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빛날 5인] 모델 한현민, “차별의 시선 이겨낼 수 있는 건 꿈”

존재 자체만으로 ‘희망의 증거’인 1호 흑인 혼혈 모델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지선 기자입력 : 2018.01.02 11:33
사진=SF엔터테인먼트 제공
검은 피부와 곱슬머리, 그리고 한국사람. 요즘 대세 중의 대세로 떠오른 모델 한현민군을 설명하는 세 개의 키워드다.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2017년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인’에 이름을 올렸다.


모델로 데뷔한 건 중학교 3학년 때. 현재 소속된 회사인 SF 엔터테인먼트의 윤범 대표는 당시 현민군을 만나자 마자 곧바로 계약을 했다. 정식 데뷔도 전부터 업계에서는 이미 ‘한현민’이란 이름은 유명했던 터. SNS에 올린 단 몇 장의 사진에서도 타고난 신체조건과 독특한 개성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때문에 모두가 탐을 내는 재목이었지만 아무도 손을 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안 되는 카드니까요.” 윤 대표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 두 사람이 단기간에 기적을 이뤄냈다. 타임지도 부연했듯 동질성(homogenous)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온갖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국내 최초 혼혈 모델로 당당히 발돋움을 했다.

<더리더>는 지난달 15일 국내 1호 흑인 혼혈 모델 한현민군을 만났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현민군은 그야말로 ‘한국의 흔한 고등학생’ 그 자체였다. 스스로 정립한 ‘한국 흑인’이라는 정체성은 확고해 보였다. 겉모습은 조금 다르지만 여느 청소년들처럼 중2병을 심하게 앓기도 하고,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순대국과 축구 게임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신나보였던 그는 영락없는 한국의 고등학생이었다.

이제는 길거리에 지나다니면 누구나 알아보는 것은 물론, 패션업계뿐만 아니라 여러 방송 매체들에서도 앞다투어 찾는 유명인이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편견이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차별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하는 의연한 모습의 현민군. 폐쇄적인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만든 장본인이자 다문화에 대한 인식 변화의 시작을 알린 10대 소년, 모델 한현민군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honggga@mt.co.kr)
-아침부터 촬영이 있었다고
▶요즘 출연중인 ‘나의 영어 사춘기’ 녹화를 하고 왔다.

-스케줄과 학업을 병행하기 힘들지 않나
▶그렇게 힘들진 않다. 현재 화곡동에 있는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활동이 있는 날엔 학교에 가지 못하지만 스케줄이 없는 날엔 꼬박꼬박 나간다.

-작년에 타임지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인 중 한명으로 선정됐다
▶너무 신기하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떻게 내가 뽑혔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가족들도 축하해주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타임지에 선정이 됐지만 한현민은 그냥 한현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의미심장한 말인데
▶타임지에 선정된 건 너무나 벅차고 기쁜 일이지만 그걸로 바뀌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어떤 타이틀을 갖게 되든 결국 나 자신이 바뀔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거다. 모델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늘 똑같은 마음가짐이다.

현민군이 담담히 소회를 밝혔지만 세계적인 시사주간지인 타임지가 아무나 선정하는 것은 아니다. 함께 이름을 올린 10대들만 살펴봐도 할리우드 스타 윌 스미스의 딸 윌로우 스미스, 마일리 사이러스의 동생 노아 사이러스, 영국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의 아들 브루클린 베컴 등이니 말이다. 현민군은 어떤 배경에서 선정된 것일까. 윤 대표에 따르면 해외에선 이미 ‘한현민’의 존재가 인지된 상황이었다. SNS에 올린 사진이 전 세계 팬들에게 빠르게 전파되기도 했고 해외 패션잡지사와 작업한 화보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것. 결정적으로 작년 초 AFP통신이 서울 패션위크 무대에 오른 현민군을 취재했는데, 이 기사가 영국 BBC를 통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외신들 사이에서 많이 이슈가 되던 중, 작년 10월 홍콩 타임지 측에서 연락이 왔고 이후 최종 30인에 선정될 수 있었다.

