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의원, 촌철을 ‘제약’에서 벼려내다

[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재밌고도 묵직한 인트로의 태도와 방법이 노회찬 어록에 있어

글쟁이(주) 백우진 대표 입력 : 2021.11.05 09:48
편집자주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백우진 글쟁이㈜ 대표
#1. “거꾸로 타는 보일러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복지 공약이 왜 이렇게 자꾸만 거꾸로 축소되는지 제가 듣고 싶은 심정입니다.”

#2. “복지정책은 지난 20년 동안 취약계층보다는 중산층에게 더 유리하게 바뀌어왔고, 결국 20년 전에 비해 크게 역진적으로 개악되었습니다.”

첫 문장은 노회찬 의원의 말이고, 둘째 문장은 비교를 위해 내가 지어낸 문장이다. 어느 쪽이 청중이나 독자의 이목을 끌까?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대다수가 전자를 선택하리라고 본다.

‘거꾸로 복지’를 비롯해 노회찬 의원의 어록은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어떤 배경이나 계기에서 촌철살인 어록을 뽑아내게 됐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배경 또는 계기는 사실 제약이었다. 어떤 제약이었을까? 그 제약에 처한 노회찬처럼 궁구해보자. 그러면 당신도 노회찬 어록에 버금가는 인트로로 글을 시작할 수 있다.

‘노회찬 어록의 이유’를 궁금해한 기자가 있다. 〈시사IN〉에서 활동한 천관율 기자다. 그는 ‘노회찬은 이런 정치인이었습니다’ 기사(2018.08.06.)에서 “그는 왜 쉽고 짧고 재치 있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했을까”라는 물음을 제기했다.

천관율 기자는 그 답을 노회찬 의원이 2014년 1월에 한 인터뷰에서 찾는다. 고등학생들이 만든 인문비평 공동체 IRIS와의 4시간짜리 인터뷰였다. 그 인터뷰에서 노회찬 의원은 자신의 어록이 나오게 된 제약을 다음과 같이 들려줬다.

“생존 때문에 그렇게 했어요. 노동운동 할 때, 노동자들이 신참인 내 말을 듣기나 하나요. 정당을 만들고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정책을 길거리에서 설명할 때 30초도 길어요. 그 이상은 안 들어. 그런 상황을 나는 오래 겪은 사람이에요. 〈100분 토론〉에 나가도 소수 정당이니까, 독한 얘기를 하니까, 다른 사람은 안 끊지만 나는 중간에 끊죠. 그러니까 더 줄여야 했고요.”

이 ‘30초 이내’가 노회찬 어록을 낳은 제약이었다. 이 ‘30초’는 말을 하다가 강조하는 대목이 아니다. 마무리하면서 힘을 주는 대목도 아니다. 첫머리 30초다. 따라서 노회찬 의원의 고민은 달리 표현하면 인트로를 어떻게 잡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말을 시작하자마자 청중의 관심을 끌면서 메시지를 도달시켜야 한다는 고민은 어필하는 글의 인트로를 무엇으로 잡을까 하는 궁리와 다르지 않다.

글을 쓰는 리더라면 인트로를 궁리할 때, 노회찬 의원 같은 제약에 처했다고 상상하기 바란다. 당신의 글에 독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시간이 30초도 채 안 된다고 생각하자. 30초 이내에 독자의 눈을 끌어들여야 한다. 추가로 메시지도 도달시키면 더욱 좋다.

독자도 첫인상으로 글을 판단한다
노회찬 의원은 정치 메시지를 유권자에게 전하기 위해 ‘인트로’를 발굴했다. 비즈니스 리더는 상업적인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전하기 위한 인트로를 찾아야 한다. 또는 꽂히는 인트로 후보들을 보고받고 그중 하나를 낙점할 것이다. 그 상황에서 ‘30초 이내’라는 제약을 떠올리기 바란다. 또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도 좋다. 시장통에 소비자들이 지나간다. 상인마다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몇 초 분량의 한마디를 던진다. 그 한마디가 인트로다(또는 카피다). 글에 인트로를 얹지 않는다면, 당신은 시장통에서 입을 봉한 채 서 있는 상인과 다르지 않다. 당신 글은 팔리지 않는다.

제약은 필요조건이다. 글의 첫머리에서 독자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마음가짐은 기본이다. 이 마음가짐에서 출발해 기법을 구사해야 한다. 기법을 구사하는 데에는 당연히 노회찬 의원의 어록도 참고가 된다. 그 참고는 널리 알려진 노회찬 어록을 하나씩 읽으면서 독자 스스로 하기 바란다.

이 글에서는 노회찬 어록에 국한하지 않고, 더 범위를 넓혀 글의 인트로에 대한 일반론을 짧게 다룬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다. 글은 말에서 나온 소통 수단이지만 말과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글의 인트로를 잡는 기법은 말을 시작하는 방법과 차이가 있다. 글의 인트로를 뽑는 데 활용할 세 가지 범주와 몇 가지 사례를 공유한다.

