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 “한반도의 진짜 평화는 핵폐기”

군인들의 정당한 평가와 함께 장애인에 대한 시각도 바뀌어야

차홍규 전 칭화대 교수입력 : 2018.05.08 10:44
/사진=더리더
이종명 의원과 필자의 만남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바쁜 시간임에도 필자의 작품을 감상하려고 일부러 찾아와주어 이루어졌다. 필자는 군인 자녀를 위해 설립된 국방부 산하 특수고등학교인 중경고등학교를 졸업하였기에 이 의원과 만나기 전부터 그의 살신성인 정신을 알고 있었다. 필자의 동기들이 육사 33기인데 그는 39기로 6년 후배다. 자랑스러운 육사인상, 육군 참군인 대상 책임상을 수상한 이종명 의원. 우선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의 육군 대대장이 지팡이를 짚게 된 사연부터 물어보았다.


-사실 지팡이와 군인은 어울리지 않는다. ‘지팡이로 중심을 잡는 군인 출신 국회의원’, 한계를 극복하고 우뚝 선 이종명이라는 사람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 지뢰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2000년 6월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DMZ) 수색 중 일어난 사고에 대해 얘기해달라
▶2000년 6월27일 일어난 지뢰 사고는 최전방 DMZ 작전을 담당하는 수색 대대장 임무를 마치고 이·취임식을 1주일 앞두고 일어났다. 후임 대대장에게 DMZ 작전을 인수인계하기 위해 군사분계선까지 접근하여 그 지역의 지형과적에 관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그런데 돌아 나오는 길에 후임 대대장이 지뢰를 밟고 말았다. 후임 대대장의 두 다리가 잘렸고 옆에 있던 중대장도 팔과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었다. 소대장과 병사들에게는 상황 보고, 긴급 헬기 요청, 적 감시 등을 지시하고, 혼자 다시 들어가서 후임 대대장을
업으려고 부축하는데 발밑에서 또 다른 지뢰가 터져서 두 다리를 잃게 되었다. 그 순간 소대장과 병사들이 내게 달려오는 게 보여서 “들어오지 마라. 위험하다”고 제지한 뒤, 포복으로 15m 정도를 기어 나왔고, 그 길을 따라 안전 통로를 설치해 나머지도 무사히 구해 나올 수 있었다.

-갑자기 이런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보통 사람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등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이 의원은 직접 만나보니 그 누구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 보인다. 어떻게 힘든 시간을 이겨냈나
▶지뢰 사고 직후 긴 수술이 끝나고 겨우 눈을 떴을 때 온통 하얀 세상뿐이었다. 여기가 어디일까. 하늘나라인가? 꿈을 꾸는 건 아닐까.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기억을 더듬으며 현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신기하게 절망적인 그 순간에도 낙심 같은 비관적 생각보다는 ‘내가 해야 할 다른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뢰 사고 이후 2년 2개월 동안 반복된 수술과 재활치료는 사실 굉장히 험난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의족을 처음 사용했을 때 온몸으로 전해지던 극심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많은 동료들과 국민들의 격려가 상처로부터 오는 고통과 싸워 이기는 데 큰 힘이 돼주었다. 그분들 앞에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각오로 그 감사함에 보답하는 삶을 살고자 늘 노력하고 있다.

