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휴먼의 광고열풍, 이유는?

[김동하의 컬처 리포트]‘불멸의 페르소나’로 각광, 창작 VS 모방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김동하 교수 입력 : 2022.04.08 16:46
▲김동하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
‘수아’와 ‘한유아’, ‘김래아’는 가수로 데뷔했다. ‘루시’는 쇼호스트로 활동 중이다. ‘아이’는 걸그룹 에스파 멤버이며, 미즈 쎈(Ms.XEN)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모두 ‘가상인간’ 또는 ‘버추얼 휴먼(Virtual Human)’으로 불리는 ‘디지털 휴먼’(Digital Human)의 이야기다. 2021년 언제부턴가. 새로운 ‘디지털 휴먼’ 인격체들의 경제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주로 모델과 가수 등 엔터테인먼트 활동을 하면서, 광고모델이나 인플루언서로 활발하게 활동한다.

자동차, 의류 등 소비재나 금융, 쇼핑 기업들은 디지털 휴먼들을 앞다퉈 모델로 섭외하며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왜 기업들은 많은 사람 모델들을 뒤로한 채 디지털 휴먼을 모델로 섭외하고 있을까? 모델료가 싸서?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휴먼 자체가 일종의 ‘페르소나’로 기획됐기 때문인 것 같다. 기획 과정부터 특정 ‘타깃 계층’의 성향과 캐릭터를 반영해 제작됐다는 의미다.

특정 계층 반영한 ‘불멸의 페르소나’
페르소나는 시장에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할 만한 목표 집단 안의 사용자 유형을 대표하는 가상의 인물, 가상의 타깃 고객을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가면이라는 말로 외적인 인격, 또는 공적인 얼굴을 뜻하며,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 자아의 어두운 면이라는 부정적 용어로 쓰인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감독의 분신이나 특정한 상징을 나타내는 배우를 의미하며, 마케팅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잠재 고객’을 의미한다.

디지털 휴먼의 제작은 기획단계부터 특정계층의 취향과 성격을 반영해 이뤄진다. 태생적으로 잠재 타깃, 즉 ‘페르소나’의 성향이 반영되기 때문에, 마케팅 측면에서는 ‘타깃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선택지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세계 최초의 대중적 디지털 휴먼으로 등장한 릴 미켈라의 경우, 기획 단계부터 영웅이나 우러러볼 대상이 아닌 사회적 소수자, 마이너리티의 페르소나로 지정했다.

릴 미켈라는 브라질, 스페인, 미국인의 혈통이 섞인 19세 여성으로 성 소수자다. 사회문제에 있어서도 진보적인 성향이다.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그녀의 인스타그램에는 해시태그로 #BlackLivesMatter라고 쓰여 있다. 흑인 인권을 존중하기 위한 캠페인이다. 삼성전자가 2019년 온라인 홍보 캠페인 ‘팀갤럭시(#TeamGalaxy)’ 4명 중 하나로 릴 미켈라를 택한 건 젊고, 진보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페르소나’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포문을 연 ‘로지’는 여행을 좋아하고, 춤을 잘 추고 즐기며, 패션감각이 독특한 22세의 여성 페르소나로 이른바 MZ세대를 겨냥했다. 인플루언서로서 제공하는 콘텐츠들도 MZ세대 자체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하면서 MZ세대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MZ세대를 겨냥한 소비재기업이, MZ세대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인플루언서를 활용하는 건 합리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로지. 출처: 인스타그램

사람의 ‘리스크’에서 자유롭지만…
더 나아가 사람 모델이 가진 ‘리스크’가 없다는 점도 장점이다. 연애, 스캔들, 음주, 마약, 학폭 등 논란에서 자유롭고 늙지도 않으며, 광고 스케줄을 걱정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2016년 19세로 등장한 릴 미켈라는 여전히 19세, 2020년 22세로 탄생한 로지도 여전히 22세다.

실제로 ‘디지털 휴먼’ 스타들은 유명해질수록,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다. 유명해져도 오만해지지 않고, 돈 문제로 소속사와 갈등을 빚지도 않으며, 멤버들끼리 불화가 일어날 가능성도 없다. 아울러 매니지먼트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인 스타의 ‘스케줄’ 문제도, 시공간을 초월한 무한복제가 가능하다.

물론 디지털 휴먼들이, 사람들의 식상함과 변화의 요구 등에 어떻게 부합하면서 활동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디지털 휴먼 스타들은 앞으로도 큰 리스크 없이 대중들의 취향에 다가갈 수 있는 ‘불멸의 페르소나’로 시장 참여자들의 많은 선택을 받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간 모델들의 위상과 일자리는 위협받을 것이고, 인간 모델은 또 다른 디지털 휴먼을 만들어 경쟁할 것이다.

인간 모델과 디지털 휴먼 모델, 휴먼 아이돌과 디지털 아이돌의 협력과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삼성전자 #팀갤럭시 광고. 맨 왼쪽이 디지털 휴먼 릴 미켈라

‘창조냐 모방이냐’ 두 가지 물결
디지털 휴먼을 만들어내는 방향 역시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완전 자유도가 높은 사람으로 만들어서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하는 3D형태의 디지털 휴먼이다. 디지털 가상세계에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가상 인간’ 즉, ‘Virtual Human’의 의미에 가깝다.

