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용 그린로드 대표 막막했던 공시생 앞길 열어준 ‘킹빈’

[여기에 압축풀기]‘작두콩커피’로 수출 신기원 열어

머니투데이 더리더 이현지 객원기자 입력 : 2019.11.05 15:18
▲김지용 그린로드 대표
적성에 맞지 않아 대학을 중퇴하고 경찰공무원시험 준비를 위해 절에 들어갔다. 6년을 낙방했다. 남들 눈에 번듯해 보이고 안정적인 평생직장을 갖고 싶어 준비한 시험이었다. 6년 동안 매진했지만 그 직업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공부가 잘될 리 만무했다. 공무원 시험을 포기한 것이 나이 서른이 다 되어서였다. 20대를 방황하며 보낸 그가 농업회사법인의 대표가 되어, 작년 3월 청와대의 초청을 받아 청년일자리대책보고대회에서 발표를 했다. 작두콩 커피 ‘킹빈’을 개발한 그린로드 김지용 대표의 이야기다. 전북 익산에 있는 국가식품클러스터 센터에 입주한 그린로드 사무실을 찾아가 김 대표의 ‘창농’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임산부, 수유부, 환자도 마시는 ‘커피 아닌 커피’

김지용 대표가 얼음을 띄운 킹빈 커피를 내주었다. 침전식으로 한 방울씩 내려 마시는 더치 커피 맛이 났다. 김 대표는 더치가 맞다며 “현재 킹빈을 더치로 내리는 실험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킹빈은 로스팅한 작두콩을 분쇄해 드립, 더치, 에스프레소 등의 방식으로 내려 마실 수 있다. 맛과 추출방식이 커피와 같지만 킹빈은 커피가 아니다. 커피콩 대신 작두콩을 이용한 커피 대용 음료로 카페인이 전혀 없다.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이나 임산부, 수유부 등도 커피맛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작두콩은 면역력을 높여 항염증 작용을 하는 영양소를 함유해 몸에도 좋다. 항산화 성분인 플라보노이드가 대두보다 네 배가 높은데, 볶았을 때 그 효능이 월등히 상승한다. 특히 기관지에 좋아 비염이나 천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마시면 더욱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옛 기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킹빈 개발하기까지

작두콩을 로스팅하고 분쇄해 커피처럼 마신다는 아이디어가 빛을 본 해는 2016년이다. 농협중앙회가 주최한 ‘농식품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김지용 대표가 작두콩 커피 킹빈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이다. 한국농수산대학교 재학 중, 고서 <본초강목>에서 ‘작두콩을 태워 가루를 내어 먹으면 좋다’는 기록을 본 것이 아이디어의 출발점이 됐다. 킹빈이란 이름은 작두콩이 ‘임금콩’으로 불리기도 한 사실과 콩 중에 가장 크고 영양소가 좋다는 특징을 담아 지었다. 김 대표는 다음 해 12월에 킹빈을 주력 상품으로 농업회사법인 그린로드를 창업했다.
공모전 수상부터 창업까지, 김지용 대표가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조선대 영문학과에 입학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한 그는 경찰공무원시험에 뛰어들었다. 절에 있는 고시원에 들어가 공부했으나 연이어 낙방했다. 그 기간이 6년이었다. 그러다 머리를 식힐 겸 야생화 농장에서 아르바트를 한 것이 농사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공무원시험을 그만두고 전북 정읍에 있는 농장에서 1년 동안 일하며 농사를 배웠어요. 거기서 한국농수산대 학생을 만났죠.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배워보자 해서 한농대 특용작물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때가 서른 살이었죠.”
나이 서른에 새롭게 도전할 수 있던 것은 한농대의 전폭적인 지원 덕이었다. 김지용 대표는 모교 홍보를 해야겠다며 한농대의 장점들을 읊어주었다. 우선 한농대는 농림부 산하에 있는 대학으로 등록금이 전액 무료다. 기숙사비 면제에 밥과 책뿐 아니라 일할 때 입을 옷도 사 준다. 2학년 때는 해외연수까지 보내준다. 남자는 졸업 후 농사를 지으면 군대를 안 가도 된다. 여기에 졸업생들의 농촌 정착률이 80%가 넘을 정도로 학교가 잘 기능하고 있다. 김 대표는 그럼에도 농업이 청년들에게 쉬운 길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기반이 없으면 농사로 지역에 정착하기 쉽지 않아요. 돈이 너무 많이 들거든요. 땅 사야지, 트랙터 사야지, 창고도 있어야죠. 게다가 농업이라는 게 자재비, 인건비 등을 빼면 수입이 연 700~800만원밖에 안 되니까 투잡을 뛸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주변에 농사에 실패한 친구도 많아요.”
기반이 없던 김 대표가 자구책으로 삼은 것이 식품가공업이었다. 김 대표는 대학에서 킹빈 아이디어를 구상한 후 실험에 몰두했다. 작두콩을 프라이팬에 볶으며 맛을 찾고 발암물질이 나오지는 않는지, 카페인은 없는지 확인했다. 이런 노력으로 공모전에서 입상까지 할 수 있었다. 옛 기록에서 킹빈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사업으로 발전시킨 여정은 김 대표의 환경적 한계와 삶의 곡절이 만들어준 길이었다.

