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은 서점처럼, 영화는 일본처럼?

[김동하의 컬처 리포트]극장, 서점처럼 마케팅 플랫폼화…양극화, 소비자 선택권은 ‘논란’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김동하 교수 입력 : 2021.09.06 10:34
▲김동하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
 대형 서점에 들어서면 눈에 확 들어오는 책들이 있다. 예를 들면 진열대 중앙의 높은 곳이나, 사람들의 이동 경로와 가까운 모서리에 진열된 책들이다.
‘분명 인기가 많으니까 잘 보이는 곳에 두었겠지…’라고 생각한 독자분이라면, 아마도 서점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닐 것이다. 

잘 보이는 책은 대부분 광고 또는 마케팅 비용을 내고 그 자리를 ‘구매’한다는 것을 오프라인 서점을 자주 애용하는 사람들 상당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는 책은, 잘 팔려서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몇 주에 얼마’의 마케팅비를 서점에 지불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극장의 순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분명 인기가 많으니까 1위에 올라와 있겠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과연 그럴까?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극장 3사의 영화 순위는 일반적으로 ‘예매율’로 매겨진다. 개봉을 했건 안 했건 미리 팔린 표의 숫자가 가장 많은 영화가 1위로 표시된다.

하지만 같은 날 개봉하는 영화라도 예매 가능 시간은 다르다. 마케팅 비용을 많이 쓰거나, 미리 대관을 많이 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는 일찌감치 예매를 열어놓고, 작은 영화는 개봉 직전 또는 당일에 예매를 연다. 순위를 매기는 출발 시간 자체가 다르다는 얘기다.

극장 주변의 커다란 영화 전광판이나 광고 포스터들은? 영화 배급사들이 극장에 돈을 주고 집행하는 광고다. 심지어 극장 3사들이 SNS에 올리는 영화 광고 역시, 배급사들이 극장에 돈을 주고 집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극장은 서점처럼, 영화는 일본처럼?

오프라인 서점과 극장 산업은 경쟁 시장을 표방한다. ‘몇 주간 1위’, ‘박스오피스’ 등과 같은 경쟁 시장의 언어로 소통한다. 하지만 실제 경쟁의 양상은 ‘온전한 시장 경쟁’과는 거리가 멀다. 소비자의 선택 이전에 자본의 논리가 깊숙이 개입되는 광고 마케팅 시장에 가깝다.
극장업은 이처럼 ‘마케팅 플랫폼화’된다는 점에서 오프라인 서점의 궤적을 따라가는 모습이다.
물론 이는 온라인 시장의 성장에 대응하기 위한 오프라인 서점과 극장의 전략이며, 생존을 위한 선택일 뿐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아마존과 예스24로 대표되는 온라인 서점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반디앤루니스, 교보, 영풍 등 오프라인 서점들은 ‘마케팅 플랫폼화’를 택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TV(IPTV)와 OTT 등 온라인 상영관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설상가상’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시장이 더욱 위축되면서 극장들도 전략을 바꿔가는 중이다.

하지만 서점과 극장 산업 내 작동원리를 두고 ‘공정한 시장경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K컬처의 핵심이자 한국영화의 주축인 극장산업, 이대로 괜찮은 걸까. 시장조성자, 즉 정부가 영화산업을 성장산업으로 판단한다면, 시장원리가 통하는 ‘공정한 경쟁시장’으로 육성해야 하는 건 아닐까.

▲조회일: 2021. 08. 26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http://www.kobis.or.kr)

짙어지는 양극화 속 위축되는 소비자 선택권
‘마케팅 플랫폼’ 시장의 대표적인 이슈는 ‘양극화’와 ‘소비자 선택권의 위축’을 꼽을 수 있다.
오프라인 서점의 경우, 매출은 ‘파레토의 최적’과 같이 일부 소수의 책에서 많이 발생한다. 광고 마케팅비를 많이 쓴 책일수록 더욱 좋은 매대에 오랜 기간 진열되면서 많이 팔리지만, 그 아래에 있는 수많은 책은 잘 보이는 매대로 올라올 기회를 얻지 못한다. 언제부턴가 서점은 일반 고객들이 책을 사지 않더라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많이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고객들이 찾아서 읽다가 두고 간 책은, 안 팔리면 그대로 출판사에 반품하면 그만이다.

극장도 유사한 흐름이다. 소수의 대작영화에 미리 예매를 열고, 많게는 10개 상영관 중 8개 이상을 한 영화에 ‘몰빵’한다. 특히 제작비가 없이 마케팅 비용만 회수하면 되는 할리우드 직배사들은 극장에 온 마케팅 비용을 집중하고, 미리 대관을 통해 예매율을 높인 채 개봉한다. 예매의 기회도, 상영의 기회도 얻기 힘든 수많은 중소영화는 일부 소수 영화들의 순위를 밑돌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비자 선택권이 위축되는 것도 주된 논란거리다. 일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한국영화 대작이 등장하면, 극장들은 많게는 80% 넘게 한 영화에 ‘몰빵’을 한다. 영화를 먹거리에 비유한다면, 우리가 어떤 마트에 갔을 때 생수와 라면이 잘나가는 PB상품 한 브랜드로만 80% 이상 진열돼 있는 모양새다. 소비자라면 이런 마트를 계속 이용하게 될까. 그나마 마트는 대안이 여럿 있지만, 극장은 대안이 거의 없다.

