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이 '노잼도시'? 알고보면 '감성러'들의 핫플도시

레트로와 트랜디가 공존하는 소제동, 칼국수의 고장을 가다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입력 : 2021.04.01 10:17

소제동 카페 '층층층'
대전시는 언젠가부터 ‘노잼 도시(재미없는 도시)’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친구가 놀러 오면 갈 곳이 없다”면서 붙여진 이 명칭이 이제는 대명사가 돼버렸다. 대전이 노잼 도시라는 얘기는 2019년 국정감사에서도 이슈가 됐다. 대전시 국감에서 시가 2019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대전방문의 해’ 홍보활동에 대해 한 국회의원이 저격하면서 회자된 것.

과연 그럴까. 기자는 허태정 대전시장 취재차 들른 대전시를 구석구석 돌아보기로 했다. 관광안내책자에 나올 만한 명소들은 스킵했다. 대전 출신 지인들에게 들은 사전 정보를 바탕으로 숨겨진 맛집과 명소를 찾기로 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소제동이다. 이곳에는 철도원들의 애환이 깃든 철도관사촌이 있다. 최근의 레트로(복고) 열풍과 함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해 있는 장소들이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다. 서울에 종로 익선동이 있다면 대전엔 소제동이 그랬다.

대전역 앞 조형물 ‘기적을 울리는 사람들’. 한국전쟁 당시 1만9000여 명의 철도인이 군 병력과 전쟁물자 수송 작전에 참가해 순직했다. 이 조형물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숭고한 넋을 추모하고자 광복 70주년과 제116주년 철도의날을 맞아 설치됐다.
대전은 경부선과 호남선이 교차한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1914년 호남선 대전역까지 개통되면서 대전은 근대 철도 도시로 급속하게 성장했다.

소제동은 약 100년 전 대전에 철도를 부설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소제호를 메우고 집을 지어 살았던 관사에서 시작했다. 1910년 대전역 주변에 남관사촌과 북관사촌이, 1920년대에 소제동 동관사촌이 생성됐다. 남관사촌과 북관사촌은 6.25 전쟁으로 파괴돼 거의 흔적이 없고, 동관사촌은 1960년대 옛 철도청 직원들에게 제공하면서 지금의 소제동 관사마을이 형성됐다.

대전역 2번 출구로 나와 동쪽으로 5분만 걸으면 시간이 멈춘 듯한 동네인 소제동을 만날 수 있다. 소제동은 오래된 이발소와 구멍가게, 세탁소 등이 있는 30여 개 골목길로 이어져 있다.

소제동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인 대창 이용원
그런데 오래된 가게, 빈집들 사이를 걷다보면 독특한 콘셉트의 공간들이 나타난다. 개성 넘치는 카페와 식당이 옛 골목 사이사이에 숨어 있어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게 만든다.

소제동의 이런 변화는 도시 공간 기획 스타트업 ‘익선다다’로부터 시작됐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의 도시재생 사업을 주도한 ‘익선다다’팀이 2017년 소제동 옛 관사를 개조한 카페와 음식점 10여 개를 열면서 골목은 대전의 새로운 핫플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소제동 디저트 가게 '베리도넛'
소제동 일본식 샤브샤브 음식점 '온천집'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 사막을 모티브로 한 음식점 솔트, 일본식 가옥과 온천을 콘셉트로 한 샤브샤브집 온천집, 태국 치앙마이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수플레팬케이크 전문점 볕 등은 평일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다. 풍뉴가와 관사 16호, 마당집, 두충나무집 등은 지난해 8월 문화재청에 근대 문화재등록 신청을 마쳤다.

이 중 대나무숲 카페로 유명한 풍뉴가를 찾았다. 수향길 골목을 들어가다 보면 대나무가 우거진 작은 숲이 나오고, 여기에 티 카페인 풍뉴가가 나온다. 풍뉴가의 대나무숲은 카페를 위해 조성된 것이 아니라 이전에 살았던 주민이 몸이 불편해 밖에 나가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마당에 하나둘 심었던 대나무가 수십 년이 흘러 숲이 됐다고 한다.

