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임신 중지, 여성의 삶과 존엄 중요”

"태아의 권리 부여하면서 원치 않는 출산·양육의 강제는 모순"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입력 : 2019.04.03 09:50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사진=더리더
10년 만에 임신 중절에 대한 실태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2월 19일 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임기 여성 1만 명 중 인공 임신 중절을 경험한 여성은 7 56명(7.6%)이다. 특히 임신을 경험한 여성 중 약 20%가 인공 임신 중절을 선택했다.


100% 성공하는 피임은 없다. 피임은 실패의 가능성이 있다. 피임을 하는 이유는 임신을 원하지 않아서다. 학업 때문에,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아서, 혹은 의도적 낙태가 아니더라도 자연유산이나 건강상 문제 등 이유는 다양하다. 새 생명을 원하지 않지만 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낳아야 한다. 임신 중절은 우리 사회에 늘 있었지만 논의되지 않았다. 불법인 데다가 사회적으로 인식이 좋지 않아서다. 낙태죄 폐지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임신 중지’라는 표현을 쓴다. 떨어질 낙(落)에 아이밸 태(胎)를 쓰면 임신 중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음지에서 진행되는 임신 중절은 여성의 건강을 위협한다.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진료를 적정 가격에 받고 있는지, 보험 급여가 되는지, 합병증의 발생 가능성 등에 대한 설명을 병원에서 제공받지 못한다”라며 “의사가 아닌 사람이 시술하기도 하고, 정품이 맞는지 확인도 안 된 약을 먹을 수 있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제269조 1항과 제270조 1항의 위헌 여부에 대해 이달 선고한다. 지난달 19일 사가정역에 위치한 녹색병원에서 윤 과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공 임신 중절 실태 조사 결과가 나왔다. 100명 중에 7명이 낙태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는데
▶과소 추정된 조사 결과라고 생각한다. 임신 중단은 2 005년에 34만 건이었고 2010년에는 17만 건이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5만 건으로 추산했는데 너무 급격히 줄었다. 어쨌든 임기 여성 수 자체가 줄었고 피임법이 홍보되면서 임신 중절 건이 줄었다고 생각한다.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임신 중지를 불법화하는 상황이다. 이야기 자체를 하지 못한다. 2018년 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체 여성의 21%,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들중 41.9%가 임신 중절을 경험했다. 임신 중지는 여성의 일생 중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출산하는 몸을 가지고 있으니 임신과 임신중지 모두 일어날 수 있다.

-임신 중지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준비가 안 돼 있는 게 가장 크다. 비혼인 상태거나, 학업이 남아 있거나,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거나 등 이유는 다양하다. 후대를 맞을 준비가 돼 있고 가정을 꾸릴 준비가 돼 있는 상태에서 임신을 해야 하는데 간혹 그러지 않을 경우도 있다. 이걸 현실로 마주했을 때 임신 중지를 할지, 혹은 출산을 할지는 여성이 선택해야 한다. 이것은 기본적인 여성 인권인 ‘재생산권’이다. 임신 중지가 불법인 상황에서는 기본적인 여성 인권이 보장받지 못한다.

-우리나라 정책에서 임신 중절 수술은 어떻게 활용됐나
▶역사적으로 정부 주도하에 인구정책이 시행됐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 시절에 진행된 가족계획에서 임신 중지는 국가가 인구를 통제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 시절에는 수술을 무료로 해주기도 했다.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이 나쁘지 않았다. 저출산 시대가 되면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낙태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 임신 중지가 없었던 게 아니다. 늘 있었는데 불법이라는 상황 때문에 음성적으로 진행됐다.

-임신 중지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나
좋다, 좋지 않다고 보면 안 된다.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때 여성이 그것을 이어갈 것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모든 피임은 실패의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피임한다고 하더라도 실패 확률이 있다는 것이다. 임신 중지는 분명 슬픈 사건이다. 생명은 절대적 가치이고 생명 존중 교육 역시 중요하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건강과 인권이 중요하다. 세상에 나올 태아와 그 태아를 기를 여성의 삶과 존엄이 중요하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위를 열었다./사진=뉴스1
-임신 중지를 반대하는 측은 태아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태아에게는 권리와 자유의지를 부여하면서 인간인 여성에게는 자유의지에 반하는 원치 않는 출산과 양육을 강제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태아와 모체는 떨어뜨릴 수 없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생존권이 보장돼야 태아가 생명으로 탄생할 수 있다. 둘을 떨어뜨려 대립 구도로 생각하는 것은 이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자신과 현재 가족, 미래의 가족들에게 무엇이 최선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건 의사도 국가도 아닌 자신뿐이다.

