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선 한국에너지재단 사무총장, “에너지 복지는 ‘인권’의 문제”

에너지 효율개선-신재생 사업으로 보편적 복지 실현할 것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입력 : 2019.03.08 16:34
‘에너지 빈곤층’이라는 말을 아는가? 에너지 빈곤층은 적정한 수준의 에너지 소비를 감당할 경제적 수준이 안 되는 가구를 말한다. 에너지 빈곤층 개념은 1970년대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겨울철 거실 온도는 21℃, 거실 이외의 온도는 18℃를 유지하기 위해 냉·난방비로 소득의 10% 이상을 지출하는 가구를 뜻한다.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에 따르면 국내 에너지 빈곤층 14만 가구 중 10만 가구가 월 소득 20만원 이하 극빈층이다. 이들에게 혹독한 겨울 추위와 살인적인 여름 더위는 생사를 다툴 만큼 심각한 문제다.

이처럼 에너지는 생존의 문제다. 우리나라 저소득층 에너지 복지 전담기관인 한국에너지재단 최영선 사무총장은 “에너지 복지는 기본적인 인권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재단은 저소득층 주택을 대상으로 하는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 등유 에너지 바우처 사업, 신재생 에너지 복지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최 사무총장은 “에너지 전환 시대에는 공급과 효율, 지속가능성이 높은 신재생 에너지를 통한 전환형 에너지 복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너지재단은 어떤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인지 소개 부탁한다
▶지난 2005년, 형편이 어려운 여중생이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촛불을 켜고 자다 화재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시민사회에서 기본적인 에너지는 보장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에너지 기본권에 대한 논의 끝에 2006년 에너지 기본법이 재정됐다.
에너지 기본법 제 4조 5항에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에너지 공급자는 빈곤층 등 모든 국민에게 에너지가 보편적으로 공급되도록 기여해야 한다”는 선언적 문장이 있다. 이 조항이 들어감에 따라 해당 기구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2006년 12월 16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에너지 복지를 전담할 기관인 한국에너지재단이 설립됐다. 2007년 에너지 복지 원년 선포식을 갖고, 정부로부터 예산을 100억원 지원받아 저소득층 에너지 효율 개선사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에너지 복지 현주소를 평가한다면

▶에너지 복지는 전 세계적으로 편차가 크다. 우선 법 체계가 각기 다르고 에너지 복지는 주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주거문화도 나라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또한 4계절 변화가 뚜렷한 온대지방에 속한 국가일수록 에너지가 집중적으로 필요한 시기가 따로 있다. 그래서 나라별로 복지 관련 프로그램의 종류는 많고, 분산적으로 이뤄져 보편적인 체계가 잡혀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오랜 세월 독재 정권하에서 선거 때 표심을 얻기 위해 나눠주기식 복지정책을 택해왔다. 에너지 복지를 수요자 관점이 아닌 공급자 관점에서 나눠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전기세, 도시가스비, 지역난방비 등을 깎아주는 방식으로 갔다. 전기는 거의 모든 국민이 사용하지만 도시가스나 지역난방은 관이 깔린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한테만 혜택이 갈 수밖에 없다. 에너지 문제로 가장 고통받는 국민들은 도시가스나 지역난방 두 가지 다 못 쓰는 경우가 더 많다. 대신 전기장판을 쓰거나 연탄을 떼거나, 기름난방을 한다. 기름난방 값은 도시가스의 두 배다. 연탄은 비용 문제에 가스중독 위험까지 있다. 또한 연탄난로나 보일러는 가스보일러 수명의 1/3수준이다. 정작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못 받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복지 체계의 난맥이라고 할 수 있다.

-재단에서 시행하고 있는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은 무엇인가
▶저소득층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은 현재 미국과 우리나라만 하고 있다. 미국이 우리보다 먼저 1970년대부터 국가적인 차원에서 시작했다. 에너지 수요 관리 측면에서 봤을 때 주택의 에너지 성능은 중요하다. 저소득층 주거지역일수록 주택이 튼튼하지 못해 열효율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은 주택의 에너지 기능성을 높여주고, 복사열이 새지 않도록 단열성을 높여주는 등 집수리를 지원하는 것이다. 에너지 효율과 성능을 높여주면 에너지를 적게 써도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미국에서는 WAP(Weatherization Assistance Program)이라고 하며 가구당 지원 한도가 약 5600달러(한화 600~700만원선) 수준이다. 한국에너지재단은 미국의 WAP를 벤치마킹해서 2007년부터 에너지 효율 개선사업을 시작해 1년에 평균 1만 가구 정도를 지원하고 있다.