머릿속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준 지원사업들
농사보다는 돈이 덜 들긴 하지만 가공업도 기계설비 등 투자가 필요하다. 공모전에서 수상한 후 김 대표는 킹빈이라는 좋은 아이디어는 있는데 돈이 없어 제품을 생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창업을 꿈꾼 김 대표가 문을 두드린 곳은 중소벤처기업부였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지원사업에 선정돼 지원금 4000만원을 받았다. 이 돈으로 기계를 구매했다. 정부가 식품산업 발전을 위해 조성한 국가식품클러스터에 입주하면서 공간 문제도 해결했다. 국가식품클러스터에는 시제품을 소량생산할 수 있는 파일럿 플랜트와 식품의 효능과 안정성을 평가해주는 기능성평가센터, 포장의 기획 디자인 설계까지 지원하는 패키징센터 등이 마련돼 있다. 제품개발을 위해 필요한 작업을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시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재료비와 디자인, 기타 위탁비용 등을 모두 이곳에서 도움 받으며 제품 개발에 거의 돈을 들이지 않다.
“지원사업이 아니었으면 창업 못했을 것 같아요. 처음에 사업을 시작할 때 공장을 지으려고 알아봤어요. 담보 능력이 없으니 대출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벤처 농업인들에게 15년 동안 공장을 임대해준다고 해서 국가식품클러스터에 들어왔죠. 그리고 기계 살 돈이 없었는데, 마침 또 운이 좋아서 중소벤처기업부 지원사업에 선정돼 기계를 구비하게 됐어요.”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킹빈 커피를 오프라인 매장에서 선보일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이 청년농업인 창업공간으로 조성한 ‘청촌공간’에 킹빈카페를 입점한 것이다. 청촌공간은 청주시의 폐점한 하나로마트 자리에 마련한 공간으로 다섯 개의 청년농업인 업체가 들어가 있다. 킹빈카페의 매출이 높지는 않지만 얻은 것은 크다. 청촌공간 매장 덕에 킹빈을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리는 실험을 하게 된 것이다. 작두콩을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렸을 때 가장 맛이 좋은 입자의 크기를 찾고 있는 단계다. 김 대표는 “작두콩은 지방이 함유되지 않아 산화가 안 돼 갈아서 납품이 가능하다”며 “카페에서 간편하게 쓸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킹빈 에스프레소의 가능성을 본 김 대표는 더욱 큰 꿈을 꾸고 있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예쁜 잔에 작두콩 커피로 만든 카페라테와 아인슈페너 등을 마실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스타벅스에도 납품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영상과 제안서를 준비하고 있다”며 눈을 반짝이며 도전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찾아보고 어필하면 길은 열린다

