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레터]대의도 명분도 사라진 추-윤 싸움

머니투데이 더리더 서동욱 기자 입력 : 2020.12.04 16:51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은 추 장관 취임 후 실시한 윤 총장 측근 배제인사, 총장 대상 감찰 지시, 3번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10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누적된 긴장관계는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정면으로 표출됐습니다. 결국 추 장관은 윤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와 징계청구 카드를, 윤 총장은 법원에 자신에게 내려진 처분을 정지시켜달라는 집행정지신청을 내는 등 법적 대응에 들어갔습니다.

검찰 수사를 총괄하는 현직 검찰총장이 정권과 충돌하며 갈등을 겪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 당시 박종철 검찰총장은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 수사를 두고 권력 핵심층과 갈등을 빚다 취임 6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김각영 전 검찰총장은 2003년 3월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뇌부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자 바로 사직했습니다. 김종빈 전 총장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천정배 당시 법무장관이 헌정 사상 최초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불구속 수사를 지시한 것에 반발해 옷을 벗었습니다.

채동욱 전 총장은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유리한 댓글을 조직적으로 작성했다는 이른바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한 수사를 이끌다 사생활 의혹이 한 언론사의 보도를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채 전 총장은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감찰 조사를 지시하자 실제 감찰이 이뤄지기 전에 사표를 냈습니다.

정권과 검찰총장의 불편한 관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오랜 기간 법무·검찰이 서로를 적대시한 적은 없었습니다. 직무정지 처분과 법적 대응 역시 헌정사에 전례가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검찰 전체가 정치판이 돼 버렸고 현직 검찰총장이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로 부상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빚어졌습니다.

싸움이 길어지다 보면 각자가 내세웠던 명분과 대의는 바래집니다. 윤 총장이 어떠한 권력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정의로운 검사인지, 조직의 기득권과 개인적 야망을 쫓는 정치검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추 장관의 행위가 진정한 검찰개혁을 위한 것인지, 정권의 안위를 위한 정치적 선택인지도 불분명해 집니다.

과정이 편법과 꼼수로 얼룩지긴 했지만 어쨌든 검찰개혁의 핵심 과제로 여겨지던 공수처는 발족할 것이고 내년 1월 1일 부터는 검찰의 직접수사 개시 범위를 제한하는 등 검경수사권을 대폭 조정한 형사소송법도 시행됩니다. 남겨진 검찰개혁 방안은 180석에 가까운 여당의 입법권력으로 얼마든지 법제화할 수도 있습니다. 추 장관과 윤 총장 싸움이 ‘명분’이 아닌 ‘감정’으로 비화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정치권의 관심이 양자의 갈등에 빨려들면서 시급한 민생과제 해법 마련과 입법을 위한 국회 움직임은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이번 정기국회는 12월 9일 끝납니다. 얼마 안 남은 회기를 정치공방으로 보내다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과제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sdw70@mt.co.kr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