'키미제이'(KIMMY.J)의 2018 SS쇼에 함께 선 모델들과 기념 촬영 중인 한현민(가운데)./사진=SF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래 꿈이 모델이었나?
▶어렸을 때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는 야구를 했었는데 돈이 많이 들다 보니 그만두게 됐다. 중학교에 진학하고서부터 생긴 관심사는 ‘옷’이었다. 옷으로 무슨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모델을 떠올리게 됐다. 또 중학교 선배 중에 정말 멋있는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큰 모델 기획사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자극이 됐다. 그렇게 조금씩 꿈을 키워갔던 것 같다.

-데뷔의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가능했나
▶모델을 꿈꾸고 부터는 SNS에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멋있게 옷을 입고 한껏 포즈를 취한 그런 사진들이었다. 그걸 본 현재 소속사의 윤범 대표가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서로 처음 본 그날 이태원 길 한복판에서 한번 걸어보라고 시키더라. 그래서 했더니 바로 계약을 하자고 했다.

-당시는 한국인 모델들이 대부분이지 않았나
▶처음 데뷔했을 때까지만 해도 외국인 모델들도 드물었고, 특히 흑인 모델들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데뷔 후 지금까지 네 시즌째 쇼에 섰는데, 이번 시즌에는 흑인 모델들이 생각보다 많이 보였다. 조금씩 트렌드가 바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하는 흑인 모델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니 좋은 것 같다.

-모델로서 나만의 매력이 있다면
▶눈이 예쁘다는 것?(웃음) 그런 칭찬을 많이 들었다. 화보용 사진들에서뿐만 아니라 런웨이에서 워킹을 할 때도 눈빛이 중요하다. 눈빛 하나에도 표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패션쇼가 있나
▶데뷔 무대였던 한상혁 디자이너의 ‘에이치 에스 에이치’(HEICH ES HEICH) 쇼다. 첫 경험이기도 했고 쇼의 맨 처음을 장식하는 오프닝 모델이었기도 해서 엄청 긴장을 했다. 그때 한상혁 디자이너가 와서 ‘빛을 발휘해 보라’며 격려해 줬다. 그 한마디에 힘이 나 쇼를 재미있게 즐기며 끝마칠 수 있었다.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일 것이다.

-부모님도 종종 보러 오시나
▶회사일 때문에 바쁘셔서 자주는 못 오신다. 이번에 참여한 슈퍼콤마비 패션쇼에 처음으로 보러 오셨다. 재미있어 하시더라. 엄마는 항상 모델일을 하는 것에 대해 ‘네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열심히 하렴’이라는 말을 해주신다.

2016년 한상혁 디자이너의 ‘에이치 에스 에이치’ 쇼에서 한현민군. 데뷔 무대에서 오프닝을 장식했다./사진=SF엔터테인먼트 제공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혼혈 모델은 드물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윤범 대표는 현민군을 만나자 마자 단번에 발탁했다. “모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이다. 인종적인 이유보다 사람의 개인적 특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라며 그때를 회상하는 윤 대표. 그는 “그런 팔다리 길이와 머리 크기를 가진 모델이 거의 없다”며 현민군의 신체적 조건이 워낙 좋은 편이라고 했다. 길 한복판에서 걸어보라고 시킨 것은 습관을 보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에겐 모두 각자의 걸음걸이가 있다. 절뚝거리기도 하고 몸의 중심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것이 16살의 현민군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타고난 ‘모델 워킹’은 윤 대표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인연이고 운이었던 셈.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던데, 잘 되고 있나?
▶그렇다. 실력이 많이 는 것 같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외국에 나가서도 영어를 써 보고 싶다. 해외 패션쇼에 참가도 해보고.

