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원 건축가, 책 그 이상, ‘마을과 삶’을 담은 도서관을 꿈꾸다

[지역을 바꾸는 건축] 대통령도 방문한 ‘생활형 SOC’ 성공사례...주민의 염원으로 탄생

머니투데이 더리더 임윤희 기자입력 : 2019.02.14 10:43
편집자주신창훈 운생동 건축사무소 대표가 ‘지역을 바꾸는 건축’이라는 주제로 사람들과 만난다. 신 대표는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시작으로 서울시 건축상 대상까지 수상한 그야말로 ‘핫’한 건축가다. 뛰어난 설계는 기본이고, 완성된 후 지역사회와 함께 어우러질 공간을 만드는 기획으로 더욱 유명하다. 그의 시선으로 변화하는 지역의 모습을 건축을 통해 재조명한다.
▲최재원 플로건축사사무소 소장, 구산동도서관마을 건축가./사진=더리더
신창훈 운생동 대표가 만난 두 번째 주인공은 최재원 ㈜플로건축사사무소 소장이다.

은평구에 위치한 구산동도서관마을(은평구 연서로13길 29-23, 연면적 2,550.25㎡)을 설계한 주인공이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기존에 책을 열람하는 수동적 시설에서 커뮤니티 활성화의 주도적 거점 공간으로 지역도서관의 바람직한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대도시에서 잃어버린 마을의 가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동시에 담아냈다.

비좁은 주택가 골목을 비집고 들어오면 노란 벽돌로 한 면을 장식한 도서관이 눈에 띈다. 이웃 주택과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동네에 스며들었다.

최 소장은 오래된 구옥들을 철거하고 새로운 도서관 건물을 짓는 방법 대신 그대로 구옥을 활용해 연결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그 덕에 골목길과 구옥들은 고스란히 도서관 한켠에 살아 있다. 50여 개의 방으로 구성된 도서관은 구옥들의 특징을 그대로 보존해 다양한 모습으로 마을 어린 이와 어른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주민들의 염원에 의해 탄생한 만큼 애정도 남다르 다. 지난해 9월 ‘대한민국 국민생활 SOC 현장방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하면서 SOC 사업의 성공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 특별한 도서관이 탄생하게 된 사연을 듣기 위해 구산동도서관마을을 찾았다. 그곳에서 최 소장을 만났다. 그가 소개하는 동선대로 도서관을 둘러본 후 신창훈 대표와의 대담이 진행됐다.

#주민 염원의 공간이 탄생하기까지
-신창훈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사업 초기 기획 단계부터 예산 확보, 시설 조성과 운영에 이르기까지 사업 전 단계에서 지역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재원 시작부터가 달랐다. 관에서 주도한 게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주도했다. 주민들은 이 근처에 학교가 많기 때문에 동네에 도서관이 필요하단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006년, 2008명의 주민이 서명운동을 통해 예산을 받아내 부지를 마련했다. 그러나 예산 부족으로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2012년 은평구청과 함께 서울시참여예산에 도전해 부족한 예산을 받아 본격적으로 사업이 진행됐다. 

초기에 연구 용역을 통해 주민들이 원하는 것들을 모아 ‘구산동 도서관마을 기본계획 연구’란 이름의 연구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 연구 보고서에 주민들이 원하는 것들이 담겨 있었다. 주민들이 함께 만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설계할 때도 주민들이 대표인 총괄계획가를 뽑아서 그들의 의견을 담아 전달했다.
설계 종료 후엔 운영에도 주민들이 참여했다. 주민들이 만든 은평구도서관마을협동조합에서 운영권을 따내서 운영하고 있다. 사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민들이 참여했다.
▲구산동도서관마을 마을 광장 야경./사진=황규백
▲구산동도서관마을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공간, 높은 천고로 웅장한 느낌을 준다. 원래 마을에 있던 건물의 외벽이 그대로 노출되어 한 층 멋스럽다./사진=황규백

-신창훈 보통은 관의 생활문화과 같은 곳에서 과업 내용을 만들고 의회에서 예산을 마련해 현상 설계를 내는 형식으로 진행되지 않나. 주민들과는 분리된 상태로 도서관이 지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이에 반해 이 프로젝트는 바텀업(아래로부터 올라오는 형식) 플랜이었던 것이 특이점이다.

최재원 그렇다. 보통 도서관 건축 공모가 나오면 따로 지침을 만들지 않고 다른 곳의 지침을 가지고 와서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주민자치단체가 서명을 받아서 첫 단추를 끼우고 운영단계 까지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주민 들이 이곳에 애정을 가지는 이유이다.

