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호 육군 법무실장, “장병 인권 보장될 때 군기 확립”

[차홍규 교수가 만난사람]이동호 육군 법무실장(준장), "지휘권과 인권이 조화롭게 강화되는 방향으로 군사법제도 개혁을"

차홍규 전 칭화대 교수입력 : 2018.06.11 09:08

▲이동호 육군 법무실장(준장)/사진=더리더
마하트마 간디는 ‘한 사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치르는 어떠한 대가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였다. “장병 한 명 한 명의 인권이 철저히 보장되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군기강을 확립하고 군 사법 정의를 세워야 한다.”


육군 제38대 법무병과장으로 취임한 이동호 장군은 성균관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후 1995년 군법무관으로 임용되어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팀장, 국군기무사령부 법무실장, 육군본부 인권과장, 법제과장, 법무과장,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부장판사, 육군 고등검찰부장 등 군내 주요 군사법관 직위를 두루 거쳤다.


군대 내에서는 엄정하게 군검찰 업무 및 군사재판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라 법조인 특유의 고지식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만나보니 이러한 선입관을 뒤엎고 사람에 대한 섬세한 배려와 자상한 인품으로 만나는 이의 경계심을 단순간에 무장해제시키는 능력이 뛰어났다. 현재는 육군 법무병과의 최고 수장으로서 23년간 군법무관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기에 군대에서의 법조인 생활, 군에서 겪었던 특별한 사건 등 민간인으로서는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관심을 가질 만한 인터뷰가 진행됐다.


-민간인들은 군법무관이란 직역에 대하여 잘 모를 것이다. 나도 1992년 상영된 톰 크루즈와 데미 무어 주연의 ‘어 퓨 굿 맨(a few good men)’ 이라는 영화를 보고 군법무관이 무엇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기는 하지만 군법무관의 구체적인 수행업무는
“군법무관이란 한마디로 군대내 판사와 검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군법무관은 군판사, 군검사 업무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업무, 군사법령 해석, 국선변호, 작전법, 군인에 대한 징계, 법무참모 업무 등 다양한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군인에 대한 재판은 1심은 군내 보통군사법원에서, 2심은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서, 3심은 대법원에서 담당하고 있다.”


-외국에서도 군인에 대한 재판은 군사법원에서 담당하고 있는가
“세계 군사 강대국, 즉 미국•러시아•중국•인도•호주 등 군병력이 많은 국가들은 모두 군법무 조직을 별도로 운영하고 군사법원을 설치하여 군인에 대한 재판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도 군사강대국을 지향하며 일본헌법 개정안에 군사법원 설치를 명시했다. 프랑스나 독일 등 군병력이 20만 명이 안되는 국가에서는 민간법원에서 군인에 대한 재판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여성도 군법무관을 많이 지원한다고 하는데 군법무관은 몇명이나 되고 어떻게 선발하는가
“현재 육, 해, 공군 법무관을 모두 합치면 570여 명이다. 2012년부터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배출되면서 장기 군법무관 선발 경쟁률이 매년 높아지고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여성들의 지원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여성이 장기 법무관의 40%를 차지하고 있고 직업 만족도도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4년 발생했던 22사단 임도빈 병장의 총기난사사건 수사 등에 관여했다고 들었다. 당시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했는데 특별히 이 사건에서 기억에 남는 점은
“임 병장의 총기난사 사건은 특별히 가슴 아프게 기억되는 일이다. 2014년 6월 22사단 전방 GOP에서 임 병장이 수류탄 1발과 K2소총을 난사하여 5명이 죽고 7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었다. 나는 당시 제1야전군사령부 법무참모로 근무하면서 임 병장에 대한 검거부터 검찰 수사 및 사형선고 재판 진행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지켜보았다. 임 병장은 상병 때까지는 소위 배려병사(당시는 관심병사로 표현)로 분류되어 특별관리됐다. 병장이 된 이후 특별한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아 총기 휴대가 필요한 GOP에 투입하였는데 내부 갈등으로 사고가 터진 것이다. 병사 한 명 한 명에 대한 세심한 관리와 배려가 아쉬웠다.”