김지용 대표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냈다. 귀농귀촌 박람회를 노량진에서 하자는 것이다. 그는 타깃이 광범위한 농업 관련 교육사업과 박람회가 너무 많다고 꼬집었다. “노량진에 나 같은 불쌍한 영혼이 많을 것 같다”며 “농업정책을 그에 맞는 수요층에 직접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와 함께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가 그를 보고 창업한 친구들이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노량진에서 박람회를 열면 큰 관심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평생직업이 사실 공무원이 아니라 농부다”라며 웃음 지었다. 이어 공무원시험이나 대기업 입사시험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분투하고 낙방하는 청년들이 지역에서 ‘창농’에 도전하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열심히 일하고 도움 받으려고 활동을 하다보니 지원사업이 너무 많은 거예요. 농림부, 중기부, AT까지 너무 많은 기관이 도와주려고 준비가 돼있어요. 안 찾아봐서 그렇지 지원을 하고 또 열심히 어필하면 도움 받을 길이 열려 있어요. 하다가 그만두지 말고 지속하려는 의지를 가지면 창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더불어서 창업을 하겠다, 귀농을 하겠다 마음먹었으면 실행을 못할지라도 5년 계획은 잡아놓고 움직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계획을 하면 달라지더라고요.”
그와 함께 시험준비를 하던 친구는 34살에 공무원시험을 그만 두고 전주에서 창업했다. 1억5000만원의 창업지원금을 받아 치즈를 섞은 두부를 만들고 있다. 김 대표는 “아이템이 아주 특별해야 하거나 기술력이 뛰어나야 하는 건 아니다”라며 의지가 있다면 창업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지원사업에 의존하는 상황을 안 좋게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는 “사업을 성공시켜 세금을 잘 내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농업에는 여러 층위의 가능성이 많으니, 마음만 있고 실행하지 않는 청년들이 의지를 갖고 도전하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보통 농사 하면 머릿속에 땡볕, 트랙터, 비닐하우스, 고된 일 등을 떠올려요. 이런 것들이 분명 있죠. 근데 농업에는 다른 필요한 게 너무 많아요. 디자인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가공하는 친구도 필요하죠. 농업 관련 교육사업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죠. 저는 농업을 1차 산업으로만 보는 건 시대착오라고 생각해요. 농업에는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어요. 청년들이 본인이 잘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농촌에 입힐 수 있을까 고민하면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김지용 그린로드 대표

커피는 수입하고 킹빈은 수출하고
김지용 대표는 작년부터 킹빈을 수출하고 있다.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킹빈이 수출 유망품목으로 지정돼 테스트 수출을 보내고 피드백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국내의 수요는 한정적이라고 판단하고 홍보 마케팅 등에서 수출에 집중하고 있다. 소량이지만 미국, 프랑스, 싱가포르 등 8개국에 정식수출한 상태다. 김 대표는 킹빈 수출에 남다른 의지를 내보였다.
“커피는 대부분 수입하잖아요. 킹빈이 커피는 아니지만 커피처럼 수출한다는 게 매력적이에요. 그런 면에서 수출이 저한테 의미가 커요.”
킹빈의 작두콩 생산은 계약재배로 이뤄지고 있다. 지역의 협력농장과 계약해 전량을 수매한다.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조건이라 농가에도 도움이 된다. 킹빈 수출이 확대되면 지역 농가의 경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코너를 진행하는 미로우미디어는 사회 이슈를 문화예술로 다루는 콘텐츠기획사다. Me(나)+raw(날것의)를 결합한 이름처럼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세상에 울림을 주는 것이 미로우미디어의 미션이다. <여기에 압축풀기>는 지난해 서울지역상생센터 ‘상생상회’에서 진행했던 전시명이다. 이 전시에서 춘천, 인제, 포항, 거제 등에서 사는 청년농부와 청년사업가를 영상과 글, 오브제 등으로 소개했다. 이 전시를 이어 유망한 지역 청년을 조명하는 콘텐츠를 연재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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