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이 필요 없는 전문위원

정재룡의 입법의 현장

전 국회 교육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정재룡 입법 칼럼니스트 입력 : 2020.06.01 10:30
▲정재룡 입법 칼럼니스트 전 국회 교육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정인화 의원은 2016년 12월 7일 다음과 같은 내용의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제23조의2(농산물 및 식품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제공 등) ① 정부는 농업인의 안정적인 농산물 생산환경 보장 및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하기 위하여 농산물 및 식품에 관한 올바른 정보가 소비자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② 정부는 농산물 및 식품에 관한 진실하지 아니한 정보가 언론 매체 등을 통하여 공개되는 경우 해당 정보의 정정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

③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은 농산물 및 식품에 관한 진실하지 아니한 정보가 언론 매체 등을 통하여 공개되고 있는 경우 직권으로 또는 농업경영체·생산자단체·식품산업에 종사하는 자의 신청으로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해당 정보의 정정을 위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정인화 의원이 이 개정안을 발의한 취지는 다음과 같다.
TV 또는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하여 농산물 및 식품에 관한 잘못된 정보가 소비자에게 전달되거나 중앙행정기관의 잘못된 정보 공개로 해당 농산물 또는 식품의 수요가 크게 하락하여 해당 농산물 또는 식품 생산자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음. 악의적이거나 뚜렷한 근거가 없이 제공되는 이러한 잘못된 정보는 소비자의 알권리를 침해할 수 있으며 농업인 등 생산자의 소득에도 악영향을 미치므로 해당 정보에 관한 정정이 필요한 상황임. 그러나 현행법에서는 정부에게 그러한 의무를 부여하고 있지 않아 농업인 등 생산자 보호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있음. 이에 정부에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의무를 부여하고, 진실하지 아니한 정보가 공개됐을 경우 정정을 위한 노력을 하여야 함을 규정하여 농산물 및 식품에 관한 올바른 정보가 소비자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함.

이 개정안에 대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소위원회 심사에서 담당 수석전문위원은 잘못된 정보의 공개로 인한 피해로부터 생산자 보호를 위해서 정부에 적극적인 노력을 부과하는 개정 취지는 타당하지만, 해당 정보의 정정을 위한 조치의 불명확성, 언론중재법 등에 피해 당사자에 한정해서 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다. 이어지는 논의에서 소위원장은 원안 그대로 가지 않더라도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안내를 해주는 방법을 고민해달라고 요구했다. 매실, 고등어, 삼겹살에 대한 정보가 부정확해서 피해를 봤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 개정안은 다음과 같이 수정돼 2017년 3월 2일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제23조의2(농산물 및 식품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제공 등) ① 정부는 농업인의 안정적인 농산물 생산환경 보장 및 소비자의 알권리 충족을 위하여 농산물 및 식품에 관한 올바른 정보가 소비자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② 정부는 농산물 및 식품에 관한 진실하지 아니한 정보가 언론 매체 등을 통하여 공개되는 경우 진실한 정보의 제공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사실 개정안은 1항보다는 2항과 3항이 중요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수정안은 개정안과 비교할 때 1항은 개정안 그대로인데, 2항은 개정안의 2항에서 가장 중요한 ‘해당 정보의 정정’이라는 문안이 삭제돼 그 취지가 제대로 반영됐다고 볼 수 없고 개정안의 3항은 완전 삭제됐다. 1항과 2항 간에 차이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조문이 이렇게 수정되는 과정을 보면 수석전문위원이 의당 소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의 의사를 잘 반영하도록 수정 조문을 준비해야 함에도 사실상 잘못된 정보의 정정에 소극적인 정부의 입장을 받아줘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초 검토보고서에서 2항과 3항의 문제점만 지적했지 수정 의견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부터 미흡했다고 볼 수 있다.

