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이 현실을 왜곡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

[안민호의 여론객설(輿論客說)]

숙명여자대학교 안민호 교수입력 : 2019.06.05 14:33
아랫사람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높은 자리의 의사결정권자가 잘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면 정말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아랫사람들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또 모르는 척하는 하는 거라면 왜 그런지를 두고도 의견이 분분해진다.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을 두고 말들이 많다. 수많은 부정적 통계 수치들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현 경제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늘어간다. 정말 현실을 모른다면 큰 문제고, 알고도 모르는 척한다면 그것대로 문제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대통령의 왜곡된 경제 현실 인식이 주위 참모들 때문이라며 책임을 물어 교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랫사람들이 현실을 호도하는 거짓 자료들을 보고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무지몽매한 군주와 그를 둘러싼 사악한 무리들’이라는 설명은 프로퍼갠더로는 적절한지 몰라도 설득력이 크게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대통령의 신념과 현실인식
원래 현실이란 게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도 따지고 보면 매우 개인적이고 또 심리적이다. ‘보는 것이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 이란 말이 있지만 사실은 ‘믿는 것이 보는 것(Believing is Seeing)’ 이다. 현실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각자의 신념과 믿음이 다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대통령이 현재의 경제상황을 많은 전문가들이나 비판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는 이유도 자신의 확고한 신념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옳고 선한 일이기에 단기적으로 어려움을 겪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긍정적 결과를 만들어낼 거라는 게 대통령의 믿음이고 신념이다. 대통령은 이런 자신의 신념을 이미 여러 차례 직간접적으로 밝힌 바 있다.

냉정한 현실 인식이 조화를 이루어야
대통령은 정치인이고, 정치인이 강한 신념을 가진다는 게 잘못일 수는 없다. 신념도 없이 부화뇌동하는 정치인이 문제지 자신의 신념을 주장하고 실천하려는 정치인을 비난하는 것은 부당해 보일 수도 있다. 문제는 신념이 현실 인식을 왜곡하고 합리적 의사 결정을 방해할 때다. 합리적 의사 결정 과정은 모든 공적 조직에 있어 필수적이다. 청와대나 정부 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일개 국회의원이면 몰라도 정치인이면서 최고위 공무원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에게 강인한 신념만큼이나 필요한 것이 냉정한 현실감각이다. 올바른 현실인식에 근거하지 않은 신념은 매우 위험하고, 때로는 없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적과 아군, 그리고 전문적 의견에 대한 배척
신념이 과도하게 작용하면 첫 번째로 나타나는 현상이 전문적 의견에 대한 배척이다. 신념은 이성과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목숨을 건 전쟁의 영역에 속한다. 누구의 주장이 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지가 아니라, 그가 아군인지 적군인지가 중요해진다. 당연히 비판자들의 논리나 주장은 “정부를 흔들려는 부당한 공격”이라는 프레임으로 해석된다. 비판자들의 주장 중 작은 사실들은 맞을지 모르지만 큰 틀에서는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정책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때로는 가장 악의적이고 문제 있는 비판 하나를 골라 다른 모든 비판을 그것과 유사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수많은 비판 속에서 자신들이 겪게 되는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는 효과적 대응방법이다. 결국 대부분의 비판은 정치적, 정략적인 것으로 해석되고 잘못을 수정할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다. 적들의 비판은 도리어 자신의 신념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강한 응집력과 모험적 결정
강한 신념은 양날의 칼이다. 신념은 응집력을 키운다, 사람들을 뭉치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끼리, 내부적으로 더 단단해지는데 강한 신념의 공유만 한 것이 없다. 문제는 신념에 바탕한 집단 응집력이 모험적이고 극단적 결정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전 정권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 스스로는, 자기들끼리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한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한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기억할 것이 있다. 토론이 항상 합리적 의사 결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 토론을 하면, 구성원들 간 공통 성향과 인식이 강조되어 부각되면서, 인식이 극단화되고, 극단화된 인식에 동조가 일어나 개인으로 있을 때 보다 집단적으로 더 극단적인, 모험적인 결정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른바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라는 현상이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신념
이런 문제를 사전에 스스로 깨닫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남들의 문제는 쉽게 알아채지만 자신들의 문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내집단 이질성(In-group heterogeneity) 가설’이란 게 있다. 우리 집단 내의 동질성을 과소평가하고 이질성을 과대평가하는 인지적 오류를 말한다. 자주 만나고 얘기하다 보면 사소한 이질성도 크게 느껴진다. 남들이 보면 똑같은데, 친형제 자매들끼리 우리는 너무 달라 하는 것과 같다. 서로에 대한 정보가 많기에, 자신들의 이질성은 과장되게 인식하면서 정보가 별로 없는 집단 외부 사람들 간의 이질성은 과소평가한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의견이 치열하게 토론되는데, 그들은 서로 똑같은 뻔한 생각으로 우리를 비판한다고 잘못 판단한다.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인지적 오류라 할 수 있다. 결국은 자신들의 결정이 명백히 실패였음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연후에야 무언가 문제점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문제와 위험의 징후들
집단 소통 연구들에 따르면, 집단 내부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합리화, 상황에 대한 낙관적 분위기, 스스로에 대한 도덕적 믿음, 집단 외부의 다른 의견에 대한 배척, 외부 비판자들에 대한 부정적 스테레오타입 경향이 집단 내부에 존재한다면, 자신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의심해야 한다.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 동일시와 심리적 의존 정도가 필요이상으로 과대해진다면 그것도 경계의 대상이다. 부정적 평가가 배척받고 긍정적 정보에만 집중함으로써 처음에 채택된 정책이 끝까지 비판적으로 재검토되지 않고, 처음에 지지를 받지 못한 아이디어들이 다시는 재검토될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도 분명한 위험의 징후다. 이처럼 이미 결정된 것들에 대한 과도한 확신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준비의 부재를 의미한다. 실패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에 대비한 계획이 없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아마도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는 여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지나간 모든 정부도 그랬다. 그렇더라도 다시 한번 차분히 점검하고 돌아볼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대통령의 실패는 우리 모두의 실패기 때문이다. 비판자들을 단순히 사악하고 어리석고 무능한 자라고 생각하면 마음은 편할지 모르지만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자신이다. 부당해 보이는 비판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가져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안민호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 학부 교수
언론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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