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뜨거운 여름 마음의 보양식 민어탕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정면 기자입력 : 2018.07.04 15:16

여름이 한창입니다. 햇빛도 뜨겁고, 옛날에는 없던 자외선이다 미세먼지다, 뭐가 이리 복잡한지 짜증도 납니다. 날 더우니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습니다. 힘든 여름이 온 거지요. 그래서 여름을 잘 나기 위한 보양식으로 삼계탕이다 뭐다 많이들 드시러 다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로부터 ‘삼복 더위에는 민어탕이 일품, 도미탕이 이품, 보신탕이 삼품’이라는 말이 전해올 정도로, 우리 선조들이 많이 찾던 보양식은 민어탕입니다. 민어(民魚)는 산란기를 앞두고 육질이 탄력 있고 기름지게 되는 딱 이때, 두어 달 동안 영양과 맛이 제일 좋습니다. 

민어는 농어목 민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로 원래 큰 생선이고, 또 클수록 맛있는 생선입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민어를 잡는 방법을 아시나요? 통대나무를 바닷속에 집어넣고 조용히 바닷속 소리에 귀를 기울인답니다. 민어들이 바닷속을 몰려다니며 부레를 이용해서 내는, 마치 개구리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듣고 그물을 던지면 틀림없이 민어가 잡힌다고 합니다. 뜨거운 여름날, 노을 지는 바다 한가운데서 민어를 잡는 어부를 묘사한 아름다운 시가 있습니다.

민 어(民魚)- 한 영 수​
대통 끝에 귀를 대고 바다를 듣는다. 반드시 하나가 더 온다니까요. 늙은 어부는 민어가 민어를 낚는다고 한다. 여리고 무른 것이 있다는 거다.
목선 바닥엔 주둥이를 꾹 닫은 민어가 헐떡이는 날숨을 참고 있다 칠년 정도 된 눈동자가 크고 맑다 울음을 꺼내지 않으려는, 서툴면서도 고통스런 몸짓의 무게까지 8.9kg이다
그때다 바다가 운다 부우-ㄱ, 부우-ㄱ, 파도가 밀려온다 저층부를 헤엄치며 서로의 눈물을 훔쳐주던 저녁이, 꽃섬이니 새섬이니 이름을 짚어보던 아침이 파도를 넘어 온다
수평선에 칠월의 가장 붉은 해가 걸린다.

백성들이 좋아한다는 뜻으로 민어(民魚)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만 사실 민어는 백성들은 쉽사리 먹을 수 없는 귀한 생선이었답니다. 조선사서 ‘국조보감’에 “숙종 12년, 임금이 팔순을 맞은 우암 송시열에게 민어 20마리(民魚二十尾)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왕이 당대의 권력자 문신 송시열의 팔순 선물로 내릴 정도로 민어는 귀한 생선이었던 거지요.
민어는 활어로 옮기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바로 피를 빼내고 얼음에 넣어 선어(鮮魚)로 먹는 게 일반적입니다. 민어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버릴 것이 없이 회, 탕, 구이 등으로 두루 조리해 먹습니다. 민어회는 떡처럼 두툼하게 써는데, 살은 탄력이 적은 대신 묵직하게 씹힙니다. 씹을수록 입안에 달달하고 고소한 맛이 돌면서 민어회의 풍부한 질감이 살아납니다. 막장에 찍어야 제 맛이라는 사람도 많고, 조선시대에는 겨자장으로도 많이 먹었다고 합니다. 도미나 광어가 화려하고 달콤한 맛이라면 민어는 고급스럽고 담백하고 부드럽고 차진 맛입니다. 회와 전으로 먹고 남은 머리와 뼈로 탕을 끓입니다. 마늘과 소금만으로 맑은탕(지리)을 끓여도, 고춧가루 슬슬 풀고 애호박 넣어 얼큰하게 만들어도 그 맛이 기가 막힙니다. 민어의 큼지막한 머리와 뼈에서 녹아 나오는 국물 맛은 참으로 시원하고 상쾌합니다. 뽀얀 국물이 느끼하지 않을 정도로 진하며, 고급스럽고 맑은 맛이 가히 생선찌개의 왕이라 불릴 만합니다. 나는 이 바다에서 나는 생선의 탕 중에는 이보다 맛있는 탕을 알지 못합니다. 아들 부부를 위해 민어를 요리하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박완서 작가는 이렇게 추억합니다.

