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원 인디053 대표 “청년정책 풀려면 ‘질문’부터 바꿔라”

[여기에 압축풀기 즐거운 상상 불어넣으면 지역문제도 재기 있게 해결해나갈 것

머니투데이 더리더 이현지 객원기자 입력 : 2019.09.30 11:13
▲이창원 인디053 대표/사진=미로우미디어 제공
압축성장으로 상징되는 한국사회는 서울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으며, 서울 지가총액이 전국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불균형하다. 수도권에 사는 청년들은 기형적으로 압축 성장한 서울에서 치열한 입시 전쟁, 바늘구멍 같은 대기업 취업 경쟁, 내 집 마련의 지옥을 겪으며 희망, 자신감, 개성 등을 압축시킨 채 살아가고 있다. 청년들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서울에 위치한 대기업에 입사해 과잉노동을 하며 서울에서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고 달린다. 1%도 승자가 되지 못하는 경쟁 시스템에서 청년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펼치지 못하고 좌절한다. 반면 지역은 청년층을 위주로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소멸할 위기를 맞고 있다. 지역경제가 무너지며 지역 고유의 경쟁력도 잃어가고 있다. <여기에 압축풀기>는 컴퓨터로 압축파일을 풀 때 실제 나오는 문구다. 이 코너는 지역에서 자신만의 스토리로 삶을 꾸려가는 청년들을 조명한다. 이를 통해 기형적으로 발전한 한국사회의 압축을 풀고, 잠금돼버린 청년의 미래를 압축 푸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는 수도권 중심의 관념에서 벗어나, 각 지역이 모두 ‘여기’라는 사실을 의도했다. <여기에 압축풀기>는 앞으로 인물 소개와 더불어 지역에서 살아가는 노하우, 지역 청년들에게 필요한 사회적 지원, 지역청년이 당면한 문제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다룰 것이다.


대구를 중심으로 문화사업을 진행하는 인디053은 독립문화를 뜻하는 인디와 대구의 지역번호 053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독립문화예술인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대구에 뿌리내리게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1년에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을 기획했고, 농촌 할머니들이 쓴 시를 엮은 <시가 뭐고>를 탄생시킨 ‘칠곡군 인문학 마을 만들기’ 사업을 운영했다. 인디음악가 공연사업을 주로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구 경북 사회적경제박람회를 대행했다.
2007년부터 인디053을 이끌고 있는 이창원 대표를 대구경북 사회적경제박람회장에서 만났다. 지역에서 문화예술사업을 하며 쌓아온 성과와 그간 겪은 어려움, 청년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지역을 만들 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이창원 대표가 지역에서 진행하는 문화예술 사업/사진=미로우미디어 제공

지역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서울 위주로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지역 문화예술기획사를 운영하는 건 쉽다. 학창 시절부터 인디음악과 독립영화 등을 사랑하는 ‘훌륭한 문화소비자’였던 이창원 대표는 쿠바 음악가를 다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개봉한 해에 지역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영화를 보려고 4시간 걸려 서울에 다녀온 그는 “‘내가 영화 한 편 보려고 이 고생을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처음 동네가 보였다”고 말했다. 이 일을 계기로 지역에서는 문화 향유가 왜 안 되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에 대해 학습하는 과정을 가졌다. 이후 인디053을 창업해 문화예술 향유가 가능한 동네를 만들겠다는 꿈을 실현하고 있다.
인디053이 대구의 문화예술 저변을 확대하고 있지만 지역의 문화적 토양은 ‘백지’에 가깝다. 그래서 이창원 대표는 청년 문화기획자들에게 지역에서 도전해보라고 권한다. 능력과 의지만 있다면 지역이라는 백지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서울은 기회가 많지만 사람도 많아 뺏고 빼앗기는 경쟁이 치열하다”며 “지역은 사람이 적기 때문에 한번 카르텔에 진입하기만 하면 기회가 계속 주어진다”고 조언했다. 이 대표가 회사 이름에 대구 지역번호 053을 넣어 대구라는 지역성을 담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지역이라는 핸디캡을 우리의 아이덴디티로 내세웠다”며 약점을 강점으로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 청년정책을 만드는 새로운 질문
대구시는 다양한 청년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청년의 취업과 창업을 돕고, 교육 및 주거 복지, 생활안정, 문화예술 등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15년에는 전국 지자체 최초로 청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1기 청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한 이창원 대표는 대구시에 청년정책과가 만들어질 만큼 청년정책이 다른 지역에 비해 잘 갖춰져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청년 지원이 양적으로는 늘어났으나 질적으로는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다. 일자리를 매칭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창원 대표는 “현재 청년들이 경험하는 생활 수준과 문화를 바라보는 눈이 엄청나게 높아졌다”며 “청년정책을 제대로 만들려면 정책을 만드는 데 쓰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포틀랜드가 ’청년들이 살기 좋은 도시’ 지표를 내는데 질문이 이래요. 걸어서 10분 만에 갈 수 있는 라이브 클럽이 몇 개인가. 우리나라 같으면 이렇게 묻죠. 여가 때 뭐하십니까? 1번 영화, 2번 뮤지컬 이렇게 갑니다. 영화가 80%죠. 하나마나 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거예요. 그럼 그 지표를 가지고 멀티플렉스 더 짓겠습니까. 질문이 달라야 한다는 겁니다.”
지역 청년을 위한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창원 대표의 생각이다. 지자체에서 청년정책을 만들 때 일자리문제 개선에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 대구는 청년유출 비율이 전체의 65%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서울로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만으로 청년인구의 유출을 막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지역의 일자리가 작년 대비 1.5%p 증가했다 해도 청년들은 크게 관심 없다”고 지적했다. 일이 청년의 삶의 만족을 모두 채워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청년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 청년이 지역으로 올 것이라고 강조하며, 그것이 인디053이 수행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이창원 대표가 지역에서 진행하는 문화예술 사업/사진=미로우미디어 제공

