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시 파켓(Darcy Paquet), "자막장벽 뛰어넘은 ‘기생충’ 뒤엔…"

“배우가 말한 것처럼 느끼면 제일 좋은 번역… 봉감독 일낼 줄 알았다”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입력 : 2020.02.05 10:44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5월 프랑스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신호탄으로 해외 시상식에서 연이어 입상, 한국 영화의 우수성을 알렸다. 지난달 5일 열린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는 한국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이어 1월 19일 열린 미국영화배우조합(SAG, Screen Actors Guild) 시상식에서는 최고의 영예인 ‘아웃스탠딩 퍼포먼스 바이 캐스트(앙상블) 인 모션픽처’ 부문을 수상했다. SAG시상식에서 비영어권 영화가 이 상을 수상한 것 역시 <기생충>이 처음이다. 앙상블상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최고의 열연을 펼친 배우들을 선정해 수여하는 상으로 영화제의 작품상에 해당한다. 

전 세계 영화인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는 <기생충>은 오는 9일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에 한발 더 다가섰다는 평가다. <기생충>은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 각본, 편집, 미술, 국제영화상 등 모두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그동안의 수상 실적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다. <기생충>이 또 한번의 새 역사를 쓸지 관심이 집중된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세계 영화계가 한국 사회의 문화와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기생충>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봉준호 감독은 칸영화제 시상식을 위해 출국하기 전 “<기생충>은 워낙 한국적인 영화다. 해외에서 100% 이 영화를 이해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랑스 관객이나 미국 관객이나 같은 장면에서 웃었고,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함께 공감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좋은 번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수상소감에서 봉 감독은 “자막의 장벽, 장벽도 아니죠.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이 지난 5월 28일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그 1인치의 장벽을 넘는 데 조력자 역할을 한 사람은 영화평론가이자 번역가인 달시 파켓(Darcy Paquet)이다. 그와 봉 감독의 인연은 무려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달시가 처음 번역가로서 이름을 올렸던 영화는 봉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항상 이 영화를 꼽았던 그는 “봉 감독의 영화가 언젠가는 일을 낼 줄 알았다”고 말한다. 

달시는 1997년 고려대학교 영어강사로 처음 한국에 왔다가 우연한 기회에 한국 영화에 빠지면서 해외에 한국 영화를 소개하는 웹사이트인 ‘코리안필름’을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영국과 미국의 유명 영화지인 <스크린 인터내셔널>과 <버라이어티>에 한국영화에 관한 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이후 번역가와 평론가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한국독립영화 시상식인 ‘들꽃영화상’을 만들었으며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그는 봉 감독의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 자막 검수를 시작으로, <옥자> (2017)를 제외한 봉 감독의 모든 영화를 번역했고, 이 외에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 나홍진 감독의 <곡성>(2016), 윤종빈 감독의 <공작>(2018) 등 150편 이상의 한국영화 영어자막 작업에 참여했다. 

겨울 학기 동안 고려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는 달시를 만나 <기생충> 번역 이야기와 그가 생각하는 ‘좋은 번역’, 그리고 한국영화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기생충> 아카데미상 수상 긍정적…봉준호 영화는 항상 에너지 넘쳐

-<기생충>이 칸 황금종려상 수상,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그리고 대망의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이런 결과 예상했나
▶훌륭한 영화이기 때문에 반응은 좋을 거라 생각했고, 칸 영화제에서의 수상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하지만 오스카상(아카데미상)의 경우 투표권을 가진 아카데미 회원 대부분이 백인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비영어권 영화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다. 그래서 작품성이 뛰어나더라도 후보에 오를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아주 운이 좋으면 국제영화상 후보 정도 오를 거라고 봤는데 6개 부문이나 올라 깜짝 놀랐다. 일단 국제영화상은 수상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나머지 부문 중에서는 감독상과 시나리오상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심사위원들은 영화를 보려면 자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기생충>의 연이은 수상에 대해 ‘번역가 공이 컸다’는 평도 많다
▶99%는 영화가 좋아서고, 1%는 제가 열심히 해서 결과가 좋았던 것 같다.(웃음) 특히 봉준호 감독은 국제적인 센스가 있다. 영화에 나오는 사회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도 중요하고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봉 감독의 영화에는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이 있다. 영화 번역은 오래전부터 했기 때문에 이번 번역에서도 많은 고민을 통해 결과가 나왔다. 제 생각에는 번역된 자막이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과 잘 맞았을 때 관객 입장에서 편하고, 그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받는 것 같다. 

