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와 영국 정보기관의 미래, 그리고 ‘역사의 전복’

이일환의 情(정보의 눈으로)•世(세상)•思(바라보기)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이일환 교수 입력 : 2019.08.16 10:37

전 세계의 우려를 유발해온 영국의 브렉시트는 메이 총리가 사퇴하고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브렉시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보리스 존슨이 총리가 됨으로써 유럽 지형은 안개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2016년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라는 지정학적 변화를 촉발한 이후 영국 정부가 EU와 탈퇴 조건에 합의했지만, 의회가 연속 부결시키면서 어떤 합의나 안전장치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라는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 브렉시트 시한을 10월 31일로 늦추기는 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브렉시트에 대한 논의와 논란은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뤄져왔으나, 안보적 측면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영국은 미국 NSA 못지않은 감청능력(SIGINT)을 가진 GCHQ(정부통신본부)를 필두로 대외정보기관인 MI6, 국내 보안정보기관인 MI5 등 3대 정보기관이 주축이 되어 미국 정보공동체와 협력하면서 영국의 국제적 위상은 물론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그림자 역할’을 해왔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독일군 정보기관인 압베르(Abwehr)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영국정보기관은 ‘제임스 본드’라는 가공의 걸출한 슈퍼스타 스파이를 창출하여 그 수혜를 한껏 누려왔다. 영국이란 나라의 힘의 원천 중의 하나이기도 하여 유럽을 누비는 롤스로이스 차에 비유되기도 했다. GCHQ의 독일군 애니그마 해독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2년이나 앞당긴 쾌거로 칭송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파워는 브렉시트로 인해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브렉시트는 영국 정보기관에 재앙과 같은 반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영국 정보기관의 정보분석 내용을 국가 차원에서 평가하는 <합동정보위원회(the Joint Intelligence Committee)>는 영국의 미래전략을 수립하는 데 긴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유럽 내에서 영국을 보다 가치 있는 나라로 인식되게 만들었다. 이런 영국이 EU에서 벗어난다면 미국은 영국에 대한 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할지 모른다. 미국과 맺어온 특별한 정보협력 관계도 위태롭게 할 것이다. 벌써부터 미국 정보관리들은 영국과의 정보협력관계를 앞으로도 돈독히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브뤼셀(EU)과의 관계를 더 튼튼히 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간 영국은 미국과의 정보공유를 통해 안보 위협 세력에 공동 대처함으로써 국제질서를 안정시켜왔다. 때로는 GCHQ가 수집한 통신정보를 미국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레버리지로 활용하기도 했다. 영미 간의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는 문화적 공통성, 경제적 상호의존성, 긴밀한 안보협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긴밀한 안보협력이 가능한 것은 바로 정보협력을 통한 안보위협에 대한 인식의 공유에서 출발했다. 3대 정보기관과 국방정보본부(DIS) 인원을 모두 합해도 1만 3400여 명밖에 안 되지만, 17개 정보기관에 10여 만 명을 거느린 미국 정보공동체의 정보활동 결과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체제를 유지하여 엄청난 안보적 이익을 챙겨왔다.(박종재, ‘대미 협력을 통한 영국의 정보역량 강화 동향 고찰’, 2019.4.26., 국가정보학회 세미나)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영국이 EU를 완전히 탈퇴한다면 개별국가와 안보협력을 강화하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영국의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영국은 유로폴(Europol)이나 셍겐 정보시스템(the Schengen Information System)과 같은 정보수사기구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왔다. 셍겐정보시스템은 마약•인신매매•중대 범죄 및 테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영국 경찰과 MI5는 2018년 러시아의 전 정보요원 세르게이 스크리팔 독살시도 사건(Salisbury)을 파헤치는데 이 기구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EU를 떠난다면 이러한 정보를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한다. 정보기관을 싫어하는 외교 당국자들은 대안적인 체제를 구축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으나, 회의적이다.