또 다른 하나는 현실의 인간을 복제한 형태다. 실제 스타나 유명인 등 특정 사람의 ‘클론’(Clone:유전적으로 동일한 세포군)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복제해서 보여주는 ‘클론형’ 디지털 휴먼이다. 구현하는 방식은 3D, 홀로그램 등이 있다.

전자가 새로운 인간의 창조라면, 두 번째는 현실 인간의 모습을 디지털로 복제한 형태다.
전자는 릴 미켈라나 로지처럼 새로운 인격과 캐릭터를 창조해낸 디지털 휴먼을 말한다. 한국 기업들이 만들어내서 모델, 가수, 쇼호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루시, 한유아, 김래아, 수아, 루이, 아이, 우주, 빈센트 등은 모두 새롭게 창조된 가상의 디지털 휴먼이다. 

이들은 특정 계층의 성향이나 취향을 데이터로 분석한 뒤 창조된 ‘페르소나’의 성격을 띠고 있다. 국내 초기 시장의 포문은 싸이더스X, 온마인드 등 중소기업이 열었지만, 대기업이 속속 뛰어드는 점도 눈길을 끈다. LG전자가 지난해 ‘김래아’를 직접 제작해 출시한 데 이어, 삼성전자도 브라질법인에서 활용하던 ‘샘’이라는 이름의 디지털 휴먼을 적극 투입시키는 모습이다.

후자는 메타버스 공간에서 클론, 홀로그램 또는 아바타의 형태로 등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휴먼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마이 유니버스’ 뮤직비디오와 MAMA에 등장했던 ‘디지털 슈가’를 꼽을 수 있다. 2020년 12월 한국의 MAMA 콘서트에서 BTS멤버 중 하나인 슈가는 어깨수술을 받는 관계로 공연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러자 BTS는 슈가의 클론을 공연장에 AR의 형태로 접목시켜 공연을 펼쳤다. 공연 초반 나타나지 않았던 슈가가, 공연 중간에 3D영상과 함께 디지털 휴먼 형태로 등장하자, 많은 관객은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진짜 슈가가 나타난 것으로 착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겠지만, 많은 현실세계 관람자들은 BTS의 완전체 공연으로 인식하기에는 부족함이나 거부감이 없어 보였다. 관객은 BTS의 완전체 공연으로 인식하고 즐겼다.
이처럼 현실 인간과 디지털 휴먼이 함께 하는 공연은 앞으로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멤버들의 스케줄과 컨디션을 늘 동시에 맞춰야 했던 많은 K팝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에게, 디지털 휴먼의 합동공연은 커다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볼보의 전기차 광고에 등장한 3인의 디지털 휴먼

아이돌, 배우 ‘클론’도 속속…‘IP’ 중요성 높아진다
두 디지털 휴먼의 운용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의 디지털 휴먼이 더욱 의미 있게 발전해나갈까. 아직까지 사람을 복제해서 보여주는 후자의 완성도가 전자에 비해 높지만, 발전 속도는 전자가 빠르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새로운 디지털 휴먼들이 이른바 불편의 골짜기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를 넘어서면서 새롭게 탄생 중이다. 모션캡처, 딥페이크 기술과 접목된 AI는 사람의 미세한 근육까지 데이터와 학습을 통해 지금도 새로운 디지털 휴먼들을 창조해내는 데 쓰여지고 있다.

후자의 경우 지적재산권(IP)을 소유한 콘텐츠 기업들에 큰 기회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현장에 있는 아티스트와 부재 중인 아티스트의 합동공연이 현실화된 것처럼, 경우에 따라 멤버 특성에 맞는 스케줄의 탄력적인 대응과 활용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살아 있는 아티스트와 고인이 된 아티스트의 협연도 ‘디지털 휴먼’의 공연형태로 가능해질 전망이다. 음악의 저작권과 공연권을 확보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라면, 아티스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음악 저작권뿐 아니라 공연권까지 활용할 수 있는 ‘롱 테일’ IP로의 활용이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에프엑스기어는 K팝 아이돌 그룹과 함께 디지털 아이돌 프로젝트 ‘나랑(NARANG)’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개별 멤버들의 클론 형태로 디지털 휴먼 아이돌을 제작, 모바일 콘텐츠 사업을 펼치는 프로젝트다. 먼저 그룹 BAE173의 멤버 남도현에 이어, 그룹 SF9 로운(사진)의 디지털 휴먼 아이돌이 출시됐다.

배우 진영에서도 동참하고 있다. 한 예로 살아 있는 배우 김수현은 2021년 말부터 가상의 김수현을 제작해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김수현 소속사인 골드메달리스트는 디지털 콘텐트 전문개발사 이브이알스튜디오와 함께 가상의 ‘3D 디지털 김수현’을 제작, 다양한 디지털 콘텐트에 활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전략이다.

앞으로 ‘클론’ 형태의 디지털 휴먼 제작이 활발해지면, 경쟁은 치열해지고 개발비용도 줄어들 것이다. 대한민국 아티스트 대다수가 디지털 가상세계에서 활동하는 ‘디지털 휴먼’을 함께 만들어낼 날이 오지 않을까.
현실세계 김수현이 나이를 먹는 동안, ‘클론’ 형태 김수현의 모습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는 아직 미지수다. 앞으로 십 년이 지난 시점에, 배우 김수현과 디지털 김수현의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지 궁금하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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