-임 병장 검거 당시 순찰조 간에 오인사격이 있었다는데
“총기를 난사한 임 병장은 바로 총기를 휴대한 채 도주했고, 많은 병력이 임병장을 수색, 검거하는 작전에 투입됐다. 임 병장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3번의 오인사격이 발생했다. 야간에 임 병장으로 오인한 사격이 있자 수색조 간에 총격이 발생한 것이다. 한 장교는 총알이 관자놀이를 스쳐갔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실제 전쟁에서는 아군 간 오인사격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 병장은 군사법원 및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장호원에 있는 국군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 사형수가 많이 있는가
“현재 사형수로 복역중인 군인은 4명이다. 민간 사형수는 57명이다. 1997년 이후 실제 사형은 집행되지 않고 있어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사형제는 폐지 추세이며 OECD국가 중 한국, 미국, 일본만 법률상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다. 사형 집행 방식은 군대에서는 총살형이고 민간에서는 교수형이다. 과거 군에서 총살형을 집행했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도 사형 집행 당시 기억이 떠올라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으로 사망한 장병들의 유가족들에 대한 국가적 보상 및 보호는
“갑자기 하나뿐인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절규가 지금까지 들리는 듯하다. 군에서는 당시 사망자와 부상자들에 대하여 순직 처리하고 보훈보상을 해주었으며, 매년 대전현충원에서 추모식도 지원해주고 있다. 그렇다고 죽은 자식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를 위해 군 복무하다 사망한 유가족 및 부상자에 대한 제도적이고 지속적인 국가적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최근 국방부는 순직기준 완화,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설치 지원, 군내 사망사고 유가족 및 부상자들을 위한 국선변호인 제도의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동호 육군 법무실장(준장)/사진=더리더
-부친이 젊은 시절 육군 상사까지 군생활을 하셨다는데 본인의 군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부친께서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도 다닐 형편이 못 됐다. 군에 병사로 입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얻으셨다고 한다. 이후 하사관으로 지원하여 상사까지 근무하시다 30대에 전역하셨다. 군대 전역 후 서울 흑석동에 있는 한강 옆 판자촌에 정착하셨는데 부친은 리어카를 끌고 고철이나 폐휴지를 모아 팔았고, 모친은 다방 세탁물 등을 맡아 추운 한겨울에 얼어붙은 한강물을 깨고 빨래를 하셨던 장면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특히 어머니는 힘든 생활 중에도 항상 근면했고,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매일 성경을 읽었으며, 가난하여도 주위의 더 어려운 이들과 나누셨으며 시련이 닥쳐도 항상 감사하고 긍정적이었다. 그러한 부모님의 삶은 살아있는 교육이 됐다. 군에서 힘없는 부사관이나 병사, 청소하는 아주머니,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을 보면 힘들게 살아오신 부모님이 생각나 더 잘해드리게 된다. 우리가 목숨 바쳐 지키려 하는 조국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이고 아들, 딸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육군 57개 검찰부를 총지휘하고 군내 인권업무도 담당하는 법무관들의 수장이므로 군내 인권사항에 대하여 묻겠다. 현재 우리 군의 인권 실태는? 군은 장병의 인권 보장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군은 장병의 인권 보장 강화를 위해 각종 제도 개선과 강력한 처벌을 지속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군대내 인권상황이 많이 좋아진 것은 최근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님들은 피부로 느낄 것이다. ‘군대가 유치원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모님들의 군에 간 자식들에 대한 관심은 매우 크다. 그래서 지휘관들은 더욱 조심스럽다. 사고가 날까봐 강한 훈련도 하기 어렵다는 일선 지휘관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인권 보장을 위해서는 군의 지속적인 인권 개선 노력이 필요함을 지휘관들은 인식하고 있다. 최근 박찬주 대장 사건으로 대표되는 간부들의 직권남용행위, 윤 일병 사망사건에서 보이는 구타 및 가혹행위, 여군을 자살에 이르게 하는 군내 성범죄 행위 등 군내 인권침해 행위는 군의 꾸준한 자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잔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사고가 터질 때마다 군 사법업무를 담당하는 한 사람으로서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


-군대내 구타행위는 많이 사라졌는가
“사회가 달라지면 그 뒤를 이어 군대도 달라진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과 선배들로부터 많이 맞았다. 그 당시 군대에서는 맞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일반적이었다. 이후 사회와 군에서 구타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1990년대부터 학교에서 체벌이 없어지기 시작했고 군대도 구타자를 전원 구속하는 등 엄벌에 처했다. 군에서 구타가 없어지면 군기강이 해이해질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물론 구타로 군기강을 잡으면 외면적 군기는 잠시 잡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상관이나 선임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심은 사라진다. 군대는 우리 젊은이들을 마지막으로 교육할 수 있는 곳이다. 좋은 교육은 노예적 교육이 아니어야 한다. 자신의 자존감과 신으로부터 받은 사명감을 깨닫게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세계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노예적 교육을 받고 배출될 리 만무하다. 병사들의 인격과 자존감이 최대한 존중받고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강한 군대가 될 것이다. 실제로 월남전에 참전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쟁터에서의 불굴의 용기는 사랑하는 전우들이 옆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볼 때 생긴다고 한다. 평소 자신에게 함부로 하는 갑질 상급자를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칠 부하는 없다.”


