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로 넘어오는 가상세계의 감정들

[김동하의 컬처 리포트]영화 <레디플레이어원>, <프리가이> 속 ‘충격과 사랑’의 융합과 혼돈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김동하 교수 입력 : 2022.03.03 09:25
▲ 김동하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
#1 한 엄마가 VR 헤드셋과 장갑을 끼고 소파 위에 서서 신나게 게임을 하고 있다. 현실세계에서 아들이 엄마를 불러도, VR 세상 속에서 전투에 한창인 엄마는 아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이내 VR 게임 속 세상에서 총을 맞은 엄마는 그 충격으로 소파 뒤로 벌러덩 넘어진다.

#2 역시 VR 세상 속에서 게임을 하던 한 소녀. 게임 속에서 죽으면서 게임머니를 모두 잃어버리자 VR 헤드셋을 벗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3 사무실에서 VR 헤드셋을 쓴 채 앉아 있는 한 중국인. 게임 속 세상에서 죽자, 갑자기 헤드셋을 집어던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고 시도한다.

영화 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필자는 게임을 즐겨 하지는 않지만, 과거 게임 속 성공과 실패로 현실세계에서 즐거움과 고통을 받았던 기억들은 있다.

(물론 실력 탓에 고통이 늘 컸지만) 아울러 게임 속 세상에서 오토바이를 타다가 부딪히거나, 차량이 전복되고 나면 그 충격이 실제 감각으로도 전해지곤 했는데, 충격의 정도는 게임의 몰입도에 비례했던 것 같다.
실제로 가상공간 내에서의 죽음과 좌절 같은 충격은, 이처럼 뇌를 통해 현실세계에 전달된다. 게임의 몰입도나 시각 또는 청각신호의 정확도에 따라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장동선 박사와 같은 저명한 뇌 과학자들은 이 이유로 우리 뇌는 이미 메타버스 가상세계 속에 있다고도 말한다. 뇌는 바깥세상의 모든 감각을 똑같은 형태의 전기신호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상세계의 시각적 충격을 현실세계 뇌가 현실의 충격으로 인식한다는 의미다.

물론 ‘인지부조화’, 즉 멀미는 있다. 실제로 뇌는 시각뿐 아니라 온몸의 근육 움직임을 전기신호로 인식해서 판단하는데, VR 헤드셋을 쓸 경우 전달되는 시각 및 청각 신호와, 목과 어깨 등 근육 등의 움직임이 주는 신호는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뇌가 몸 근육을 통해 받는 전기신호가 시각정보와 다르기 때문에 멀미를 경험한다는 것. 장 박사는 만약 뇌가 모든 몸의 근육이 주는 전기신호를 똑같이 전달받는다면 인간의 뇌는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구분할 수 없다고 한다.

게임 속 사랑이 현실세계로?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어요. 현실세계에서도 좋구요.”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그룹 디즈니가 투자배급한 영화 에 나오는 대사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 속 ‘프리 시티’라는 게임 속에서 ‘몰로토브걸’이 던진 대사다.
여주인공 밀리는 ‘프리시티’ 게임 속에서 ‘몰로토브걸’이라는 캐릭터로 활동하면서 주인공 ‘가이’를 만난다. 게임 속 세상에서 처음 만난 주인공 가이는 몰로토브걸을 보자마자 호감을 느끼고, 몰로토브걸의 마음에 들기 위해 게임머니를 열심히 획득하면서 강력한 캐릭터로 성장해나간다. 이어 몰로토브걸도 마음을 열고 가이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둘이서 호감을 확인하려는 장면. 몰로토브걸은 이처럼 현실세계에서도 만나고 싶다는 말을 던진다. 실제로 게임 속 가이에게 매력을 느낀 건 현실세계에서 게임을 하던 밀리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상세계에서 현실세계로 전달되는 건 ‘충격’만은 아닌 것 같다. 숀 레비 감독의 영화 는 더 나아가 가상세계 속에서의 호감이 현실세계로도 이어질 수 있을지를 영화적 설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영화의 주연 ‘가이’를 맡은 라이언 레이놀즈의 역할은 심지어 NPC다. ‘플레이어 이외의 캐릭터(Non Player Character)’, 즉 게임 플레이어가 조정할 수 없는 캐릭터로, 개발자의 의도대로 코딩된 캐릭터를 말한다.
영화 속에서 가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금붕어와 인사하고 커피를 마시며 은행으로 출근하도록 코딩된 NPC다. 다른 NPC와의 유일한 차이점은 사랑에 대한 결핍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이처럼 현실세계 인간과 게임 속 NPC와의 관계로까지 사랑이라는 감정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가상세계 캐릭터들의 호감은 현실세계의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오가며, PC(Player Character)와 NPC, 인간과 NPC 간에 오가는 감정의 혼돈과 융합을, 영화 에서는 복잡하지만 유쾌하고 재미있게 풀어가고 있다.

