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주자가 꺼낸 ‘사면’, 때가 아니다?

이낙연 언급에 부정 여론 많아…문 대통령도 깊어가는 고민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입력 : 2021.02.05 11:07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이명박 전 대통령/사진=머니투데이 DB
2021년 1월 1일 신축년 새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보수 야당이 아닌 여당 대표이자 유력 대권주자가 한 발언이어서 파장이 컸다. 

사면법에 따르면 법무부 장차관 등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사면심사위원회가 특별사면 대상자를 확정한 후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대통령이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대상자를 확정하는 만큼 사실상 대통령의 결단으로 사면이 가능하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고도의 정치적 의도가 저변에 깔릴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정치권에서는 곧장 이 대표가 문 대통령과 사전 교감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대표는 ‘국민 통합’을 내세웠다. 그는 “올해는 문 대통령이 일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해로, 이 문제를 적절한 때에 풀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지지층의 찬반을 떠나서 건의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낙연의 사면론, 자기 정치인가 대행 정치인가


지난해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위기와 함께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추미애-윤석열 갈등 등으로 인해 문 대통령 지지율은 30%대까지 곤두박질쳤다. 이 대표의 사면 발언은 국론 분열을 막고 국민 통합을 이루기 위한 대승적인 결단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일각에선 대선 후보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이 대표가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사면 카드를 꺼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지난달 3일, 기자들과 만나 “(사면은) 국민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는 제 오랜 충정을 말씀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 또한 반목과 대결의 진영정치를 뛰어넘어 국민통합을 이루는 정치로 발전해가야 한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인사회에 화상으로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자기 정치의 측면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이 평론가는 “기본 소득부터 기본 대출, 기본 주택 등 ‘기본 시리즈’라는 자기 이슈를 선점한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지지율이 뒤지면서 반전카드로 사면론을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같은날 긴급 최고위원 간담회를 연 민주당은 이 대표의 사면 제안을 검토했으나 당사자들의 반성과 사과가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면서 사실상 불가 결정을 내렸다. 

이 대표의 사면론에 반대하는 여당 의원들은 두 전직 대통령이 반성 없이 정치 탄압을 주장하고 있는 점에 대해 지적했다. 박홍근 의원은 이날 “첨예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국회나 정당, 정치인이 먼저 (사면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그 정당성도 순수성도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다소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던 국민의힘은 이 같은 여당의 조건에 대해 날선 비판을 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무죄를 주장하고 정치적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반성하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말이 안 된다. 사면을 두고 장난을 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면론은 문재인 대통령의 몫’이란 제목의 글에서 “엉뚱하게 ‘반성’ 조건을 내걸며 감옥에서 고초를 겪고 있는 두 분에게 공을 떠넘기면서. 비겁하고 잔인한 처사”라고 밝혔다. 이어 “결국은 문재인 대통령의 몫이고 숙제다. 늦으면 늦을수록 정치적인 부담만 가중될 뿐”이라고 결단을 촉구했다.



국민 10명 중 6명, “사면, 국민통합에 기여 못해”


이러한 가운데 여론조사 결과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6명 가까이는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이 국민 통합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YTN ‘더뉴스’ 의뢰로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전직 대통령 사면의 국민 통합 기여도를 조사한 결과 ‘기여 못할 것이다’라는 응답이 56.1%(전혀 기여하지 못할 것 35.2%, 별로 기여하지 못할 것 20.9%)로 다수를 차지했다.

권역별로는 수도권과 광주·전라 지역에서는 국민통합 기여에 대한 부정평가가 우세했으며,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 지역에서는 긍정평가가 앞섰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부정적인 응답이 더 많았다. 20대와 30대에서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응답은 각각 70.5%, 71.7%로 집계됐다. 

이념 성향별로는 진보층의 81.4%가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응답했고, 보수(기여함 48.1% vs 기여 못함 50.1%)와 중도(기여함 46.9% vs 기여못함 49.2%)층에서는 긍정과 부정 응답이 팽팽하게 갈렸다.

지지 정당별로는 민주당 지지층은 81.7%가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응답했고,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64.1%가 기여할 것이라고 답하며 부정응답(24.7%)을 크게 앞섰다. 

이번 조사는 7.4%가 응답률(응답률 제고 목적 표집틀 확정 후 미수신 조사대상에 2회 콜백)을 나타냈다. 무선(80%)·유선(20%)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실시했고, 통계보정은 2020년 10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기준 성별, 연령대별, 권역별 가중치 부여 방식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다.



朴, 형 확정되면서 특별사면 조건 부합해…靑 입장은?


1월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배경으로 보수단체 회원들이 설치한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현수막이 보이고 있다./사진=뉴스1
1월 14일,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기소돼 약 3년 9개월간 재판을 받았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서 개입한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총 22년 형이 확정됐다. 박 전 대통령 형이 확정되면서 지난해 10월 형이 확정된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두 전직 대통령이 모두 기결수가 돼 특별사면 요건을 충족하게 됐다.

