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曹操)의 덕목은 인재발탁과 적재적소

리더를 위한 북(book)소리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입력 : 2022.05.04 09:58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삼국지'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당시 학자 진수가 편찬한 정사(正史) 고, 다른 하나는 1100년 후인 원말명초 소설가 나관중이 정사를 바탕으로 쓴 소설 를 번역한 다. 우리는 대부분 나관중 소설 를 가지고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다.

진수는 말하길 “조조는 비범한 인물이며, 시대를 초월한 영웅”이라 했다. 당나라를 건국한 태종 이세민은 “난세의 영웅이자 뛰어난 군주로, 천하통일의 기반을 닦았다”고 했다. 

중국 개화기 문호 루쉰은 “세상의 어떤 잣대로 평가해도 문무를 겸비한, 최소한 영웅”이라고 했다. ‘중국의 붉은 별’ 마오쩌둥은 “조조는 인재발탁과 적재적소 기용의 대가”라고 했다.

조조에 대한 거물들의 평가가 이러함에도 우리가 유독 유비에게 우호적이고 조조에게 부정적인 이유는 원나라 몽골족을 몰아내고 한족(漢族)의 명나라가 다시 들어선 상황에서 나관중이 한나라 황실의 후예 유비 편을 든 데다 만동묘를 세워 망해버린 명나라 황실에 제사를 지냈던 조선 양반의 주류 노론의 기세에 눌린 탓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조조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씌운 대표적 사건이 동탁을 치려다 들켜 도망치던 중 부친의 친구 여백사 일가를 죽인 일이다. 이를 비난하는 진궁에게 “차라리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버리게 할 수 없다”고 했다는 대목인데 이는 정사에 없는 허구다. 조조가 여백사 일가를 죽인 진짜 이유는 당사자들만 알 뿐이다.

반면 조조는 귀천을 따지지 않고 전국의 인재를 공모해 발탁했고, 부패척결과 새로운 제도 도입에 머뭇거림이 없었다. 백성의 보리밭을 함부로 밟으면 참수에 처한다는 명령을 내린 후 자신의 말이 보리밭을 망치자 참수 대신 머리카락을 벴다는 ‘할발대수(割發代首)’도 조조 입장으로 보자면 솔로몬의 지혜에 버금간다. 

관도대전 승리 후 원소 쪽과 내통했던 첩자들 서신을 보고받자 불태워 없었던 일로 해버린 것도, ‘유핵관’(유비 핵심 관계자) 관우를 포섭하려다 실패하자 유비에게 가도록 용인해주는 것도 조조의 담대한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조가 참모들에게 잔혹했다고 하나 순욱은 이성계에게 정몽주와 같은 존재였고, 계륵(鷄肋)의 주인공 양수는 후계자로 조식을 밀다가 숙청됐다. 태종 이방원이 세종의 장인 심온을 미리 숙청했던 것처럼.

소설 가 최고로 치는 유비는 어떠했던가? 도원결의로 유비와 형제의 예를 맺은 관우는 적벽대전에서 참패하고 도망치는 조조를 화용도에서 살려 보냈다. 제갈량의 뜻과 반대로 유비는 관우를 군율대로 처벌하지 않았다. 손권의 화친제의를 모욕적으로 무시했던 관우의 오만 방자함이 형주 참패를 불렀고, 관우의 죽음은 이릉대전 참패와 장비, 유비의 죽음을 불렀다. 선공후사 대신 선사후공(先私後公)을 택했던 유비 리더십의 종말이었다.

건국의 기반을 다진 조조가 조비를 후계자 삼기로 결심을 굳혔으면서도 밖으로 후계갈등구도를 만든 것은 조비에게 불충할 ‘조핵관’들을 사전에 걸러내 통치안정을 꾀하려는 제후적 전략이었음에 후세들은 이런 조조를 이르길 ‘난세의 리더’라 했던 것이다.

▲<난세의 리더 조조> / 친타오 지음 / 양성희 옮김ㅣ더봄 펴냄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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