세 범주는 분량과 역할, 수사법이다. 인트로의 분량은 짧게는 한 단어일 수도 있고, 길게는 여러 문단일 수도 있다. 인트로의 역할은 호기심을 자아내기, 또는 재미를 주기, 또는 의미를 부여하기 등이 될 수 있다. 수사법은 여러분이 국어 시간에 거듭해서 배웠다. 굳이 열거하면 직유법, 은유법, 청유법, 대구법 등이 있다.

분량·역할·수사법을 조합하라
분량과 역할, 수사법의 사례를 몇 건 공유한다. 굵은 글자로 표시한 부분이 인트로다. 역할과 수사법은 세 건만 예를 든다. 역할과 수사법은 창의적인 발상의 영역이고 자유도가 높다. 평소에 많이 읽고 유형별로 갈무리해둘수록 적절한 역할과 수사법을 조합해 인트로를 구사할 수 있다.

[분량1]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분량2] 백문이 불여일청. 해외에서 명성을 쌓은 OOO 소프라노의 아리아는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분량3] 천 번의 시도와 999번의 실패가 낳은 성공이었다. OOO가 □□□□를 개발한 과정은 이같이 요약할 수 있다.
[분량4] 입에 넣기만 해도 혈관에 스윗함이 쭉! 타고 흐르는 쫀쫀 브라우니, 담백함이 결 따라 쫙쫙 찢어지는 식빵, 한입 베어물면 이빨 자국 선명한 꾸덕한 필링이 가득한 마카롱…
안녕하세요, OOO 님. 혹시 빵 좋아하세요? 어떤 빵 좋아하시나요? 아, 다이어트 중이라서 속세 맛 완벽재현한 비건빵을 찾아 헤매신다구요?
사실 □□□□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디저트 맛집이라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비건빵도 물론이요, 세상의 온갖 빵을 빵빵하게 갖춘 □□□□. OOO 님의 취향저격 200% 보장하는 오늘의 □□□□ 뉴스레터는 집에서 만나는 빵지순례 가이드입니다.
[분량5] 사례#1. “반면 한국의 멀웨어 발생률은 2018년 대비 39% 감소한 2.81%로 아태지역 10위를 기록했고, 아태지역 평균 발생률보다 6.5배 낮게 나타났다."
사례#2. “아이러니하게 OO @@@의 지시가 없었다면 지금의 DAC는 지금보다 10배 적은 규모가 됐을 것이다.”
둘 다 신문기사의 문장이다. '몇 배'는 증가에 쓴다. 감소에는 분수를 써야 한다.

[역할1] 일요일인데도, 그는 죽으러 나가려고 구두끈을 매고 있었다.
[역할2] 이 사건은 내로남불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우리 사회의 진영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역할3] ‘맛도 좋고 살도 안 찌는 음식.’ 이런 음식을 개발한다면 세계인으로부터 절대적인 인기를 끌 것이다. 그러나 음식은 대부분 상쇄관계의 어느 한 지점에 있다. 맛이 좋으면 열량이 높아 살을 찌운다. 열량이 낮으면 살은 빠지지만 맛이 없다.
.지구를 위한 탄소 다이어트에도 상쇄관계에 있다. 탄소를 줄이면 기후변화를 늦추지만, 인간과 경제의 활동에 에너지가 줄어들고 힘이 든다. 탄소를 이전처럼 많이 배출하면 인간과 경제가 덜 힘들지만 기후변화를 가속한다. 이런 상쇄관계에서 과연 기후변화의 최적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수사법1] 부실에 대한 공포는 바이러스처럼 확산됐다.
[수사법2] 가수 OOO는 소리의 마녀다.
[수사법3]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이 연재의 첫 회인 지난호 글에서 이미 나는 인트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왜 둘째 글에서도 인트로가 중요하다는 주장에 상당 분량을 할애했나? ‘인트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데도, 국내에서는 적절한 인트로의 작성이 간과되기 때문이다. 또 어록과 인트로가 동일한 마음가짐에서 나옴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일전에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글의 인트로를 주제로 강연했는데, 정치인들은 글의 인트로와 정치의 언어를 별개로 여겼다. 그렇지 않다. 인트로를 궁리하면 말이 어록이 될 수 있고, 어록을 궁리하다 보면 인트로를 잘 쓸 수 있다.

▶ 왼쪽 단에 배치한 예문을 나는 지난호 이 연재의 첫 회에 공유했다. 나는 그러면서 이 예문을 달리 시작하는 방법, 즉 대안 인트로를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오른쪽 단이 내가 정리한 대안이다. 오른쪽 단 글의 끝 문장에는 왼쪽 단에 없는, 필자의 구체적인 조언이 있다. ①단문 ②자극 ③체험을 넣은 인트로가 좋다는 조언이다. 바로 이 조언에 따르는 대안이 오른쪽 단의, 보라색으로 표시한 인트로다. 왼쪽 단에서 붉은 색에 삭제선을 그은 부분은 왜 오른쪽 단에서 지웠는지는 각자 생각해보자.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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