-집에서 의사소통은 어떻게 하나
▶아버지가 한국말을 조금 하시는 편이다. 어머니도 영어를 하시니까 두 분이 서로 통역을 해주신다. 간단한 대화를 할때는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서 하는 편이다. 또 나는 우리집 5남매의 첫째인데 동생들은 아직 많이 어리다. 동생들도 한국 학교에 다니니까 다들 한국말을 한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 이태원에 살았다고
▶그렇다. 이태원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17년을 자랐다. 일반 학교에 다니면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다. 혼혈 친구들부터 난민, 외국인, 한국 친구들 등 여러 친구과 함께 생활했다.

-다문화를 일찍부터 경험한 편이겠다
▶그래도 놀리는 친구들도 많긴 했다. 유치원때는 친구 어머니가 나를 가리키며 ‘저런 애랑 놀지 마’라고 하는가 하면, 수학여행에 갔을 때 다른 학교와 동선이 겹치면 그 학교 학생들이 수군대며 쳐다보기도 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놀림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올해 18살이 됐다. 사춘기 때 중2병도 겪었나
▶당연하다. 학교도 가기 싫고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고 그랬던 때가 있다. 그런데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열심히 살 자신이 있다. 학교도 빠지지 않고 나가고 학교생활도 더 즐겁게 했을 것 같다.

-상상이 잘 안 간다. 지금은 긍정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이렇게 놀다가 나중에 뭐 먹고 살지’하고 고민했던 때가 있다. 정신 좀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던 건 아마 모델이라는 꿈이 생긴 이후였던 것 같다. 목표가 생기니까 매사에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 그래서 2학년 때까지만 해도 학교를 많이 빠졌는데 3학년 때는 1년 개근을 하기도 했다.

-철이 일찍 든 편인가보다
▶그렇진 않다. 아직 한참 멀었다.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honggga@mt.co.kr)
-이번에 스쿨룩스 교복 광고를 찍었다. 콘셉트가 남다르던데
▶이번 광고 모델인 아이돌 스타 전소미양과 주학년군은 모두 나와 같은 혼혈 친구들이다. 광고를 제안 받고 나서 독보적인 콘셉트가 정말 멋있다고 느꼈다. 또 살다 살다 내가 교복모델도 하게 되는구나 싶었다. 학생들이 입고 다니는 교복 모델은 어떻게 보면 학생들을 대표하는 이미지의 광고이지 않나. 그런 생각에 뿌듯했고 광고도 재미있게 촬영했다.

-다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긴 해도 아직까지 차별로 고통 받는 친구들이 많다
▶옛날에는 그런 차별의 시선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많이 괴로워하기도 했는데 모델일을 하면서 극복해 나간 것 같다. 하지만 나처럼 꼭 모델이 아니어도 된다. 그냥 그런 친구들이 자기가 원하는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 경험상 목표가 생기면 뭐라도 계속 찾아서 하게 되더라.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꿈도 이루고 부당한 시선들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말했듯이 나에겐 아직 어린 동생들이 있는데, 제일 좋은 건 그들이 차별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혹시 그런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내가 해낸 것처럼 동생들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앞으로는 편견이 없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 겉모습만 다를 뿐이지 모두 다 똑같은 사람이지 않나.

-새해 목표는 무엇인가
▶작년은 내 인생 최고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임지에도 선정되고 기타 수많은 활동들이 현실화됐다. 정말 최고의 해였는데, 올해는 그보다 더 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늘 한 해가 지날수록 성장을 하지 않나. 새해 목표는 2017년 한현민보다 더 나은 한현민이 되는 것이다. 하루하루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해내며 조금 더 성장할 수 있길 기대한다.


사진=SF엔터테인먼트 제공

모델 한현민

2001 서울 출생
2016 한상혁 디자이너 ‘에이치 에스 에이치(heich es heich)’ 오프닝 무대로 데뷔
2017 다문화 인식 개선 홍보대사
2017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TIME)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인’
서울 한광고등학교 재학 중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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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0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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