-서울대는 옥스퍼드대로, 짜파구리는 램동으로 번역해 문화 장벽을 뛰어넘었다는 평을 받았다. 대만 카스텔라, 종북 개그는 어떻게 뉘앙스를 전달했나
▶대만 카스텔라는 사실 ‘Taiwan cake shop’이라고 그대로 번역했지만, 한국사람이 아니라면 대만 카스텔라가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 100%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대만 카스텔라가 예전에 붐이 일었다가 다 망했다는 정도의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따로 설명할 틈이 없었다. 가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설명을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북한 뉴스 앵커를 흉내 내는 장면은 한국 관객은 듣자마자 어떤 건지 다 알 수 있는데 외국인의 경우에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영어 자막에는 상대방이 “당신만큼 북한 앵커 흉내 잘 내는 사람 못 봤어”라는 말을 넣어서 뉘앙스를 전달했다.

-<기생충>을 번역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가장 재밌으면서도 어려운 것은 단어 번역보다 긴 대사를 짧은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자막이란 순간적으로 스크린에 떠 있다가 없어지기 때문에, 그 짧은 문장으로 최대한 영화의 느낌을 살리는 게 가장 어려웠다.
앞서 몇 가지 단어 얘기를 했지만 지금 기억나는 건 영화에 ‘수석’이 나왔는데 그 부분이 좀 많이 어려웠다. 중국과 일본에는 수석을 뜻하는 단어가 있다. 중국에서는 Scholar’s Rock이라는 뜻의 공석(供石, Gongshi)이라는 단어가 있고, 일본에서는 Suiseki(水石)라고 한다. 이걸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다 영화에서 두 번 언급하는데 한 번은 Scholar’s rock이라고 하고, 다른 한 번은 Landscape stone이라고 표현했다. 수석 자체가 자연 풍경(landscape)처럼 생겨서 그렇게 번역했다. 반지하라는 개념도 약간 까다로웠다. 미국 정서로 보면 반지하에 사는 것은 트레일러에 사는 것과 비슷한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트레일러라고 할 수는 없어 Semi basement라고 했다. 다행히 영화 전반적으로 ‘집’에 대한 감정이 잘 표현돼 있어 큰 문제는 없었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기생충> 번역 작업에 앞서 영화를 7번 봤다고 알고 있는데
▶일단 영화 전체를 한 번 보고, 초고작업을 할 때 다시 일주일 동안 조금씩 봤다. 특히 자막은 여러 번 봐야 번역이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몇 번씩 보고 후반 작업할 때 감독님과 제작PD와 다 같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는 두 번 더 봤다. 모든 영화를 다 그렇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에 편집이 바뀌거나 하면 몇 번 더 보는 경우가 많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경우도 편집과 대사가 바뀌어서 여러 번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번역한 작품 중 <살인의 추억>을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여러 번 꼽았다. 지금도 변함없나
▶지금도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 영화 중 가장 클래식한 느낌이 드는 영화라고 본다. 시나리오 구조나 디테일이 좋다. 만약에 제가 시나리오 강사라면 이 작품을 가지고 수업을 하면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도 너무 좋았고, 로케이션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때도, 이번에도 주인공은 송강호였다. 오랜 세월 봐온 송강호란 배우는 어떤가
▶두 작품 외에도 송강호 배우가 나오는 <택시운전사>, <밀정>도 번역했다. 번역가 입장에서는 영화마다 말하는 스타일, 연기하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난이도가 다르다. 개인적으로 송강호 배우의 연기를 정말 좋아한다. 예전과 비교했을 때 요즘 송강호의 연기는 자연스럽게 세월이 흘러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항상 새로운 영화가 나올 때마다 어떤 연기를 할지 궁금하게 만드는 배우다.

