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 "문화로 한국과 세계를 잇는 ‘허브’"

“국제문화 교류 협력사업 발굴, 한류의 창의적 확장에 주력할 것”

머니투데이 더리더 임윤희 기자 입력 : 2019.09.04 10:28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사진=더리더
한류는 90년대 말부터 아시아에 일기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 열풍을 일컫는다. 드라마와 가요는 물론 음식으로 이어진 한류 열풍은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초기에 금방 사그라질 사회 현상으로 예측하는 시각이 많았지만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경쟁력을 갖추면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일부 아시아권에 그치던 한류는 유럽을 지나 북미까지 그 영향력이 확산됐다. 이에 문화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교류를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작년 2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출범했다.

초대원장은 시인이자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던 김용락 원장이 맡았다. 김 원장은 이곳과 인연이 깊다. 재단 시절 사무처장으로 부임해 원장까지 기관과 운을 함께한 진흥원 출범의 숨은 공로자다.
대구일보 문화부장과 경운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를 거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에 취임했다. 1984년에 시인으로 등단한 김 원장은 노무현 10주기를 기념해 발간한 추모 시집 <江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도서출판 걷는사람)에 동참하기도 했다.
<더리더>는 김 원장의 인터뷰를 위해 상암동의 첨단산업센터 내에 위치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을 찾았다.

#한국국제문화진흥원출범 #1년반 #발자취
-2018년 2월 기관 출범 후 초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그간 소회를 부탁드린다
▶기관 출범 전 재단의 모습으로 있을 때부터 사무처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에 작은 조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여러 사람에게 한류 확산의 거점 역할을 할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에 대해 설득하고 다녔다. 그 결과로 2018년 2월 문화체육관광부 국제문화교류 전담기관으로 새롭게 출범하면서 중책을 맡게 됐다. 처음에 만들어놓은 기틀이 오랫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심적 부담이 컸다.
기본적으로는 조직이 앞으로 장기간 쭉 발전할 만한 초석을 다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기본 틀을 짜고, 조직원끼리는 끈끈한 동지애를 강조했다. 구성원 개개인의 전문성을 키워 세계 속에 성장하는 한류로 선도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한류의 주축이 되는 대중문화산업만이 아니라 문화예술 전 분야로 국제교류 사업의 범위를 확대했다. 국내외 문화 분야의 정부, 민간단체들의 교류를 매개하고 지원하는 대표기관이 되고자 한다.

-기관의 중점사업은 무엇인가
▶문화체육관광부 국제문화교류 전담기관으로서, ‘문화로 한국과 세계를 잇는 네트워크 허브’라는 비전 아래 한류 확산을 넘어 국제문화교류의 진흥을 위해 문화교류사업 기획·지원, 문화교류 매개 기능 강화, 문화교류 조사연구 외에도 문화교류 전문인력 양성사업을 확대하여 추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국제문화교류의 주체가 국가에서 지역, 공공에서 민간으로 변화하는 바, 국내외 정부·지자체·민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문화교류 매개기관으로서의 진흥원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국제문화교류를 수행하는 국내외 기관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협력사업을 발굴하는 한편 국제문화교류 사업을 지원하고 국내외 협력기관을 연결해주는 것이다. 대표적인 문화교류 사업으로 ‘수교계기 문화교류행사’, ‘트래블링 코리안 아츠’, ‘지역 우수 문화교류 콘텐츠 발굴·지원’ 등이 있다. 또한 ‘해외 작은 도서관 조성’, ‘문화동반자사업’, ‘민관합동 해외사회공헌’ 등 문화를 매개로 한 해외 사회공헌사업을 국내외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출범 이후 가장 큰 성과를 꼽아본다면
▶지난해 진흥원은 무엇보다도 지속가능한 국제문화교류의 기본 틀을 구축하고 다양한 주체 간의 매개 역할을 하는 데 역점을 두고 음악, 방송 등 대중산업부터 문화예술 분야까지 아우르며 국경을 초월한 다채로운 문화교류의 기반을 조성해왔다.
무엇보다 2018년 초에 정부의 국제문화교류 진흥사업의 전담기관으로 지정된 것이 가장 큰 성과다. 이를 통해 국가 단위의 문화교류 행사를 주관하게 되었고, 국내외 많은 문화기관과 단체의 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었다. 국제문화교류에 있어 진흥원의 중요성이 매우 높아진 것이다.
올해도 ‘국가 간 수교기념 문화행사’를 3개국에서 개최했고, ‘한중일 문화장관회의’나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 계기 문화행사 등 국가 단위의 여러 사업을 진흥원에서 주관한다.