서울 중구 남대문 쪽방촌 모습/사진=뉴스1
-지난 1월 제 5대 에너지재단 사무총장으로 선임되면서 ‘인권으로서 에너지 복지’를 강조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굉장히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상태를 이야기할 때 ‘등 따시고 배부르다’고 한다. 그리고 매우 곤궁하고 힘든 처지에 있을 때는 ‘춥고 배고프다’고 한다. ‘따뜻하다’와 ‘춥다’라는 개념이 ‘배부르다’와 ‘배고프다’보다 우선한다고 볼 수 있다. 따뜻함이 포만감보다 중요하고, 추위가 배고픔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말이다. 그런데 서양으로부터 복지 개념이 들어오면서 우리나라는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을 가장 우선하는 복지 형태로 진행됐다. 그 때문에 무상급식 정책이 먼저 시행되고 있다. 복지관에서도 어려운 분들에게 도시락을 먼저 배달하지 난방을 하는지, 동사 위험이 있는지는 챙기지 않는다. 겨울에는 추위가 배고픔에 못지않은 고통이기에 이 문제를 기본적인 인권 차원에서 바라봐야 에너지 복지가 제대로 자리 잡을 것이라 생각해 ‘인권으로서 에너지 복지’를 언급했다.

-에너지재단에서는 에너지 바우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어떤 사업인가
▶노년층의 경우 연료를 드려도 안 쓰는 경우가 많다. 자식이 고향집에 와서 보일러에 기름을 채워 넣고 가도 아까워서 안 켜고 주무시다가 동사하는 사례가 실제로 많다. 80~90대는 자신을 위해 불을 떼는 것을 아까워하는 것이다.
에너지재단에서 진행하는 에너지 바우처 사업은 등유 이용권을 제공하는 것이다. 재단의 등유 에너지 바우처는 에너지 구매에만 쓸 수 있고 쓰지 않으면 없어지는 이용권이다. 2015년부터 진행하고 있으며 넉넉하지는 않지만 겨울을 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양을 바우처로 드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세계에너지협의회가 ‘세계 에너지 삼중고 지수 2018’을 발표했다. 에너지 삼중고 지수는 무엇인가
▶세계에너지협의회(WEC, World Energy Congress)는 1923년 출범한 세계 최대 비영리 민간에너지 국제기구다. 우리나라는 1969년에 가입했다. 에너지 삼중고 지수는 ‘에너지는 안정적으로 조달돼야 하고,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접근 가능해야 하며, 인간의 생존이 지속가능하도록 친환경적이어야 한다’는 신념하에 국가별 에너지 수준을 평가하는 것이다. 평가 부문은 에너지 안보, 에너지 형평성, 에너지 환경 지속가능성이다. 우리나라는 125개국 중 35위를 기록했다. ‘에너지 안보’의 기본적 개념은 에너지 자급률이다. 우리나라처럼 필요한 에너지의 97~98%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에서 에너지 삼중고 지수가 급등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서유럽 국가들처럼 신재생 에너지를 통해 에너지 자급률이 50%씩 되면 좋겠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화석연료 의존율이 너무 높다. 다만 우리나라가 삼중고 지수에서 순위가 매년 올라가고 있는 이유는 복지에 해당하는 형평성 부문이 향상됐기 때문이다. 형평성은 ‘모든 국민에게 에너지가 공급이 되느냐 안 되느냐’다. 우리나라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낙도에까지 전기가 공급될 정도로 선진국 수준이다. 국가정책적으로 전기는 모든 국민이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복지를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에너지 복지는 크게 공급형, 효율형, 전환형으로 나눌 수 있다. 공급형 에너지 복지는 전기가 끊어진 집은 전기를 이어주고, 기름이 끊어지면 기름을 채워주거나 기름통을 채울 돈을 주거나 하는 등 에너지나 에너지 비용을 공급해주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복지이며 계속 공급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지속성이 담보돼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수반된다.
그런 단점을 극복한 게 효율형 복지다. 고효율 에너지 보급, LED 보급, 효율주택 설치 등을 통해 효과는 똑같이 누리되 비용은 적게 들이는 방식이다. 이런 효율화에도 불구하고 에너지는 또 필요하다. 전환형 에너지 복지를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다. 신재생 에너지 생산을 위한 설치 비용은 높지만 지속에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유지·보수만 하면 풍력이든 태양광이든 지속가능성이 높으므로 전환형 에너지 복지가 에너지 전환시대에 필요하다.

