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주자 없는 野…안철수, 다시 떠오를 수 있을까

[Who’s Next?]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중도·진보까지 아우를 ‘재편론’ 기치…‘모호성’은 넘어야 할 산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입력 : 2020.12.08 10:23
편집자주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은 2022년 3월 9일입니다. 앞으로 1년 3개월 여가 남았습니다. ‘정치의 시간’으로 보면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입니다. 대한민국 정치 시계는 예나 지금이나 총선과 대선에 맞춰 돌아갑니다. 2021년 4월 7일 보궐선거가 끝나면 정국의 방향은 2022년 3월 9일로 급속히 이동하게 됩니다. <머니투데이 더리더>는 차기 대선주자 분석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의 생애, 능력과 도덕성, 비전과 정책 등 그의 모든 것을 담아보려 합니다. 두 번째 순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입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2017년 5월 8일 오후 대전 중구 중앙로 일대에서 유세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
의사 → 프로그래머 → CEO → 교수, 그리고 ‘정치인’
1962년 2월 26일 부산,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의사였다. 부산 진구 범천동에 있는 병원에서 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안 대표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 따르면 그는 초등학교 내내 공부를 못 했다. 중학교 때도 반에서 1등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조금씩 나아지더니 고 3때 이과 전체 1등을 처음 해봤다. 이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 진료봉사 동아리에서 1년 후배 김미경과 1988년 결혼했다.

무상급식, 기본소득 등 보편적 복지는 시대의 흐름이다. 안 대표는 자신이 시대의 흐름에 앞섰다고 말한다. 의과 대학원에 다니던 도중 컴퓨터에 관심을 가진 안 대표는 용돈을 모아 최소한의 부품만 갖춘 컴퓨터를 겨우 구매했다. 그 이후 컴퓨터에 빠졌다. 1988년 자신의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침투한 게 안 대표의 인생을 바꿨다. 밤새워 바이러스에 걸린 컴퓨터에 대해 연구, 독학으로 백신을 개발했다. 1991년 V3라는 컴퓨터 안티 바이러스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7년 동안 무료로 배포했다. 안철수연구소를 설립, 2005년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KAIST 교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지냈다.



정치권으로 부른 ‘여론조사’…‘안철수 현상’


토크콘서트 등으로 인지도가 높아진 안 대표는 정계의 러브콜 1순위였다. 특히 2009년 MBC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인기는 정점에 이른다.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서울시장 후보에 안 대표가 거론됐다.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 1위를 기록하면서 정치권 ‘샛별’로 떠올랐다. 안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 변호사와 5분 동안의 대화 이후 지지를 밝혀 사실상 후보직을 ‘양보’했다.

‘대가 없는 양보’로 안 대표의 인기는 치솟았다. 9월 6일 오후 뉴시스가 실시한 대선 여론조사에서 여당 유력 대선주자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양자대결에서 42.4% vs 40.5%로 안 대표가 앞서는 이변이 연출됐다. ‘박근혜 대세론’에 제동 건 사람이 안 대표였다. 그야말로 안풍(安風)이 시작됐다.

주가 고공행진을 이어오던 안 대표는 2012년 9월 19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슬로건은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였다. 그의 최대 지지층은 20~30대였다. 정치성향은 중도층이었다. 안 대표는 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과 단일화 협상을 진행했다. 2012년 11월 21일부터 진행된 야권 단일화 협상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최종 후보로 결정됐다. 안 대표는 11월 23일 저녁 8시 20분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가 후보직을 내려놓겠다.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할 것을 선언한다”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선거유세를 하다 2012년 12월 19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국민의당 대선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오른쪽)가 2017년 3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에서 열린 대선 출정식에서 출마 선언에 앞서 자신을 소개한 아내 김미경 교수의 손을 잡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




모호한 새 정치로 지지율↓


2013년 3월 미국에서 돌아온 안 대표는 그해 열린 4월 재보궐 선거에서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 원내에 입성했다. 국회에 들어오고 나서 새 정치를 표방한 중도적 성향의 신당 창당에 공을 들였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 등과 2014년 3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다. 공동대표에 취임한 이후 3개월 만에 열린 7.30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11석, 새정치민주연합이 4석을 얻는 결과를 내면서 안 대표는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민주당 내부 계파 싸움에 결국 20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서 탈당,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총선서 국민의당은 38석을 얻어 민주당과 새누리당, 거대 정당 사이에서 제3정당으로 발돋움했다. 이후 안 대표의 정치인으로서의 주가는 사실상 내리막길이었다. 2017년 4월 대통령선거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한 안 대표는 3위에 앉았다. 2018년에는 유승민 전 의원과 함께 바른미래당을 창당한 이후 그해 열린 서울시장에 출마, 3위를 기록했다. 정계를 떠난 안 대표는 2020년 다시 돌아와 현재는 국민의당 대표로 지내고 있다.

