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과 행정의 상호관계: 입법만능주의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정재룡의 입법의 현장

전 국회 교육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정재룡 입법 칼럼니스트 입력 : 2020.05.04 10:36
▲정재룡 입법 칼럼니스트 전 국회 교육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입법은 국가의 주요한 의사결정을 법률로 만드는 것이다. 법률은 국회가 만들고 정부는 그 법률을 집행한다. 그러나 정부는 단순히 법률을 집행하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도 법률안 제출권이 있고,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고,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한 거부권이 있고, 법률의 위임에 따른 하위법령의 제정을 통해서 입법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

과거에는 정부입법이 압도적이었다.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이 중시되었고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은 경시되었다. 그러나 2004년 6월 시작된 17대 국회부터 의원입법이 폭증하면서 의원입법 시대가 도래했다.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이 중시되고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은 경시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마저도 스스로 입안한 법률안을 직접 제출하지 않고 의원에게 부탁하는 소위 ‘청부입법’이 많아졌다. 입법의 내용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소위 골격입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법률은 형식적이었고 주요 내용은 거의 모두 위임을 통해 하위법령에서 정해졌다. 그러나 지금은 주요 내용을 법률에 직접 규정하고 있고, 종래 하위법령에 있던 것을 법률에 상향규정하는 입법이 많아졌다. 오늘날 국회 위상이 강화된 것은 법률에 주요 내용을 규정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현재 국회가 국정을 주도하는 시대라고 할 수는 없다. 

정부는 여전히 입법과정에서 여당의 지원을 배경으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소위원회 심사에서 소관 부처 차관 등 정부관계자의 의견이 법률안 처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 중에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거부권을 행사하면 된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5월 국회는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 경우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정부는 그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의결하여 정부에 이송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그 개정안은 폐기된 바 있다.

2016년 5월 국회는 상임위원회가 법률안 이외의 주요 안건 심사나 소관 현안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재적의원 과반수 의결로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소위 ‘상시 청문회법’)을 의결하여 정부에 이송했지만 이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두 건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삼권분립 위배, 행정부 마비법 등의 구실을 내세웠지만 근거가 희박하고 특히 상시 청문회법의 경우는 국회 운영에 관한 내용이어서 거부권 행사의 대상으로 보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2016년 4월 총선에서 당시 야당이 승리한 가운데 출범한 20대 국회가 거의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19대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이 두 건의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지난 1월 국회가 가결한 국회법 개정안은 별 내용이 없고,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2015년 국회법 개정안보다 후퇴한 것이어서 실망스럽다. 국회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데 꼭 필요한 사항인데도 야당일 때와 집권당이 됐을 때의 입장이 달라진다면 진정성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국회 운영에 있어서 집권당의 책임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의 경우는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신에 서명지침(Signing Statements)으로 법률안의 일부 조항을 사실상 사문화시키는 관행이 있다. 서명지침은 대통령이 법률안에 서명을 하면서 특정 조항의 집행 범위를 해석해 명확히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특히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신에 서명지침을 남발했다. 

2006년 미국변호사협회는 그가 재임 중 집행을 보류한 법률 조항이 800여 개로, 과거 대통령들이 보류했던 법률 조항 숫자를 합친 것보다 많다는 보고서를 냈고, 마이클 그리코 변호사협회장은 대통령의 서명지침이 견제받지 않고 행사된다면 미국은 헌법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의 서명지침이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자신의 정책방향과 맞지 않는 법률 조항들을 선별해 정치적 의도에서 집행 보류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례로 미국 수용시설에서 구금된 테러용의자에 대한 고문과 비인간적 대우를 금지하는 법률안을 들 수 있는데, 당시 부시 대통령은 의회의 강한 압력에 밀려 결국 이 법률안을 수용했지만, 조사기법에 제한을 두는 조항은 서명지침을 활용해 보류시켰다.