-불법적인 상황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불법적인 상황에서는 안전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심지어 의사가 아닌 사람이 시술할 수도 있고 약물을 잘못 복용할 수도 있다. 안전하지 못한 임신 중지는 여성의 건강을 위협한다. 음성화돼 있는 상황에서는 늘 그런 위험이 따른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가격이 적정한지, 보험 급여가 되는지, 합병증 발생 가능성에 대한 설명 등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임신 중지는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다. 수술을 해도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임신 중지가 문제가 됐을 때 병원에서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기도 한다. 이건 의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왜곡시킨다.

-임신 중지 수술에 대한 교육은 이뤄지나
▶의과대학에서 교육을 안 한다. 불법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제대로 된 정보없이 비공식적으로 하던 대로, 배운 대로 진행한다. 수술을 받을 때는 의사에게 설명듣고 동의서 쓰는 과정을 거치고 문제에 대한 합병증이 생기면 치료한다. 하지만 임신중지는 불법이기 때문에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병원은 비밀로 해야 하니까 치료가 늦어질 수도 있다.

-낙태 약물인 미프진 수입 합법화를 요구한다. 안전성을 놓고 본다면
▶사망이나 중대 질병을 놓고 보면 비아그라보다 안전하다. 임신 중지 방법은 약물과 수술이 있는데 안전성이 비등하다고 보면 된다. 수술은 99% 정도 성공하고 약물은 97~98% 정도다. 우리나라는 불법이니까
약물이 들어올 수 없다. 필요한 사람들은 전화나 인터넷 주문으로 외국에서 배송받아서 음지에서 사용하기도 한다. 합법적으로 사용된다면 의사에 의해 처방이 가능하다. 정품 확인이 되면서 약의 용법대로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다.

-페미니즘 열풍이 불면서 낙태죄 폐지에 대한 시위도 일어난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변했다고 느끼는지
▶2016년부터 ‘페미니즘 리부트 바람’이 불면서 낙태죄 폐지에 대한 동력을 많이 얻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낙태죄 폐지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가톨릭 국가에서까지 도입됐다. 이제까지 생각했던 생명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안전한 임신 중지, 여성인권 흐름으로 가고 있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나
▶정부와 국회는 결국 여론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리벤지 포르노나 사이버 성폭력에 대해서도 법안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지금 여론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70% 이상이 현행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정부나 국회가 어떻게 부드러운 방법으로 개정하는지가 중요하다. 아일랜드에서는 작년 5월에 국민투표로 낙태죄 폐지가 결정됐다. 그리고 올해 1월 1일부터 서비스가 제공된다. 반년 만에 빠르게 제도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정치권은 그동안 종교계의 표를 많이 의식했다. 지금은 논의도 활발해졌고 여성의 표도 고려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사진=더리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을 맡으면서 여성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저희 어머니가 가족의 압력으로 임신 중절을 한 경험이 있다. 저희 언니는 미국에 유학 가 있을 때 임신합병증과 태아절박가사로 임신 26주에 치료적 임신 중지를 시술받았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불법인 상황이다. 어머니와 언니의 경험은 당연히 슬픈 이야기지만 비윤리적이거나 죄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 일로 낙태죄 폐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모든 여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저희 병원은 성폭력 피해자는 합법적인 임신 중지를 진행하지만 불법이라고 간주되는 임신 중지와 방법 면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서, 나라에 따라서 불법과 합법이 나뉘는 것은 바
람직하지 않다.

-헌재가 오는 4월 11일 낙태죄 위헌 심판을 선고하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여러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제가 활동하는‘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에서 요구하는 것은 전면 비범죄화와 모자보건법 개정이다. 여론 조사와 해외의 동향, 유엔의 권고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합헌 결정을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전망한다.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연세대학교 의과 대학·산부인과 전문의 수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
성과재생산포럼 기획위원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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