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일제의 차이, 한국과 일본의 차이

[리더를 위한 북(book)소리]

더리더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입력 : 2024.02.16 10:35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사람은 세 부류로 나뉜다.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 변화에 편승하는 사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 첫 번째가 성공을, 세 번째는 필시 도태할 수밖에 없다.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은 『주역 심리학』(김영사)에서 “역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 지속된다. 그로 인해 하늘이 도우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易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是以自天祐之 吉无不利). 고난이 닥쳤을 때 스스로 변화해야 하며, 그렇게 하면 길이 열려, 발전이 지속되면, 끝내 성취를 누리게 된다는 교훈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지도자는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미리 알아서 사람들을 이끌어 변화하게 하므로 영원히 변화의 선두에 서게 된다. 『주역』이 변화의 책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 대목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 리더는 앞장서서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다.

쇼군이 지배하는 막부 체제를 깨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 열강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던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모르는 리더는 없다. 이를 다루는 역사책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유럽 열강이 보기에는 ‘아시아의 미개한 국가’에 불과했던 일본이 1853년 미국 페리 함대의 무력으로 개항을 당한 때부터 제국의회가 설립된 1890년까지 37년 동안 존황양이, 삿초동맹 등 숱한 고비를 넘으며 전개됐던 유신의 과정, 이를 주도했던 요시다 쇼인, 후쿠자와 유키치,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이토 히로부미 등 숱한 개혁가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리더는 드물다.

시바 료타로의 역작 『료마가 간다』의 주인공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는 메이지유신을 주도하다 32세에 죽임을 당했는데 일본인들로부터 오다노부나가와 함께 가장 사랑 받는 근대의 역사적 인물이다. 유신의 분기점이었던 삿초동맹은 영국의 대일 무기 밀무역과 영국 무기상을 등에 업은 료마의 역할이 컸다. 료마가 무사의 혼인 장도(長刀)를 자랑하는 친구에게 권총을 보여주며 ‘이제부터는 권총의 시대’라고 말한 후 그 친구가 권총을 입수하자 ‘이제부터는 만국공법의 시대’라 외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다만, 일본인끼리 살상을 부르는 무기밀매업에 종사했던 한낱 장사꾼에 불과했다는 견해로 사카모토 료마가 과대평가됐다는 주장을 하는 역사가도 있기는 하다. 후쿠자와 유키치, 나카하마 만지로, 이토 히로부미 등 일본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유럽과 미국을 배우기 위해 태평양을 건넜던 때도 이 시기였다.

영화 의 역사는 단지 1598년 12월에서 끝나지 않았다. 노량해전의 패장 시마즈는 사쓰마번(가고시마현)의 유력 가문 소속이었고, 그의 후손들이 조슈번(야마구치현)의 개혁가들과 삿초동맹을 맺고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면서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했다. 노량해전에서 패하고 약 310년이 흐른 뒤 끝내 한일병합이 이뤄졌는데 사쓰마번은 일제 해군, 조슈번은 일제 육군의 주축으로서 현대 일본의 주요 정치세력으로 이어졌다.

『조선의 못난 개항』 저자 문소영은 “조선은 1876년 페리 함대를 답습한 일본의 무력에 굴복해 강화도 조약을 맺고 개항을 당했다. 비록 일본이 개항에서 조선보다 23년 앞섰지만 조선도 개항 이후 1910년 한일병합까지 34년의 긴 시간이 있었다. 대체 조선과 일본은 무엇이 달랐으며, 조선의 리더들이 어쨌길래 망국에 이르게 됐는가?”라며 장탄식을 늘어놓았다.

이에 대한 답이 『격동-메이지유신 이야기』에 들어 있다. 메이지유신을 다루는 다른 책들과 달리 전개 과정과 인물 중심의 줄거리를 속도 있게 서술해 공사다망한 리더들이 잠깐 짬을 내 부담 없이 읽기에 아주 좋다.

▲『격동-메이지유신 이야기』 / 오욱환 지음 / 조윤커뮤니케이션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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