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정치와 안철수

[안민호의 여론객설(輿論客說)]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안민호 교수 입력 : 2020.02.04 10:03

전 정부도, 현 정부도 다 못마땅한 사람이 있다. 그는 누구도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그의 지지는 항상 상대적이고 부분적이고 또 조건적이다. 속된 정치 공학적 표현을 빌리면, 색깔로는 흑과 백을 섞은 회색이고, 행동방식은 왔다 갔다 하는 스윙보터고, 소속은 집도 없이 떠도는 산토끼쯤 되겠다. 평상시는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다가 선거철만 되면 상종가를 친다. 이른바 ‘중도’라 불리는 부류다.


자칭타칭 선거 전문가들은 중도를 잡는 쪽이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중간의 지지자들을 잃을 때 정권은 위태로워지는데, 박근혜 정권이 그래서 실패했고 현 정권도 그러면 위험해진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중도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그럴듯하지만 실없는 소리다. 지지범위를 확장해야 선거에 이길 수 있다는 하나마나 한 말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이다. 이런 어설픈 정치 공학적 말이 정치 현실에서는 꽤나 유용하다. 복잡한 현상을 단순하게 설명하고, 대중 이미지 변신 전술에 유리하면서, 그때그때 자기 입맛대로 해석할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선거 때만 되면 활발하게 진행되는 통합, 연대, 창당 등 다양한 형태의 이합집산 움직임의 그럴듯한 명분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정치 공학적 관점이 중도정치론의 전부는 아니다. 좀 더 이론적이고 정책 지향적 관점에서의 중도 정치론도 있다. 대표적으로 앤서니 기든슨의 이른바 ‘제3의 길(The third way)’과 같은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보수와 사민주의적 진보의 길을 넘어 정책적, 정치철학적 차원에서 세 번째 길을 모색하려는 시도다. 독일에서는 슈뢰더, 영국의 블레어, 미국의 클린턴 정부나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모두는 해당 나라의 진보적 정권이었다. 진보 정권이 자신들의 전통적 가치를 시대흐름에 맞게 재조정해나가려는 시도가 정책적 중도 정치라 할 수 있다. 이들의 노선 역시 좌우의 어중간한 잡탕정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분명한 정책적 지향점을 가졌다는 점에서 선거철 반짝 정치 공학적 분칠로써의 중도정치와는 차이가 있다 할 수 있다.


중간의 길, ‘중도(中道)’는 시작은 쉽지만 유지하기는 어려운 길이다. 전체의 중심이면서도, 양편 모두의 주변이 중간이다. 중심이면서 동시에 주변부인 존재는 잘되면 모두의 구애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못 되면 모두의 적이 된다. 말 그대로 어중간한 존재고, 박쥐처럼 왔다 갔다 하는 배신자 이미지도 덧씌워진다.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끊임없고 그러다 보면 불분명한 정체성이 그의 정체성이 된다. 중간이 가지는 수동적, 기생적 속성은 그 정체의 불분명함을 더 강화한다. 일렬로 세웠을 때 3과 5의 중간은 4지만 6과 8의 중간은 7이다. 결국 중간이라는 것은 양쪽 기준점에 의해 가변(可變)하는 수동적, 의존적 존재다. 그가 반대하고 극복하려는 양쪽을 전제하지 않고는 그의 정체를 설명할 수 없는 반테제(antithesis)로써의 중도는 그래서 기생적일 수밖에 없다.


