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비유의 바다를 유영한다

[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참고하고 본받을 풍부하고 다채로운 은유와 직유

글쟁이(주) 백우진 대표 입력 : 2023.06.07 09:58
편집자주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백우진 글쟁이㈜ 대표
우리는 언어로 사고하고, 언어의 바다에는 어종처럼 다양한 비유가 유영하고 있다.많이 읽히는 글에는 비유가 있다. 직유와 은유는 다채로운 비늘을 반짝인다. 그에 비해 일반인이 쓴 산문은 비유가 적거나 없는 편이다. 비유 없는 글은 물고기 없는 수족관이다.

이번 글은 비유 구사를 권하면서, 참고하고 본받을 비유를 몇몇 공유한다. 출처의 영역을 고전문학과 경전, 역사학, 생물학 등으로 구성한다. 이들 영역과 각 영역의 인용 대상 작품과 문장은 필자가 임의로 선정했다.

〈일리아스〉는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기원전 900년 무렵 쓴 트로이 전쟁 이야기이다. ‘일리아스’는 ‘일리오스 이야기’를 뜻하고, ‘일리오스’는 트로이의 별명이다. 호메로스는 이 작품에서 10년 트로이 전쟁 중 50일 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야생동물 등에 빗댄 역동적 묘사
이 작품은 24권으로 구성됐다. 그중 13권 ‘함선들을 둘러싸고 싸우다’의 비유 문장들을 발췌한다. 배경 지식으로 이 권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소개한다. 그리스 진영에서는 크레타섬의 영웅 이도메네우스와, 부인이 패리스에게 넘어간 메넬라오스 등이 무훈을 세운다. 트로이 진영에서는 헥토르와 아이네이아스, 패리스 등이 전투에 나선다. 이 권은 제우스가 관심을 전쟁터에서 다른 곳으로 돌린 사이 포세이돈이 그리스 장수들을 독려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음 비유 문장들은 숲 출판사에서 낸 천병희 번역본에서 가져왔다. 수천 년 전의 생생한 비유가 살아 꿈틀거린다.



* 마치 깎아지른 듯한 높은 절벽 위를 맴돌던 날랜 날개의 매가 갑자기 날아올라 다른 새를 쫓으려고 들판 위로 내닫듯, 꼭 그처럼 대지를 흔드는 포세이돈은 훌쩍 그들 곁을 떠났다.

* 헥토르가 앞장서서 곧장 밀고 들어가니, 그 사나운 기세는 벼랑에서 굴러떨어지는 바윗돌과 같았다. 이 뻔뻔스러운 바윗돌은 겨울철의 홍수가 큰 폭우에 힘입어 그 밑을 허물고 벼랑 가에서 밀어내면, 껑충 뛰어오르며 날아가고 그 밑에서는 숲이 우지끈댄다.

*그러나 이도메네우스도 응석둥이처럼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고 버티고 서 있었다. 마치 산속의 멧돼지가 제 투지를 믿고 사람들의 큰 무리가 떠들썩하게 뒤쫓아오기를 후미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와 같이. 이때 멧돼지는 등의 털을 곤두세운 채 두 눈에 불을 켜고 이빨을 갈며 개 떼와 사람들의 무리를 물리치기를 열망한다. 꼭 그처럼 이름난 장수 이도메네우스는 싸움터로 달려오는 아이네이아스를 기다리고 서서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이때 프리아모스의 아들(패리스_필자 주)은 메넬라오스의 가슴을 가린 불룩한 화살로 맞혔으나 날카로운 화살이 튕겨 나와 옆으로 날아갔다. 마치 너른 타작마당에서 윙윙거리는 바람의 입김과 풍구의 세찬 힘 앞에 껍질이 새까만 콩이나 누에콩 따위가 넓은 삽에서 날아가 떨어질 때와 같이, 꼭 그처럼 날카로운 화살은 영광스러운 메넬라오스의 가슴받이에서 멀리 튕겨 나와 옆으로 날아갔다.



‘무소의 뿔처럼’이라는 문구로 유명한 불경이 있다. 〈숫타니파타〉이다. ‘숫타’는 ‘경(經)’, ‘니파타’는 ‘모음’을 뜻한다. 이 경전은 오직 팔리어대장경에 실려 있다. ‘무소’ 문구가 있는 문장 또한 동물과 자연, 즉 사자와 바람과 연꽃과 코뿔소로부터 직유를 가져온다. 해당 문장은 다음과 같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두려움에 꺾이지 않는 코뿔소처럼,
의연하고 표표하고 고결하며 담대하게



이 인용문은 필자가 비유 측면에서 원문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영어 원문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이다. 나는 코뿔소도 비유의 대상으로 서술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행을 수정했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영국 외교관이자 역사학자 E. H. 카의 저술이다. 카가 1961년에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한 강의를 묶은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을 주제 삼아 연구하는, 즉 역사의 의미 등을 고찰하는 분야는 ‘역사철학’이라고 불린다.

