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시대의 명품 인플레이션

[김동하의 컬처 리포트] ‘과시적 소비’와 ‘오픈런’은 계속 양립할 수 있을까

한성대학교 미래융합사회과학대학 김동하 교수 입력 : 2022.07.06 10:55
▲김동하 한성대학교 미래융합사회과학대학 교수
명품산업의 급성장은 코로나 시대의 대표적 역설 중 하나다. 많은 소비재 산업이 어려웠지만, 럭셔리 제품을 취급하는 명품 브랜드 시장은 국내에서 특히 급성장했다. 코로나 위기 해소를 위해 풀린 전 세계의 많은 화폐가 명품시장으로 쏠렸고, 이미 비싼 명품의 가격마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수요와 가격이 함께 오르는 위기 속 호황을 누린 덕에, 세계 대표적 럭셔리 브랜드 기업인 에르메스와 케링, LVMH의 주가는 2019년 초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3년간 주가가 각각 223%, 189%,76% 상승했다.

많은 사람이 ‘베블런 효과’로 불리는 과시적 소비를 논하지만, ‘오픈런’, 또는 ‘좀비런’으로 불리는 명품으로의 질주는 유한(有閑)계급의 한가한 소비와는 거리가 멀다. 수요와 가격이 함께 오르는 명품의 호황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인플레이션 기조 속에서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그래픽=2021 딜로이트인사이트

韓, 5대 럭셔리 5000억 넘기는 기록적 성장

지난해 딜로이트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위기가 한창이던 2020년 럭셔리 마켓 규모에서 세계 7위를 차지했다. GDP 10위인 한국이 GDP 4위인 독일보다 더 큰 럭셔리 마켓 시장을 형성했다.
2021년 한국의 명품시장 규모는 전년대비 29.6% 급증한 58억 달러(약 7조3000억원)에 달했다. 삼정KPMG가 지난달 발표한 ‘럭셔리 시장을 이끄는 뉴럭셔리 비즈니스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명품 시장규모는 2942억 달러(약 374조원)로 전년대비 13.5% 증가하는 동안 한국의 성장률은 30% 가까운 세계 최정상급의 성장세를 보였다.

명품을 주로 취급하는 오프라인 백화점의 해외 유명브랜드 매출 증가율은 37.9%로 전체 품목 매출 증가율 24.1%를 크게 웃돌았다. 보고서는 한국의 명품시장 규모는 2년 뒤에는 70억 달러(약 8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루이비통, 구찌, 샤넬, 디올, 에르메스 등 5개 최고급 유럽 명품 브랜드가 한국에서 크게 웃었다. 지난해 루이비통코리아의 매출은 1조4681억원으로 전년대비 40.2% 성장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샤넬도 1조2238억원으로 31.6% 급성장했고,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70% 가까이 늘었다. 샤넬의 경우 플래그십 매장이 서울 7곳, 부산, 대구 각각 1곳씩인 점을 감안할 경우, 매장당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크리스찬 디올은 매출이 6139억원으로 86.8%나 급증했고, 명품 위 명품으로 불리는 에르메스도 5272억원으로 26% 상승했다. 유한회사로 실적집계가 어려운 구찌는 조사에서 배제됐지만 1조원 넘는 매출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픽=2021 딜로이트인사이트

딜로이트에 따르면 2020년에도 루이비통과 에르메스의 글로벌 매출은 각각 -27%, -7%로 뒷걸음질쳤지만, 한국에서는 각각 33%, 16%의 성장세를 나타냈다. 특히 주요 명품제품의 가격이 유럽과 미국에 비해 한국에서 비싼 점도 눈길을 끈다. 2017년 BNP파리바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별 샤넬, 에르메스, 루이비통, 디올 백의 가격은 프랑스와 미국에 비해 비싼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와 명품 온라인+MZ+리세일 트렌드
코로나 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명품에 눈을 돌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과시욕구와 우울감, 불안심리 해소, 보상욕구 등 심리적 요인도 있지만 ‘온라인’, ‘리세일’ 등 유통기술의 진화도 큰 몫을 했다. 특히 MZ세대로 불리는 20~`30대 젊은 층이 명품시장에 신규로 참여하는 데 있어서, 온라인과 리세일 시장의 성장은 촉매가 됐다. 구매의 편리함과 복잡다단한 소비 트렌드의 반영, 투자 및 회수의 가능성이 맞물리면서 경제위기에 취약한 젊은 층이 명품시장의 성장세를 이끄는 주역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한국은 온라인 명품시장의 성장세에 있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을 뽐냈다. 삼정KPMG에 따르면 한국 럭셔리 시장의 온라인 판매 비중은 2021년 40.8%로 2019년 33.4%에서 크게 증가했다. 글로벌 최대 온라인 럭셔리 플랫폼 파페치(Farfetch)가 있는 영국이 25.8%, 세계 최대 럭셔리 시장 미국이 15.5%인 점에 비하면 한국의 온라인 성장세는 독보적이었다.