-최근 군대에서는 언어폭력과 성폭력 사건을 강하게 처벌하고 심한 경우에는 강제 전역도 시킨다고 하는데
“최근 군에서는 구타행위는 물론 부하에게 욕이나 모욕적 언사를 하는 경우도 처벌하고 있으며, 성희롱 및 강제추행 등 성폭력사건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하고 있다. 육군 간부 중 매년 4000명이 각종 비위로 징계처분을 받고 있다. 이 중 언어폭력과 성폭력 사건은 상당 부분 중징계 처분을 받고 있다. 중징계 처분을 받게 되면 강제 전역된다. 민간에서 미투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에도 군에서는 피해자 신고가 많지 않은 것은 군이 일찍부터 성폭력사건을 예방하고 엄벌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최근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적 댓글사건과 관련하여 전 국방부장관 등이 정치관여죄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등 군인의 정치적중립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군인의 정치적중립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헌법 제5조에 의하면 ‘국군의 정치적중립성은 준수된다’라고 돼있다. 우리 사회에서 군인의 정치관여 금지는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적 측면에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군인은 당연히 국토방위 사명에 전념하고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되며, 반대로 정치인이나 권력자도 군인을 정치에 이용해서는 안된다. 물론 군인은 법률상 불법적인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없고 당연히 거부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상명하복의 군대 조직문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군인의 정치관여를 막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면에서 법을 개정해야 한다. 먼저 군인의 정치관여를 지시한 권력자를 엄벌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한편 현재의 군인 정치관여죄의 법정형을 상향 조정하고 공소시효도 5년에서 10년 이상으로 연장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진급을 위해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군인을 비롯한 공무원들을 없애기 위해서는 정치인의 부당한 진급 부정청탁 및 압력 행위를 엄벌하고 군 수뇌부가 이러한 청탁을 받은 경우에는 오히려 청탁 대상자에게 진급상 불이익을 주어야 할 것이다.”


-군대내 ‘영창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언론 기사를 보았다. 군에서 1년 동안 영창 처분을 받는 병사들이 1만4000여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온 영창제도는 어떠한 문제점이 있고 향후 어떻게 개혁할 생각인가
“군내 영창처분은 군인사법에 근거하여 군에서 비위를 저지른 병사를 최장 15일 이내 기간에 헌병대에서 관리하는 구금시설에 가두는 행정처분이다. 영창처분기간만큼 복무기간이 연장되고 있어 병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징계처분이다. 이러한 영창처분은 형사처벌이 아닌 행정처분이므로 전과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군내 영창처분은 징계위원회 결정과 군법무관의 영창적법성심사라는 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행해지고 있다. 현재의 영창생활은 과거와 달리 얼차려 등 인권침해는 없어졌다. 대부분 하루 종일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면서 지내게 된다. 그러나 영창처분은 사실상 신체를 구금하는 것이므로 헌법상의 영장주의(국민에 대한 신체구금은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야 한다)에 위반하는 문제점과 영창에 구금돼 있다는 사실 자체가 트라우마를 주며 특별한 교육프로그램도 없어 정신적, 육체적 교화의 효과도 미미하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생각건대 영창제도는 사고자를 신속히 분리시켜 부대의 기강을 유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순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인권친화적, 교화적 제도로 대체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 헌법상 영장주의 이념에 위배되고 특별한 교육도 받지 않고 구금만 되는 영창 보다 정신적, 심리적 교육과 체력훈련을 받을 수 있는 ‘인권친화적인 군기교육제도’를 신설하여 영창제도를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방부도 국방개혁안에 포함시켜 군인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왼)이동호 육군 법무실장(준장), (오른)차홍규 전 칭화대 교수/사진=더리더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팀장을 한 경력도 있던데 군내 의문사 사건 처리에 대하여 한마디
“과거 민주화운동을 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분들의 사건 진상을 파헤치는 팀장을 맡은 적이 있다. 현재도 군에는 과거 군에서 사망한 아들의 사건 진상을 밝혀 달라는 유가족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전에도 민간에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되어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시간이 흘러 증인이나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소위 ‘진상규명 불능’인 사건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국방부는 최근 순직인정 범위를 대폭 넓혀 진상규명 불능인 사안에 대하여도 부대적 요인이 있음이 밝혀지면 순직을 인정하기로 했다. 나도 국방부 법무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유가족들과 지속적으로 면담하여 아픔을 같이하였고 지금도 군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드리고 있다. 그러나 이분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아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는지 여부에 대한 진상규명이다. 이번에 다시 민간의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를 신설하는 법이 통과됐다. 국방부와 진상규명위원회가 협업하여 단 1명이라도 좋으니 억울한 죽음이 밝혀지기를 희망해 본다.”