국회는 사법부가 공용수용제도의 패러다임을 개발 편의 위주에서 국민의 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함에 따라 2015년 12월 정성호 의원의 대표발의로 공용수용권 입법의 양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토지보상법’)을 개정하여 개별법에서 수용권을 신설할 때 그 사항을 토지보상법 별표를 개정하여 명시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도록 했다. 20대 국회에서 2018년 6월 현재까지 공용수용권 신설을 포함하는 법안이 18건 발의되었다. 공용수용권 신설에 대한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서 수용 규정은 토지보상법도 같이 개정해야 효력이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필수 사항으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18건 중 8건에 불과했다. 더구나 8건 중에 한 전문위원이 작성한 것이 6건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너무 미흡했다. 심지어 공용수용권 신설에 대하여 아예 검토를 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신고제도 합리화 정비 차원에서 현행 신고제도 중 수리가 필요한 신고인 경우는 그것을 명시하는 내용의 개정안의 경우 정부는 2016년과 2017년에 총 21건을 제출하였고, 이 중 2018년 4월 현재까지 국회를 통과한 것은 5건이다. 신고제도 합리화 정비의 기본방침은 수리가 필요한 신고의 경우 수리 간주 규정을 두는 것이므로 개정안에 수리 간주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이 합당한지 검토하는 것이 필요한데, 전체적으로 볼 때 검토보고서에는 그런 검토를 했는지 여부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물론 검토과정에서 그것을 점검하고 별 문제없다고 넘어갔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개정안에서 중요사항이라면 검토보고서에 관련 내용이 적시돼야 한다고 본다.
이상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현재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는 부실하기 그지없다. 양질의 검토보고는 양질의 법안을 만들고, 부실한 검토보고는 부실한 법안을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위원회에 2급 이상 고위직이 40여 개가 있는데, 현재는 검토보고가 너무 부실하여 혈세 낭비라고 본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됐을까?

국회사무처는 입법 등 국회의 본질적 기능에 관한 업무를 하는 위원회 전문위원실 외에 행정사무 기능을 담당하는 부서(이하 ‘행정부서’)가 여러 개 있는데, 이들 행정부서가 더 선호되고 있다. 의장과 총장 직속이어서 인사와 예산 등에서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위원회 자리는 전문성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고 그저 누구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특이하게 전문성은 입법조사관에게는 필요할지언정 전문위원이나 수석전문위원에게는 필요하지 않다는 풍토이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행정부서 등에서 근무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니 전문위원이나 수석전문위원에게 전문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주요 위원회마저 전문위원이나 수석전문위원 자리에 전문성을 고려하여 인사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다보니 검토보고서 작성에 있어서 입법조사관에게 의존하는 비중이 높다. 전문위원 검토보고가 아니라 사실상 입법조사관 검토보고, 전문위원 대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니 검토보고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 의원들은 2018년 4월 학위취득유예제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의안번호 12767) 사례에서 보듯 전문위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수정의견이나 대안을 제시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현실은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정의견이나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대부분 찬·반 의견을 균형적으로 제공하거나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이런 풍토는 전문위원의 전문성 함양에 부정적이다. 전문위원에게 전문성이 없어도 되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법안 급증에 따른 위원회의 업무부담 증가 등의 영향으로 국회사무처 공무원들의 행정부서 선호 및 위원회 기피가 심화되고 있다.

위원회의 경우 분야가 다르더라도 입법이나 예산 검토 업무 등에서 공통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위원회 사이의 업무보다 위원회와 행정부서의 업무가 오히려 서로 더 이질적이다. 더구나 계속 행정부서에만 근무하는 것에 아무런 제한이 없고 계급이 높을수록 행정부서의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행정부서의 근무경력도 소수에게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도 위원회와 행정부서 사이의 보직운영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현재 법안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찬·반 의견을 균형적으로 제공하거나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고 적시하는 검토보고서는 법안의 처리와 입법의 품질 제고에 기여하기 어렵다. 박범계 의원은 313회 임시회 제2차 법제사법위원회(2013년 2월 19일)와 2015년 12월 16일 ‘의원입법의 발의 전 절차적 제도 도입과 입법실무의 개선’ 세미나에서 검토보고서의 부실문제를 국회의 첫 번째 개혁과제라고 지적하고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고 적시하는 검토보고는 조속히 시정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사무처에는 전문위원의 업무내용을 감독하거나 전문위원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없는데, 이는 구조적 문제이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사실 전문위원 평가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업무실적평가제도가 운영되고는 있지만 그것은 전문위원제도의 특성에 부합하지 않는 일반적인 것으로서 형식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사실 정의화 의장에 이어 정세균 의장도 전문위원 평가시스템의 도입을 지시했지만 국회사무처 내부에서 묵살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전·현직 직원들을 불러모아 평가 작업을 실시하여 만든 자료나 노조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사에 반영하고 있는데, 그런 자료는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것으로서 국회사무처 인사의 난맥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국회사무처가 전문위원 평가시스템을 도입하여 평가결과를 수석전문위원 임용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면 전문위원에게 전문성이 중요해지고 행정부서 선호에 따른 문제가 개선되면서 입법지원 역량이 강화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국회사무처의 존재 의의를 높이는 길이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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