불분명한, 수동적, 의존적, 반테제 정체성을 가진 중도의 길을 더 험하게 하는 요소는 또 있다. 어떤 정치도 수요가 있어야 가능한데 그 중간이라는 수요가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산술적으로 생각해보자. 1부터 10까지 있다고 할 때 두 개의 정당이 각각 1과 10이라는 양극단을 차지하고 있을 경우 중간 영역이 제일 크지만 그런 일은 없다. 두 정당 모두 당연히 1이나 10에 만족하지 않고 중앙으로 진출하려 한다. 여기에 빈틈을 노리는 더 많은 경쟁자들이 참여할 경우 중간의 가치는 더욱 반감된다. 경쟁자가 많아질수록 회색지대인 중간을 노리기보다 자신의 정파적 색깔을 분명히 하고 차별화된 특징을 살리는 게 유리하다. 양극단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적고 중간에 위치한 사람들이 많으리라는 생각도 착각일 수 있다. ‘평균의 함정’이란 게 있다. 사람들은 평균이 집단의 대푯값이기에 그 값은 중간이고 그 근처에 가장 많은 사례가 관찰될 것으로 생각한다. 데이터를 다루다 보면 그런 경우는 도리어 드물다. 예를 들어, 가구당 월 평균 소득이 500만원이라 했을 때 대부분의 가구는 월 소득 500만원 미만이다. 그런데도 평균이 500만원인 것은 그보다 열 배 백 배 많은 소수의 가구들 때문이다. 결국 누구의 소득도 아닌 500만원이 그 집단의 대푯값이 되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양극단이 가장 적고 중간으로 갈수록 점점 많아지는 분포를 정규분포라고 하는데 중도를 중시하는 관점의 저변에는 정치수요가 그런 분포를 한다는 생각이 자리한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중앙으로 모이기보다 자신의 색깔, 개성, 가치를 유지하고 드러낸다. 연결되었지만 개인으로 존재하는 새로운 대중들(networked individuals)은 극단과 중앙을 구분하지 않고 분포한다. 기업은 이미 오래전에 이런 흐름을 간파하고 세분화, 다양화된 취향에 소구하기 위해 변신해왔다. 이런 시장의 변화는 디지털세상에서 더욱 가속화된다. 정치라고 예외일수 없다. 극단과 중앙이라는 것도 1부터 10이라는 하나의 척도가 적용될 때의 얘기다. 세상은 이미 단일 척도로 재단될 수 있는 단순한 세상이 아니다. 어떤 취향을 분별하는 척도에서는 1이나 10처럼 극단이었던 것이 다른 취향 척도에서는 5나 6처럼 중간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척도에서는 다시 그 값이 달라진다. 우리가 생각하는 중간다수라는 것은 지나간 시대의 환상과 같은 것이다.

◇새 정치는 새로운 행동방식과 문화 그리고 새로운 인물
안철수 전 의원이 실용적 중도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 길은 좁고 가시밭이다. 있는 자의 더 가지려는 정략적 분칠도 아니고, 기성 정당의 정책적 변신도 아니니 더 그렇다. 스스로 모델로 삼고 있는 프랑스의 마크롱식 선거 혁명은 우리 정치현실에서 큰 모험이고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그의 기자회견 전문을 꼼꼼히 읽어보니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을 하겠다는 건 아닌 듯하다. 새 정치에 대한 저간의 비판을 의식해서 중도정치를 말하는 거 같은데, 혼란스럽기는 중도정치가 더 그렇다. 새 정치가 도리어 낫다. 새 정치가 비판받은 건 개념이 모호해서가 아니라, 가장 옛날사람들과 옛날 방식으로 새 정치를 말했기 때문이다. 새 정치가 별거 아니다. 고매한 학자들을 모아 개념을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공허하고 추상적이기는 매한가지다. 그건 옛 방식이다. 새 정치는 새로운 행동방식이고 문화고 새 인물이다. 새 정치를 하겠다면 먼저 열 개건, 스무 개건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행동강령 목록 만들기를 권한다. 운전기사나 심부름하는 비서를 두지 않겠다든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세비나 사무실의 절반만 사용하겠다든지, 2만원 이상의 밥은 일주일에 한 번만 먹겠다든지, 해외출장은 내 돈 내고 이코노미석만 이용하겠다든지, 상명하달식 거수기 투표를 거부하겠다든지, 의원은 한 번만 하고 재선은 않겠다든지 하는 거 말이다. 보통사람들에게는 당연하지만 기성정치에 익숙한 이들은 할 수 없는 행동강령을 만들고 그것을 준수하기로 서약한 새 인물들을 모아 정당을 만들고 공천하면 그게 새 정치다.


과거 안철수 개인에 대한 여론지지가 60%를 넘나들었던 적이 있다. 안철수 태풍이라 불렸던 현상이다. 그때와 비교해 우리 정치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나아지지 않았다. 실망과 염증도 커졌으면 커졌지 다르지 않다. 보수나 진보나 별 차이가 없다. 다만 그것을 받아낼 그릇이, 인물이 없기 때문에 수면 아래 부글부글 잠복해 있을 따름이다. 기존 양쪽 사이 중간 어쩌고 해서는 그것을 받지 못한다. 중간이 아니라 다른 차원, 다른 척도로 가야한다. 안철수 브랜드는 새 정치, 새 행동, 새 문화, 새 인물일 수밖에 없다. 기성 정치가 결코 흉내 내지 못하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면 그것이 곧 안철수 브랜드다. 그의 첫 번째 실패는 반문 연대라는 이름으로 가장 구 정치에 가까운 정치인들과 손잡았을 때 이미 결정되었다. 실수를 두 번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그의 재도전을 다시 응원한다.  

안민호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교수
언론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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