소제동 대나무숲 카페 '풍뉴가'
'풍뉴가' 대나무숲과 야외테이블
마당 안 가득히 하늘로 뻗어 있는 대나무숲은 풍뉴가를 대표하는 공간이자 SNS 인증샷을 위한 공간이 됐다. 들어오는 손님마다 청량한 대나무숲에 놀라고 이내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모습이 이곳의 인기를 실감하게 해준다. 이곳은 독특하게 카페이지만 커피는 팔지 않는다. 대신 차와 디저트, 자체 개발한 믹스티, 티칵테일이 유명하다.

대전역세권 소제동 철도 관사촌 일원은 삼성 4구역 재개발 사업에 포함돼 그동안 개발과 보존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최근 소제동이 대전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며 논란은 더욱 커졌고 시는 현장 답사와 심의회를 통해 일부 계획을 수정해 관사촌 보존에 무게를 실어줬다.

시는 삼성4 재개발사업구역 내 역사공원과 녹지공간 조성을 연계해 대전의 근대문화가 보존될 수 있는 공존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허 시장은 “대전역세권 일원을 국가경제를 이끄는 혁신도시로 조성하되 대전발전의 역사적 발자취도 잘 보전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소제동 투어를 마치고 나니 허기가 졌다. 대전하면 떠오르는 대표 음식은 ‘성심당’의 튀김소보로 빵이다. 하지만 이번엔 빵은 먹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허 시장이 추천한 칼국수 맛집을 찾아 나섰다.

허 시장은 “한국전쟁 직후 대전역에 전국으로 보낼 원조 밀 보관소가 있었고 주변에 제분공장이 많았다”며 “형편은 어렵고 밀가루를 구하기 쉬우니 가락국수, 칼국수가 흔해졌다”며 대전이 칼국수로 유명해진 일화를 소개했다.

대전은 매년 칼국수 축제를 개최하고 원도심을 비롯해 시내 곳곳에 3대·30년 인증 음식업소가 28개나 있을 만큼 칼국수에 ‘찐’인 도시다. 오씨칼국수, 공주칼국수, 복수분식, 미소본가 스마일칼국수, 신도칼국수, 대선칼국수, 한밭칼국수 등등 칼국수 맛집이 많아 고르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소제동에서 가까운 중구 대흥동에 칼국수 맛집으로 유명한 스마일 칼국수로 향했다. 뜨끈한 밴댕이 육수에 쑥갓이 듬뿍 들어간 들깨칼국수가 이 집의 대표 메뉴다. ‘백종원의 3대천왕’ 맛집이자 2019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67번째 생일을 맞아 이곳에서 칼국수를 먹기도 해 맛은 이미 보장됐다고 봤다.

스마일칼국수 매장과 메뉴판
대흥동 미소본가 '스마일칼국수'의 손칼국수와 김밥
특이하게 이곳은 손칼국수와 함께 꼭 시켜야 할 메뉴로 ‘김밥’이 있다. 이 집을 유명하게 만든 것도 김밥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먹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는 맛이라는 말에 다 먹지 못하더라도 꼭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에 김밥도 주문했다.

김밥은 맛살, 유부, 햄, 오이, 단무지 등만 들어간 평범한 비주얼이었다. 그런데 한입 먹어보고 왜 그렇게 추천하는지 알 수 있었다. 스마일칼국수 사장이 직접 만들었다는 간장조림 유부가 들어간 김밥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이곳에 간다면 꼭 칼국수와 김밥을 함께 먹을 것을 추천한다.

오랜만에 취재를 핑계삼아 핫플을 다녀온 김에 개인 SNS에 오늘 갔던 소제동 사진을 올리고, 지인들과의 단톡방에는 칼국수 맛집 순례를 했다고 사진을 전송했다. 생각보다 반응은 더 핫했다. 노잼 도시인 줄 알았는데 이런 데도 있냐는 반응이 많았다. 누군가 대전을 가야 한다면 자신 있게 추천해주고 싶은 루트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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