-그 당시 사고는 본인뿐만 아니라 군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온 것으로 안다.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
▶2002년 6월27일, 지뢰 사고가 있은 지 꼭 2년째 되는 날, 군은 ‘유공 신체장애 군인 현역 계속 복무 시행안’을 공포했다. 이전까지는 신체장애를 입은 군인들은 전역하도록 돼 있었다. 나와 같은 일을 겪을 후배들에게도 현역 복무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은 큰 보람이었다. 실제로 심신장애 전역 대상자의 약 60%는 군을 떠나지 않고 오늘도 군복을 입고 출근해 국가안보를 위해 근무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자랑스럽다.
이외에도 사고 이후 국방부에서는 영광스럽게도 많은 기념행사와 기념사업을 추진해주었다. 당시 지뢰 사고는 장병 정신교육 자료로 제작돼 전군에 배포됐고, 다큐멘터리 형식의 ‘지뢰밭에 꽃 핀 사랑’이 제작돼서 국군 홍보 및 장병 정신교육 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또한 파주 통일공원에는 ‘살신성인탑’으로 명명한 기념탑이 세워졌고, 제막식을 열던 날 국방부에서 제정한 기념 군가 ‘위험하니 내가 간다’를 수색대원들이 씩씩하게 불러줘 감격스러웠던 기억이 새롭다.
2008년 건국 및 건군 60주년 기념으로 국군 최초 ‘마인(Mine)’ 이라는 뮤지컬을 만들어 전국 6대 도시 순회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국민의 반응이 좋아 앙코르 공연까지 하며 대국민 신뢰 형성에도 기여했다.

-정치 입문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37년간의 군 생활을 마친 후 전역을 하면서 그동안 받은 군의 배려와 국민의 사랑을 갚아나가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긴 했지만, 그 길이 국회의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전역 이후에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해 너무 소홀하다는 생각으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기 위한 재능기부도 열심히 해 보고자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뜻하지 않게 비례대표 제안을 받았다. 처음에는 과연 내가 정치에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어느덧 지뢰 사고 후 깨어났을 당시 “나에게 새로운 역할이 있다”고 깨달았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국회의원이라는 새로운 생활은 16년 전 사고 현장에서 발휘한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인정해주시고 사고 이후 15년간 지팡이를 짚은 1호 장애 군인으로 헌신한 점을 높이 평가해 주신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팡이를 짚고 현역 군인으로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그 심정으로 나와 같은 장애인들의 어려움과 삶의 무게를 덜어드리고자 각오를 다졌다.
세 번째 지뢰 현장에 들어가는 마음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첫 번째 지뢰 폭발 때는 부하들의 안전을 위해 "위험하니 내가 간다”고 했고, 두 번째 지뢰 폭발 때도 “위험하니 오지 마라. 내가 나간다”고 했다. 언제든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내가 의미 있게 쓰일 수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달려나가겠다는 의지는 사관생도로서 학교 정문에 처음 들어섰던 그날 이후로 나의 일부였다. 그 의지야말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보이지 않는 힘이었고, 지금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역할로 이렇게 세 번째 지뢰 현장에 서 있을 수 있 도록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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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의 유일한 군 출신 국방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상황에 대해 국민적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틈을 벌리고 한미 간 공조를 깨뜨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한반도에 자유 평화가 정착된다면 다음 세대를 위해 이보다 기쁜 일은 없다. 하지만 북한의 핵무장, 적화통일 야욕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북한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동맹국인 미국을 멀리하는 외교안보관으로 국가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어느 나라나 국가이익의 극대화를 최고의 국가 목표로 설정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국가목표는 당연히 자유평화 통일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라는 단어에 절대로 환상을 가져서도 안 된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북한이 핵 폐기를 수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판일 뿐이다. 한반도의 ‘진짜 평화’는 완전한 북한 핵 폐기를 뜻한다. 북핵 폐기 없는 평화는 ‘가짜 평화’ ‘위장 평화’이다. 현 정부가 핵무장을 완성하고자 하는 김정은의 방패막이가 돼주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 된다. 국가안보를 허무는 역사적 오류를 범해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면수심의 북한 정권이 대한민국 적화를 위한 획책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기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적과 마주하고 있는 나라다. 이 의원의 군 경험에 비추어, 우리나라 군대는 얼마나 강하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지
▶우리 군은 싸워서 이기는 선진 강국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오며 발전을 거듭해왔다. 많은 국민들은 그 많은 국방예산을 쓰고도 ‘우리 군의 국방력이 이게 뭐냐’라며 비판적으로 생각한다. 일부 방산 비리를 보고 국방력 전부가 매도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미국의 군사력 평가기관이 평가한 2017년 우리나라의 군사력 순위는 11위다. 원조를 받던 가난한 나라에서 눈부신 경제성장과 함께 군사 강국으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 결과 북한과의 전투력을 비교해도 주요 전투 장비인 전차, 야포, 미사일, 전투기 등 수량 면에서는 열세이지만, 대다수 전력이 질적인 면에서 성능이 우세하여 양적 열세를 보완하고 있다. 또 한반도 평화 유지의 가장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한미동맹에 의한 미군의 증원 전력을 포함하면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북한이 전통적으로 비대칭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핵, 미사일, 장사정포, 특수전 부대, 화학무기 등을 비롯한 사이버, 무인기에 대한 대비 태세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런 현실 아래 최근 우리 군의 군사력 건설 방향 중 가장 우려스러운 것이 바로 문재인 정부의 지상전력 홀대다. 육군을 위축시키는 현실은 북한의 위협에 무장해제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방개혁 추진으로 상비병력 규모는 육군만 10만여 명이 감축되고, 병 복무기간도 18개월 단축을 계획하는 반면, 다수의 육군 전력은 삭제, 축소, 지연되어 부대 구조와 전력의 심각한 불균형이 초래될 위기에 처해 있다. 육군의 가치는 반드시 재평가돼야 한다. 해공군의 전력이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지상군 전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의 시작과 끝을 결정지은 것은 지상군이었다. 우리나라라고 상황이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종심이 짧고, 대부분 산악 지형이며, 연평균 120일의 강우가 몰아치는 기상여건을 고려하면, 한반도야말로 지상군에서 밀릴 경우 해공군은 실력 발휘도 하지 못한 채 무너질 수 있다.
우리 군은 그동안 어려운 여건에서도 눈부신 국방력 건설을 일구어왔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강군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전장을 고려한 육해공군의 균형 발전이 시급하다. 각 군은 모두 각자에게 부여된 고유의 작전 임무가 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력이 반드시 구축돼야 한다. 하루빨리 지상군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바로잡히길 기대한다.

