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이 글을 풍부하고 재미나게 한다

[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도입부를 남의 글로 시작할 수도…상투적 인용은 금물

글쟁이(주) 백우진 대표 입력 : 2023.03.15 10:24
편집자주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백우진 글쟁이㈜ 대표
1880년(고종 17) 제2차 수신사 김홍집은 주일청국공사관 참찬관 황준헌이 쓴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을 가져와 고종에게 바쳤다. 개화를 통한 부국자강(富國自强)을 꾀하던 정부는 이 책을 전국에 배포하고 관련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가 잇따랐다.

그중 경기도 유생 신섭(申.)이 올린 상소문을 일부 인용한다. 굵은 글자로 표시된 인용에 밑줄을 그으며 읽어보자.




(전략) 대체로 척화자들을 배척하면서 뻔뻔스럽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바로 왜(倭)를 비호하는 자입니다. 주자(朱子)가, ‘양주(楊朱)·묵적(墨翟)을 반대하는 사람은 곧 성인(聖人)의 편이다’라고 논하고, 또 말하기를, ‘만약에 사람이 도적을 잡을 때 어떤 사람이 보고 “도적은 잡아야 하고 죽여야 한다”고 하면 이 사람은 곧 주인편의 사람이지만, 만약 “도적을 용서해주어야 한다”라고 하면 이 사람은 곧 도적편의 사람인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중략) 지금 주인편의 사람으로 하여금 헤아릴 수 없는 지역에 몰아놓고 도적편의 사람으로 하여금 대낮에 큰길에서 의기양양하게 큰소리치며 다니게 하였으니, 형벌과 표창이 이로부터 원칙을 잃게 되고 언로(言路)는 이로부터 막힐까 우려됩니다.
(중략)

옛글에, ‘임금의 한 마음은 모든 교화의 근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만약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분별하고 진짜와 가짜를 살피려 한다면 마음을 밝게 수양하는 것보다 더 앞서는 것이 없으며, 만약 마음을 밝게 수양하려 한다면 학문에 힘쓰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중략)

경서에, ‘시키는 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반대되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전하는 죄 주어야 할 사람에게 상을 주고 상을 주어야 할 사람에게 벌을 주었으니 형벌과 상이 이로 말미암아 전도(顚倒)될까봐 걱정됩니다.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후략)
출처: 고종실록 18권, 고종 18년 윤7월 6일 병신 5번째 기사




신섭은 성현과 경전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조선시대 글은 이처럼 공자와 주자를 비롯한 성현이나 경전의 말에 자주, 혹은 지나치게 의존했다. 이 방식은 타성에 젖어들었고, 그래서 인용된 문장이 제 몫을 하지 않는 글이 많아졌다.

인용은 과하지 않고 적절하게
이 상소문을 들어 설명하면, 첫째 인용은 매우 뻔한 내용이다. 둘째 인용은 이후 서술 내용과 대응이 덜 이루어진다. 이후 서술에는 ‘신하와 백성을 가르치고 이끌어서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교화를 잘 수행하려면 임금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건의가 담겨 있으리라고 예상하는 독자가 많을 텐데, 신섭은 그저 ‘공부하시옵소서’만 외친다. 셋째 인용문은 이후 주장이 신상필벌임에 비추어 어울리지도 않고 그 자체로도 눈길을 끌지도 못한다.

이 사례는 구색을 맞추는 형식적인 인용의 실패를 보여준다. 그러나 인용은 글을 쓸 때 기본적으로 염두에 둬야 할 기법이다. 옛말을 인용한 이 상소문을 나는 내 글에 인용했다. 그래서 이 글은 인용문을 활용한 사례이기도 하다.
내가 첨삭 글쓰기 과정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인용을 전혀 하지 않는 필자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인용은 글을 풍부하게 한다. 적절한 인용, 독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두 재료를 엮는 인용은 생각을 자극하고 읽는 재미를 준다.

다음의 글에서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인용문이 제시되었는지 눈여겨 읽어보자. 아울러 인용이 적절한지, 효과적인지도 생각해보자.



(전략) 바람이 세면 만물은 숨을 죽이지만 그것이 한계에 이르면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당송팔가의 한 사람인 대문장가 한유는 그의 글 〈송맹동아서〉에서 만물이 소리를 내는 이치를 아래 글처럼 푼다. 〈송맹동아서〉 송판본(宋板本)은 청 건륭(乾隆,1736~1795) 때의 대수장가 조선사람 안기가 가지고 있던 그의 장서다.