한국영화 <베테랑>(2015)과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엔드 게임>(2019)의 예를 비교해보자. 두 영화의 극장 관객은 각각 1341만, 1392만으로 나란히 1300만 명대의 관객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베테랑>은 전체 상영관의 34.3%까지 차지했지만, <어벤져스:엔드게임>은 81%까지 독식했다. 1000만 관객을 넘는 데 소요된 일수는 <베테랑>이 25일, <어벤져스:엔드게임>은 11일이 걸렸다.

최종 스코어는 비슷했지만, <베테랑>은 다른 영화들의 상영 기회와 다른 영화를 보고 싶은 선택권을 어느 정도 보장받은 채 1300만 명을 넘겼고, 4년 후 <어벤져스:엔드게임>은 다른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들의 선택권을 무시한 채 ‘몰빵’을 쳐서 이뤄냈다. 한국 영화산업에 바람직한 상영 행태는 둘 중 어떤 것일까.
▲※ 공개일=일본, 평가=주요 리뷰 사이트 100 환산 평균

영화산업, 일본의 전철을 밟을까

일부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한국 영화산업이 일본 실사 영화의 전철을 밟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 전 세계로 수출되던 일본 실사 영화의 성장세는 ‘잃어버린 20년’과 함께 멈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일본의 경우, 극장, 배급, 제작을 극소수의 독과점 대기업이 총괄하는 수직계열화 속에서 실사 영화의 다양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많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비슷한 흥행 공식으로 정체되는 매너리즘이 일본 실사 영화의 위기를 가져왔다는 얘기다. 실제 일본 영화계는 토호라는 수직계열화된 대기업이 50% 전후의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으며, 도에이, 쇼치쿠, 가도카와, 니카츠 등이 2위권에서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영화산업이 한국에 비해 ‘내수’가 탄탄하고 독립영화 리그가 활성화돼 있는 점은 주목할 점이다. 특히 소설 기반 애니메이션 시장이 전체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매우 크고, 다양한 장르의 독립영화도 많이 생산, 소비되고 있다.

아울러 할리우드 직배사의 시장 장악력이 높지 않은 것도 한국과는 다른 점이다. 할리우드 마블 스튜디오의 블록버스터가 개봉하더라도 한국처럼 장기간 1위를 차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실제 일본 최대 흥행작은 2019년 <날씨의 아이> 2020년 <명탐정 코난>, <귀멸의 칼날>과 같은 자국 원천 IP기반의 애니메이션이다.

영화가 ‘성장산업’이라면 R&D 육성이 필요하다

K컬처는 한국의 자랑이다. 정치권이나 지자체, 정부 모두 한국의 음악과 영화를 자랑스러운 성장산업이라고 외치며 파급효과를 향유한다. 기생충, 미나리 등의 영화뿐 아니라 봉준호, 박찬욱 감독, 윤여정, 송강호 배우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예다. 하지만 영화는 산업적으로 성장동력의 대접을 받고 있을까.

한국은 제조, IT, ICT 등 산업의 정부 지원 생태계를 탄탄히 구축하고 있다. ‘지원’과 ‘투자’의 2개 트랙으로, 스타트업 기업이 악마의 강, 죽음의 계곡, 다윈의 바다를 넘어설 수 있도록 지원과 투자 생태계를 조성해놓고 있다. 2021년 국가 R&D 예산 역시 27조4000억원이라는 막대한 규모다. 하지만 영화를 포함한 문화예술 R&D 예산의 비중은 미미하다. 그나마 펀드 출자 등에는 1000억원대의 자금이 투입되지만, 독립영화제작지원, 문화예술인창작안전망 구축 등으로 분산된 사업에 수십억 또는 수백억원의 예산이 흩어져 진행될 뿐이다.

한국 영화계의 간판인 극장은, 민간 극장 3사가 독과점한 시장이다. 야구로 치면 메이저리그만 있고 마이너리그는 없는, 극도로 양극화된 시장이다. 그런데 그 메이저리그마저 코로나 위기를 맞아 지원이 시급하다. 당장 극장 3사 중심인 상영관 협회는 극장티켓의 3%인 ‘영화발전기금’ 납부부터 유예할 것을 수차례 외치고 있다.

민간 사업자들에게 시장을 맡겨놓고 지원은 미미한, 극장산업의 위기는 한국 영화산업 전체의 악순환으로 번져가고 있다. 영화라는 자랑스러운 성장산업의 위기를 시장 조성자들은 방치만 하고 있을 것인가. 극장업을, 더 나아가 영화산업 전체 시장을 어떻게 조성해나갈 것인지, 진지한 고민이 시급해 보인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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