게임하는 아이들의 현실과 가상 ‘분리’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감정연결은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도 한 번쯤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어지간한 부모라면 우리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게임을 좀 하더라도, 공부할 때는 게임과 현실을 완전히 분리하길 희망할 것이다.
하지만 뇌 자체의 특성과 한계를 봐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하물며 게임 도중에 컴퓨터를 꺼버릴 경우, 그 충격으로 인해 현실세계에서 공격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 필자 또한 게임에만 몰두하는 아이들이 걱정스러워, 당장 게임기를 집어 던지고 게임 세상과 현실세계를 단칼에 끊어내고 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밀려오곤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뇌의 착각 또는 한계를 떠올리면서 개입과 잔소리의 톤을 낮추곤 한다.

부모들의 걱정과는 별개로, 인류의 뇌를 향한 현실과 가상의 연결은 더욱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창업한 뇌신경과학 벤처기업인 뉴럴링크의 경우, 2017년부터 직접 인간이나 동물의 뇌에 칩을 이식함으로써 인간의 뇌와 가상세계를 연결시키는 프로젝트를 펼쳐왔다. 뉴럴링크는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학과 연구제휴를 맺고 원숭이의 뇌에 칩을 심어서 게임을 진행한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후 실험에 참여한 원숭이 16마리가 죽었다며 동물학대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뉴럴링크는 이를 반박하며 연구를 계속해가고 있다.
뉴럴링크는 인간이 생각만으로 각종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목표로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를 개발해왔다. 2022년부터는 인간의 뇌에도 칩을 심는 임상실험을 시도할 계획이다.

페이스북(메타)은 2021년 7월 사람의 뇌파 활동을 문장으로 바로 출력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산하 연구 조직인 페이스북 리얼리티 랩(Facebook Reality Labs)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연구팀이 공동 연구로 개발한 ‘브레인 컴퓨터 인터페이스(BCI)’를 통해서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에 발표됐다.
리얼리티 랩은 주로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분야를 연구해온 데 이어, 2017년에는 ‘생각을 이용한 입력 시스템’의 인터페이스 개발을 통해 두개골 외부에서 뇌의 활동을 광학적으로 읽는 방법 개발에 매진해왔다. 뇌졸중으로 말을 할 수 없는 환자의 뇌 외피에 전극을 이식하고, 인공지능(AI)이 뇌파 활동을 문장으로 해독하는 방식을 구현해냈다.

진보하는 디지털 기술은, 이미 인간의 뇌에 전달되는 전기 신호와 디지털 가상세계를 연결하는 데는 성공했다. 더 나아가 뇌 신경망과 손의 근육을 연결해서 뇌에서 생각하면 원하는 대로 타이핑이 가능한 기술, 뇌파로 물건을 컨트롤하고, 생각만으로도 자유자재로 팔이 움직이며, 인간의 사고와 기계의 동작을 바로 연결하는 기술. 글로벌 기업들은 이 같은 ‘뇌 인터페이스(BMI:Brain Machine Interface) 기술’을 통해 가상세계와 인간을 연결시키고 있다.
영화 , 에서 보여준 인간과 가상세계 캐릭터와의 연결은 지금도 확장되고 있다.

일터까지 침투한 가상세계 캐릭터의 감정
다시 우리 현실세계 일터로 돌아와보자. 코로나로 세계가 신음하는 동안, 줌은 물론이고 개더타운, 이프랜드, 메타 등 온라인 가상세계 플랫폼들이 얼마나 많이 우리의 일터로 침투해 있는가.
한국에서도 귀여운 아바타 형태의 개더타운으로 출근이나 업무를 하는 기업이 많이 있다. 만약 현실세계의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만, 개더타운 속 내 디지털 아바타는 계속 다른 곳을 돌아다닌다면, 나의 근태관리에 대한 기분은 과연 안녕할 수 있을까.

만약 독자 여러분이 현실에서는 좀처럼 지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개더타운 내 직장에서 내 디지털 아바타가 지각을 일삼는다면? 여러분 현실세계의 멘탈과 근태관리는 충격을 입지 않을까?
온라인 플랫폼이 점점 현실세계 ‘일터’를 잠식해가는 세상. 디지털 아바타가 우리의 정보를 많이 흡수할수록 우리의 현실과 가상은 보다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가상공간 속 아바타가 당신의 아이덴티티를 조금이라도 담고 있다면, 당신은 결코 그 아바타의 감정과 분리될 수 없다. 우리 모두 뇌를 가진 인간이니까.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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