-최근 군내 자살자가 급감하고 있는데 병영문화 혁신 결과인가
“군 자살자 수는 2011년 97명에서 2013년 79명, 2015년 57명, 2017년 51명 등 감소세가 뚜렷하다.  임 병장 사건 및 윤 일병 사건 이후 군은 병영문화 혁신을 강도 높게 시행했다. 이로 인해 병사 자살자는 2013년 45명에서 지난해 17명으로 크게 줄었다. 그러나 간부 자살자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올해도 현재 간부 10명이 자살로 숨졌고, 원인은 업무 부담과 복무 부적응 등 군대와 관련된 원인이 비교적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제는 초급 간부들의 근무여건도 신경 써야 할 때가 됐다.”


-과거에는 ‘군법회의’라는 것이 있었다. 최근 군사법제도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군사법제도 개혁의 필요성은 없는지
“1987년 법률 개정 이전까지는 군사법원을 ‘군법회의’라고 불렀다. 법률전문가인 군판사와 일반장교들이 심판관이란 이름으로 공동으로 재판부를 구성한 적도 있었다. 이후 수차례의 군사법원법 개정을 통하여 지금은 군판사 3명으로 구성된 재판부가 재판을 담당하고 있다. 군 사법제도는 민간 사법제도와는 달리 지휘권 보장과 군기 확립이라는 이념을 달성하기 위해 사단장급 이상 지휘관의 구속영장 승인권, 지휘관의 군검사에 대한 지휘권, 지휘관이 형량을 감경할 수 있는 관할관 확인감경권과 심판관 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제도들이 군장병의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군사법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있어 개혁의 칼날 위에 서있다. 생각건대 진정한 지휘권 확립과 군기 확립은 장병 인권 보장을 전제로 할 때 더욱 강해질 수 있다. 군기 확립과 지휘권 보장, 장병의 인권이 모두 조화롭게 강화되는 방향으로 군 사법제도를 합리적으로 개혁해야 할 것이다.”


-봉사단체를 만들어 7년간 이끌어 나가고 있는데 어떠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가
“주로 해외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하여 학교 건립 및 학비 보조 등 조그마한 기부 및 재능봉사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공직자 및 의사, 변호사, 예술인 등 전문직종에 있는 300여 명이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봉사활동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은
“3년 전 태국에 있는 사마리탄 센터라는 곳을 방문했는데, 그곳은 자녀를 둔 성매매여성들의 정상적 사회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집과 음식을 제공하고, 새로운 일자리도 마련해 주는 곳이었다. 우리가 지원하는 크지 않은 기부금이 그곳에 계신 분들께 생명과도 같은 분유값이 되고 음식값이 되어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을 보고 마음 한곁이 따스해졌다.”


-필자와 같은 예술인에게 한마디
“배워서 남 주겠다는 생각으로! 법대 1학년 때 처음 보는 법률용어와 판결문은 한자로 쓰여 있었고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어려운 용어를 체득하면서 일반인들과 구별되는 법률가로서 묘한 특권의식이 생겼다. 법조인이나 의사들은 전문용어를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바꾸는 데 인색했다. 최근 판결문이 조금은 이해하기 쉽게 바뀌었다. 건국 이후 60여 년이 걸렸다. 마찬가지로 어렵기만 한 클래식 음악, 난해한 그림은 대중을 예술과 멀어지게 하고 대중의 예술활동이 생활화되는 것을 방해한다.


