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프레임은 글의 격을 높인다

[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공허 프레임’도 있으나, 알맞은 ‘틀과 사례’는 내용을 고양

(주)글쟁이 백우진 대표 입력 : 2022.10.12 10:10
편집자주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백우진 글쟁이㈜ 대표
프레임, 씌우지 말고 짜자.
‘틀’을 뜻하는 ‘프레임’은 ‘씌우다’와 결합하면 부정적인 의미가 된다. 어떤 일에 특정한 프레임을 씌우면 그 일이 실제와 달리 그 프레임 안에서 곡해될 수 있다.

프레임 씌우기는 지양해야 할 행태인 반면, ‘프레임 짜기’는 적절히 활용할 기법이다. 잘 짠 프레임에 알맞은 사례를 담은 산문은 이야기를 다른 차원에서 흥미롭게 들려준다.
프레임 짜기는 ‘설정 잡기’라고 설명할 수 있다. 설정은 넓게 보면 은유에 해당한다.
내가 접한 과감한 설정 글로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버트 랜스(1931~2013) 소개 기사가 있다. 랜스는 지미 카터 대통령의 친구였고 카터 행정부에서 예산국장으로 일했다.

당신은 버트 랜스를 전에 본 적이 있다. 어디서 봤더라? 처음에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 떠오른다. 중동 어디인지 시장통에서였다. 그는 중동 전통의상에 터번을 두르고 좌판 뒤에 서 있었다. 그는 당신에게 낙타를 팔려고 한다. “싸게 드릴게.” 당신은 낙타 값을 놓고 그와 흥정하고 있다가, ‘참 나는 낙타가 필요 없지’ 하고 깨닫게 된다. 그래서 대신 깔개를 사게 된다. “정말 싸요. 이거 밑지고 파는 건데. 너무 싸게 주네. 이제 가난한 집구석에 가면 가족이 굶게 생겼어.” 그의 눈동자가 춤추고, 그는 절망한 시늉을 하며 손을 비빈다. 실은 당신은 그 깔개에 가치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치렀다. 그는 활짝 웃으며 떠나는 당신을 축복해준다. 이상하게도 당신은 기분이 좋다. 비록 당신이 그에게 넘어갔음을 알면서도.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올해 개점 42주년을 맞아 기획한 소책자가 있다. 〈우리 사이의 순간들〉이다. 소설가, 시인, 수필가 등 27인이 ‘책과 서점과 나’를 주제로 쓴 산문이 이 소책자로 엮였다.

김훈 작가의 프레임은 왜 공허한가
산문들 중 김훈 작가의 ‘네거리의 사랑’과 은희경 작가의 ‘나와 책의 순간들’은 프레임 짜서 쓰기를 보여준다. 두 산문의 프레임과 내용을 각각 살펴보자.
김훈 작가는 광화문에 공론장의 네거리가 있고, 그 지하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책은 “의문을 제기하는 시민과 해결을 모색하는 시민들을 길러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광화문 네거리가 공론장이었다는 프레임은 과거에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사대문’ 안에 주요 활자매체가 자리 잡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과장이 아니다.

‘시민들을 길러냈다’는 구절은 교보문고가 내건 문장인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를 떠올리게 한다. 이 구절은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동어반복적이지만, 개별적인 사례를 하나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은 ‘일반’과 ‘개별’을 적절히 조합했을 때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한다.

책은 ‘의문을 제기하는 시민과 해결을 모색하는 시민들을 길러냈다’는 문장은 ‘책은 시민들에게 의문을 제기했고 해결을 모색하도록 했다’는 의미일 듯하다. 그런 역할을 한 책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전태일 평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떠오른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유통한 책들은, 광화문을 중심으로 분포한 언론사들과 함께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그 역할의 주요 배역은 책과 저자, 출판사들이 맡았다. 유통자 교보문고는 조연이었다.(이는 저자 및 출판사, 서점의 역할 분담을 서술한 문장이고, 교보문고의 역할을 폄하하려는 의미는 없다.)

김훈의 산문 중 시공간의 프레임은 그 자체로 사개가 들어맞지 않는다.(사개란 상자 등에 서로 맞춰지는 모서리를 가리킨다.) 김훈은 광화문을 끼고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선은 ‘공간의 축선’이고 한강은 ‘시간의 축선’이며 광화문 네거리에서 두 축선이 교차한다는 프레임을 짰다. 한강도 흐르고 시간도 흐르고, 그래서 ‘한강은 시간의 축선’이라는 말은 그럴싸하다. 그러나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다. 시간은 한강뿐 아니라 지구 어느 공간에서나 흐른다. 광화문 네거리가 공간과 축선이 교차하는 곳이라는 프레임이자 의미 부여는 그래서 공허하다.

책은 친구요 독서는 저금이라는 설정
은희경 작가는 ‘나와 책의 순간들’에서 다음과 같은 프레임을 짰다. 책과의 관계는 우정을 나누는 친구 사이이고, 독서로 책에 수록된 내용을 자신 안에 쌓으면 그 내용은 은행의 예금처럼 언젠가, 또는 언제나 꺼내서 활용할 수 있으며, 서점은 그런 책을 가득 갖춰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즉, ‘나와 책의 순간들’은 책은 친구이고, 책과 독서의 관계는 돈과 예금의 관계라고 설정했다.

이 프레임 속에 그는 자신이 경험한 개별을 넣었다. 초등학생 때 책은 그가 보여준 충성도 높은 독서에 대해 국어 점수 향상이라는 작은 보상과 이해라는 큰 보상을 돌려줬다. 장편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짬짬이 들춰 읽은 책은 그의 생각과 감각의 날을 벼려주었다.

사진은 사각의 프레임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산문의 프레임은 사진의 프레임보다 역할이 크다. 동일한 내용을 잘 짠 프레임에 담으면 글의 격이 높아진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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