국내 대표적인 온라인 명품 플랫폼 머스트잇, 발란, 트렌비의 거래액은 2020년 4000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1조원으로 2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픽=2021 딜로이트인사이트

베블런 효과, 레저계급의 과시적 소비
명품경제의 성장을 논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이론이 ‘베블런 효과’다.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1857〜1929)은 저서 에서 ‘과시적 소비’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상류층이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비싼 물건을 소비한다는 그의 논리는, 시장 메커니즘이 가격을 통해 수요와 공급을 합리적으로 결정한다는 고전 경제학의 법칙을 깨는 혁명적인 이론이었다. 눈여겨볼 점은 유한계급(Leisure Class)의 뜻이 有閑하다. 즉 한계가 아니라 한가함이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자본주의에도 엄연히 돈으로 분류되는 계급, 즉 레저할 수 있는 계급이 존재하고, 그러므로 시장경쟁 합리성만으로 모든 걸 설명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근 수년간 지속적으로 회자되는 ‘샤테크(Cha-Tech)’라는 말은 그의 이론 없이는 설명이 안 되는 독특한 현상이다. 샤넬 브랜드 제품을 가지고 재테크 대상으로 삼는 건, 샤넬의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와 리세일(resale) 시장의 동반상승이 맞물린 현상이었다.
▲그래픽=2021 딜로이트인사이트


인플레이션 속 가격 인상과 ‘오픈런’
실제로 ‘샤테크’로 불릴 만큼, 샤넬의 가격 인상은 횟수와 인상 폭에 있어서 타 브랜드 대비 압도적이었다. 지난 2019년 11월에는 715만원이던 샤넬 클래식 플랩백(미디엄)은 약 3년간 6차례나 가격을 올리면서 65% 오른 1180만원이 됐다. 이는 가장 비싼 가방으로 꼽히는 에르메스 ‘버킨백30(토고가죽)’과도 100유로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잦은 인상 소식에 소비자 불만이 가중되고 있지만 올해도 샤넬 제품을 구매하려는 ‘오픈런’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가격을 또 올린다는 말이 회자되면서 규모는 줄었지만 구매자들의 행렬은 지속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픈런’이라는 말은 오프라인 마트에서 행사상품을 제공할 때 주로 쓰던 말이었다. 본래 의미는 뮤지컬 등 공연이 끝나는 날을 정해놓지 않고 오픈한 채 공연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명품이나 한정판 소비재의 구매를 위해 오픈하자마다 뛰어간다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

오픈런은 단순한 구매행태를 넘어서는 합리적 경제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대부분 구매자들이 구매에만 성공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전제하고 달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격을 꾸준히 올리고 있고, 당장 여러 온라인 플랫폼에서 리세일 가격이 2~3배 이상 되기 때문에 환금성과 수익성도 밑바탕에 깔려 있다. 다시 말하면 ‘오픈런’은 명품을 향한 소비의 열정과, 경제적 합리성이 뒤섞인 독특한 경제현상으로 풀이될 수 있다.
▲그래픽=삼정KPMG 이슈 모니터

‘좀비런’과 ‘과시적 소비’…계속 양립할 수 있을까
오픈런을 기다리는 행렬이 길수록, 기다리는 시간도 늘어난다. 오랜 기간 멈춰 있다가 해가 뜨면 달린다는 의미에서 ‘좀비런’, 길바닥에 주저앉아 매장문이 열리길 기다리기 때문에 ‘노숙런’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는 분명 베블런이 얘기한 ‘과시적 소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아무리 경제적 합리성이 바닥에 깔려 있더라도, 베블런이 말한 레저계급의 한가한 소비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얘기기 때문이다. 오히려 투자수익에 ‘주린’ 취약계층을 포함한 다양한 경제계층의 다양한 소비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시점에서 베블런의 주장 중 귀 기울여야 할 또 다른 점은 기득권뿐 아니라 사회적 취약계층이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대외적 변화에 가장 영향을 받는 취약계층은,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하는 편이 삶에 더 이익이라고 판단해 보수화된다는 주장이다.

전 세계 시장이 인플레이션의 공포로 출렁이는 6월. 명품시장 성장의 이면에는 비교적 취약한 신흥 개발도상국들의 부도 위기가 공존하고 있다. 물가 폭등과 성장 둔화로 스리랑카는 국가부도를 선언했고, 잠비아와 레바논은 부도 직전의 위기를 맞고 있다. 에콰도르, 튀니지, 파키스탄, 페루, 아르헨티나, 에티오피아, 파키스탄 등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고 한다.

레저계급의 베블런 효과와 경제적 취약계층의 붕괴 위기가 공존하는 혼돈의 시기. 과시적 소비와 좀비런은 앞으로도 계속 양립하며 명품시장의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자신의 ‘경제적 계급’에 맞는 소비와 투자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점이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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