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레터]카뮈가 살아있다면…

머니투데이 더리더 서동욱 기자 입력 : 2020.04.01 11:0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일상의 여러 모습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마스크 착용과 재택근무, 약속·모임 축소 등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지 않던 '고립'을 강요합니다. 감염증이 언제 종식될지 그 시점을 알 수 없기에 '사회적 거리'의 길이는 더 멀게만 느껴집니다.

퇴근길 서점에 들렀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많이 읽힌다지요. 오래전 읽었던(읽었던 것 같은) 카뮈는, 권태감에 빠져 살던 '이방인 뫼르소'와 끊임없이 바윗덩이를 밀어 올리던 '시지프'로만 기억됐습니다. 페스트에선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소설은 1940년대 알제리의 항구도시 '오랑'을 무대로 합니다. 도로 곳곳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쥐들이 나타나면서 인구 20만의 오랑은 순식간에 공포의 도시로 변합니다. 의문의 사망자가 속출했고 쥐를 매개로 한 페스트균이 원인으로 밝혀집니다. 도시는 곧바로 봉쇄됐으며 시민들은 페스트균과 맞서 싸우게 됩니다.

이야기는 감염자 치료에 혼신을 다하는 의사와, 여행을 왔다 오랑에 머물게 됐지만 '시민 보건대'를 조직해 병균에 대항하는 여행객 등 두 인물의 시각으로 전개됩니다. 시청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비정규직 직원, 취재차 들렀다 도시에 묶여버린 신문기자가 등장합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10개월 동안 시민들이 겪는 사투가 펼쳐집니다. 의사와 공무원은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며 묵묵히 페스트균과 싸워나갑니다. 신문기자는 "혼자만 행복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도시를 빠져나갈 생각을 접습니다. 여행객은 감염된 도시의 얘기를 기록으로 남기며 보건대 활동을 지휘합니다.

카뮈는 페스트에서 "'부조리'한 죽음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연대의식을 통해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것만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코로나19 치료에 헌신하고 있는 의료진, 다른 나라의 부러움과 찬사를 받고 있는 정부의 대처, 사재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민의식… 대한민국이 감염병에 대처하는 모습에서 페스트를 이겨낸 오랑의 시민들이 겹칩니다.

카뮈의 작품에서 일관하는 주제는 '반항정신'입니다. 부조리할 수밖에 없는 삶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무기력한 자살이나 종교적 도피가 아니라 삶 자체에 맞서는 반항정신이라고 주장합니다.

허위의 도덕률에 반대하는 '이방인 뫼르소'는 살인죄로 기소돼 사형장으로 향하면서도 "반항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뫼르소를 통해 기존의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합니다. 신의 노여움을 사 끊임없이 바위를 산 정상까지 올려야 하는 '시지프의 투쟁'에 대해서도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하자“고 카뮈는 말합니다.

1913년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에서 출생한 카뮈는 작가이자 언론인으로 활동하다 47세인 1960년 교통사고로 사망합니다. 그가 살아 있다면 지금 유럽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를 어떻게 바라봤을까요. 끊임없이 연대하며,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했을까요? 어쩌면 "모두가 모두를 감염시킬 수 있는 시대, 타인에 대해 두려움과 적의가 아닌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sdw7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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