-그동안 한국당 국방·안보분과위원장, 북핵 위기대응특별위원회 위원, 사드대책위원회 간사, 북핵 폐기추진특별위원회 위원 등 국방 현안을 다루는 당내 중요한 중책들을 맡으면서 ‘안보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앞으로 한국당이 ‘안보 정당’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나
▶얼마 전부터 안보단체들을 직접 찾아뵙고, 현재 국방 안보 상황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토론하며 한국당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함께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안보단체들의 한결같은 지적은 그동안 당이 안보단체들의 목소리를 실천으로 옮기는 데에 너무 소홀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안보 정당을 내세우며 정작 안보단체들에게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지금 대한민국은 심각한 안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집권 초기부터 북한을 편들고 미국은 멀리하는 불안한 안보관을 가진 문재인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수우파가 다시 결집해야 한다. 다음 세대가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대한민국 건설을 위해 우리는 치열하게 싸워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천안함 사건의 북한 소행을 부정하고, 역사적 고비마다 반대만 일삼는 좌파, 종북 세력이 우리 교육 현장에까지 파고들어 국가의 근간이 되는 교육마저 무너지고 있는 현실과 투쟁해야 한다.
안보를 굳건히 할 유일한 정당은 한국당이다. 오직 한국당만이 확고한 국가 정체성과 헌법 질서 수호를 제1의 가치로 삼고, 자유 통일을 이루기 위한 실질적인 ‘핵 폐기’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해 한국당은 든든한 안보, 튼튼한 국방을 원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 뜻을 같이하는 많은 분들과 함께 행동하는 모습으로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켜나갈 것이다.