좋은 번역은 ‘자연스러움’…번역가 양성 시스템에도 역할 하고 싶어

-'좋은 번역’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번역된 결과물이 마치 한 편의 새로운 글처럼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는 번역이 ‘좋은 번역’이 갖춰야 할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대사는 사람이 말하는 ‘구어’를 번역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의 글보다 더 자연스럽게 번역해야 보는 사람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출판사에서 번역된 소설을 받으면 처음부터 읽지 않고 중간에 실린 대사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사가 잘 번역되어 있으면, 그 책은 전체적으로 잘 번역된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자막을 읽었을 때 진짜 그 배우가 말한 것처럼 느끼면 그게 제일 좋은 번역이다.

-번역가, 영화평론가, 교수, 영화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각각의 매력이 다를 텐데 어떤 직업이 가장 잘 맞다고 느끼나
▶글 쓰는 게 제일 잘 맞다고 생각하는데 번역도 일종의 글쓰기라서 잘 맞는다. 가르치는 것도 좋아해서 계속하고 싶지만 글 쓰는 걸 아예 포기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연기는 그냥 재밌다. 연기를 잘 못해서 문젠데…(웃음) 연기를 처음 했을 때는 내가 잘 아는 배우랑 한 신에 같이 나오는 게 비현실적이면서 좋았다.

-한국 영화가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달라져왔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영화 시스템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10년 동안은 한국영화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봤다.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에서 물론 성공한 영화도 있었고 실패한 영화도 있었지만, 영화 제작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통해 많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10년 전 시스템이 완성됐지만, 이제는 시스템이 너무 안전해지면서 새로운 시도보다는 비슷한 영화가 계속 나오는 현상이 생겼다. 지금 가장 큰 걱정은 노력하지 않으면 새롭고 다양한 영화가 나오지 못할 거라는 점이다. 비슷한 영화만 계속 나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관객의 관심이 없어지면 영화산업이 힘들어질 수 있다. 봉준호 감독처럼 이미 유명한 감독들은 자유롭게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어볼 수 있겠지만 그런 감독은 많지 않다. 특히 젊고, 데뷔하는 감독들은 모두가 기억할 만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어렵고 오래 걸린다. 새로운 도전이 어려워진 환경에 대한 걱정이 좀 있다.

-한국 독립영화상 시상식인 ‘들꽃영화상’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국영화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기생충> 이후로 사실 번역에 대해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이나 글을 써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나만이 아니라 새로운 좋은 번역가를 양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한국이 이제 영화를 만드는 시스템은 잘되어 있지만, 번역 시스템은 아직 체계가 별로 없고 특히 독립영화 쪽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좋은 번역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생각한 건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영화제작·기획도 하고 싶다. 또한 계속해서 국제적으로 한국영화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중간에서 양쪽 모두를 이해하는 저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제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다


달시 파켓(Darcy Paquet) 번역가
1972년 미국 출생
미네소타 칼톤 칼리지 러시아어 전공
인디애나 주립대 대학원 슬라브어학 석사
영화 웹사이트 코리안필름(www.koreanfilm.org) 개설(1998)
영국 영화산업지 <스크린 인터내셔널> 한국 통신원
미국 영화잡지 <버라이어티> 기자
한국 독립·저예산 영화 시상식 ‘들꽃영화상’ 설립(2014)
경희대 연극영화과 교수
現 코리안필름 대표
現 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
現 영화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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