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스에 관한 편견과 착각

[김동하의 컬처리포트]작품 세계관의 핵심은 유통이 아닌 ‘창작’에 있다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김동하 교수 입력 : 2020.11.04 09:26
▲김동하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
“유니버스의 가치와 ‘위버스’ 플랫폼의 시너지를 반영해 목표 가치를 14조원으로 제시한다.” 

얼마 전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군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상장에 관한 증권사 리포트 내용이다. 청약에 무려 58조원이라는 거대한 뭉칫돈이 공모에 몰렸으니 그야말로 ‘역대급’ 돈잔치였다.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건 냉혹한 여의도 증권가에 낯선 ‘유니버스’라는 단어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BTS의 유니버스, 즉 세계관을 이해하면 빅 히트엔터테인먼트의 기업가치를 더 높게 평가해줄 수 있다는 논리였다. 다른 증권사보다 많게는 8조원을 더 높게 평가한 핵심이 바로 BTS의 유니버스였다. 유니버스가 과연 무엇이기에.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가치를 수조 단위로 오락가락하게 만들었던 걸까. 
어른들이 뒤늦게 알아챈 BTS의 유니버스는 돈을 벌려는 많은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었을까. 하지만 우려했던 대로, 팬심과 투심은 달랐다. ‘따상상’을 외치던 바람과 는 달리, ‘따상’으로 출발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몇 시간을 버티지 못했고, 35만1000원에서 절반 이하인 17만원대로 떨어졌다. 물론 공모가 13만5000원보다는 높은 가격을 유지했지만, 상장 후 주가는 5일 연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작품 속 세계관 ‘유니버스’, 엔터테인먼트의 ‘핵심’ 
우주, 세계, 인류 등의 의미를 갖고 있는 유니버스(Universe)는 엔터테인먼트의 세계에서는 작품 속 ‘세계관’을 의미한다. 인간이 창작해낸 작품 속 세계, 그 속에서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는 가상의 세계관을 뜻한다.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디즈니를 예로 들면, 자회사 마블과 픽사의 수천 개 캐릭터가 활동하는 상상 속 세계를 말한다. 지구에서 활동 하는 복수자들(어벤저스), 은하계에서 활동하는 수호자들(가이언즈 오브 갤럭시)이 각자의 세계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곳이 바로 유니버스다. 실제로 국내에서 유니버스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 건 2008년 영화 <아이언 맨>으로 시작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마블의 영화적 세계관)부터였다. 

필자의 우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팬덤을 지닌 BTS의 세계관에 돈을 벌고 싶은 어른들이 끼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했다. 팬덤의 속성상, 이방인의 과도한 개입은 물을 흐리고, 또 팬덤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도 있기 때문이다. BTS 유니버스가 무한한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확장은 팬심으로 이뤄져야지, 어른들이 돈을 벌고 싶은 투심으로 이뤄질 순 없는 일이다.

미국, 일본 엔터의 유니버스…시간+물량의 힘으로 지속적 수익 
미국과 일본은 각자 독특한 유니버스로 엔터테인먼트 선진국 지위를 오랜 시간 누려왔다. 세계 1위 디즈니 진영의 마블과 세계 2위 AT&T와 워 너미디어 진영의 DC코믹스는 1938년부터 캡틴아메리카(1941), 슈퍼맨 (1938), 배트맨(1939) 등의 캐릭터를 만들었고, 이후 몇 세대를 거쳐 캐릭터의 세계관을 대물림해오고 있다. 적어
도 할아버지 세대가 누렸던 슈퍼맨과 캡틴아메리카의 세계관을 아들과 손자손녀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나이를 먹고 늙는 사람의 세계와 달리, 유니버스 속 캐릭터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얼마든지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 

미국이 SF(Science Fiction)로 불리는 공상과학의 세계관을 많이 창조해냈다면, 일본은 사람과 교감하는 ‘수호신’ 개념의 세계관이 많다. 휴대용 캡슐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포켓몬스터, 손목에 차고 다니는 요괴워치, 사람과 함께 싸우는 팽이 베이 블레이드 등이 다양한 캐릭터를 끊임 없이 쏟아내왔다. 동물의 세계관 역시 미국과 일본이 주도해왔다. 1928년 등장한 디즈니의 미키마우스가 ‘쥐’의 세계관으로 캐릭터 산업의 포문을 열었다면, 어른들에게 익숙한 톰과 제리는 1940년부터 쥐와 고양이의 세계를 결합했다. 대표적인 개의 세계관으론 1950년 등장한 미국 만화 ‘피너츠’의 ‘스누피’를 꼽을 수 있다. 미국으로부터 쥐와 개의 세계관을 수입하던 일본은 ‘고양이’의 세계관으로 반격을 꾀했다. 