-인류의 주된 에너지원인 화석연료 고갈과 환경 파괴로 인해 신재생에너지가 주목받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복지로 어떤 사업을 진행하고 있나

▶에너지 복지의 일환으로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 사업을 2017년부터 시작했다. 태양광 에너지 복지의 어려움은 한 가구에만 설치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과도한 비용이다. 저소득층 가정에 태양광 패널을 달아준다고 했을 때 패널의 기본 수명이 25~30년인 데 반해 주택은 30년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개별 가구에는 적합하지 않다. 개별 가구보다는 공동체, 마을 단위로 설치하거나 그들이 생활하고 이용하는 복지기관이나 시설에 만들어 혜택이 여러 대상자에게 돌아가도록 하고 있다. 또 하나는 신재생에너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에너지 전환 측면에서 하고 있는 옥상녹화 사업이다. 사회복지시설에 옥상녹화를 하면 여름에는 덥지 않고, 겨울에는 콘크리트가 얼거나 터지지 않는다.
현재 대학교를 대상으로 기업과 손잡고 태양광 발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업이 투자해 대학교 옥상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고, 거기서 나오는 전기 판매 수익금을 해당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의 취업, 창업 자금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기부한 기업 입장에서는 한 번의 투자로 20~30년간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성 면에서 좋다. 남부발전이 이 아이디어를 채택해 올해 부산대학교 밀양캠퍼스에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한다. 재단은 이처럼 아이디어 개발과 개발된 아이디어를 사회공헌 의지가 있는 기업에 매칭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신기후 변화에 따라 난방 지원에 집중됐던 복지에서 폭염 대책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2017년 ‘시원한 여름 나기’라는 이름으로 여름 나기 지원사업을 시작해 선풍기를 지원했다. 그런데 실제 가보니 선풍기가 없는 곳은 많지 않고 선풍기 없는 집은 선풍기를 놓을 공간조차 없거나, 전기 요금도 못 내는 형편의 쪽방촌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작년에는 응급대책으로 재단과 기업, 정부의 효율 개선사업 예산을 10억원 정도 마련해서 냉풍기 3만여 대를 공급했다. 이번에는 물을 이용하기 때문에 습도가 높아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습도가 높아지면 불쾌지수가 더 높아지기 때문에 이것도 답이 아니었다. 습도와 온도를 모두 낮추려면 에어컨 지원밖에 없다.
에어컨 보급을 빼고는 냉방 대책일 수 없다는 것이 잠정 결론이다. 하지만 에어컨의 문제는 설치비용, 설치공간, 전기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가전 3사가 가정용 초소형 절전 에어컨을 개발 중이다. 실외기 없이 30cm 정도 크기로 창에 끼워 쓸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물론 성능이 좀 떨어져도 초소형과 절전이 더 중요하다. 저소득층을 위한 에너지 복지 기술은 적정한 수준의 효과와 가격이 중요하다. 지난 연말 정부예산으로 60억원을 배정받아 올해 2만 가구에 에어컨을 공급할 계획이다. 전기요금은 한 달에 만원 수준으로 맞출 것이며, 비용은 에너지 바우처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생각이다.

-근본적인 에너지 복지 증진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에너지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낸 수익에서 일정 부분을 기본적 에너지도 못 쓰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나눠주는 것이 가장 근본적으로 문제를 푸는 방법일 것 같다. 정부와 에너지 기업들이 사회적 대타협 형식을 통해 에너지를 팔아 번 수익의 일정 퍼센트를 에너지 기금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전이 전기를 팔아서 번 돈의 0.5%를 에너지 기금으로 내는 식으로 에너지 복지를 위한 재정 풀(pool)을 만드는 방식이다. 모아진 에너지 기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에너지 복지 빈곤을 실제 경험하고 있는 당사자들도 협의체의 일원으로 구성해서 결정해야 한다.
에너지재단은 정부 예산을 받아 사업을 하기도 하지만 정부나 기업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사각지대 에너지 복지 사업도 하고 있다. 복지사업을 제도화하고 법제화해서 복지를 좀 더 안정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저소득층을 위한 에너지 복지 전담기관이지만 법적인 고시를 통해 조금 더 고차원의 복지사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예산도 들쭉날쭉하지 않고 일정한 기준에 따라 안정적으로 사업을 집행할 수 있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영선 한국에너지재단 사무총장


1958년 출생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졸업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석사
한겨레신문 기자
한겨레신문 문화교육사업국장, 경영기획실장
실업극복 국민운동위원회(현 함께일하는재단) 사무차장
한국에너지재단 본부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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