만물은 평정(平靜)을 얻지 못하면 소리를 내게 된다. 초목은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면 소리를 내고, 물은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움직이면 소리를 내고, 물이 뛰어오르는 것은 부딪히기 때문이며, 세차게 흐르는 것은 한 곳에서 물길을 막았기 때문이며, 끓어오르는 것은 불을 지피기 때문이다. 쇠나 돌은 소리가 없으나 치면 소리를 낸다. 사람이 말하는 데 있어서도 이와 같으니 부득이한 일이 있고 난 뒤에야 소리를 낸다.

정치상황이 평정을 잃을 때 맨 먼저 소리를 내야 할 곳이 어딘가? 신문이다. (후략)
출처: 권도홍, 〈날씨 좋은 날에 불던 바람〉, 나남, 2010, 157쪽




견강부회가 아니라면,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인용은 효과가 크다. 진화론을 교향곡처럼 장대하고도 아름답게 서술한 책 〈핀치의 부리〉는 인용의 묘미를 곳곳에서 보여준다. 그중 ‘클레오파트라의 코’를 인용한 대목을 소개한다. 이 책 11장 ‘보이지 않는 해안’은 〈팡세〉의 유명한 문장인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를 인용하며 시작한다. (이 책은 각 챕터를 인용으로 연다.) 클레오파트라의 코 모양이 조금만 달랐다면 카이사르도 안토니우스도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테고, 알렉산드리아 전쟁도 악티움 해전도 치러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와 핀치의 부리
이 책은 클레오파트라의 코와 갈라파고스섬의 새 핀치의 부리를 어떻게 연결하나? ‘클레오파트라의 코’에 해당하는 핀치의 신체 부위는 부리라고 설명한다. “구혼할 때 핀치는 상대방의 부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다”라고. 그러면서 종분화는 “아주 사소한 일로 시작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장은 다윈의 코 이야기로 해당 대목을 마무리한다. 다윈이 피츠로이 선장을 만나 면접시험을 치를 때 선장은 다윈의 코를 못마땅해했다. “게으름뱅이의 코”라고 평가했다. 피츠로이 선장이 다윈을 퇴짜 놓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저자는 “우리는 〈종의 기원〉이나 〈인간의 기원〉을 구경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다윈의 부리가 하마터면 인간의 사유 전체를 바꿀 뻔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잠시, ‘클레오파트라의 코’의 은유를 감상해보자. 17세기 프랑스 학자 블레즈 파스칼이 〈팡세〉에 남긴 말은 앞의 인용문과 달랐다. 인용문의 번역은 원문의 묘미를 전하지 않는다. 원문을 충실히 번역한 문장은 다음 정도가 된다.

“만약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짧았더라면 세계의 얼굴은 전면적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국가 간 세력 판도를 나타내는 은유 문구로 ‘세계의 얼굴’을 썼다. 이 표현은 클레오파트라의 코와 조응한다.
이 참에 팡세의 해당 문단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 이 문단을 독자께서 언젠가 어느 글에 인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읽어보자.



인간의 허무함을 충분히 알고자 한다면 연애의 원인과 결과를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연애의 원인은 코르네이유가 말하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인데, 그렇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다. 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은 분별할 수 없을 만큼 미미한 것이지만 전 지구를, 황제들을, 군대들을, 전 세계를 진동시킨다. 만약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세계의 얼굴이 달라졌을 것이다.



인용을 꼭 책의 문장으로 해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 영화나 드라마의 한 대목을 글로 옮겨 인용해도 된다. 다음은 내가 영화의 한 대목을 인용해 쓴 글의 앞부분이다.



영화 〈도망자〉에서 아내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시카고의 외과 의사 리처드 킴블(해리슨 포드 분)은 호송 버스에서 탈출하게 된다. 그는 경찰에 쫓기는 가운데 자신의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 진짜 범인을 찾는 수사에 직접 나선다. 그를 체포하러 나선 연방 경찰 팀은 새무얼 제라드(토미 리 존스 분)가 이끈다.

제라드가 건물에서 킴블을 조우하고 추격하는 장면. 킴블은 건물 밖으로 도망친다. 거리에는 ‘성 패트릭의 날’ 퍼레이드가 지나간다. 킴블은 행렬에 섞여들고 행렬 속 다른 사람들처럼 녹색 모자를 써서 경찰들을 따돌린다.

시카고 토목의 역사를 알게 된 뒤 최근 이 장면을 다시 찾아봤다. 살짝 아쉬움이 들었다. 시카고 성 패트릭의 날 행사의 이색적인 광경이 배경으로 비쳐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이색적인 광경이란 시카고강이 녹색으로 물들어 흐르는 것이다. (하략)
출처: 지은이, 대한토목학회지, 2023년 3월호, 시카고강은 왜 역류하게 되었나?




중국 송나라 시인 구양수(歐陽修)는 글을 잘 쓰려면 삼다(三多), 즉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독해야 하는 이유는 인용에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많이 읽어야 인용할 거리도 많아지고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인용할 수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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