정치와 상관없이 집합적 착각과 편향이 특정 집단을 향하는 것을 우리는 단호히 거부해야한다. 자유한국당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도 당연히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꿈과 희망을 주는 좋은 착각을 많이 해야
비단 정치뿐 아니라 인간 행위의 많은 부분은 착각과 기만의 결과다. 어쩌면 우리 삶 자체가 착각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착각을 피할 수 없다면 어찌해야 할까? 차별과 혐오로 이어지는 나쁜 착각은 거부하고 좋은 착각을 많이 하는 게 답이다. 잘 될 거고, 행복할 거고, 그들은 좋은 사람이고 나를 속이지 않을 거라는, 개인과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긍정적 생각과 신뢰가 좋은 착각이다. 한반도 평화와 발전이라는 부푼 희망과 꿈을 꾸게 하는 좋은 착각으로 시작한 북미정상회담이 부디 성공적 결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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