역사의 ‘시초’ 에덴동산 시절에 비유
카에 따르면 19세기에는 역사에 대한 관점이 경제학의 자유방임주의와 비슷했다. 자유방임주의는 각자 자신의 일을 수행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전체가 조화롭게 돌아가도록 챙긴다는 믿음을 의미한다고 카는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당시 영국 역사학자들은 자기네는 역사의 사실만 수집하면 된다고 여겼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손처럼 ‘지고의 사실’이 수집된 사실들을 더 높은 역사 인식으로 끝없이 끌어올려주리라고 믿었다. 역사철학을 고민하지 않던 시기를 카는 에덴동산 시절에 비유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이 시기는 순수의 시대였고, 역사학자들은 에덴동산에서 철학 한 조각도 걸치지 않은 채 활보했다. 그들은 알몸이었지만 역사의 신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 이후 우리는 죄를 알게 되었고 타락을 경험했다. 오늘날 역사철학이 없어도 되는 척하는 역사학자들은 그저 헛된 자의식을 위해 애쓸 뿐이다. 그들은 자기네 정원 주변에 에덴동산을 다시 만들고자 하는 나체촌 회원이나 다름없다. 오늘날 이 곤란한 질문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찰스 다윈은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은 1838년에 진화론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에 앞서 다윈이 진화론에 착안하게 된 실마리는 1835년 9월 채집한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가 제공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동태평양 적도 아래에 19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남미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약 970km 떨어져 있다. 핀치는 참새목의 조류다.

핀치는 갈라파고스 제도에만 서식한다. 부리 모양과 크기에 따라 13종으로 분류된다. 딱딱하고 큰 씨앗이 많은 곳에 사는 핀치의 부리는 크고 뭉툭하다. 작은 씨앗이 많은 곳에 서식하는 핀치의 부리는 작다.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며 곤충을 잡아먹거나 꽃의 꿀을 먹는 핀치의 부리는 뾰족하다.

다윈은 핀치의 부리를 근거로 하나의 종이 서로 다른 서식 환경에 적응하면서 여러 종으로 분화했을 것이라며 핀치의 계통도를 그렸다. 이 계통도를 줄기 삼아 다윈은 종이 환경의 변화와 먹이의 종류 등에 따라 자연선택을 거쳐 적자생존한다는 진화론을 발전시켰다.

핀치 부리의 진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에 들른 지 138년이 흐른 1973년에 착수됐다. 피터 그랜트와 로즈매리 그랜트 부부 학자는 그해부터 무려 약 50년 동안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핀치새를 관찰해왔다. 이들은 환경에 따라 핀치가, 즉 필치의 부리가 진화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이를 통해 ‘진화란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에 진화의 순간을 관찰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통설을 깨뜨렸다.

종 분화 과정은 조각과 비슷하다
과학 교양서 〈핀치의 부리〉는 이 부부 학자의 연구를 중심으로 진화론을 펼쳐 보인다. 종의 미래는 유동적이다. 자연선택에 의해 분화되는 동시에 교잡에 의해 융합된다. 핀치들은 조상 집단이나 서로에게서 아직도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상태다. 대표적인 예로, 대프니메이저섬의 핀치는 열 중 하나꼴로 잡종이다. 핀치들은 한순간에 융합될 수 있다. 〈핀치의 부리〉는 자연선택에 의한 종 분화를 다음과 같이 조각에 비유했다.



다윈핀치들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나오는 아담과 다르다. 아담은 진흙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빚어진 후 땅에서 반쯤 일어나 아래로 뻗은 신의 손가락과 맞대기 위해 맥없이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있다. 다윈핀치들은 오히려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조각상 〈노예들〉과 더 비슷하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에서 반쯤 조각하고 반은 내버려둔 듯하여, 오늘날 우리가 다윈핀치들을 바라보면 아직도 조각가의 끌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다윈핀치들은 살아 숨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완성이다. 조각가는 지금도 갈라파고스에서 작업 중이며, 그랜트 부부는 그 작업과정을 측정하고 증명하고 있다.



이제 글을 읽는 여러분은 전보다 비유를 눈여겨보게 된다. 생생한 비유를 마주치면 잠시 그 구절에 머물게 된다. 표현을 음미하는 시간은 나중에 자신이 쓰는 글에 쓰이는 비유로 녹아든다. 때로는 글의 비유를 고쳐서 써볼 수도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책으로 천 년을 사는 방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책은 생명보험이며 불사(不死)를 위한 약간의 선금이다. 물론 그것은 앞으로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뒤로 죽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



내는 이 ‘불사’의 의미를 이렇게 짐작한다. 사후 저술은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자신의 글은 영원히 인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불사를 위한 약간의 선금’은 ‘불사를 위한 티켓’으로 고치면 어떨까.
글을 쓸 때면 은유가 헤엄치는 언어의 바다를 떠올리자. 그 바다에서 비유를 건져올리자. 펄떡펄떡 생동하는 직유도 좋고, 잔잔하게 빛나는 은유도 좋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