-해외 한류 커뮤니티 지원활동을 지속 중인데 어떤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나
▶단순히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팬을 넘어 현지와 한국을 잇는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진흥원은 올해도 13개국 14개 해외 한류 커뮤니티를 선정해 한국문화 관련 해외 한류 커뮤니티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한국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높이기 위해 ‘해외 한류 커뮤니티 활동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을 통해 K-팝, 드라마, 영화, 한식 등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행사를 기획하여 한국문화를 알리고 있다.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KOFICE 통신원들이 전하는 최신 소식을 받는 시스템이 운영되는 것으로 안다. 소개 부탁드린다
▶매일 진흥원 홈페이지를 통해 해외 한류 및 문화산업 동향에 대한 생생한 해외통신원 리포트가 전해진다.
전 세계 37개국 40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외통신원들은 현지 문화산업 전문가들로, 해외 문화산업 분야의 정보제공 및 공유를 통해 각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국제적 민간 문화교류 창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매년 상시 모집을 통해 선정 대상 국가에 거주하는 역량 있는 문화산업 분야 전문가를 해외통신원으로 선발해 운영하고 있다.
▲해외통신원 현황
-앞으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나아갈 방향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진흥원은 국제문화교류 전담기관으로 지정되면서 국제문화교류 국내외 정부·지자체·민간 간의 매개 기능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국제문화교류를 수행하는 많은 국내외 기관과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협력사업을 발굴하는 한편, 정부·지자체·민간 간의 국제문화교류 사업을 지원하고 국내외 협력기관을 연결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매개 기능을 중심으로 문화교류 참여 거버넌스 강화, 지역과 민간의 국제문화교류 협력을 확대해나갈 것이다. 더불어 국제문화교류 전담기관으로서의 위상에 맞는 조직문화를 구축해나갈 계획이다.
또한 드라마와 가요 음식으로 이어지는 한류에서 우리의 문화와 문학, 사상까지 한류의 외연을 넓히는 새로운 품목을 개발하는 창의적인 확장 역시 계획하고 있다.
또 진흥원이 다양한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인 만큼 국민들이 우리 원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리는 부분에도 주목하고자 한다.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사진=더리더

#김용락원장 #이중생활 #집필활동
-개인적인 이력이 눈에 띈다. 1984년에 등단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의성군 단촌면 시골에서 태어났다. 우리 세대는 어릴 적에 가지고 놀 수 있는 놀이 기구가 없어서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라면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단 꿈이 생겼던 거 같다.
창작과비평사의 신작 시집 <마침네 시인이여>라는 유명 시집에 등단하게 됐다. 당시 계명대 영문과 재학 시절이었다. 75년 ‘빈산’ 이후 처음으로 발표되는 김지하의 장시 ‘다라니’를 비롯해 17명 시인의 시가 수록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다. 덕분에 팬레터도 어마어마하게 받았던 기억이 난다.

-올해 여섯 번째 시집인 <하염없이 낮은 지붕>을 펴내셨다. 어떤 것을 의미하나

▶우리 기관에서 한류를 전파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ODA 사업을 한다. ODA 원조사업 중 하나로 저개발국 몽골, 베트남 같은 나라에 다니면서 작은 도서관을 짓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지난해 몽골 오브스의 울란곰이라는 조그마한 소도시에 이 사업차 갔다가 낮은 지붕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지붕이 낮으면 자연스럽게 허리를 굽혀 다니고 또 그런 사람들은 착하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옛날 우리 시골 초가집의 지붕이 떠올랐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게 우리의 욕망이나 욕심, 욕구를 소비하면서 살게 되고, 양극화 현상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결국 낮은 지붕이라는 것은 우리가 욕망을 절제하면서 사는 절제의 미학을 상징한다.

-시인에서 기관장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다양한 삶의 모습 중 스스로 가장 잘해냈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엇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가 됐다. 교사를 3년 하다 관두고 신문기자와 방송국 진행자 등으로 언론에 10여 년 종사했다. 그 뒤엔 대학교수를 15년간 하다 지금 이 자리에 이르렀다. 그간 꾸준히 한 건 글쓰기와 문학평론이었다. 선친은 나의 이런 이력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사실 시골에선 고등학교 교사면 충분히 좋은 직업이란 가치관을 지닌 분이셨다. 많이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불효는 좀 했지만 지금까지도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는 정의롭게 사는 거다. 삶의 궤적을 따라 여러 분야에서 사회 모순과 싸워나갔다고 생각한다.
사실 가장 보람을 느끼고 잘 맞는 일은 대학교수였다. 아이들을 설득하고 토론하고 그런 과정이 기쁘고 아이들이 졸업 후 곳곳으로 나아가 좋은 일을 할 때 큰 보람이 있었다.

-개인적인 계획이 있다면
▶맹자의 말 중에 막비명야(莫非命也)라는 말이 있는데 모든 게 운명 아닌 것이 없다는 뜻이다. 여섯 번의 시집과 여러 권 산문집을 냈지만 소설은 한 번도 출간한 적이 없다. 그래서 언젠간 인간의 삶과 운명을 담은 스케일이 큰 대하 소설을 한번 내보는 게 작가로서의 꿈이다.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
-1959년, 경상북도 의성
-계명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
-경북외국어대학교 국제경영원 원장
-영남투데이 정치사회부 부장
-경운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더불어민주당 대구광역시당 북구갑지역위원회 위원장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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