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현지지도’,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강석승 교수입력 : 2017.02.08 17:54

강석승 사단법인 동북아교육문화진흥원 원장,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초빙교수
북한의 한 해는 아마도 김정은의 공개 활동으로부터 시작되고 또 그의 공개 활동으로 끝을 맺는다는 점이 다른 국가와 크게 다른 특성일 것이다. 이런 특성은 그만큼 이 지구상에서 유례(類例)를 찾아보기 힘든 정치 체제가 북한인 것이며,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이 적어도 북한 주민들 모두에게 있어서는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관심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됨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런 김정은의 공개 활동 중 유독 모든 주민들이 단 한시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른바 ‘현지지도’라 불리는 김정은의 통치 행위이다. 일명 ‘1호 행사’라고 불리는 이 현지지도는 김가정권의 시조(始祖)이었던 김일성시대부터 김정일 시대, 그리고 지금의 김정은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들 일가의 여러 활동을 우상화 신격화하는 가운데 유일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체제 안정과 경제 발전의 동력(動力)으로 원용되어온 통치 행위이다.


이곳에서의 ‘현지지도’란 개념은 문자 그대로 김정은이 군대나 기관, 공장과 기업소, 협동농장이나 건설 공사 현장, 학교 등에 직접 찾아가 관련 시설을 둘러보고 관계자를 치하하며 나름대로 느낀 점을 밝히면서 지시하는 사항, 그리고 이들과 기념 촬영을 하면서 연회를 베풀거나 표창과 상훈, 선물을 전달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특히 군부대 시찰이나 훈련 과정을 참관한 이후 김정은이 해당 부대에 주는 자동보총이나 쌍안경 등은 북한의 ‘선군정치’를 상징하는 표상으로 되어 관련 부대 군인들과 일꾼들은 이를 ‘최고의 영광’으로 받아들이면서 ‘김정은의 시찰이나 참관 사실’을 크게 부각시키는 ‘기념판’을 별도로 만들어 부착하면서 나름대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게 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이렇듯 북한에서 김정은의 현지지도가 갖고 있는 의미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간주되고 있는 것은 ‘카리스마’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신(神)과 같은 존재인 김정은이 직접 찾아가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고충 사항을 들으면서 함께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일생 단 한 번도 받아 안기 힘든 마치 꿈을 꾸는 것과 같은 무한한 영광”이라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이런 현지지도를 통해 군부대 군인과 정치 지도원 등 관계자들로부터 자신에 대한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충성심과 사기 앙양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이와 함께 경제 현장에서는 근로자들을 직접 만나 격려함으로써 그들의 근로 의욕을 고취시키는 가운데 자신이 “매우 자상하고 세심한 인민의 지도자임”과 동시에 “어머니와 같이 한없이 자애로운 인민의 어버이와 같은 존재임”을 과시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현지지도는 김일성 생존 시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데, 이런 지도 과정을 통해 제시된 주요 산출물이 이미 1950년대 중반부터 북한 당국에 의해 강조되고 있는 “천리마운동, 청산리정신, 대안의 사업체계” 등이다. 김일성이 살아있을 당시만 하여도 ‘현지지도’라는 용어는 김일성에게만 쓰이는 공개적인 정책 지도 활동의 전유물(專有物)로 간주되었고, 대신 김정일은 ‘실무지도’라는 표현으로 김일성의 활동과 차별화하였다. 이는 지금까지도 김일성에 대한 호칭이 ‘위대한 령도자’로, 김정일에 대한 호칭이 ‘위대한 지도자동지’ 등으로 차별화되고 있는 것과 맥(脈)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정일도 자신에 대한 후계 체제가 확립되기 시작하였던 1990년대의 문턱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조심스럽게 ‘현지지도’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본받아 김정은도 김정일이 사망하고 난 직후부터 자신의 공개 활동에 이 용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대신 내각 총리의 경우 ‘현지료해’라는 표현을 사용토록 한 것으로 보인다.