-군인 출신이자 장애인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국회의원 임기의 절반을 돌았다. 그동안의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국회의원 임기 4년 중 전반기가 지나가고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아니다 보니 전문 분야 중심으로 활동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 때 군인이면서 장애인인 두 가지 분야의 일을 제대로 병행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국민이 나를 비례대표로 선택해준 데에는 내가 이루어 내야 할 가치가 있다고 믿고 맡은 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보다 부지런히 발로 뛰는 정치인이 되고자 현장을 찾아다니고, 토론회 간담회 등을 개최해 국민의 목소리를 담은 정책과 법안을 발굴해왔다. 평생 몸을 담았던 군에 대해서는 군인의 시각으로 군이 잘하고 있는 일은 국민에게 충분히 알리고, 바로잡을 일은 국민의 시각으로 단호하게 바로잡는 균형적인 자세를 잃지 않고자 노력해왔다. 그리고 장애인의 한 사람으로서 실생활에서 직접 느낀 불편함과 복지의 사각지대를 개선하는 일을 하며 결실을 이루어가고 있다. 감사하게도 이런 나의 진심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다. 2016년 국회 입법 및 정책 개발 최우수상, 새누리당 국정감사 우수위원, 대한민국 충효대상, 국회의원 아름다운 말 선플상 등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를 꼽아 본다면
▶2016년 국회 입법 및 정책 개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외부 전문가들의 심사를 통해 국회의원 300명 중 3명에게 수여한 것이다. 최우수상으로 선정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은 재난 발생 시 위기대처능력이 취약해 사고 위험률이 높은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을 안전취약계층으로 정의하고, 화재나 지진 등 재난 발생 상황에 대비해 정부와 지자체가 안전취약계층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법안은 전역하고 나서 세종시의 12층 아파트로 이사하고 난 뒤, 집에 혼자 있을 때 오작동으로 울렸던 화재경보 때문에 당황했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법안이라 더욱 의미가 컸다. 재난 상황에서 대처 능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에게 재난 위기 상황은 생명과 직결된 것이라는 점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하나를 마련하더라도 실효성 있는 법안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많은 분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만든 법안이라 진심이 통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자세로 최근 또 하나의 성과를 얻었다. 매서운 바람이 겨울을 알리던 지난겨울 어느 날, 중증장애인 생산 시설인 ‘동천’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중증장애인들이 숙련된 기술로 우수한 품질의 모자를 만들어 내는 모습은 참으로 뭉클했다. 내가 바라고 꿈꿨던 장애인의 자립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스스로 일어나 소득을 창출하고 그 소득을 기반으로 가정을 꾸리고, 자산을 쌓아가는 보통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러한 꿈은 국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직 그 관심과 지원은 부족하기만 하다. 이에 그날의 현장 목소리를 담아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만들었고, 2017년 12월1월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도 피부에 와 닿는 의정활동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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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돌이켜봤을 때 아쉬운 점으로 남는 것은 무엇인가
▶돌아보면 여전히 아쉬운 점도 많다. 열심히 달려왔지만 성과보다 남은 과제가 더 많다. 여전히 병사들은 군 생활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군인들에 대한 예우와 지원은 부족한 현실을 보면 아직 어깨가 많이 무겁다. 지금도 적과 총부리를 맞대고 대치하고 있는 DMZ에서, 험한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 한복판에서, 외로운 창공에서 불철주야로 국가안보, 국방을 위해 애쓰는 국군 장병들의 노고를 국민이 그다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저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민군 신뢰 관계를 어떻게 하면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또한 여전히 장애인을 자립보다는 지원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장애인들의 보통의 삶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현실 역시 아쉬움이 크다.
사람들의 마음과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하지만 작은 변화의 조짐을 만드는 데 작게나마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앞으로도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 혹은 특정 대상에 대한 인식 부족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고 국민이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이 의원의 얘기를 듣고 보니 지난해에 국회에서 개최한 전시회도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위한 노력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전시회의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소개해달라
▶지난해에 국회 의원회관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평소 많은 희생과 헌신을 하고 있는 군인들이 그만한 평가와 인정을 받고 있는지 돌아보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값진 희생으로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일상이 만들어진다. 그런데도 정작 우리는 평화로운 날들 뒤에 숱하게 새겨진 군인들의 헌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조국의 부름을 받은 청춘들의 대가 없는 최선, 그들의 땀과 눈물이 우리를 지켜주는 강한 힘이 되어 오늘날의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 그 찰나의 순간들을 담아 많은 국민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국군을 보다’라는 주제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신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부제를 정해놓고 4개월여를 정성스레 준비했다. 군인들이 흘리는 땀과 눈물의 흔적이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진전을 열었다. 군인들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우리 사회에 더 깊이 뿌리 내릴 수 있는 인식의 변화를 이끄는 작은 밀알이 되기를 기대한다.

