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삼중적 지위와 국회 신뢰도

[김승기의 the 여의도]

전 국회 사무처 김승기 사무차장 입력 : 2021.02.05 10:00
▲전) 국회 사무차장
지금 대한민국에서 여의도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누군가는 국회의사당을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증권회사가 즐비한 한국의 월스트리트, 즉 주식시장을 떠올릴 것이다. 이 두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각각 정치와 경제의 핵심으로서 대한민국의 민심을 결집하고 반영시킨다는 점이다. 현대국가의 가장 중추적인 제도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꽃이 바로 여의도에 다 있다.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보려면 여의도를 보아야 한다.

지금 이 제도들은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주식시장은 작전세력 등을 비롯한 불공정거래의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산업자금의 조달과 배분, 일반 국민의 재테크 등에 나름 기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동학개미의 등장을 계기로 우리 주식시장은 그 규모의 확대나 제도의 개선에 일대 혁신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눈을 서여의도에 있는 국회로 돌려보자. 웬만한 국민들은 일단 한숨부터 쉴 것이다. 해외 외유나 가려 하는 놀고먹는 국회의원, 맨날 싸우고 성과라고는 없는 국회가 국민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다. 이러하니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완전히 바닥이다. 국민들이 스스로 뽑아놓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자리가 국회의원인데 이들로 구성되는 국회를 국민이 믿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s Survey)가 2018년에 우리나라에 대해 실시한 서베이(WAVE7 2017~2021)에 따르면 우리 국회는 다른 공공부문에 비해 매우 낮은 신뢰를 받고 있다(표1). 국회를 어느 정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은 20.7%로 5년여 전에 실시한 조사에 비해서도 4.8%가 더 떨어졌다(표2 WVS조사는 1981년 시작돼 매 5년주기로 실시된다). 재미있는 것은 국회에 대한 신뢰도가 1980년대 초반 권위주의 정권시절에는 매우 높았다가 1990년대 들어 급격히 낮아진 이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화가 최대의 당면과제였던 시절, 그래도 국회가 희망의 등불이었던 것일까? 민주화가 일정부분 달성된 뒤에는 국회에 대한 기대에 좌절이 왔던 것인가?

그런데 선진국 의회를 보더라도 그 나라 국민의 인식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표3). 스웨덴이나 독일 등 유럽국가들은 좀 나은 모양새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이나 일본의회도 신뢰도는 상당히 낮다. 특히 미국의회에 대한 신뢰감은 우리보다 낮아서 긍정적인 응답은 고작 14.8%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제도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대표자를 뽑아 이들로 하여금 공동체운영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뽑힌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국회를 신뢰하지 못한다니 이는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국회의 신뢰회복을 위한 방안 도출을 위해서는 다양한 접근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국회의원의 삼중적 지위분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영국 엑스터대학의 마이클 러시(Michael Rush) 교수는 영국에서 의원의 역할을 정당인(partisan role), 지역구 대변(constituency role), 정책심사(scrutiny role)의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우리나라의 국회의원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우선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특정 정당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고 원내활동을 한다. 무소속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없다. 정당은 소속 국회의원을 지원하고 든든한 배경이 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개별 국회의원의 소신에 반하는 정당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도록 규율하기도 한다.
국회의원은 당선된 순간 다음 선거를 생각한다는 말이 있듯이 다음 선거 당선은 국회의원 개인으로서는 최고의 목표다. 따라서 개별 선거구민 민원 해결이든 지역구사업 예산 반영이든 지역구 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민의 민심이 국회에 집약되고 민의에 따른 정치적 의사결정이 될 수도 있다.
정책심사기능은 국회의원의 전문성과 식견을 바탕으로 무엇이 국가 전체의 이익인지를 생각해 정부 정책 형성과 집행과정을 감독하고 독자적 법안을 발의하여 새로운 정책을 제안하고 정부법안 등 여타 안건을 심사 의결하며 예산안을 심의확정하는 등 의정활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헌법이 상정하는 국회의원의 본질적 역할이다. 우리 헌법 제46조 제2항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근원은 국회의원의 삼중적 지위 중 정당인과 지역구 대변인의 역할이 너무 큰 데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다음 선거에서 또 당선되려면 정당 실세에게 잘 보여 공천을 받고 지역구민들의 환심을 사야 한다. 사실 국회에서 국민의 비판이 집중되는 장면은 주로 정당 대 정당의 대결 국면이거나 예산국회에서 예결위 실세 의원들이 밀실담합으로 자기 지역구 예산을 많이 챙겼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을 때 등이다. 공익이 아니라 국회의원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이 들면 국민은 허탈해지고 국회를 믿을 수 없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대리인 이론이 적용되는 영역으로 대리인이 주인의 의도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현실의 국회의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삼중역할을 하느라고 정말 바쁘다. 어느 의원은 민원 해결과 관련된 일이 80%를 넘는다고 말한다. 다음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고 싶은 인간적, 현실적 욕구를 어이 비난할 수 있으랴. 이들의 시간이 국가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는 의정활동에 집중돼도 아니 여기에 더 집중될수록 재선가능성이 더 높아지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고민해야 할 때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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