‘민어의 몸은 횟거리와 찌개거리, 구이용으로 나뉘어졌다. 대가리가 워낙 컸으므로 회와 구이용으로 좋은 살을 발라내고 남은 뼈와 살을 합치니까 큰 냄비로 하나 가득했다. 곰국을 끓일 때나 쓰는 큰 솥에다 애호박 썰어넣고 고추장 풀고 끓인 민어찌개 맛은 준칫국과는 또 다른 달고 깊은 맛이 있었다.
민어찌개 끓일 때는 보리고추장을 써야 하고, 회 먹을 때 쓰는 초고추장은 찹쌀고추장으로 만들어야 하고, 민어구이는 연탄불에 굽지 말고 숯불을 피워서 양념장을 발라가며 반짝반짝 윤기가 나게 구워야 한다는 자세한 설명을 하면서도, 시어머니는 그걸 나에게 가르칠 뜻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다 손수 하는 게 그렇게 신바람 나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술맛도 잘 모르면서 취하지도 않는 체질이었는데 민어회와 소주와 초고추장이 어우러진 맛은 맛의 조화의 극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는 즐거움이 행복감까지 가는 경지가 거기 있었다. 시어머니는 아들 부부가 자기 솜씨에 취해가는 모습을 만족한 듯이 바라보며 풍로에서 이글거리는 숯불을 공기 구멍으로 알맞게 조절해가며 석쇠에 양념한 민어 토막을 얹어놓고 굽기 시작했다. 살이 익으면 부서질까봐 계속해서 발라가며 구운 양념장은 곧 빤들빤들한 막이 되었고, 거기서 풍겨오는 냄새는 얼큰한 취기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식욕을 자극했다.’ (그 남자네 집, 박완서)

일제 강점기에는 임자도 앞 타리도에서 민어를 배에서 파는 파시가 성행했고, 해방 이후에는 인근 재원도로 옮겨가 1980년대까지 민어 파시가 큰 성황을 이뤘다고 합니다. 그때는 섬과 섬 사이를 배를 밟으며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어선이 엄청나게 많았다지요. 이런 배를 따라서 어부와 돈이 몰려들고, 또 이를 보고 술집과 색싯집 여자들로 불야성을 이루었다지요.

‘가장 목포다운 곳’ - 최 기 종
…예전에 구릿빛 팔뚝 굵은 아재들이 젓가락 장단 두드리던 곳, 꽃잎 같은 색시들이 술을 치고 노래 부르던 곳, 이제는 기울고 퇴색된 집집이 똥파리 날리고 검은머리 파뿌리 된 아줌니들이 지난 시절 되새김질하는 곳, 그런데 타지에서 작가들이 항동시장에 오면 파뿌리 아줌니들이 새색시 되어서 감태, 청태 내오고 갈치속젓, 꽃게장 내오고 꼬막무침 내오고 조기찜 내오고 목포바다도 내옵니다. 가장 목포다운 곳이 됩니다.

옛날 어부들과 색시들로 붐볐다던 민어 파시는 지금 간 곳이 없습니다. 사실 요즈음 서울에서 제대로 된 민어를 먹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습니다. 7~8kg이 넘는 민어를 산지에서 바로 운반해서 요리하기가 어려운 탓이 크겠지요. 제대로 된 민어를 먹고 싶다면 역시 목포로 가는 편이 확실합니다만, 나도 늘 마음에만 두고 가질 못하고 있답니다. 왜 제대로 된 것은 쉬이 없어지고 구하기 어려운 걸까요. 미슐랭가이드의 음식점에 인산인해로 줄을 서고, TV에 나오는 산해진미들을 보아도 끌리지 않던 마음이, 오늘은 왠지 애호박 넣어 고추장에 턱 끓여낸 민어탕 한 그릇을 그리워합니다. 마음이 통하는 벗과 함께 흔들리는 기차 타고 목포에 가서, 바다 바라보며 민어탕 한 그릇에 소주 한잔 먹을 수 있다면, 배고픈 허기뿐만 아니라 서울살이 외로운 마음까지 채워지지 않을까요. 올여름에는 꼭 한번 가야겠어요. 좋은 여름 보내시길.
jungmyeon@gmail.com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