일본의 대표 캐릭터 헬로키티는 공교롭게도 미국에서 스누피를 수입해 판매하던 산리오라는 회사에 의해 1974년 탄생했다. 산리오는 스누피 라이선스 사업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지속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자체적으로 고양이의 세계관을 만들기로 했다. 그 결과 헬로키티는 일본을 대표하는 ‘카와이’(かわいい) 문화의 첨병으로 자리매김했다. 

후발주자인 한국 애니메이션도 동물의 세 계관으로 글로벌 히트를 만들어낸 바 있다. 뽀로로와 친구들은 펭귄, 공룡, 북극곰, 새를 모티브로 만들어졌고, 해외에서 인기를 끌었던 넛잡 시리즈도 쥐의 세계관을 통해 만들어졌다. 미국과 일본 엔터테인먼트의 유니버스에서 간과해선 안 될 점은 세계관을 이뤄온 시간뿐 아니라 막대한 캐릭터들의 숫자다. 마블코믹스만 해도 80년 가까운 역사 동안 7000개 넘는 캐릭터들을 만들어냈고, 마블 공식 홈페이지(https://www.marvel. com/characters)에서 검색할 수 있는 것만 2590개다. 일본의 경우에도 포켓몬스터는 8세대에 거쳐 900개 가까운 몬스터들을 만들어냈고, 헬로키티 제작사 산리오의 경우에도 400 여개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우리가 기억하는 극소수의 캐릭터 뒤에는 수십 년의 시 간 동안, 수없이 많은 캐릭터가 명멸해왔다는 얘기다. 한국 엔터테인먼트는 영화, 애니메이션, K 팝을 중심으로 유니버스를 확장해가고 있지만, 아직 시간과 물량 면에서 충분하다고 할 순 없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2019년 부터 팬들과 소통하는 우리의 유니버스라는 뜻의 ‘위버스’를 론칭하며 본격적인 세계 관의 확장을 알리고 있지만, 이전에도 세계관 확장 시도는 있었다. 빅히트엔터테인먼 트는 넷마블과 BTS월드 게임을 만들며 게임 속 세계관으로 확장했고, 네이버 라인과 는 BT21이라는 새로운 캐릭터의 세계관을 만들었지만, 현실 BTS 그룹의 성장만큼 폭 발적으로 확대되지는 못했다. 

한국의 ‘구름빵’ 유니버스…핵심은 ‘작가’에 있다 
‘마법이다. 경이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이다’ 아동소설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크 리드 린드그렌상이 한국의 ‘구름빵’ 작가에게 상을 주면서 내린 심사평이다. 고양이가 가져온 구름으로 만든 빵을 먹으면 누구나 두둥실 떠다닐 수 있다는 작가의 작품 속 세계관, 즉 백희 나의 ‘구름빵 유니버스’를 심사위원단이 경이롭게 평가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상을 받은 건 구름빵을 만들어낸 백희나 작가지만, 구름빵의 모든 권리를 갖고 있는 건 출판사다. 

백희나 작가는 2003년 1850만원을 받으면서 체결한 ‘매절계약’으로 모든 권리를 잃었고, 1,2차에 걸쳐 캐릭터 저작권 만이라도 인정해달라고 소송했지만 모두 패소했다. 구름빵은 세계 10여 개국으로 번역돼 수출됐고, 뮤지컬과 애니메이션으로도 세계관을 확장 했지만 구름빵을 탄생시킨 원작자의 세계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런 저작권이 없는 작가에게, 세계 최고의 권위 있는 상이 수여된 아이러니한 현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작가의 상상력에 기초한 세계관이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마블의 헐크, 아이 언맨 등을 그린 미국 작가 스탠 리(Stan Lee)는 마블의 명예회장으로까 지 활동했지만, 구름빵을 그린 백희나 작가는 원고료 외 아무런 저작권 없이 소송비용까지 물어야 했다. 음악 등 분야에서 ‘인세’(印稅)제가 도입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표준계 약을 통해 매절계약을 방지하도록 하고 있지만, 업계는 신인작가들의 권리를 보호하기엔 부족한 면이 많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문화예술,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위해 정부는 많 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상당 규모의 지원사업이 영화 진흥위원회의 극장 할인쿠폰, 공연예술 관람료 지원사업 등 유통채널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와 유통채널로 투입한 지원금이 창작진영으로까지 흘러드는 ‘낙수효과’를 기대하기엔 너무도 심각한 상황이다. 창작준비금을 지원하는 창작디딤돌 등의 사업이 펼쳐지고 있지만, 중소, 영세 창작진영의 규모를 감안할 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유니버스는 마블과 BTS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흘려버린 수많은 음악, 영화, 게임, 소설들 속에 넘쳐흐르고 있다. ‘진흥’과 ‘지원’ 차원에서도 반드시 고려할 부분은, 유니버스의 핵심이 창작자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있다는 점이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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