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창업 생태계, ‘승자 독식’은 끝내자”

[김동하의 컬처 리포트]기회 부족한 열정적인 창업자에게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을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김동하 교수 입력 : 2021.01.04 10:02
▲김동하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
<1> 여러분이 청년창업지원사업의 심사위원이라고 해보자. 과연 여러분은 누구에게 높은 점수를 주겠는가?
① 평범하지만 발표 잘하는 대졸 창업자
② 천재성이 엿보이지만 발표를 잘 못 하는 고졸 창업자

<2> 여러분이 모태계정 청년창업펀드를 운용하는 심사역(벤처캐피털리스트)라고 해보자. 과연 여러분은 투자대상으로 어떤 회사를 선호하겠는가?
① 스펙 좋고 네트워크 좋은 모범생형 창업자
② 스펙도 네트워크도 부족하지만 기업가정신이 넘치는 창업자

<3> 여러분이 중소벤처기업부 K-스타트업 오디션의 심사위원이라고 해보자. 과연 어떤 사업 아이템을 선택하겠는가?
① 정책 트렌드에 부합하는 인기 분야지만 예측가능한 아이템
② 정책 트렌드에는 안 맞지만 돈을 벌 것 같은 참신한 아이템

질문을 던져놓고 무책임하게도 정답은 없다. 하지만 질문 속 ‘딜레마’를 통해, 청년창업 생태계가 흘러가는 흐름을 예측해볼 수는 있겠다.
<1>, <2>번 질문은 필자가 현장에서 직접 느꼈던 딜레마를 토대로 만들었다. <1>번의 경우, 아마 많은 ‘지원’사업의 심사위원들이 마음속으로 2번 창업자를 택하고 싶어도 1번에게 높은 점수를 줄 것이다. ‘지원’이라고 하면 기회가 닿기 어려운 사람에게 주어져할 것 같지만, 보다 안전한 1번을 택하기 쉽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한 가지는 스펙도 발표능력도 부족한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간 주관적 ‘특혜’ 소리 들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실적’에 민감한 주관기관의 입장 때문이다. 자신을 심사위원으로 불러준 기관에게 필요한 건, 자칫 골칫덩어리 천재보다는, 당장 협약기간 내 숫자로 보여지는 매출, 수출, 고용, 특허 등의 실적과 서류 등의 관리효율일 가능성이 높다.
<2>번 질문은 민간펀드 심사역이라면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부처의 자금이 들어간 ‘모태계정’펀드 심사역이라면 1번을 택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펀드의 목적성 투자대상이 ‘청년창업기업’인 만큼, 대부분 초기기업으로 투자 후 ‘엑시트’를 하려면 한동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때문에 후속 투자유치로 밸류에이션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택하기 마련이다. 스펙과 네트워크는 후속 투자유치의 ‘그림’을 그리는 데 좋은 재료다. 자금만 있으면 사업 아이템을 ‘피보팅’(수정변경)하거나, 경영진을 흔들어서라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자금이 없으면 아무리 사업 아이템이 좋아도 소리 없이 망한다. 좋은 사업 아이템이면 시장이 알아서 투자해줄 것이라는 환상은 현실에선 통하지 않는다.
‘리스크 회피’도 이유 중 하나다. 투자가 실패로 돌아간 후 모태펀드의 눈총을 덜 받으려면, 1, 2번 중 어떤 회사를 택하겠는가. 모태펀드는 벤처캐피털의 주된 수입원인 ‘수수료’를 깎을 수 있는 가장 큰 투자자이자 관리자다.
<3>번은 경험 없이 상상해본 질문이다. 하지만 필자가 실제 심사위원이라고 상상해보면, <2>번을 택하고 싶어도 <1>번 아이템을 택할 것 같은 ‘두려움’은 있다. 정부가 대규모로 자금을 투입하는 사업이라면, 당연히 성과가 있어야 하고 홍보효과도 있어야 한다. 인기 있는 뻔한 아이템을 버리고, 인기 없는 참신한 아이템을 선택할 배짱 있는 심사위원은 얼마나 될까.


