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9주기 통시적(通時的) 관점에서 도발 분석

[차동길의 군사이야기]

단국대학교 차동길 교수 입력 : 2019.12.02 09:49
'도발'의 분석적 개념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이 있은 지 9년이 지났다. 연평도 포격 도발은 북한이 정전협정 이후 최초로 우리의 영토를 공격한 전투행위였다. 우리군(軍)은 북한이 또다시 도발한다면 백 배, 천 배 응징 보복하겠다며 의
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로 전투태세유지가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 따라서 연평도 포격 도발 9주기를 맞이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북한의 도발 역사를 통시적(通時的) 관점에
서 재조명하고자 한다.

<정치학 대사전>에서 도발(provocation, 挑發)은 “한 세력이 다른 세력에게 어떠한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조건을 의식적으로 구성하여 그 결과 행해지는 적(敵)의 행동을 자기의 전략·전술상 유리한 조건으로 이용하
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정치학적 의미에서의 도발은 그 개념상 일차적으로 상대의 행동을 유발하는 조건을 구성하고, 상대의 반응이 구체적으로 실행되었을 때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전환시킬 수 있
는 전략적 사고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것으로 ‘전략적 문제유발 행위’라할 수 있다.

예컨대 ‘군사도발(military provocation)’이라 하면 단순히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해 군사력을 이용해 적을 공격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군사행위에 대한 상대의 반응을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만들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발이라는 개념에 근거할 때, 연평도 포격 도발을 단일 행동으로 볼 때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한국의 어떤 행동을 유도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에서는 그 도발 행위 하나하나로서 북한의 전략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제한됨으로, 북방한계선 일대에서 자행된 도발 행위 전체를 조망(眺望)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평도 포격 도발의 통시적 분석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궁극적으로 ‘김정은 정권 안보’를 위함이고, 정권의 정통성은 ‘남조선 해방’이라는 혁명목표와 ‘한반도 적화통일’이라는 최종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김일성 시대부터 내려온 일관된 전략 수단이다.
따라서 북한 정권의 정당성은 대부분 합법적 폭력의 자의적 실행(또는 위협)을 통해 유지해왔고,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적화통일’이라는 최종목표를 지향하는 전략적 작전선(作戰線, line of operation)을 유지해왔다.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에서의 도발은 1973년 10~12월에 발생한 ‘서해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전쟁 기간 중 절대적 해군력 부족으로 서북 일대 대부분 도서를 점령하지 못한 북한은 정전협정 이후 유도탄 함정과 어뢰정, 고속상륙정 등 해군력을 증강하기 시작했다. 1973년, 북한은 경비정 60여 척을 동원, 43회에 걸쳐 연평도, 백령도, 대청도 인접 해상까 지 침범하며 북방한계선 무력화에 나섰다. 1977년 7월 1일, 200해리 경제수역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후, 8월 1일에는 새로운 해상군사경계선(동해는 영해기선으로부터 50마일, 서해는 경제수역 경계선과 일치)을 발표함으로써 경비정의 북방한계선 침범 및 무력화를 위한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북한은 북방한계선 무력화를 위해 끊임없이 침범 활동을 자행하던 중 1999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을 도발했다. 그리고 2002년 6월 29일 제2 연평해전, 2009년 11월 10일 대청해전으로 이어졌으며, 급기야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과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을 자행한 것이다.종합해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모든 도발은 정권 안보를 위한 위기조성전략 차원에서 북한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점이다. 제2연평해전 이후 김정일은 “1999년(1차 연평해전)에는 우리가 졌으나, 2002년 교전(2차 연평해전)은 우리가 이긴 전쟁이다. 북방한계선이야말로 남북경협으로 돈을 벌면서도 한편 남북갈등을 계속 유발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전선, 전략 지역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둘째, 1차 연평해전 이후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는 상호 응징 보복심리가 작동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도발은 대청해전 패배에 따른 보복과 한국 해군의 고강도 응징을 차단하기 위한 예방 공격의 성격이 짙다. 셋째, 도발의 강도가 점차 확대되면서 공격 전술도 변화를 가져왔다. 넷째,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로의 관심 유도로 핵미사일 개발의 은밀성을 유지 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실제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에서 도발이 중단됐었다. 그러나 핵 개발이 완료된 상태에서는 또다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위기조성전략 지역으로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지난 11월 23일 9.19 남북군사합의를 무시하고 시행한 소청도 서쪽 30km 떨어진 창린도에서의 해안포 사격이 같은 맥락이다.

변화와 대응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에서 북한의 도발은 북한이 핵미사일을 은밀하게 개발하던 시기에 자행된 대표적인 위기조성전략이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은 서북도서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줌으로써 한국군에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창설 및 서북도서를 책임지고 있는 해병대 전력을 대폭 증강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한미연합군의 평시 대비태세를 강화하는 공동 국지도발대비계획을 발전시켰다. 북한도 2015년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서해 5개 섬(장재도, 갈도, 무도, 아리도, 함박도)을 군사기지화 했다.

그러나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 이후 대북평화정책을 강조하면서 자칫 장병 정신해이와 이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서북도서를 책임지고 있는 해병대 6여단과 연평부대는 포병사격훈련이 금지되어 1년에 한 번씩 포항으로 이동해 사격훈련을 한다. 과거처럼 현진지 사격이 불가함에 따른 것으로 해병대는 강력한 전투태세유지를 위해 훈련방법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제한적이다.

미북 간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하고, 남북관계가 난관을 맞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11월 23일 소청도 서쪽 30km에 위치한 창린도에서 해안포 사격을 감행했다. 명백한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이고 합의 파기조건이기에 정부 및 군의 대응에 관심이 쏠린다. 군은 북한이 9.19 남북군사합의를 위반한 이상 한미연합훈련 및 서북도서에서의 포 사격훈련 재개 등 도발 가능성에 대비해 철저한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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