청년단체 성장 위해 ‘진입장벽’ ‘성과공유’ 문제 해결해야
이창원 대표는 지역에서 청년단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진입장벽’과 ‘성과공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사업을 추진할 때 지원하는 단체의 성과를 본다. 검증을 위해서다. 이 대표는 이러한 진입장벽이 “신입사원의 경력을 보는 것과 똑같다”고 비판한다. 적어도 문화예술 영역에서는 단체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일부 사업은 청년단체가 성과를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며 “성과가 없더라도 무대 위에 한 번이라도 올라가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에게 좋은 생각이 있다면 우선 기회를 주고 평가를 받아보게 하자는 것이다.
청년단체에게 성과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면 다음은 정당하게 성과를 인정해주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인디053은 문전성시, 꿈다락토요문화학교 등 여러 정부 공모사업을 수행하며 많은 아픔을 겪었다. 이창원 대표는 “청년단체가 열심히 일을 하면 대부분 정부나 지자체의 성과로 돌린다”며 이러한 행태가 “대기업이 중소기업 기술 빼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소신을 밝혔다. 사업을 수행하는 단체도 공공을 위해 일했는데 해당 사업이 지자체나 정치인의 성과로 조명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사업의 성과가 행정과 민간 모두의 것으로 공유돼야 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성과 인정이라는 민간단체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민간에서 정말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어냈어요. 그럼 그 성과의 대부분을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성과로 합니다. ‘행정이 다 그렇지’ 하고 등돌리는 분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기술 빼먹는 것을 욕할 게 못돼요. 저희도 공공을 위해서 일했는데 어느 순간 이 성과가 지자체장 내지는 정치인들의 성과로 되어버리고 거기가 조명받거든요. 화가 나서 저희가 시위도 하고 성명서 발표하고 그랬죠.”

인디053의 미션, ‘농촌과 청년예술가를 잇자’
지금 인디053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농촌 지역과 도시의 청년예술가들을 잇는 꿈이다. 이창원 대표는 농촌이 청년예술가들의 희망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는 “일년에 수만 명이 예술대학을 졸업한다”며 “그중 0.0001%만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그림을 걸고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한다”고 지적했다.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사회에 문제의식을 갖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장, 전혀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보자는 게 그의 목표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와 농촌지역의 벽화 중 후자가 더 가치 있고 소중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인디053은 앞으로 “변방에서 이슈를 만들어 사회적 시선을 더 깊숙한 지역으로 돌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읍, 면 단위에서 문화예술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이 대표는 농촌지역이 인디053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거라고 믿는다. 그는 “경쟁이 치열한 서울에서 수많은 도전자 중 하나로 싸우는 전략보다는 변방에 이슈를 만들어내는 전략을 취할 것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회의 시선을 지역으로 돌리게 만들어 지역쇠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하겠다는 것이다. 지역이 소멸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농촌을 중심으로 문화 저변을 수평적으로 바꿔내는 것이 인디053이 이루고자 하는 미션이다.

민관의 발랄한 네트워크가 필요해
“민과 관이 어떻게 협력하냐에 지자체의 미래,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이창원 대표가 인터뷰 말미에 강조한 말이다. 이 대표는 공공영역에서 정보와 자본의 대부분을 행정이 갖고 있다는 점을 짚으며 민간이 공공영역에서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감하게 민간에게 맡기면 훨씬 더 잘할 수 있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이창원 대표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공익적으로 실현하고 싶어도 행정 절차상 까다로운 것이 너무 많아 실현하기 어렵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대표는 이어서 “도시재생이나 마을 만들기 같은 사업은 청년들의 ‘발랄한 네트워크’가 작동해야 하는데, 행정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실패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고 비판했다. 이를 “언론사에서 편집권을 보장해줘야 기자가 제 능력을 발휘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행정과 민간, 전문가그룹, 주민들이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창원 대표는 지역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행정상의 결정권자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민관협력의 거버넌스가 잘 작동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질문을 바꾸면 청년이 풉니다
“지금 청년정책의 질문들은 대부분 ‘청년이 떠나는 이유? 1번, 일자리가 없어서’ 이런 식으로 가거든요. 그러니 쓸모 없는 지표만 만들어져요. 저는 질문 자체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이 대표는 일자리는 지역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밀착형 청년정책 질문들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위에서 만들어서 아래로 뿌리는 정책’이 아닌 ‘청년이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포틀랜드의 ‘10분 만에 갈 수 있는 라이브 클럽의 개수’와 같은 질문이 흥미로운 지표를 만들어내고 그 지표가 청년들이 즐거운 상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창원 대표는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청년들이 지역문제를 재기 있게 풀게 만들자고 바람을 전했다.

이 코너를 진행하는 미로우미디어는 사회 이슈를 문화예술로 다루는 콘텐츠기획사다. Me(나)+raw(날것의)를 결합한 이름처럼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세상에 울림을 주는 것이 미로우미디어의 미션이다. <여기에 압축풀기>는 지난해 서울지역상생센터 ‘상생상회’에서 진행했던 전시명이다. 이 전시에서 춘천, 인제, 포항, 거제 등에서 사는 청년농부와 청년사업가를 영상과 글, 오브제 등으로 소개했다. 이 전시를 이어 유망한 지역 청년을 조명하는 콘텐츠를 연재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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