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반발 중대재해법, ‘중대 위기’ 맞나

[법으로 보는 세상]이해 당사자 모두 불만 속 “처벌 강화보다 예방 힘써야” 지적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입력 : 2021.02.03 10:16

2020년 12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서울청년유니온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뒤로 고 김용균 씨의 조형물이 보이고 있다./사진=뉴스1
#2008년 1월 7일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의 주식회사 코리아2000 냉동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인부 57명 중 40명이 사망했다. 당시 창고 지하에서는 전기배선 설치와 냉매 주입 등의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사고의 원인은 우레탄 발포 작업 중 시너가 유증기에 착화돼 불이 붙은 것으로 추측됐다. 화재 위험이 컸음에도 소방 당국은 이 건물에 현장 점검 없이 소방안전점검 필증을 발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인부들에게 안전교육조차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4월 29일 
경기도 이천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인부 78명 가운데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중경상을 입은 참사가 발생했다.
최초 폭발이 시작된 건물 지하 2층 화물용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 현장 부근에서 우레탄 작업 중 유증기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폭발했고, 불은 순식간에 내장재와 샌드위치 패널 외벽을 태우며 확산됐다.

2008년 냉동창고 사건에서 법원은 코리아2000 법인과 대표 공모씨에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각각 벌금 2000만원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현장 소장과 방화관리자 등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나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위험한 환경에서 작업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고도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아 근로자가 사망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냉동창고 화재 사고 이후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심사·확인’ 제도가 도입됐다. 위험한 작업장 또는 장소에 기계 및 설비를 설치하는 경우 시공사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유해위험 방지계획서를 제출하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12년 만에 같은 도시에서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노동계는 잇따라 성명서를 내고 기업에 대한 철저한 처벌과 재발 방지를 요구했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기업살인법) 제정을 촉구했다.

2020년 6월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우선 입법 촉구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 김휘선 기자
민주노총은 이천 냉동창고 화재 직후 성명을 통해 “건설업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위험한 작업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기본의 안전조치가 묵살되는 현장의 현실은 지난 12년 동안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민주노총은 “이천 냉동 창고 사고와 이번 사고는 쌍둥이처럼 똑같다”며 “지난 사고 이후 강화되었다던 유해위험 방지계획서 등에 사고 위험이 지적됐지만 철저히 무시됐고 결국 노동자들을 떼죽음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고 원인에 대해 철저히 진상조사를 하고 책임자를 규명할 수 있게 노동자와 시민 등 민간 참여를 요구한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노동자 시민의 죽음의 행진을 끊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법 국회 통과…내년 시행


중대재해법이 1월8일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64표, 반대 44표, 기권 58표로 통과되고 있다./사진=공동취재사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공포안(중대재해법)’이 지난달 8일 국회를 통과하고 19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내년부터 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나아가 감독 의무를 위반한 법인이나 기관은 사망 사고는 ‘50억원 이하의 벌금형’, 부상이나 질병은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손해액의 최대 5배 이하’의 징벌적 손해배상금도 물어야 한다. 

다만 5인 미만 사업장은 산업재해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4년 뒤 적용하는 등 예외·유예 조항을 뒀다. 당초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정치권이 발의한 중대재해법안에는 5인 미만 사업장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도 산업재해 처벌 대상에 포함됐다. 하지만 중기부가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적용을 요구하면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과정에서 제외됐다.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협력업체 운송설비를 점검하던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 김용균 씨(당시 24세)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지는 비극이 있었다. 이와 비슷한 사고를 막기 위해 지난해 1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개정됐고 일명 ‘김용균 법’으로 불린다. 

이 법은 유해·위험 작업의 도급 제한, 원청의 책임 강화, 안전조치 위반 사업주 처벌 강화 등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의 잠정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 중 업무상 사고 사망자는 860명으로 2019년 855명보다 늘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해 4월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를 계기로 중대재해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중대재해법이 제정됐다. 후진국형 중대 재해를 끊어내기 위해서 경영 책임자도 처벌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업이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함이 법의 취지다.



