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더 커진 ‘몰빵’…스크린 독점은 ‘무방비’

[김동하의 컬처리포트]코로나 속 심화되는 ‘승자독식’…‘두 마리’ 쫓다 멈춰선 정책들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김동하 교수 입력 : 2020.08.04 11:21
▲김동하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
한국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극장에 간다. 지난해 1인당 극장 관람 횟수는 평균 4.37회로 1위였고, 수년째 선두권을 지키고 있다.

한편 한국 극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몰빵’식 상영을 한다. 블록버스터 영화 1편의 좌석점유율이 많게는 80%를 훌쩍 넘는다. 하루 상영되는 영화의 수가 보통 100편이 넘는데, 좌석 10개 중 8개가 1편의 영화만 튼다는 얘기다.

가장 자주 극장을 가지만 선택은 가장 획일화된 아이러니한 현실. 주목할 점은 코로나 위기 속에서 이 같은 ‘몰빵상영’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점이다. 과점된 극장 생태계 속 스크린 독점을 둘러싼 논란과 방치된 정책 대안에 대해 짚어봤다.

10개 중 8개가 똑같은…극장이 선택한 ‘몰빵’상영
극장은 문화산업으로 분류되지만, 건설 부동산업과도 맥을 같이한다. 각종 개발사업과 맞물려 확산된 멀티플렉스는 세계 최고수준의 시설과 편의성을 자랑한다.
2019년 기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3사의 점유율은 98%. 확고한 3사 ‘과점’체제지만, 이들이 운영하는 약 3000개의 스크린은 ‘독점’의 양상을 띠는 경우가 많다.
‘좌석점유율’(이하 좌점률)과 ‘좌석판매율’(이하 좌판율)을 예로 들어보자. 좌점률은 극장이 미리 상영관을 배정하는 ‘극장의 선택’이라면 좌판율은 구매한 ‘관객들의 선택’이 반영된 지표라 할 수 있다. 상영관마다 좌석의 수와 상영 횟수가 다르기 때문에 ‘스크린 점유율’이나 ‘상영 점유율’보다 좌점률이 보다 정확하게 극장의 선택을 반영하는 지표다.
<반도>개봉 후 스크린 및 좌석 통계, 출처:영진위 통합전산망

영진위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18년 마블의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경우 개봉 첫 주 토요일 좌점률이 85%로 최고치를 찍었고, 최근 개봉한 <반도>도 같은 날 83.1%를 기록했다.
좌석 10개 중 8.3개에서 1편의 영화만 볼 수 있다는 건, 반대로 다른 100개의 영화를 볼 수 있는 좌석은 10개 중 2개도 안 된다는 의미다.
관객들의 선택이 반영된 좌판율의 경우,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개봉 첫 주 토요일 77%까지 치솟았지만, 반도는 같은 날 22.8%에 불과했다.

스크린 수≠흥행, ‘무리수’ 우려도

지난 18일 <반도>가 확보한 2575개의 스크린은 <어벤져스: 엔드게임>(2835개)과 <겨울왕국2>(2648개)에 이어 역대 3위로 많았다. 6월 말 개봉한 <#살아있다>의 경우에도 스크린 수는 1882개로 역대 18위였다.
극장들은 70% 넘는 좌석이 텅텅 비는데도, 이렇게까지 몰빵을 하는 이유는 뭘까. 일단 모처럼 개봉한 대작을 위해 최대한 많은 좌석을 미리 깔아놓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코로나 이후 수십여 편의 영화가 개봉을 연기 또는 포기하면서 CGV 가맹점의 30%, 롯데시네마의 20%가 폐업 또는 휴업을 했다. 100만 명을 넘던 평일 관객 수가 2만 명대까지 줄었으니 극장의 피해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주목할 건 다른 영화들의 희생을 수반하는 스크린 독과점이 정작 흥행순위로 직결되진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영화 역대 1~3위 흥행작인 <명량>, <극한직업>, <신과함께-죄와벌>은 2000개 미만의 스크린에서 상영됐고, <국제시장>과 <아바타>는 1000개 미만의 스크린으로 각각 4위와 8위를 차지했다.
위기를 헤쳐가기 위한 극장의 스크린 독과점은 영화 제작, 배급업계를 ‘승자독식’의 벼랑으로 모는 무리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블록버스터’급 영화의 흥행불패는 깨진 지 오래, 중소영화 생태계의 몰락은 극장 자체의 생존에도 부메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묵은 난제 ‘스크린 독과점&수직계열화’ 모두 ‘원점’

한국 영화계의 해묵은 쟁점 두 가지로 ‘스크린 독과점’과 ‘수직계열화’를 들 수 있다. 스크린 독과점이 극장업계의 이슈라면, 수직계열화는 제작, 투자, 배급, 상영을 아우르는 영화업계 전반의 이슈다.
한국 영화계의 HHI(허핀달-허쉬만지수: 시장 집중도 측정지표로 4000이상은 독점, 1800~4000은 과점으로 분류)는 2019년 배급, 투자 모두 2440을 웃도는 과점이며, 상영은 3641로 독점에 육박한다.

