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 그리고 반복되는 시행착오의 정치

[이택수의 이심전심(以心傳心)]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 입력 : 2020.02.04 10:04

작심삼일(作心三日)은 새해 체중관리나 금연 각오와 관련된 얘기만은 아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반복되는 시행착오와 관련된 이야기다. 그것은 단지 3일이냐, 30일이냐, 정도의 차이일 뿐, 결국 고치기 힘든 습관과 관련됐다. 사랑은 변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그래서 있는지 모른다.


생활습관만 그렇다면 쉽게 웃어넘길 수 있겠지만, 정치권 역시 그러하니 마냥 넘어가기 어렵다. 꼼꼼히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 선거 때마다 반복되어온 정치권, 그리고 유권자들의 작심(作心)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우선 4년 전, 총선이 2개월여 남은 2016년 초로 돌아가 보자. 늘 그렇듯 20대 국회를 준비하는 각 당의 공천에서, 적지 않은 의원들이 탈락, 물갈이가 이루어졌다.


2016년 현역 교체율은 새누리당이 단연 높았다. 새누리당은 전체 의원 157명 중 59명, 즉 37.6%가 교체됐다. 하지만 친박계가 대거 공천을 받은 반면, 비박계와 유승민계가 대거 낙천하면서, 이상한 물갈이가 됐다.


새누리당이 후보등록 이틀 전까지 유승민 의원의 공천 여부를 확정짓지 못한 사실에서 보듯, 내부 갈등이 극심했고, 계파 공천, 보복 공천, 돌려막기 공천이 이루어져, 결국 총선 패배의 빌미가 됐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주도로 대대적인 물갈이에 나선 더불어민주당은 의원 110명 중 32명이 공천에서 탈락, 29.1%의 교체율을 기록했다. 한국당에 비해 10%p 가까이 낮은 교체율이었다.


당시 친노계에서는 이해찬, 유인태, 신계륜 의원 등 중진들이 공천에서 배제됐고, 범친노인 정세균계는 이미경, 강기정, 전병헌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했으며, 86그룹에서는 전대협 의장 출신인 오영식 의원과 임종석 전 의원이 탈락됐고, 정청래 의원도 공천을 받지 못했다. 하위 20% 컷오프 대상이었던 문희상 의원은 막바지에 구제됐다.


국민의당은 21명 중 5명(23.8%)을 교체했다. 신생 정당이라는 특성상, 현역 물갈이 폭은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보다 저조했던 것이다. 다른 당에서 공천 탈락한 의원을 영입해 후보로 내세우는 ‘이삭줍기’ 공천도 이어졌다. 국민의당 소속 현역 의원 21명 가운데, 불출마를 선언한 김한길•신학용 의원을 제외하고 19명 의원 가운데, 공천 탈락자는 3명에 그쳤다.


이후 선거가 치러지고 나서 뚜껑을 열어보니, 당선자 300명 중 초선 의원의 비율은 44.0%(13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17대 총선 때는 62.5%(187명)가 초선으로 채워졌고, 18대 때 초선 비율은 44.8%(134명), 19대 때는 49.3%(148명)였다.


정당별 초선 비율은 물갈이 비율과는 반대로, 새누리당이 122명 중 45명(36.9%)으로 여야 4당 가운데 가장 낮았고, 더불어민주당(46.3%), 국민의당(60.5%), 정의당(66.7%) 순이었다.


총선 결과를 보면, 단순한 교체율보다는 어떤 인물을 어떻게 교체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물갈이’가 아니라 ‘수질’이었던 셈이다. 탈락 후보자를 다른 지역에 재배치하는 이른바 ‘돌려막기’에다 대통령 선거를 대비해 공천보다는 사천(私薦)의 물갈이 성격이었던 탓에, 물갈이해봤자 별 수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럼 이렇듯 우여곡절 끝에 구성된 20대 국회의 성적표는 어땠을까?


리얼미터가 작년 12월 4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3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결과, ‘잘했다’는 긍정평가는 12.7%(매우 잘했음 3.0%, 잘한 편 9.7%)에 그쳤다. 반면 의정활동을 ‘잘못했다’고 부정평가한 응답은 77.8%(매우 잘못함 55.8%, 잘못한 편 22.0%)로 나타났다. 이 조사 결과를 100점 평점으로 환산하면 20대 국회 의정활동 점수는 18.6점이었고, 과거 조사와 비교하면 역시 최저치다.


그러다 보니 지역구 현역의원이 이번 총선에 또 나온다면 안 뽑겠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는 여론조사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른바 교체지수가 과반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일부 정당에서는 공천 물갈이를 과반에 이를 정도로 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안 뽑겠다는 사람들에게 그럼 누굴 뽑을 건지 다시 물었더니, 절반가량은 정당과 무관하게 인물만 보고 뽑겠다고 답했다.


이번에는 8년 전인 2012년 총선을 회상해보자. 당시 새누리당은 현역의원 42% 교체율을 기록했지만, 역시 계파 갈등이 극심했다. 친이계 85명 중 43명이 탈락하고, 대신 친박계 정치인들이 약진했다. 그런데 새로 교체된 인물들 가운데서 참신한 얼굴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역구 후보자 231명 중 전•현직 의원 104명, 고위공무원 51명, 당 소속 인사 27명 등인 반면, 순수한 정치 신인은 8명에 불과했다.