노동계, “실효성 없는 누더기 법안”


한상균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이 1월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처벌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중대재해법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로 인해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노동자 중대재해가 발생하더라도 기업주는 처벌받지 않는 면책특권이 생긴 것이다. 

2018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79.8%를 차지한다. 또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수는 전체 노동자의 26.5%인 587만7128명이다.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가운데 5인 미만 사업자 노동자가 20%에 달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지난달 성명을 통해 5인 미만 사업장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 데 대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죽음과 5인 이상 사업장에서 발생한 죽음이 다르지 않음에도 죽음에도 차별을 두는 저의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제정안 철회를 촉구했다.

또한 5인 미만 사업장이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사업체를 4명 이하로 쪼개는 편법이 판을 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노총은 “사업장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일부러 쪼개는 업체가 속출할 것”이라며 “산재가 발생해도 실제 처벌로 이어지지 않고 피해자만 꾸준히 나오게 될 수 있다”고 했다.



재계, “재해 예방 아닌 과잉 기업 처벌”


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경제계 역시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중대재해법은)충분한 논의 시간을 두지 않고 성급히 처리됐다”며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강력한 기업 처벌로 국내 기업은 더 이상 국내투자를 늘리기 어렵고, 외국기업들 역시 한국에 대한 투자를 주저할 것”이라고 했다.

전경련은 “국회와 정부는 기업 활동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사회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효과적인 산업안전 시스템을 구축해 중대재해 ‘기업처벌’이 아닌 중대재해 ‘예방’에 힘쓰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이 지난해 12월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입법 추진 관련, 30개 경제단체·업종별협회 공동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는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하지만, 이번 입법은 기업에 복합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산재의 모든 책임을 지우고 과도한 형량을 부과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후 엄벌보다는 사전 예방이 더욱 중요하다”며 “산재 예방을 위한 시스템과 시설에 대한 투자, 교육 및 인식 변화 등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지속적으로 이를 독려하고 동기부여를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중대재해법이 경영계 핵심요구를 반영하지 않은 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며 “선진경쟁국 사례를 토대로 법 시행 이전에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합헌적·합리적인 법이 되도록 개정을 추진해주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법 통과에도 끊이지 않는 재해…與野 즉각 법 개정?


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산업재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10일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유연탄 저장 업체에서 협력업체 소속 기계 정비원 A씨(33)가 물류설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다음 날인 11일 광주 광산구 지죽동 플라스틱 재생 사업장에서 B씨(51)가 기계에 몸이 빨려들어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12일에는 부산 수영구 오피스텔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C씨가 9층 높이 건물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15일에는 수원시 인계동 라마다호텔에서 불이 나 수도관 동파 공사를 하던 작업자 1명이 사망했고, 함께 일하던 작업자 2명 등 총 8명이 부상을 당했다.

산업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경영자의 처벌 강화가 아니라 예방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졸속으로 처리한 것 아니냐’는 비판 속에 여야는 법 개정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민주당은 논란 속에서도 일단 ‘합의’를 이뤘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어려운 법안을 여야 합의로 마련했다는 데 일단 의미를 두고 싶다”며 “의견이 분분한 사안을 조정하고 합의하는 것이 의회민주주의의 힘이다. 그러나 그러다 보니 양쪽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낼 수도 있는 것이 의회민주주의의 한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불편한 기색은 있었다. 우상호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저는 미흡하다 생각하고, 그런 주장을 계속해왔다”며 “애초에 이 문제를 주장했던 정의당과 또 김용균 어머님 이런 분들에게는 볼 낯이 없다”고 말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단체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사진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12일 “(중대재해법을) 졸속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다양한 현장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며 “그런 부분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전날 경총, 중소기업중앙회, 대한전문건설협회장 등 경제단체들과의 자리에서는 “중대재해법은 합의된 법안이 아니다. 저희는 대부분 반대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입법 보완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최형두 원내대변인은 “경영계와 노동계 양쪽 모두의 항의를 받았지만 경영계도 노동계도 납득시키지 못한 법의 폐해는 결국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임은 명약관화 아닌가”라며 “통과된 법이라도 부작용이나 문제가 있으면 진솔하게 사과하고 보완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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