안 대표의 지지율은 왜 급격히 떨어져 지지층이 등을 돌렸을까. 정치전문가들은 안 대표의 ‘정치적 모호성’을 약점으로 삼는다. 대선 때 이진곤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객원교수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쪽, 저쪽을 다 만족시키려다보니 메시지가 뚜렷하지 못하다”며 “과거 보수와 달라져 있는 386세대인 50대의 정치의식을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했다. 또 “보수의 분리화 현상이 안철수에게 완전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또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문재인의 적폐 청산과 홍준표의 좌파 정권 안 된다는 메시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며 “안철수는 문재인만 견제하다보니 보수층의 유권자를 너무 단순하게 판단한 것이 패착”이라고 분석했다.



안철수의 ‘생각’…19대 대선 대표 공약은 ‘학제 개편제’


의사와 프로그램 개발자, CEO 등 화려한 경력을 지낸 안 대표는 전문성을 강조한 의정활동을 했다기보다 현안에 맞게 법을 냈다. 안 대표가 의원 시절 발의한 법안은 총 18건이다. 이 중 6건이 통과됐다. 안 대표가 국회에 들어오자마자 발의한 법안은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을 발의했다. 또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 발의한 대표 법안은 이른바 세 모녀 방지법안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 △사회보장수급권자의 발굴 및 지원법 제정안 등을 발의했다.

안 대표가 지난 19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을 때 가장 화제가 된 법안은 학제개편안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앞당겨 유치원 2년-초등 5년-중학 5년-진로탐색·직업학교 2년-대학교 4년 또는 직장 과정을 밟는 것이다. 안 대표는 당시 “성적순이 아니라 학점이수제도이기 때문에 아이는 별도로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사교육을 없애고 입시 위주의 교육과정이 아닌 자아 성찰을 위한 교육과정으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부를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지원처로 재편하고 국가교육위원회에는 교사와 학부모, 여야 정치인이 참여해 매년 향후 10년 계획에 합의하는 정책도 내놨다.




숫자로 보는 안철수


지난달 26일 기준 안 대표의 페이스북 좋아요 수는 11만7000건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1만8000명이다. 안 대표의 팬클럽 안사모의 회원 수는 2만1000명이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13일 1001명을 대상으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안 대표는 지지율 3%로 전체 4위를 차지했다.
안 대표 관련주는 안랩과 써니전자, 까뮤이앤씨 등이다. 써니전자는 회사의 임원이 안랩 출신이라는 이유로 안철수 테마주로 꼽힌다. 까뮤이앤씨는 표학길 사외이사이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안철수 지지그룹의 상임대표를 맡고 있어 관련주로 분류된다. 안 대표의 정치 행보에 따라 관련주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 후 정계를 잠시 떠난 안 대표가 지난 1월 2일 복귀를 선언하자 관련주들의 주가는 20% 이상 올랐다. 이후 안 대표가 당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이들은 폭락, 하루 만에 13~18%대 급락세를 보였다.



지금은 3%지만…늘 야권연대 중심에


지금은 대선주자 지지율 3%를 기록하는 안 대표지만 그를 중심으로 야권 연대 논의가 이뤄진다. 선거에서 두 차례 고배를 마셨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를 했을 때 가장 가능성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안 대표의 지지율이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앞섰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코리아리서치가 2017년 4월 9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안 대표는 36.8%, 문 대통령은 32.7%를 기록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6.5%,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2.8%,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1.5%로 뒤를 이었다. 양자구도에서는 격차가 더 벌어져 안 대표가 49.4%, 문 대통령이 36.2%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선 토론회 이후부터 안 대표의 지지율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결국 대통령 선거에서 21%를 얻어 3위에 머물렀다.

야권에서 뚜렷한 대선주자들이 보이지 않아 안 대표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특히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안 대표는 서울시장에 나가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차출론이 계속되고 있다.

안 대표는 야권이 연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내고 있다. 안 대표는 지난달 6일 ‘국민미래포럼’ 강연에서 “지금 제1야당을 포함한 야권에 대한 비호감이 너무 크다”며 “정치에도 관심이 없는데 비호감이니깐 (야권이) 무슨 말을 해도 듣질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 나름대로 생각한 유일한 결론이 야권 재편”이라며 “완전히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새로운 혁신 플랫폼을 만들고 거기서 야권이 만들어갈 대한민국의 미래, 구체적인 비전, 우리만의 정책을 얘기할 때 다시 국민들이 관심 갖고 귀를 기울일 것”이라며 “중도층뿐 아니라 합리적 개혁을 바라는 진보까지도 다 포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지난달 22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안박싱’에서 김세연 전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야권 혁신 위해 함께한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안 대표는 “느슨한 연대부터 시작해서 가장 딱딱한 형태는 당을 만드는 것까지가 있는데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표현이 플랫폼”이라며 “무슨 정당을 만들자는 식으로 알려졌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내년 보궐선거를 겨냥한 야권연대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는 지난달 24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안 대표와 야권연대를 하느냐는 질문에는 “야당 단일화 이런 것들을 많이 들어왔는데 그렇게 해서 효과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는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통합이라고 하는 것은 왜 통합해야 하느냐. 통합해서 무엇을 달성할 수 있겠느냐”며 “통합하고 합당해서 제대로 성공한 예가 없다”고 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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