‘청년 스타트업’의 시대, 정부·지자체·공공기관 ‘총출동’
‘스타트업’. 정의조차 뒤죽박죽인 단어지만, 화두긴 한가보다. 같은 제목의 드라마까지 방영되고 있는 데다, ‘청년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으로 조 단위의 지원금과 출자금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질문들처럼, 위험을 감수하며 고수익을 추구하는 ‘벤처’의 정신은 여러 상황에서 ‘정부’의 입장과는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양립할 수 없는 ‘딜레마’ 속에서도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들은 앞다퉈 ‘청년창업’, ‘초기창업’류의 이름으로 지원금과 출자금을 확대하고 있다(다만 새해 모태펀드 출자사업의 우선순위는 청년, 초기창업에서 코로나19로 바뀌었다).
‘지원’과 ‘투자’의 투 트랙을 중심으로 한 청년창업 생태계. 삐딱하게 보자면 키워드는 ‘양극화’와 ‘쏠림’이다. 어려운 기업으로 가야 할 것 같은 지원금도 잘되는 쪽으로 쏠리고, 청년창업펀드의 ‘투자금’도 이미 잘 되고 있는 쪽으로 더 쏠린다. 

‘어느 정도 규모가 돼야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을 수 있나요?’
평소 청년창업가들로부터 자주 받는 질문이다. 많은 청년창업자의 바람과 달리, 기업가치가 꽤 높아야 투자를 받을 수 있다. 벤처캐피털은 지배주주가 될 수 없고, 한번에 10억원이 넘는 큰 금액을 투자하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투자대상이 되려면 기업가치가 최소 50~100억원 정도는 돼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청년’이 ‘창업’한 ‘초기’ 스타트업 중에 그럴 대상이 얼마나 있을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얼마 전부터 액셀러레이터들도 모태펀드 조합을 운영할 수 있게 돼 비교적 적은 금액의 투자도 한다는 점인데, 수백 개의 액셀러레이터들 중 투자다운 투자를 하고 있는 기업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차후 기회가 되면, 이 부분은 길게 설명하겠다).
▲중기부 그랜드 챌린지

양극화와 쏠림의 ‘딜레마’…지원답게! 투자답게!
정부가 주도하는 청년창업 생태계가 점점 촘촘해지고 있지만, 양극화 문제도 점차 심화되는 추세다. 될 만한 안정적인 기업에 지원하고, 리스크가 적은 기업에 투자를 하는 동안, 스펙 좋고 정책 트렌드에 부합하는 모범적인 ‘승자독식’이 크고 작게 번져가고 있다.
정부가 혁신적인 청년창업을 지원도 하고 투자도 하면서 관리도 잘한다는 건 어쩌면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시장과 민간에서 청년세대를 책임질 리 없으니, 정부가 나서는 것도 불가피하다.
현실적 대안은 정부가 주도하되, 지원은 지원답게, 투자는 투자답게 하는 것뿐이다. 지원은 기회가 부족한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창업자에게 과감하게 하되, ‘실적타령’은 포기하는 게 낫다. 정부가 주관기관을 옥죄며 실적을 관리할수록 이미 잘나가거나 안정적인 창업자에게만 지원의 손길이 늘어난다.
투자는 투자답게 벤처캐피털이나 운용사들의 역량을 믿고 맡겨보는 게 어떨까. 상시 관리보다는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는 게 좋겠다는 얘기다. 이미 시장에는 정부 부처의 정책 방향에 맞춰 설계된 ‘목적성 펀드’가 많고, 그 목적대로만 잘 투자돼도 바람직한 일이다.
대신 청년창업펀드를 운용하는 벤처캐피털 등 운용사들은 수수료를 통제하는 큰손 ‘슈퍼갑’ 모태펀드의 눈치만 볼 게 아니라, 제발 좀 청년창업자들의 눈치를 봤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청년창업자들에게 보다 친절하게, 검토할 테니 기다리라는 ‘희망고문’도 좀 줄이고, 보다 투명하고 명확한 프로세스로 다가가길 바란다. 어차피 모태펀드가 뿌려준 그 돈, 원천은 세금이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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