-신창훈 이 프로젝트의 설계 공모에도 주민들이 참여했나?

최재원 직접적으로는 아니다. 공모전에 주민의 의견을 담아 설계자에게 보고서를 제공했다. 공모안 선정 후 주민들에게 여러 차례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실제 공모는 기존 건물 5채를 각각 리모델링 및 인테리어하고 추가 한 동을 신축하는 것이 기본 안이었지만 건물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하나의 건물로 합치는 안을 제안했다.
처음엔 기존 건물에 인테리어를 바꿔 기능만 보완하는 방식으로 각각 도서관을 만드는 게 목표였지만 그걸 하나로 묶어내면서 개념이 전체적으로 바뀌었다.

#도서관, ‘마을’을 담다
-신창훈 조금 전에 전체를 돌아보면서 ‘마을의 기억을 담은 도서관’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도심의 평범한 주택이 주민들의 다양한 삶이 담긴, 일상적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런 것을 목표로 작업을 한 것인지 궁금하다.
최재원 마을을 담겠다는 생각보단 기능적으로 잘 활용해보자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 주택이 도서관으로 바뀌어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했다. 기능적인 문제를 풀다 보니 예전 건물들이 새롭게 보이더라. 주택이었다가 도서관이 되는 부분에서 과거 기억을 환기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구부터 방과 골목들을 남기면서 도서관이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예전에 지나다니던 골목 등 시간의 흔적이 현재 기능에 맞게 오버랩되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신창훈 구옥들을 살리는 것에 대해 논란은 없었나?
최재원 각각 건물이 하나로 묶이는 부분에 대해선 재미있어했다. 싫어한 다기보단 채광이나 환기에 대한 부분을 우려했다. 그런 부분은 건축적 요소로 풀고 설득해나갔다.

-신창훈 신축과 리노베이션이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건축이 생각보다 무척 어렵다. 사전조사와 구조 검토 그리고 연결과 조정이 신축보다 두 배는 힘들고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무엇이 어려웠고, 어떤 것을 배웠는지 궁금하다.
최재원 결론적으로는 신축보다 10% 정도의 경비 절감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초기에는 안전진단과 더불어 실측과 검증을 많이 했다. 건물과 건물 간 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높이를 측정하고 그 높이들을 적절히 연결하는 데 굉장한 노력을 기울였다. 또 주택과 도서관의 용도 차이로 인한 문제도 있었다. 서고가 일반 주택보다 하중을 두 배 이상 요구하기 때문이다. 신축과 구옥의 연결을 생각하면서 신축하는 부분에 더 많은 하중을 받는 도서관 서고를 버틸 수 있도록 했다.

또 제기됐던 환기와 채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측창을 설치하고, 서고의 책장 뒤쪽은 그물을 사용했다. 환기와 채광이 모두 가능한 소재였다. 구조적인 문제를 풀면서 건축적인 기능을 어떻게 살릴까 하는 것이 고민됐다. 여러 문제가 하나하나가 풀려갈 때마다 기존에 남아 있는 것들이 현재의 도서관에 더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신창훈 생활형 SOC프로젝트의 성공 사례로 지목되고 있다. 건축가로서 어떤 부분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나?
최재원 주민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반영했다는 것과 주민이 참여했다는 점이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공간’은 그 염원을 담아낸다. 잘 만들어진 ‘공간’에서는 그들이 바라는 것들이 펼쳐질 수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운 좋게도 많은 부분 맞아 들어간 거 같다. 그래서 많이 사랑해주시는 거 같다.
▲지난해 9월 생활형 SOC성공 사례로 지목받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구산동도서관마을을 방문했다. 당시 직접 대통령에게 설명하는 최재원 소장(왼쪽에서 세번째)
-신창훈 도서관이 다양한 컬러가 있고 그걸 운영하는 사람의 자발적인 마음이 느껴진다. 운영시스템도 다른 곳과 차이가 있는데...
최재원 일반적인 도서관이 아니라 주민들이 만들어낸 도서관 아닌가. 앞서 언급한 대로 운영 역시 주민이 주체가 됐다. 은평도서관 마을협동조합의 3분의 1이 구산동 도서관마을을 만들 때부터 참여했던 분들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히스토리를 다 알기 때문에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신창훈 기존 도서관의 패러다임과는 완벽히 다르다. 더 많은 콘텐츠가 살아 있다. 외관이 특별하다기보단 내부가 특별하다. 휴먼 스케일이 곳곳에 녹아 있다.
▶최재원 태생이 이미 주택이라 최적의 공간이 나온 거 같다. 구옥에 있던 50여 개의 방을 그대로 사용했다. 그러면서도 방들이 마을과 같이 엮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통로를 가진 도서관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수직적으로 많은 동선을 가진 입체적 골목 같은 공간을 생각했다. 와봤지만 올 때마다 또 다른 경험을 하는 공간이고 50개 방을 탐험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사랑받는 커뮤니티 공간 = 지역의 자랑이 되다
-신창훈 도서관마을이 생긴 이후 이 지역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최재원 그동안 바람은 있지만 원활하지 못했던 주민들의 커뮤니티가 공간을 통해 열렸다고 본다. 이곳에서 언제든 만나고, 쉬어갈 수 있게 됐다. 그런 공간의 유무는 큰 차이다. 일을 벌이고 싶어도 장소나 기반이 있어야 하지 않나. 도서관마을이 생김으로써 확실히 그 토대가 만들어졌다.