문제는 수직계열화와 스크린독과점이라는 두 가지 쟁점 모두 방치돼 있다는 데 있다. 미국은 1948년 일명 파라마운트법을 통해 5개 과점 사업자의 상영과 배급 겸영, 즉 수직계열화를 일찌감치 끊었고, 프랑스는 한 영화의 상영비율을 30%이하로 제한함으로써 스크린 독과점을 끊었다. 

한국에서는 총 13개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통과되지 못했다. 2016년 대선후보였던 안철수 의원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도종환 의원도 스크린 독과점과 수직계열화 두 가지를 모두 해소하는 영비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2017년 조승래 의원은 수직계열화는 허용하되, 스크린 독과점을 40% 수준에서 막는 법을 발의했고, 2019년 4월과 2020년 2월 우상호, 김영춘 의원도 각각 스크린 독과점을 50%, 40%로 막는 법을 발의했지만, 20대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올해 4월 문화체육관광부는 늦게나마 한 영화 스크린의 상한선을 두는 ‘스크린 상한제’와 50% 상영관 점유 영화를 전산망에 표시하는 ‘공정신호등제’를 빠르게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까지 수직계열화된 극장들의 ‘몰빵상영’은 더욱 심화되는 추세이며, 코로나로 힘겨운 여름 극장가는 <#살아있다>, <반도> 두 편의 좀비물 일색이다. 공교롭게도 지난 6월 추진한 영진위의 할인권 지원 혜택은 좌점률 64.2%를 차지한 대기업 롯데의 <#살아있다>가 가장 많이 누릴 수 있었다. 

▲역대 스크린 최다확보 영화 1~3위, 출처:영진위 통합전산망

변화가 필요한 때…메이저&마이너 리그 함께 살려야
코로나 확산이 한창이던 지난 4월. 유니버셜픽처스의 <트롤: 월드투어>는 극장에 최초 공개한 뒤 시간을 두고 VOD에 서비스하는 ‘홀드백’(holdback) 방식을 깨고 VOD와 동시 개봉을 택했다. 가격은 2만원, 3~4인 가족이 함께 보면 극장보다는 싸겠지만, 극장을 위협하는 파격적인 가격임에는 분명했다.
극장 점유율 80%를 차지하는 CGV와 롯데시네마는 <트롤: 월드투어> 동시개봉을 거부했고, 메가박스만 동시개봉을 택했다. 3년 전 봉준호 감독의 <옥자> 개봉 당시에는 메가박스도 CGV, 롯데와 함께 넷플릭스와의 동시 개봉을 거부했었다.
극장업은 분명 위기다. 넷플릭스, 웨이브 등 OTT 플랫폼들이 개봉관 역할을 자임하고, ‘롱테일 이코노미’가 확대되면서 부가판권 시장은 극장매출을 넘볼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극장은 앞으로도 최초개봉의 원칙과 대마불사식의 독과점 허용 전략을 고수할 수 있을까.
▲역대 스크린 최다확보 영화 1~3위
극장업이 코로나 이후 위기라면 영화 제작, 투자업은 코로나 전부터 위기였다. 개봉한 영화들 중 돈을 버는 영화는 평균 3분의 1도 안 된다. 지금의 위기는 극장까지 빠져든 업계 전반의 심각한 위기다. 위기에 번지는 ‘승자독식’과 ‘몰빵’을 정책 결정자들이 방치하는 건, 위기를 방조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극장도 요즘 말 많고 탈 많은 부동산과 임대관련 업이다. 기본 소득을 넘어 기본주택 개념까지 나오는 마당에, 기본 상영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상영기회를 줄 방법은 없을까. 마이너리그의 울타리를 쳐주는 일은, ‘경쟁의 공정성’ 측면에서도, 메이저리그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지 않을까.
수직계열화건 스크린독과점이건, 이번만큼은 한 마리라도 잡길 바란다. 모두 양치기가 되기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많이 본 기사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