여하튼 영국 정보기관은 브렉시트가 현실화되기 전에 새로운 질서에 맞춰 업무방향과 활동 방법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영역이 사이버안보 분야이다. GCHQ가 디지털 정보수집과 분석 분야에서 최고봉을 자랑하는 장점을 활용해야 한다.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NSA의 무차별적인 감청실태)로 GCHQ의 진가는 드러난 바 있다. 또 2016년 미국 대선 기간 동안 러시아 해킹 그룹 Fancy Bear가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 침투하려고 시도한다는 내용을 미국 정보기관에 제공하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 또는 비정부적 기구들에 대한 사이버공격 대응능력을 확충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길러야 할 영역이 ‘역정보 퍼뜨리기’에 대응한 비밀활동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다. 서구사회는 날로 늘어나는, 해로운 가짜뉴스 확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짜뉴스 진원지는 중국• 이란• 북한 그리고 러시아다. 아직까지 유럽 국가들은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역선전에 맞대응하기 위한 조직을 성공적으로 운영해본 경험이 있다. 이름하여 <정보연구소(the Information Research Department)>였는데, KGB의 허위 선전공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여 명성을 날렸다. 소셜미디어에 대한 대응도 정보기관의 몫이다.


브렉시트 논의 과정에서 인스타그램이나 스냅챗 등 소셜미디어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으며, 찬성과 반대파는 상대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영국 정보기관은 EU에 대해 정보활동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영국도 동맹국을 상대로 스파이 활동을 해왔다. 영국의 암호해독전문가들은 1•2차 세계대전 전후로 미국의 암호전문이나 통신을 해독하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EU국가들에 대한 스파이 활동이 어렵지만,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그러한 제약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물론 유럽국가 간의 스파이전이 불붙을 개연성도 없지는 않다. 영국 정보기관이 디지털 정보역량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 그나마도 브렉시트 탈퇴로 인한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하나의 길이 될 것이다.


한편 김미경 조선대 교수(2019.6.30., <평화가제트>)는 브렉시트에 대해 정치학적 관점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준다. 유럽 통합의 최대 성취이며, 유럽적 가치의 실현으로 인식되는 ‘이동의 자유’와 영국이 요구하는 국가의 국경통제권의 회복 사이의 충돌이 브렉시트를 낳았다는 주장이다. 이동의 자유와 국경통제권을 둘러싼 영국과 EU의 갈등은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의 갈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은 이동의 자유를 개별 국가의 주권의 문제로 인식했던 반면, EU는 이동의 자유를 단일시장으로 인식했으며, 이 같은 인식의 차이를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차이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 경제와 유럽 사회의 형성이라는 사회적 영역의 확장은 불가피하게 행동의 표준화와 순응을 요구했으며,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거부하는 것은 EU가 강요하는 표준화와 순응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통행과 통관을 현재와 같이 유지하는 안전장치(backstop) 보완책을 포함하여 탈퇴 후에도 영국 전체는 ‘당분간’ EU관세동맹에 남는다는 브렉시트 최종합의안을 올해 3월 12일 영국 하원이 부결시킨, 극심한 혼돈 상황을 설명한다는 견해이다.


필자가 브렉시트를 경제적 관점 위주로 논의하는 담론 지형에서 벗어나, 정보적•정치 사회적 관점으로까지 넓혀서 기술한 이유는 현안을 보다 통합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예측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브렉시트는 유럽정치가 중요한 전환의 국면에 진입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자, ‘역사의 전복(the upend of history)’이다. 해외 정보에 주력하겠다고 공언한 우리의 정보기관은 브렉시트에 대해 어떤 답안을 내놓았는지 궁금하다. 정보기관은 상상력이 필수적 요체 중의 하나다. 정보기관의 그간의 행태를 보면, ‘상상력 부족증’에 걸렸다고 할 정도다. 눈앞의 파도만 보고 그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정확히 헤아리지 못했다.


브렉시트는 정보기관에게 상상력을 기르고, 고정관념과 기존 인식을 벗어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이일환 청장정보연구원 원장
한양대 자문교수
정치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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