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민주적 불법적 공천은 한국 정치의 낙후성 산물

▲박상철 교수

한국정당공천론에는 총론과 각론이 있다. 추석 연휴 말미에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가 잠정적으로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의 도입은 총론적으로 볼 때 기본적인 취지와 민주적 절차에 있어서 일리가 있는 얘기이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노골적인 정치적 의도와 기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정당공천은 총론과 각론의 간극이 너무 크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가 정치개혁의 슬로건으로서 정당공천에서 오픈프라이머리의 도입을 내걸었지만 이것은 총론에 불과하고 각론적인 정치해석은 제18대와 제19대 총선의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후보와 같은 막강한 공천권 행사를 막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김무성 대표의 새누리당 공천개혁 시도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곱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야심작이었던 새누리당의 본래의 모습과 힘으로 국정운영의 동력을 삼으려는 것에 대하여 김무성 대표가 자꾸 새누리당의 변화와 변경, 변형을 시도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현재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당내 계파문제로 갈등과 파열음이 나고 있는 것도 19대 총선에서 여·야가 특정 계파를 중심으로 공천한데서 비롯되고 있다. 당시 한나라당은 비상대책으로 새누리당을 급조하였고 당명을 비롯한 당의 골격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중심으로 급격히 만들어낸 정당이어서 공천권을 독점할 수밖에 없었고, 새정치민주연합 또한 한명숙 대표를 비롯한 친노중심의 공천이 전광석화와 같이 진행되었다. 현재 여·야당의 계파간 대결구도는 19대 공천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정당공천이 어떻게 행사될지가 향후 한국정치를 좌우한다는 예측에 대한 확실한 증거이기도 한다.

비민주적·불법적 공천은 비민주적 국가 구성

정당공천이 비민주적이고 불법적일 때 비민주적 국가구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공천시스템에 있어서 민주성 확보는 현실 정치문제라기 보다 엄격한 헌법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 정당간의 경쟁은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나 정당 내부의 경쟁이 비민주적인데 심각성이 있다. 비민주적이고 자율성이 실종된 무책임한 정당공천시스템의 개혁 없이는 공직선거 자체의 민주화를 기대할 수 없게 되고 나아가 대의민주주의 근간마저 뒤흔들릴 수 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각 당의 공천은 비례대표후보 공천까지 포함할 경우 비민주적이고 불법적인 행태가 극에 달하였다. 제18대 총선에서 어느 한 당도 민주적 경선에 의한 공천을 하지 않았고, 비례대표공천의 경우 전문성과 소수자 대표성보다는 불법적이고 금품거래가 공공연한 비민주적·불법적 정당공천의 전형이었다.

 정치가치나 정치목표에 대한 고려 없는 용병들의 산술적 공천과 통합지분의 야합에 의한 공천게리맨더링(통합민주당), 대통령 친위정치세력공천과 반대세력의 배제공천(한나라당), 지역정당을 자처하는 전근대적 영입공천(자유선진당), 공당이 아닌 특정인 마케팅공천(친박연대), 당내 계파싸움을 극복 못한 진보정치세력의 분당공천(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개인사당화의 절정을 보인 사당공천(창조한국당) 등이 제18대 총선에 임한 한국 정당의 자화상이자 당시 한국민주주의의 현주소였다. 비민주적이고 불법적인 공천관행은 곧 비민주적인 국가구성과 직결되므로 한국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적인 문제라 할 수 있겠다.