금년의 경우에도 예외 없이 북한에서는 신년 벽두 새벽 김정은이 당-정-군의 주요 지휘성원들과 김일성-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같은 날 정오(평양시간)에는 약 28분에 걸쳐 육성 신년사를 낭독하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하였다. 특히 금년 신년사에서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는데, 올해에는 더욱 분발하고 전심전력하여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찾아 할 결심을 가다듬게 된다.”고 함으로써 과거와는 전혀 다르게 ‘수령의 무오류성’을 스스로 버리는 자아비판적인 발언을 하여 그 저의(底意)와 관련한 내외의 관심을 촉발시켰다.


이후에도 북한 당국은 조선중앙통신(1.5자) 등을 통해 김정은이 평양시 통일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평양가방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상표를 특색 있게 만들데 대한 문제, 질 제고에 큰 힘을 넣어 공장 제품을 인기 상품으로 만들데 대한 문제 등”의 과업을 제시하였고, 류경김치공장 현지지도(1.12, 조선중앙통신 보도)와 김정숙평양제사공장 노동자합숙소 준공식 참석(1.13), 특히 조선인민군 제233군부대 직속 구분 대에의 시찰(1.19, 조선중앙통신보도)에서는 “훈련들을 실전 분위기속에서 진행하여 다병종화된 싸움꾼들로 준비시킬 데 대한 문제, 현대적인 전투기재들을 적극 애호 관리 할데 대한 문제, 구분대 주변지역을 철벽의 요새로 다지며 위장을 잘 할데 대한 문제 등”을 과업으로 제시하였다.


그런가 하면 신년사에서 제시된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평양시 군중대회(1.5, 김일성광장)와 조국통일과업 관철을 위한 청년전위와 여맹원들의 궐기모임, 정부-정당-단체연합회의(인민문화궁전, 1.18)를 비롯하여 각급 시와 도는 물론이고 단체, 기관이나 기업소, 공장, 협동농장 등에서 군중대회 및 궐기대회 등을 잇달아 열었다. 특히 ‘신년사 과업관철을 위한 당-국가-경제기관-무력부문 일꾼연석회의(1.7-8)에서는 “모든 일꾼들이 시대와 혁명 앞에 지닌 사명과 임무를 깊이 자각하고 자기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 나감으로써 당의 구상과 의도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한 몸을 촛불처럼 불태워야 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때문에 지금 대부분의 주민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가운데서도 이렇듯 반강제적으로 동원되어야 하는 각급 군중대회나 궐기 모임에 참가하느라 신년 벽두부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민들 속에서는 어떻게 이런 정권이 “인민을 위해 일하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정권인가, 이것이 우리식 사회주의인가”하는 자조(自嘲) 섞인 불평불만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가고 있다.


결국 김정은의 ‘현지지도’는 그와 그 혈통의 우상화, 신격화를 위한 ‘정치 쇼’로서만 기능할 뿐, 정작 그 대상으로 결정된 군부대나 각급 경제 단위들의 경우에는 외형적으로만 “크나 큰 영광을 받아 안은 축복”으로 과시할 뿐 실제 그 이면에는 김정은의 방문에 따른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보여주기 행사’에 치중한 나머지 그 준비에 불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낭비하고, 특히 김정은에 현지지도 시 제시한 과업을 관철하기 위해 “너무나도 큰 홍역(?)”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이중 삼중의 후유증을 겪게 마련이다.


더욱이 김정은의 경우 ‘인민의 지도자’라는 주장이나 선전과는 달리 정작 인민들이 생활하는 현장은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이 관련 기관에 의해 “사전에 철저하게 연출된 곳”만 찾다보니 “진정한 민심(民心) 파악과는 점점 멀어져 가는 반인민적 행보”라는 직간접적인 비판을 감내해야 하는 ‘또 하나의 부담과 짐“을 부여 안고 있는 셈이다.


김정은은 언제까지 이런 비효율적이고 반인민적인 ‘현지지도’를 계속할 것인가? 그에게 ‘현지지도’의 장단점을 진솔하게 알려줄 ‘진정한 충신’은 정녕 없는 것인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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