-2017년 10월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아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한중미술협회와 한국차문화연합회가 ‘한중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를 계기로 처음 이 의원을 만나게 됐는데, 국방위원으로서 주로 국방과 안보를 다루고 있으면서, 이런 한중 문화교류에 대한 활동을 하는 것이 의외다. 평소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가. 그리고 문화의 대중화에 대한 의견은 무엇인가
▶먼저 문화는 역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한 축이자, 역사를 바꾸는 소프트파워이다. 지리적으로 먼 국가 간의 관계를 가깝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 역시 문화교류이다. 최근 사드 배치 이후 냉각되고 있는 한중관계도 문화를 공유하는 노력을 통해 조금씩 녹여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중문화교류에 참여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흔히 문화를 미술, 음악, 춤과 같은 좁은 의미로 보기도 하지만, 사실상 넓은 의미의 문화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는 보편적인 인식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인식은 시대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그에 따라 문화도 변화를 거듭한다. 과거에는 문화가 일부 계층의 전속물이었지만, 미디어의 발달로 이제는 누구나 문화를 즐기고, 창조하고, 바꿀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즉 현대사회에서 ‘문화’라는 무형의 가치는 유형의 세계를 선도하는 원천이 되어 더욱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나아가 문화가 대중화될수록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가 충족되는 동시에, 문화를 재창조하는 방식으로 사회 발전을 이끌어 간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런 끊임없는 선순환 구조를 통해 다양한 문화가 창조돼서 우리 사회를 더욱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들어가길 기대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우리 사회에 두 가지 문화가 전파되고 대중화되길 원한다. 그 하나는 바로 군인에 대한 존경이다. 우리나라 군인들은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을 수호하는 사람들이다. 국가와 군을 위해 희생한 군인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길 원한다. 군인들은 퇴역 후에도 공적인 자리에는 자랑스럽게 군복을 입고 참석하고, 이를 보는 사람들도 박수로 맞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또 한 가지,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 자체가 변화되길 원한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자 장애 등급으로 구분하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의 삶의 질, 인권, 사회 참여 등 인간다운 삶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하루빨리 장애인도 권리를 갖는 주체로 당당하게 함께 공동체에 어우러질 수 있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이 일어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에 앞으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가고자 한다.

어려운 가운데서 자신을 불태우고 동료를 구한 의인들의 이야기를 듣기에는 쉬운 듯하지만 막상 그 현장에 본인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선뜻 나설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이 6·25전쟁을 거치고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분단의 후진국에서 세계 11위권의 무역 대국을 이룩한 것은 말하기 좋아하는 이론가들의 말장난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합하여 온 힘을 쏟은 결과일 것이다. 필자도 베이징 칭화대 미대를 정년퇴직하고 귀국하여 한중 작가들과의 작품 교류와 친선을 목적으로 설립한 한중미술협회장을 맡고 보니 행실을 잘못하여 나간 사람들이 여러 말을 지어낸다. 정치인들도 툭하면 ‘국민을 위하여’ 또는 ‘국민이 원한다면’이라고 토를 달며 ‘말 없는 국민을 들먹인다. 온갖 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몸으로 실천한 이 의원과의 인터뷰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악담보다 선담이, 악플보다 선플이, 말보다 실천을 앞세우고 행복을 꿈꾸며, 아름답게 춤추는 세상이 그립다. 이종명 의원, 그 같은 사람이 많기를 고대하는 것은 필자뿐이 아닐 것이다. 어제까지 몹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참 맑은 우리 수도 대한민국 서울의 상쾌한 아침이다.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

-現 제20대 국회의원(자유한국당, 비례대표)
–육군사관학교 졸업
–육군 전진부대 수색대대장(중령)
–육군대학 교관/합동군사대학교 지상작전 교관
–합동군사대학교 명예교수
–이종명리더십사관학교 대표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차홍규 전 칭화대 교수 thelead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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