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못 믿는데

[안민호 여론객설(輿論客說)]

숙명여자대학교 안민호 교수 입력 : 2020.01.02 10:07

우리 도시 이야기(A tale of the city)
드물지만 살다보면 천사가 아닌가 싶은 사람들을 보고 듣게 된다. 최근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아들과 함께 마트에서 우유와 사과를 훔친 30대 병든 아버지, 딱한 사정을 듣고 이들 부자(父子)에게 따뜻한 국밥을 대접한 경찰관, 그리고 지나가다 우연히 그것을 목격하고 국밥집까지 따라와 20만원을 놓고 간 마음 따뜻한 노신사에 관한 얘기다.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어려움에 처한 이 가족을 도우려는 사람들의 온정이 이어지고 있다 한다. 성탄일과 연말연시라는 절기적 요소 때문인지 새삼 뭉클하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2000년 전 성자의 말씀을 실천하는 이 시대의 선한 사마리아인들과 그것의 긍정적 영향력에 관한 우리 도시의 따뜻한 이야기다.

험한 시대에 이런 감동적 소식을 들으면, 보통 사람에 속하는 나는 정말 천사 같은 이들이 우리 주변에도 있구나 하며 문득 그 선(善)한 이들이 나 같은 보통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지, 어떤 특별한 종류의 사람들인지 궁금해지곤 한다. 그러다 이것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차마 말로 옮기기도 어려운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많은 악행에 관한 뉴스를 떠올리게 되면 유치한 궁금증은 더 깊어진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정말 따로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보통 사람이 어떤 때는 천사가 되고 다른 때와 장소에서는 악마가 되는 것인지. 이건 인간의 미덕과 악덕에 관한 오래된, 꽤나 진부한 질문이고 널리 읽히는 고전(古典)이라면 늘 다루는 대중적 주제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악행

진부하기로 작정하고 좀 더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영화가 한 편 있다. <와일드 테일즈(Wild Tales)>라는 제목의 아르헨티나 영화다. ‘참을 수 없는 순간’으로 번역된 이 영화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거친 분노와 악행에 관한 여섯 가지 에피소드를 옴니버스로 소개한다. 현대 사회에 충분히 있음직한 말 그대로, 거칠면서도 황당해 보이는 작은 이야기들이다. 특정 상황에서의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복수, 예기치 않게 이어지는 거친 폭력 등 보통사람들의 특별한 악행이 영화적 재미와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도로의 거칠고 비열한 이기적 운전자들이나 편의주의적이고 배려심도 없고, 거기다 불공정하기까지 한 황당한 공무 집행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향한 참을 수 없는 분노는 꽤나 일반적이고 그래서 우리가 쉽게 공유하게 되는 감정들이다. 영화는 우리의 그런 감정에 어떤 특수한 상황이 불꽃처럼 점화해 전혀 의도치 않은, 얼마나 거친 폭력적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잘 구성해 보여주고 있다. 정리하면 결국 우리가 사는 현실에는 천사와 악마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평범한 누구도 어쩌다 악당이 될 수 있다는 말을 감독은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선과 악의 동거, 파르마콘

악에 대한 폭력은 선인가 악인가.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을 제압하는 폭력은 선인가 악인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꼭 별개의 것이 아닐 수 있음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는 상식이었던 듯싶다. 문자 언어의 이중적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플라톤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파르마콘(pharmak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약이면서 동시에 독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이 용어는 선과 악, 긍정과 부정, 삶과 죽음과 같은 대립적, 모순적 관계의 일체성을 말하기 위해 사용되곤 한다. 이분법적 세계관에 대한 해체주의적 입장으로 유명한 탈근대적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경계와 구분의 불확정성을 언급하기 위해 이것을 즐겨 사용했다. 폭력에 대응하는 폭력은 파르마콘, 즉 선이면서 동시에 악이기도 하다.

아부그라이브

2004년 이라크 바그다드 교외에서 세상을 경악하게 하는 한 사건이 발생한다. 일명 ‘아부그라이브 감옥 포로 학대 사건’으로 불리는, 참혹하기 짝이 없는 미군들의 반인륜적 폭력적 범죄가 세상에 알려진다. 동물처럼, 장난감처럼 취급되는 가혹한 상황에 놓인 이라크인 포로들과 그런 악행을 자행하면서도 죄의식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무자비하고 한편으로는 천진해 보이기까지 하는 미군 병사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외부로 유출되어 공개되자 많은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의 유태인 수용소를 떠올리고, 그런 잔혹한 고문 행위가 2000년대, 그것도 미국 수용소에서 발생한 것에 대해 놀라고 분노한다.

이런 반인륜적 범죄의 원인은 당연히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런 최악의 범죄가 미군들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인간성을 가진 이들이 우연하게도, 선별적으로, 아부그라이브라는 같은 장소에 동시에 모여 있었기에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와 유사한 일탈적 사건을 오랜 기간 연구해온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수용소의 미군 간수들을 인터뷰하고 나서, 악한 행위가 악한 인간 때문이라는 식의 설명은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아부그라이브의 어떤 상황적 특수성이 평범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악행을 자행하도록 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상황의 힘’이라고 알려진 그것인데, 악행에 대한 방관, 침묵, 그리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보이고 따르게 만드는 다양한 상황적, 주변적, 집단적 특성이야말로 악의 원인이고 그것을 개선하지 않고 특정 개인들만 처벌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특정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기에 그 상황을 바꾸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추상적 상황과 구체적 인물
그의 주장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처럼 들린다. 하버드 대학교 스탠리 밀그램 교수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 연구’나, 짐바르도 자신의 ‘스탠퍼드 대학 감옥 실험 연구’처럼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적지 않다. 그럼 문제는 무엇일까? 문제는 상황은 어렵고 인물은 쉽다는 점이다. 잘못인줄 알면서도 우리는 악행의 원인을 상황이 아니라 악인에게서 찾는다. 이유는 그것이 쉽고 명확하기 때문이다. 악행의 원인이 되는 상황적 조건은 다양하고 복잡하기에 당연히 분석하기도 어렵고 설명하기는 더 어렵다. 악한 상황은 추상적이고 악한 인물은 구체적이다. 그자가 나쁜 놈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분명하고, 해결 방안도 간명해 보인다. 그가 공직자라면 쫓아내고 감옥에 가두면 된다.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속이 시원하다. 그러나 실제는 바뀐 게 없다. 그래서 문제는 그대로 남고 일탈은 계속 반복된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고, 현실이 이 모양인 이유다.

못 미더운 사람보다 상황을 바꾸도록
특별히 선한 사람과 특별히 악한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때로는 선하고 때로는 악할 수 있는 중간적이고 또 이중적 존재다. 공직자나 정치인들 대개가 그렇고 솔직히 부끄럽지만 교수인 나도 마찬가지다. 연말연시는 다사다난하다. 시간 쪼개 봉사활동도 하고, 가끔 불우 이웃 돕기를 하다가 술 먹고 엉뚱한 갑질도 하고 때로는 낯뜨거운 실수도 한다. 내가 나를 못 믿는 시기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곧 선거철이다. 내가 나를 못 믿는데 누구를 선한 이로 믿고 투표해야 할지 걱정이다.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생각하면서 이전과는 조금 다른 기준을 가지고 투표한다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나아질지 모르겠다.

안민호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교수
언론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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