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남북군사합의 그 후 1년

단국대학교 차동길 교수 입력 : 2020.01.01 09:30

도발에서 데탕트로 분위기가 전환되는 듯하지만
위협적인 북한의 재래식 및 비대칭 능력은 변화 없음
정신적·물질적 태세의 지탱 요인인 대북위협인식 붕괴
군 수뇌부의 전략적 사고 혼란과 심각한 정치화 우려
절대적 평화주의에 매몰, 국가안보 의지 약화 우려
2020년 남북군사합의 무용론과 파기론 대두 예상


2019년을 뒤로하고 2020년 새해를 맞이했지만, 한반도 안보 상황은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워졌던 2017년으로 되돌아가는 분위기다. 2017년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따른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최고 대북압박전략과 이에 맞선 김정은의 속전속결식 핵미사일 능력 증강이 전쟁 위기를 고조시켰던 시기다. 당시 미국은 각종 전략자산을 한반도 일대에 집결시키고, 트럼프 대통령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이 나서 ‘화염과 분노’, ‘예방전쟁’, 북한을 ‘완전히 파괴’라는 등 말 폭탄을 쏟아냈고, 김정은은 ‘수소 폭탄급 핵실험’ 감행과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로 맞섰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 화해 분위기는 두 차례의 미북 정상회담과 한 차례의 판문점 회동을 이끌었지만, 북한 비핵화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선 적대 정책 철회, 후 대화 재개’ 원칙과 미국의‘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 원칙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의지의 대결이다. 아무리 적 부대를 격멸한다 해도 적 영토와 인구가 존재하는 한 부대를 재건할 수 있고, 적 영토를 점령했다 해도 다른 나라와 연합하여 싸우고자 한다면 전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결국, 전쟁은 쌍방의 의지 싸움으로 어느 한쪽이 전쟁 의지를 굴복하지 않는 한 절대 끝나지 않는다. 평화 의지로 만든 9.19 남북군사합의가 밀려오는 전쟁의 먹구름을 차단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려졌다.

9.19 남북군사합의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실질적인 신뢰 구축을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목적으로 체결되었다. 국방부는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고, 정전협정 체결 이후 65년 만에 최초로 비무장 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군사적 조치를 마련함으로써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실효적 조치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과연 그럴까. 많은 군사안보 전문가는 국가안보 의지의 굴복으로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9.19 남북군사합의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군사합의의 목적인 남북 간군사적 긴장 완화 및 신뢰 구축에 실질적 기여라는 관점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겠다.

첫째, 한국군은 국방백서에서 주적개념을 삭제함으로써 신뢰 구축을 위한 선제적 조치를 했다. 주적개념 삭제는 군의 정신적·물리적 태세의 지탱요인이었던 대북위협인식을 붕괴시켰고, 군 수뇌부의 전략적 사고에 혼란을 초래했으며, 군의 심각한 정치화 우려를 낳았다. 적 개념에서 북한 지우기는 각종 용어변경으로 이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위협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우리 군의 ‘3축 체계’이다. 즉, 킬 체인(Kill-chain)은 ‘전략 표적 타격’으로,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로, 대량응징보복체계(KMPR)는 ‘압도적 대응’으로, 북한 핵과 WMD 위협대응은 ‘핵과 WMD 위협대응’으로 각각 용어를 변경함으로써 북한에 집중되었던 적 의식을 잠재적 위협국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둘째, 남북은 지상·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중지하기로 하고,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하여 단계적 군축 등 다양한 군사현안 관련 실행방안을 실효적으로 협의·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남북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와 비무장 지대 내 일부 GP(남북 각각 11개)를 철거했고, 한강 수로 공동조사를 했으며, 공동 유해발굴을 위한 남북 전술 도로를 연결했다. 그러나 ‘남북군사공동위원회’와 유해발굴은 북한의 무대응으로 논의조차 못 하고 있으며, 2019년 한 해만 무려 13차례에 걸친 신형 방사포 및 초대형 방사포 발사로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 중에는 한차례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도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 사거리가 220km에서 600km로 한국 전역을 위협함으로써 남북군사합의를 무색하게 하는 군사적 도발이었다. 그리고 북한은 한국과의 대화를 기피하고 있고, 우리 정부와 군은 북한의 도발을 도발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심각한 전략적 사고의 붕괴 현상이다.

셋째, 서북도서에 배치된 한국해병대 포병은 군사합의에 따라 포항으로 이동하여 사격훈련을 하고 있지만, 북한은 연일 일부 해안포 문을 개방했고, 서북도서 전방 5개 무인도서(장재도, 갈도, 무도, 아리도, 함박도)를 군사기지화했으며 연평도 포격 도발 9주기인 11월 23일에는 소청도 서쪽 30km에 위치한 창린도에서 해안포 사격을 감행함으로써 언제든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넷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및 자유 왕래와 관련하여 북한이 유엔사 배제를 요구함에 따라 남북한과 유엔사 3자 협의체가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유엔사 배제 주장은 유엔사 해체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까지 이어가려는 의도로 평가된다. 다섯째, 비핵화 협상 모멘텀 유지를 위해 한미는 한미연합훈련을 취소·축소했지만, 북한은 100만 명이 참가하는 동계훈련을 규모와 범위, 시기 면에서 과거 5년간의 수준과 유사하게 실시함으로써 재래식 및 비대칭 능력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결국, 9.19 남북군사합의는 예상했던 대로 한국군의 손과 발을 묶어두고, 정신을 와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며, 북한의 합의 미이행과 미준수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 의지를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처음부터 제기된 문제였지만 남북군사합의는 우리 군에 유리한 전략 환경을 불리하게 만들었다. 이를테면 북한보다 훨씬 유리한 공중정찰을 제한하고, 북한의 숨통을 조이고 있던 서북도서 해병대를 고립시킨 가운데 서해 해상을 열어준 것이다. 에이브람스 주한미군사령관도 취임 120일을 평가하면서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공동경비구역(JSA) 내 비무장화와 DMZ 내 지뢰 제거,GP 상호철거 등 분위기는 도발에서 데탕트로 호전된 듯하나, 위협적인 북한의 재래식 및 비대칭 능력에는 변화가 없다고 평가했다. 절대적 평화주의에 매몰되어 국가안보 의지의 약화가 우려된다.

2020년은 한국의 총선과 미국의 대선이라는 중요한 정치일정이 있다. 북한이 군사적도발을 수단 삼아 협상력을 높이는 기회가 될 가능성이 있다. 내부적으로는 국제사회의 오랜 제재로 인한 민심이반이 표면화될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국내 정치문제는 김정은의 정권유지에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기에 군사적 도발을 통한 위기조성전략을 채택하고자 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9.19 남북군사합의의 무용론과 합의 파기론이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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