비민주적·불법적인 공천과정은 그것이 선거이전에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선거결과에 대체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그 심각성은 배가된다. 이에 정당공천을 정당의 내부사항이 아닌 공직선거과정의 일부로 규정하여 일반선거원칙을 엄격히 규정할 것을 필요로 한다. 특히 한국 정당공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심각성과 공천개혁의 시급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초기 한국정당정치와 공천시스템의 부재

제1공화국의 초기 정당정치형태는 집권 여당인 자유당의 뒤늦은 창당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1948년 제헌의회선거와 1950년의 제2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는 정당공천시스템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전국적인 정당 조직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서 정당 차원의 선거지원이 거의 없었고, 정당의 공천과 당선은 별개 문제였다. 집권 여당인 자유당이 1954년 제3대 총선거를 앞두고 181명의 소위 공인후보자(무공인후보자 61명도 발표함)를 선정 발표하였으나, 정당공천제를 도입한 배경에는 선거 후 이승만 대통령의 중임제한을 철폐하는 개헌을 추진할 의도 아래 개헌에 찬성하는 인사를 당선시키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 있었다.

그러나 자유당은 개헌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무소속 국회의원 등을 영입한 후 소위 사사오입개헌을 단행하였지만 자유당의 공천은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수단 외에 당내 정적을 사전에 제거하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이대통령은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현역의원이 재선되어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 공천과정에서 배제하였고, 바야흐로 한국에서의 정당공천시스템은 이처럼 최고통치자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수단으로 첫 선을 보였다.

당시 자유당 간부들은 공천과정에 점수제를 도입하여 공천방식에 있어서 상향식과 객관적 기준 확보를 시도하였다. 당 총재인 이승만의 재가를 받는 과정에서 최고득점자 중에서 재가를 얻지 못해 낙천된 인사가 나옴으로써 공천과정을 상향식 방식에 의해 민주적으로 해 보려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정당공천제도가 형식적으로는 상향식을 추구하였으나, 중앙당의 최고지도자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하향식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한편 무소속이 자유당 다음으로 많은 숫자인 67명이 당선된 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선거결과는 정당공천 못지않게 개인적인 명망과 사조직의 위력이 만만찮았다. 그러나 당시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군소정당보다 대정당에 유리한 소선거구제였기 때문에 국회의원지망생들은 주요 정당의 공천을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며, 정당지도자들이 선거운동과 투·개표과정에서 정당의 역할을 강화한 결과 무소속이나 군소정당보다 대정당의 공천을 얻는 것이 더욱 유리해졌다. 1958년 총선을 앞두고 자유당과 민주당이 선거법 협상을 통해 투·개표 과정에 정당의 역할을 강화시킨 결과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효과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려면 정당 공천이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이승만정권이 붕괴된 후 내각제 개헌안이 통과되자 집권을 눈앞에 둔 민주당은 7·29선거를 앞두고 신구파간에 치열한 공천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정부형태와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크게 변했으나 공천제도는 여전히 하향식이었다.

정당의 비민주적 운영과 공천시스템의 마비

제3공화국은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민주공화당의 강력한 과두형 정당정치로 점철되었다. 무소속 출마를 금지하여 정당공천을 필수로 하는 한편 ｢정당법｣을 제정하여 정당 등록요건을 강화하였으며, 이러한 조치들은 군소 정당의 난립을 막아 양당제를 구현한다는 명분 아래 이승만과 장면 정권시기에 활약한 민간 정치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군부의 계속 집권을 용이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국구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지역기반이 약한 군부출신 정치인들이 국회의원에 충원되는 길을 열었다. 강력한 정당국가화는 1970년대 초까지 국회의원지망생들이 당선자를 많이 내는 주요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도록 더욱 재촉하였다.

한편 무소속 출마금지로 인해 각 정당이 당선가능성이 높은 인사에게 공천을 주는 조건으로 입당시키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민주공화당은 당선가능성을 고려하여 비당원인 구자유당 인사를 비롯하여 구정치인들을 공천하여 심각한 내분에 휩싸인 바 있었다.