-신창훈 2016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과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 상들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최재원 상을 받을 때 건물 자체 퀄리티에 대한 언급보단 사람들이 너무 잘 이용하고, 좋아한다는 게 수상의 주된 이유였다. 사람들이 이 공간을 좋다고 말하고 다니고 그 힘으로 상을 받았다는 건 건축가로서 기분 좋은 이야기다. 내가 설계한 건물이 사람들이 자랑하고, 사랑하는 건축물이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신창훈 사실 건축가들이 추구하는 미학적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때때로 사용자를 분리하기도 하지 않나. 그런데 여긴 완벽하게 사용자 입장을 수용하는 건축가의 모습을 보여줬다. 세련된 건축의 언어보다 최 소장이 마을 사람들의 추억과 시간을 건축 속에 버무려낸 것이 돋보인다.
최재원 환경이 맞아 떨어졌다. 건축가, 담당 공무원, 마을 주민들이 합심해 얻은 결과다. 의견이 수렴되지 못하면 자칫 산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공무원은 중간에서 잘 조율해주었다. 주민 대표의 역할도 컸다. 운영을 맡은 초대 관장님도 공간을 마음대로 조정하기보다는 건축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사용하고자 노력했다. 이런 서로의 존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최재원 소장/사진=더리더

-신창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최재원 이 건물 앞에서 노부부가 다퉜다고 한다. 한 분은 예전부터 있었 다고 주장하고 또 한 분은 신축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둘 다 맞다. 예전에 있었지만 새로운 건물로 쓰이는 가치를 쌓고, 그 가치 위에 새로운 기억을 쌓아가고 있다.

-신창훈 ‘나에게 구산동도서관마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보니 다양하더라. 나만의 쉼터, 신나는 즐거움, 보물섬, 느티나무, 우리마을의 오케스트라 등 이용자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는 거 같다. 최 소장에게 구산동도서관마 을은?
최재원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가끔 힘들 때 여기에 오곤 한다. 사용자들이 잘 활용 하는 모습을 보면 새삼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설계할 때의 초심을 떠올리게 하고 나에게 힘을 주는 공간이다.

-신창훈 건축가로서 우리 건축가 내부에 있는 제도 개선을 위한 지침이나 새로운 제안 등을 부탁한다.
최재원 실제 법을 적용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해보면 법의 취지는 사라지고 제약만 남았다는 느낌이 든다. 왜 이런 법이 나왔는지 모두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문제를 푸는 방법도 다양해져야 한다. 좋은 건축을 하기 위해서 법이 도움을 줘야 하는데 너무 제한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담을 진행한 신창훈(오른쪽)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대표와 최재원 플로건축사사무소 소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더리더

-신창훈 아직 젊은 건축가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최재원 사실 그렇게 젊진 않은데(웃음)….
앞으로도 젊은 생각을 가지고 건축을 했으면 좋겠다. 이 일을 하다 보면 현실적인 것과 타협할 점이 너무나 많다. 물론 타협도 필요하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켜 나갔으면 좋겠다. 구산동도서관마을처럼 주민들이 정말 잘 이용하는 커뮤니티 시설을 또 만나 설계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작지만 힘 있는 건물을 설계해보고 있다.

PROFILE
최재원 건축가(서울대학교 건축학과 학사 및 석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는 건축의 공공적 역할에 대해 주목하여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실무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 풍기읍사무소, 청라국제도서관 등의 작품으로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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