민주통합당은 240여 개 지역구 물갈이 폭이 35%를 기록했다. 호남지역 물갈이 편중으로 텃밭 분열이 극심하고 비리전력자 공천 등으로 후유증이 심각했다. 과도한 친노 인물 영입과 특정 인맥 심기로 구태를 벗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취지의 국민 경선은 차떼기 조직 동원 등의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19대 선거 결과, 초선 의원이 148명으로 전체 중 49.4%였다. 18대에 비해서는 15명이 증가했다. 하지만 19대 국회 역시, 20대 국회를 앞두고는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당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대 국회의 법안 가결률은 역대 최저였고 법안처리 속도는 가장 느렸다. 19대 국회(2012년 5월 30일~2016년 3월 24일)에서 발의된 1만7752건의 법안 중 7129건이 가결됐다. 법안가결률은 40.2%로 △15대 국회 73.0% △16대 국회 63.1% △17대 국회 51.2% △18대 국회 44.4%와 비교해 가장 낮았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현역의원 교체율은 늘 적지 않고, 초선 의원들의 국회 입성이 계속 이어져 새로운 피가 수혈됨에도 왜 국회의 성적표는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왜 늘 최악의 국회일까?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나아질 수 없는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공천 시스템이 계속 진화하며 발전하고 있긴 하지만, 총선 시기의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 대표나 지도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정치인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공천을 받으려면 줄을 서야 하고, 권력 실세에게 잘 보여야 하니, 국민들이 주인이 아니라, 권력 실세가 주인인 탓이다.


제왕적 총재 시절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도 당대표나 비대위원장 등의 지도부는 공천 기준을 정하고, 공천심사위원회의 위원을 임명함으로써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역 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을 배제하고, 지도부에서 낙점하여 공천하는 전략공천도 여전히 존재한다. 정당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개 전략공천 비율은 20% 정도다. 전략공천이라는 미명하에 억울하게 지역구를 떠나야 하는 후보들 입장에서는 원망스러운 제도이다.


지도부의 공천 권한이 강해지면, 의원들이 소신을 지키지 못하고 눈치를 보게 되는데, 당론으로 정해진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면, 공천 걱정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설마’ 하지만, 공천학살은 선거 때마다 반복되며, 순종적 정치인이 양산돼, 결국 명분도 잃고, 선거에서도 패배하는 것이다.


공천 시스템도 문제지만, 필자를 비롯한 유권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최악의 국회의 책임은 그들을 선택한 유권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인물 중심의 투표를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인물보다는 소속 정당을 보고, ‘묻지 마’ 투표를 하는 패턴이 계속 이어진다. 때문에 공천을 못 받으면 훌륭한 인물들도 추풍낙엽처럼, 힘없이 떨어지곤 하는 것이다. 물론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복귀하는 의원들도 있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다.


실제 가장 최근의 선거인 6•13 지방선거가 끝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들에게 표심을 어떻게, 언제 결정했는지 조사했는데, 투표 후보를 결정한 시점은 광역단체장의 경우 ‘투표일 3주 이상 전’이 가장 많았지만, 기초단체장이나 교육감 선거는 ‘투표일 1주 전’ 응답이 가장 많았다.


투표한 후보를 결정한 시점을 묻는 질문에 광역단체장 선거의 경우 투표일 3주 이상 전이 28.5%였고, 투표일 1주 전이 24.4%로 뒤를 이었다. 반면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교육감선거의 경우에는 투표일 1주 전이 가장 높았다. 교육감 선거의 경우 투표 당일 후보를 결정했다는 응답도 19.2%나 됐다.


지지후보를 선택할 때 중요한 고려 사항으로는 ‘인물/능력’이라는 응답(33.9%)이 가장 높게 나타났지만, 실제 정당 공천을 못 받은 현역 단체장, 의원들은 상당수 탈락했다. 여전히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거가 임박해서야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다. 급하게 고르다 보니 제대로 된 선택이 어렵고, ‘불량’ 정치인이 많이 배출되는 것이다. 유권자의 선택이 다시금 중요하게 느껴지는 시점이다.


지금 거리 곳곳에는 예비후보자들이 90도 인사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고, 평소 잘 모르는 예비후보자들이 각종 형태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온다. 그러나 이러한 인사나 소통도 중요하지만, 선거 전과 선거 이후 변하지 않는, 국민을 왕으로 생각하는 정치인을 선별하는, 올바른 선구안이 필요하다.


선거 전과 선거 후가 다른 인종을, 인터넷에서는 선거트랄로피테쿠스(선거+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부른다. 아래 그림은 선거 전과 선거 기간, 그리고 당선 후 정치인들의 모습을 인류 진화의 과정으로 묘사한 그림이다. 선거철만 되면 200만 년 전 원시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퇴화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다시 허리를 펴고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가는 인종이 바로 선거트랄로피테쿠스라는 것이다.


선택의 날이 2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고정적 이념지형에 따라, 그리고 강화된 확증편향으로 투표할 후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르지 말고, 선거일이 다가와서 급히 고르지 않으며, 우리 지역 국회의원이 해당 지역과 대한민국을 위해서 어떻게,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비싼 물건을 구입할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유권자들이여, 이제 작심(作心)할 때가 되었다. 4월 15일이 바로 심판의 날이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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