정부는 법률의 위임에 따른 하위법령의 제정을 통해서 입법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하위법령 제정은 모법의 위임 취지를 준수하는 것이 원칙인데, 그렇지 않을 때 논란이 발생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정부 기간 가장 크게 논란이 됐던 것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지원과 관련하여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과 유아교육법, 영유아보육법, 지방재정법 등 4개 법률 시행령이 모두 모법의 위임 취지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정부가 위법한 시행령을 근거로 추가 재정지원 없이 교육청의 예산 부담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 근원은 모법의 위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관련 규정은 영유아보육법에 있다. 국회는 2013년 1월 1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영유아에 대한 보육을 무상으로 하되, 그 내용 및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무상보육 실시에 드는 비용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거나 보조하도록 하는 내용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그런데 이 개정안에서 무상보육 비용의 부담 주체에 대하여 대통령령에 위임한 것이 하위법령 제정과정에서 악용돼 논란이 야기된 것이다. 

종래 국회는 재정에 관한 사항은 하위법령에 대폭 위임하는 관행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 사항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사례가 주는 교훈을 돌아볼 때 이제는 재정에 관한 사항도 국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결정권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경험을 통해서 볼 때 최근 국회의 입법은 너무 양산되고 있는 것 같다. 꼭 필요한 입법이 아니라 그저 실적용으로 발의되는 것도 많다. 또 행정과의 관계에서 입법사항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마저도 입법으로 추진되는 것도 있다. 입법이 사회문제 해결의 강력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충분한 검토와 논의 없이 입법이 추진되는 경우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초래하거나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입법의 가장 큰 문제는 한번 제정되면 부작용이 있어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2011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소위 강사법의 경우 무려 4차례, 7년여간의 유예 끝에 지난해 8월 시행되었는데, 강사 대량해고를 야기하여 강사를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강사법이 되고 말았다. 국회의 회의가 입법의 부작용에 대처하느라 귀중한 시간이 낭비되는 경우도 있다. ‘병 주고 약 주고’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입법 추진은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입법만능주의에 대한 경계가 필요한 것이다.

필자가 그런 맥락에서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사례가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다. 이 법률은 선행교육으로 학교수업이 파행 운영되는 현실을 시정하기 위하여 2014년 3월 제정됐다. 그런데 법률 제정 이후 교육부는 학교의 선행교육 금지로 사교육비가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 2015년 8월 방과후학교의 선행교육을 허용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했고, 국회는 2016년 5월 방학 중 모든 고등학교와 중·고등학교 중 농산어촌 지역 학교 및 도시 저소득층 밀집 학교 등에서 방과후학교의 선행교육을 한시적으로 2019년 2월 말까지 허용하는 것으로 법률을 개정했다. 이어서 시한 만료를 앞두고 2018년 말 교육위원회에서 다시 시한을 2025년 2월 말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가결했으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개정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시한이 만료됨에 따라 다시 2019년 3월 교육위원회에서 같은 내용에 소급적용을 추가한 개정안을 마련했고 이것이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2016년 5월 법률을 개정한 이유는 방과후학교에서 선행학습 수요를 흡수하여 사교육비를 경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2018년 1인당 사교육비가 역대 최고로 치솟았다. 방과후학교 선행교육의 예외적 허용의 기준도 합리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는 모두 방학 중 방과후학교에서 선행교육이 허용되는데, 법률상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 중학교와 모든 초등학교는 왜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지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다. 이렇게 원칙과 기준이 없으니 2025년이 돼도 다시 시한을 연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공교육에서 선행교육을 금지하는 법률을 만들어놓고 매번 방과후학교의 선행교육을 허용하는 한시 입법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스럽다. 법률 개정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 과정 자체가 생산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정규과정은 선행교육을 금지하면서 방과후학교는 선행교육을 전면 허용하는 것은 이 법률의 근본취지를 훼손하는 것이어서 가능하지 않다. 이 법률을 존치하는 상황이라면 이와 같이 모순적인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 필자는 2016년 5월 법률 개정 이후부터 학교수업 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의 특별 입법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보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변화가 없다. 이 사례는 강사법과 더불어 신중한 입법의 타산지석이 되는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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