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영웅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

[안민호의 여론객설(輿論客說))]

숙명여자대학교 안민호 교수입력 : 2018.06.04 16:12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루비콘 강도 건넜다. 게임은 시작되었고 돌아올 길은 없다. 

북한 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앞에 두고 한국, 미국, 북한 세 나라 정상들이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과 일본 정상들도 행여 소외될까 덩달아 바쁘다. 수십 년에 한번 있기도 어려운 일들이 숨 돌릴 여유도 주지 않고 며칠 사이에 연이어 발생한다. 현기증이 날 정도다. 드라마 같은 현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격식 파괴적 언사와 행동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진행자였고, 보통사람들이 설마 하는 일을 눈 하나 깜작하지 않고 태연스레 하는 트럼프였기에, 그가 어떤 행동을 하던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도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한밤중 서신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99.9%라는 해석들이 연일 보도되는 와중에 취소 서신이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트럼프는 그렇다 치고,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도 뒤질세라 우리를 놀라게 한다. 바로 얼마 전 까지 전쟁이라도 할 것 같던 적대적 국가의 정상들이 동네 친구 만나듯이 이렇게 격의 없이 만날 수 있는가? 그것도 비밀리에, 전격적으로 말이다. 어떤 비슷한 사례라도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수도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한다.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 반전의 반전이 계속되고, 가짜 뉴스 같은 진짜 뉴스가 이어진다. 

트럼프, 김정은, 문재인 세 명이 공동 주연인 이 드라마에도 단역들이 있다. 단역들은 세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는지 그들의 입만 쳐다보고, 독심술사가 되어 그들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두드려 맞추는데 여념이 없다.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는 격으로 어쭙잖은 예측이 얼추 비슷하게 맞으면 의기양양하다가 다음날 다른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해한다. 부정적 소식이 전해지면 그거 보라는 식으로 비판하다가 곧 반전된 상황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우스꽝스런 상황이다.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
중요한 사건을 해석하는데 있어 보수는 영웅 프레임을 좋아하고 진보는 구조 프레임을 선호한다. 작가는 영웅에 주목하고 학자는 환경을 중시한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나는 세상을 바꾸는 개인들의 영웅적 역할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시스템이 먼저고 개인은 부수적 역할이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최근 김정은, 문재인, 트럼프 삼인이 만들어내고 있는 믿기 어려운 상황들을 보면서 혼란스럽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영웅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리한 환경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상을 만든 삼국지나 플루타아크의 영웅들 말이다.

‘신은 죽었다’는 아포리즘으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의 책 <도덕의 계보학>에서 두 종류의 도덕에 대해 말한다. 하나는 주인과 영웅의 도덕이고 다른 하나는 노예의 도덕이다. 주인은 고귀하고 강한 자다. 강하고 탁월한 주인을 악으로 규정하고 약하고 열등한 자신을 선으로 포장하는 것이 노예의 도덕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주인은 세상을 선과 악이 아니라 탁월한 것과 열등한 것으로 구분한다. 주인의 도덕을 가진 이들은 탁월하고 강한 적을 존중한다. 상대를 인정하는 포용력이 주인의 도덕이다. 주인은 좋은 것을 먼저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행동한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는 주인과 달리 노예는 이들의 행동을 비난하고 헐뜯는데 시간을 보낸다. 외부로 부터 주어진 가치에 스스로를 속박하지 않고 끝임 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주인과 달리 노예는 원한과 분노에 사로 잡혀 기존 사고 체계로 부터 벗어나는 선택을 하지 못한다.

니체가 말하는 주인의 도덕 기준에서 볼 때 가장 탁월하다고 평가 받는 인물 중의 하나가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다. 로마로 진군하기 위해 루비콘 강을 건너며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말한 그 카이사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카이사르에 대한 평가는 이중적이다. 영웅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의 적이었다. 로마의 원로원을 무력화하고 공화정을 파괴한 카이사르는 제국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다. 그의 강인한 육체와 넘치는 활력, 불굴의 용기와 정신, 탁월한 지적 능력과 순발력, 그리고 과감한 결단력과 담대함, 그리고 남다른 포용력은 니체가 말하는 바로 그 주인의 도덕이다. 우리 역사에서 찾는다면 박정희가 단연 그런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니체의 반민주적이고 엘리트주의적 도덕론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길게 말한 이유가 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드라마와 같은 상황전개와 그 드라마 주인공들의 행동을 보면서 니체가 말한 주인의 도덕을 떠올리게 된다. 니체의 관점에 따르면 주인은 이론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들이다. 과거나 남의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변혁하는 이들이다. 수동적 비판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이들이고, 관념적 증오가 아니라 실리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이다. 노예들이 보기에 이들은 무모하고 위험한 자들이지만 그들은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영웅이다. 처음에는 트럼프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고 이어서 김정은도 그렇게 보았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들로 판단해보면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이런 주인의 도덕, 영웅의 도덕을 따르는 인물이다.

애초에 나는 문재인 대통령을 트럼프나 김정은과는 공통점이 없는 전혀 다른 성향의 인물로 생각했다. 개인 문재인은 배려심이 많고 신사답지만 유약하고 우유부단해보였다. 친구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 때문에 정치를 시작했다는 문재인은 활기보다는 연민의 느낌이 강했다. 우리나라의 보수는 진보세력의 가치가 니체가 말하는 노예의 도덕에 가깝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니체가 말하는 도덕 기준에서만 보면 완전히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니다. 반대와 분노, 원한과 복수에 기초한, 선과 악의 이분법적 도덕이 노예의 도덕이다. 보수나 니체 관점에서는 진보세력의 촛불도, 적폐 청산 작업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그런 진보세력의 대표가 문재인이다. 그런데 최근 몇 주간 사이의 문재인은 전혀 달랐다. 내가 보기에 그는 회의(懷疑)하고 말만 앞서는 문약한 인물이 아니라 확신에 찬 행동하는 지도자였다. 드라마틱한 반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인의 도덕을 따른다는 것은 박정희와도 닮았다는 의미다. 믿기 어려운 아이러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두 인물의 정파적 지향은 정반대다. 그런데도 분명히 닮은 면이 있다. 찌질이 반대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거침없음도 그렇고 대중의 기대를 뛰어넘은 진취적 기상도 비슷하다. 두 어깨에 민족의 운명을 걸머진 것도 그렇고 노예가 아닌 주인처럼 행동하는 모습도 그렇다. 한반도 평화와 북핵 문제를 다루는 문재인의 대통령의 기세와 결기는 노예의 도덕에 없는 것이다. 

목숨을 건 도전에 나선 영웅들의 초연함과 담대함이 보인다. 그것 없이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주인처럼 행동할 수 없다. 카이사르도 박정희도 그랬다. 주어진 운명인지 스스로의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재인도 영웅의 길을 가고 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안민호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 학부 교수
언론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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