최초로 도입한 전국구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공천은 더욱 심각하여 직능대표를 선출한다는 전국구 비례대표제의 본래 취지와 달리 집권당의 경우 지역구 기반이 허약한 군부출신 정치인이나 최고통치자에게 충성하는 사람을 공천하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야당의 경우 거액의 정치헌금을 받고 전국구 후보를 공천하는 것이 새로운 관행으로 등장함으로써 돈을 받고 국회의원직을 파는 결과를 빚기도 했다. 이런 관행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아 18대 총선에서도 소위 잘 알려지지 않거나 파렴치범이 특별당비를 고리로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된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여튼 전국구비례대표제의 도입은 중앙당 지도자 중심의 하향식 공천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972년 유신헌법에서 국회의원 정원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추천하도록 함에 따라 정당 공천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개정된 국회의원 선거법은 종래의 1구1인 소선거구제를 1구2인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로 바꾸고, 종래의 무소속 출마금지조항을 없앤 결과 과거에 비해 정당공천을 획득하려는 경쟁은 표면적으로 완화되었다. 집권당인 공화당이 1구2인을 선출하는 선거구마다 거의 모두 1명씩 공천을 하고, 야당인 신민당도 한 선거구에 1명을 공천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어서 공화당·신민당 후보자들이 쉽게 당선될 수 있었다.
제5공화국의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 또한 신군부세력의 군사쿠데타로 집권했기 때문에 민주공화당에서 나타났던 최고통치자의 공천권행사의 전횡은 변함이 없었다.

정당정치의 민주화와 국민참여경선제의 도입

1987년 민주화 이후 제6공화국에서 국회의원 공천과정은 여전히 비민주적인 가운데 선거제도가 대정당에 유리한 소선거구제로 환원되었기 때문에 주요 정당의 공천이 중요해졌다. 특히 강력한 지역정당구도가 형성되어 각 지역정당이 자기 지역에서는 선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의석을 독식하는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영남, 호남, 충청에서는 지역정당의 공천 없이는 국회의원이 되기 힘들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역 패권을 가진 정당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증대하고 정치자금을 비롯한 정치적 자원을 확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국회의원 공천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6·10항쟁 직후의 1987년 대통령선거와 1998년 국회의원선거가 그동안의 민주대 반민주 대립구조의 정당체계를 3김중심의 지역주의 정당체계로 탈바꿈시켜버렸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선거는 의회권력의 소수자였던 비영남진보진영을 의회권력의 중심 즉 의석과반석을 점하는 위치로의 정당체계 변혁을 가져다 준 또 하나의 정당체계 재편성이 있었다. 열린우리당의 등장이었다. 한국정당공천시스템의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서 각 정당이 정당조직의 특성에 맞지 않는 공천시스템을 시도하였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제17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국민정당을 지향하는 대중정당이기에 공천과정에 일반국민과 대중이 참여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진성당원의 한 유형인 기간당원제를 도입하여 민심과 당내의사결정의 괴리를 자초하는 우를 범했다. 기간당원이 동원되는 전당대회식 당내경선이 남발되면서 종국적으로 ‘경선제 무용론’에 봉착하였고, 이러한 잘못된 경험이 제18대 총선에서 경선 없는 비민주적 공천행태를 반론 없이 방조하게 된 결과를 빚은 지도 모른다.

지금의 제19대 국회는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당내 계파 파열음의 일반화 현상을 노정하고 있는데 이는 총선 공천 당시 특정 계파가 공천권을 독점하면서 이미 예견되었다. 현재의 여야 지도부가 오픈프라이머리, 국민공천제, 시민배심원제 등을 구호처럼 외치고 있는 것도 계파 독점 공천에 대한 반발이자 반성일 수 있다.

한국정당공천의 역사는 보잘 것 없고 갈 길이 멀고도 바쁘다. 정당공천 개혁의 핵심은 국민이 원하는 인물을 정당의 민주적 절차로 추천하는 것이다. 이를 제도적으로 표현하면 정당의 민주화를 완성하고 국민참여경선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각 정당이 자율적으로 책임있는 정치적 선택을 하여 각론적 해법을 내놓을 때가 다가왔다. 정당민주화가 어느 정도 달성된 정당만이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할 수 있고 국민참여공천제를 성공시킨 정당은 정당의 민주적 리더십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