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가라’… 新세대의 이유 있는 ‘판타지’ 생활

청년세대 웹소설,웹툰은 新판타지 전성시대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김동하 교수 입력 : 2020.12.04 11:10
 
▲김동하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
노력하면 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주경야독하며 자수성가를 이뤄낸다.’ 
어느새 희귀해진 말들이다. 요즘 주류로 부상하고 있는 신세대 웹 콘텐츠 세상 속에서 말이다.
자고 나니 재벌
눈 떠보니 미녀 검사
전지적 싸움 짱

청년들이 열광하는 웹소설, 웹툰 업계는 그야말로판타지전성시대다. 기성세대들이 즐기던 성장 스토리, 혈혈단신으로 자신의 능력을 키워가며 성장해가는 스토리는 웹 콘텐츠 업계에서는 철저하게 외면받고 있다
하물며라떼는 말야’.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젊은 애들이 패기가 없어처럼 지금도꼰대소리 듣기 쉬운 이야기들은, 교훈은커녕 풍자의 소재로 등장한다.
작품 속 세계관의 개연성을, 주인공의 노력과 성장보다는 판타지와 환상이 채워가는 모습. 지금 우리의 후배세대들이 소비하는 문화의 대표적 단면이다. 너무나 높은 현실의 벽이 작품 속 개연성까지 막아버린 탓은 아닐까.
 
▲웹소설 시장 전망에 대한 인식/자료=한국콘텐츠진흥원
◆‘자고 나면’, ‘전지적’…한국형 판타지 전성시대
학교 다닐 때 날 지독하게 괴롭힌 너 때문에 난 인생이 망했어. 그런데 왜 넌 안 망하고 오히려 더 떵떵거리며 사는 거야? 너도 한번 내가 되어서 너한테 똑같이 당해봐!!’
 
요즘 네이버 웹툰에서 인기 상위권에 랭크된 작품인생존망의 로그라인이다. 학원폭력에서 비롯된 갈등과 치열하고 처절한 싸움, 그리고 통쾌한 복수가 펼쳐진다. 하지만 나약했던 주인공이 자신의 몸을 갈고닦고 훈련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영화 <록키>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평범했던 청년이 치열하게 몸을 수련해서 성장해나가는 과정도 없다.

해법은 몸과 영혼이 뒤바뀌는 형태의판타지’. 기존의 판타지가 약자가 강자의 몸으로 바뀌는 형태였다면, 이번엔 강자가 자신이 괴롭혔던 과거 약자의 몸으로 들어와 과거의 자신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또 다른 형태다.

판타지라고 해서 허무맹랑한 전개로 이어지는 건 결코 아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가정으로 출발하지만 판타지 속 세상에서의 전개는 매우 섬세하게 펼쳐진다. 이 작품에서는 학원폭력의 실태를, 패거리 문화의 잔재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면서 하나하나 과거의 원한을 해결해나간다.
▲웹툰 <전지적 독자 시점>
이건 내가 아는 그 전개다. 한순간에 세계가 멸망하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오직 나만이 완주했던 소설세계에서 평범했던 독자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웹소설의 새로운 역사를 쓴 기념비적 작품전지적 독자 시점의 로그라인이다. 웹소설에서 웹툰에 이어 영화화까지 시도되고 있는 이 작품 역시 소설 속 세계를 오가는판타지로 출발한다. 웹소설이 포문을 연전지적시점은전지적 참견시점이라는 TV프로그램으로, 다양한 형태의 전지적 판타지 작품들로 지금도 확장되고 있다.

황제, 황후, 공주 등 자유로운 신분상승을 꿈꾸는 형태의 판타지 웹소설도 고공행진이다. ‘황후는 재혼하면 안 돼?’라는 파격적 로그라인으로 40억원의 매출을 올린재혼황후는 웹툰에 이어 드라마화를 앞두고 있고, ‘황제의 외동딸’, ‘이세계의 황비를 제작한 디앤씨미디어는 상장사로 성장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 <김비서가 왜 그럴까?> 등의 TV드라마 역시 웹소설 원작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아무리 몸이 바뀌고 초능력을 갖거나 황제가 될지언정, 그 이후의 전개에서 개연성이 부족하면 독자들의 외면을 받는다. 현실을 초월한 세계관이지만, 매우 섬세한 판타지. 청년들이 소비하는 웹콘텐츠의 주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전례에서 본 판타지의 미래
유체이탈을 통한 판타지 작품은 앞서 일본의 전례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 373만 명의 관객을 모은 일본의 대표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 1000년 만에 다가오는 혜성의 기적이라는 모티브로 도시 소년과 시골 소녀의 몸이 서로 뒤바뀌는 신기한 판타지에서 출발한다.

 일본 영화계는 실사 영화에서도 현실과 거리를 둔 판타지성 작품들이 주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의 사건들 속에서 개연성을 찾는 대신, 현실을 도피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로 흘러가는 작품이 많다. 2017년 개봉한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께>는 직장생활에 지친 샐러리맨이, 과거에 죽었던 친구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로 출발한다. 소설, 애니메이션에 이어 2018년 영화로도 개봉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작품도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하는 주인공의 시간여행으로 펼쳐진다.

미국 할리우드가 마블코믹스, DC코믹스 등 히어로 캐릭터를 소재로 시공간을 오가는 ‘SF’물이 주류라면, 상대적으로 일본의 판타지는 현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펼쳐지는 작품이 많다. 반면 한국 영화계는 아직까지 크게 흥행한 판타지물을 찾기 어렵다. <명량>, <남한산성> 등 역사적 사건에 근거한 작품들이 든든한 한 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군함도>역사왜곡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적 사건의 개연성과 고증은 영화의 흥망을 좌우하는 민감한 요소다.
▲웹소설 <구르미 그린 달빛>
이런 한국 영화계도 서서히 판타지를 품고 세계관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미래 디스토피아를 소재로 한 <사냥의 시간>, 외계로 간 <승리호>, 그리고 1~2년 후에 선보일 한국영화역사상 가장 큰 프로젝트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의 서브컬처가 제시한 판타지의 방향성이 할리우드식 SF 판타지로 뻗어나갈지, 일본식 근거리 판타지 쪽에 가까워질지. 한국 영화계의 앞날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라떼는 말야가 꼰대스러운 이유
자고 나니로 비유될 수 있는 청년세대의 판타지 소비를 걱정하는 어른들도 많다. ‘무협이라는 판타지로폭력에 대한 욕망을 충족하고, ‘BL’(보이 로맨스)이나하드코어장르로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청년세대들이 불안하고 위험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성세대들이라떼는 말야라며 청년들을 계도하기 전에, 그럴 자격이 있는지도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현실세계의 벽이 높을수록 작품 속에서나마 세계관을 관장하고 싶은 청년들의 판타지는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이들이 판타지의 세계로 이끌리게 만든 건, 어쩌면 기성 재벌, 기성 박사, 기성 집주인들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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