사법고시 합격자 수는 10년 전까지는 매년 300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가 매년 1600여 명이다. 과거에는 사법고시에 합격만 하면 특별한 전공 분야가 없어도 형사사건만 변호해도 평생 잘 먹고 살았다. 지금은 변호사 선임비용도 많이 낮아졌고 변호사들은 자신만의 특정 전공 분야를 만들어야 겨우 생존할 수 있어 변호사의 삶은 과거보다는 힘들어졌다.


반면에 대중은 더욱 전문화된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더욱 저렴한 비용으로 향유할 수 있게 됐다. 예술계도 마찬가지로 다양하고 세분화된 분야에서 전문적이고 특화된 예술가가 많이 나와야 하고 터무니없이 고가로 책정된 예술품 가격도 현실화돼야 한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배워서 남 주겠다는 생각’으로 학문을 했다고 한다. 법조인이나 예술인 모두 배워서 남 주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사회로부터 존경받게 될 것이다. 또한 법조인이나 예술인들은 자유로워야 한다. 내가 군 부장판사로 근무할 때 들은 일화이다. 군검찰에서 부정한 범죄혐의를 받고 있던 모 대령의 노트가 압수됐는데 그 두꺼운 노트 전체가 ‘나는 장군이 된다’는 문구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그 대령을 행복하다고 여길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진급의 노예로 보이기 때문이다. 존경과 행복은 돈, 권력, 명예 등 세속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울 때 진정으로 다가오는 것이다.돈, 권력, 명예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다. ‘가난이 앞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은 뒷문으로 도망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무능이 이유가 된 가난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들을 탐하여 양심을 버리는 법률가, 혼을 버리는 예술가는 모두 실패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인생에 좌우명이나 소신이 있다면
“‘구두 닦는 필부라도 국가를 경영한다는 자세로 일해야 한다’와 ‘직이 아닌 업에 충실한 사람이 되자’는 것 이다.
세상에는 ‘직’에 충실한 사람과 ‘업’에 충실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직’에 충실한 사람은 직책과 직위를 얻으면 열심히 일하다가 직을 잃으면 열정을 잃고 말과 태도가 변한다고 한다. 이와 비교하여 ‘업’에 충실한 사람은 이순신 장군 같은 사람이다.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서 쫓겨났어도 백의종군한 것처럼 진급이 되지 않거나 별 볼일 없는 직책을 맡게 됐어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맡은 바 업무를 사명감을 가지고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이다.


군인은 조국방위 임무라는 업에 충실해야 한다. 전쟁이 나면 군인은 직업을 그만둘 수 없다. 내 부모 형제 자식들을 위해서 사지로 뛰어가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군인들은 어떠한 직책에 있어도 내 아들 딸들에게 자랑스러운 조국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뛰어나다. 군인인 나도 이런 군인들이 자랑스럽다.”


이동호 장군. 그는 군 자녀를 위해 설립됐던 중경고등학교를 졸업한 필자의 고교 후배다. 그가 고시를 합격하고도 계속 군인의 길을 가게 된 이면에는 부친의 영향도 당연히 있었겠지만, 중경고의 설립 이념인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되자’는 교훈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육군 법무감, 즉 군 사법 최고 책임자인 장군이 되고도 그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인터뷰 후 함께한 식사자리에 운전병(육군 상병)의 여자 친구까지 초대하여 같이 한자리에서 식사를 할 줄 아는 파격적인 지휘관이다. 어머니를 잊지 못하여 근무하는 법무실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들을 초대하여 선물 대접과 사진을 같이 찍었다는 말을 들을 때 필자도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대한민국을 지키는 ‘군인들의 전투력 향상은 엄한 규율 속에서 부속처럼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기계적인 군인 상’이라 한다면 이는 크나큰 오산으로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생각일 것이다. 오락 게임하듯 단추 하나만 누르면 엄청난 무기들이 적을 향하는 시대다. 우리 군도 많이 변하였음을 이동호 장군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차 확인했다. 사회 일부에서 생각하듯 군이 아직도 권위의 울타리 속에서 자신들만의 곶감을 빼먹지는 않는다. 이 장군을 보며 희망의 우리 군의 앞날을 확신한다면 너무 앞선 것일까. 기분 좋은 밤이다. 


이동호 육군 법무실장
군법무관 임용
사법연수원 수료
육군본부 고등검찰관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팀장
국군기무사령부 법무실장
육군본부 인권과장, 법제과장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부장판사
제1야전군사령부 법무참모
육군 고등검찰부장
국방부 법무과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차홍규 전 칭화대 교수 theleader@mt.co.kr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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