사면법은 특별사면 및 감형의 대상으로 형을 선고받아 확정된 자로 규정하고 있다. 판결이 확정되지 않으면 특별사면은 불가하다. 

이날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 20년 형 확정에 대해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춘추관 브리핑에서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국민의 촛불혁명, 국회의 탄핵에 이어 법원의 사법적 판단으로 국정농단 사건이 마무리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정신이 구현된 것이며,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과 발전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청와대는 사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대법원 선고가 나오자마자 사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다만 전날 최재성 청와대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CBS라디오에서 두 전직 대통령 특사와 관련해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의 눈높이에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與 ‘사과 전제에 한 목소리’ VS 野 ‘왈가왈부’


새해 초 사면론을 띄웠던 이낙연 대표는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적절한 시기에 사면을 건의드리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그에 대해 당은 국민의 공감과 당사자의 반성이 중요하다고 정리했고 저는 그 정리를 존중한다”고 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깊은 상처를 헤아리며 국민께 진솔하게 사과해야 옳다”고 말했다. 여권의 반발과 사면 반대 여론이 우세하자 사면 조건을 상향 조정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 이 대표는 “(사면을)안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나 반성에 대한 응답 가능성에 대해 이종훈 평론가는 “MB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면을 하려면 하고 말면 말았지, 마치 사면을 구걸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사과를 안 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지난해 12월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사진
같은 날 국민의힘은 사면에 대한 당 차원의 언급은 하지 않았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이 결단할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유승민 전 의원은 “국민 눈높이라는 구실을 찾지도 말고, 선거에 이용할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고, 김기현 의원은 “국가 품격 차원에서 보더라도 정치 보복이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도 사면에 대한 온도차가 있는 것에 대해 이종훈 평론가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얼마 전 사과를 했는데, 돌아서자마자 ‘사과했으니 풀어달라’고 할 수 없는 입장이고, 유승민 전 의원이나 나경원 의원은 당내 지지세를 업기 위한 자기정치적 성격이 강한 것”이라고 봤다. 

국민의힘의 스탠스에 대해 이 평론가는 “무대응이 최고의 대응”이라고 밝혔다. 그는 “비대위 성격은 과거 정권의 잘못은 잘못으로 남겨놓고 보수정당을 재건하는 과정이기에 과거 두 정권과 결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그런데 판결이 나오기 무섭게 여러 사람이 나서는 것은 불리한 상황을 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선 그은 文…그의 고민은?


문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신년사를 통해 새해 국정 운영 비전으로 ‘회복·도약·포용’을 제시했다. 이날 연설에서는 예년보다 정치분야 이슈에 대한 발언이 크게 줄었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두 전직 대통령의 특별사면 문제는 연설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14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최종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관련된 언급을 할 수 없다는 청와대의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특히 7일 신년 인사회에서 올해 화두로 제시했던 ‘통합’에 대해 ‘사면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따르자 통합이라는 단어를 빼고 대신 ‘포용’이라는 표현을 썼다. 

또한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나오기 전에 결정권자가 사면 여부를 밝히는 것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9년 5월 취임 2주년 특별대담에서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과 관련해 “일단 재판 확정 이전에 사면을 말하는 것 자체가, 그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1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온·오프 혼합 방식으로 열린 '2021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신년사에서 특사에 대한 언급이 없자 18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 이목이 집중됐다. 첫 번째 질의응답부터 두 전직 대통령 특사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입장을 물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재판 절차가 이제 막 끝났다”며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문 대통령은 “선고가 끝나자마자 돌아서서 사면을 말하는 것은, 사면이 비록 대통령 권한이긴 하지만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사면이 아직은 ‘시기상조’ 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사면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시사했다. 그는 “언젠가 적절한 시기가 되면 더 깊은 고민을 해야 될 때가 올 것”이라며 “대전제는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현재 가장 큰 고민에 대해 이종훈 평론가는 “타이밍”이라고 했다. 이 평론가는 “하고 말고는 이미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본다. (사면을)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은 건데 전략적으로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사면의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 이 평론가는 4월 재보선이나 차기대선 직전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평론가는 “3.1절 특사는 어려울 것”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 판결이 나오자마자 사면을 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이어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차기대선 직전에 해야 파괴력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 중 박 전 대통령만 먼저 사면하는 등의 ‘선별 특사’ 방안도 절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평론가는 “그럴 바에는 안 하는 게 낫다. 사면은 정무적 판단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고, 법적 판단을 내리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사면을 통해 중도층 표를 확산시키고, 보수층을 분열시켜 중도층 흡수 목적을 가지고 갈 가능성이 크다면 원샷원킬로 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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